태풍 링링의 포로.
하늘로 나뭇잎들이 휙휙 날아다니는 매미급태풍 링링이 엄청 위험하다고 절대 오늘 하루만은 밖에 나가지 말라 고 아내가 외출금지령을 내려놓아서 하루종일 집안에 틀어박혀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도 하지못하고 있으니 몸이 근질근질하고 좀이 쑤시는 것 같다. 창문을 잠깐 열어놓으면 불어오는 바람에 책상위의 종이들이 다 날아가 버린다
이 비 바람에 며칠전 사과 따주러 갔다왔던 문경 처제집 과수원의 사과들이 별 일 없는지 걱정이 된다.
바람이 씽씽 불고 나뭇잎들이 휙휙 날아다니는 걸 보면 바깥에 나갔다가 사고나 당할까싶어 겁이 나기도 하지만 내심 바깥을 돌아다니고 싶은 어린아이같은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한다.
억지로 집안에 틀어박혀 있으니 책을 보아도 내용이 머릿속에 잘 들어가지도 않아 보다가 덮고 보다가 덮고 한다. 이번에는 문화센타에서 받아 온 수채화를 위한 그림쌤플들을 보고 연필로써 스케치를 한다. 저걸 어떻게 그려야 하나 하고 걱정을 하면서도 차분하게 조금씩 그려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이 완성돼 원본과 비슷한 그림이 돼 있는 걸 보면 은근히 기분이 좋은데 마치 등산을 할 때 저 높은 곳을 언제 올라가지 하고 엄두를 못 내고 있다가 꾸역꾸역 걷다보면 어는 순간 정상에 와 있는것을 알고 땀을 뻘뻘 흘리고 다리가 아파 쩔쩔 매면서도 느낄 수 있는 그 희열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저녁 8시경 바람이 좀 잠잠해진 것 같아 우산을 들고 아내에게는 " 갑갑해서 좀 걷고 와야겠다 " 고 얘기하고 옆 학교 운동장으로 간다. 운동장에서 걷기를 하니 강하지도 않고 선들선들 부는 바람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링링이 북쪽으로 올라가고 그 여풍으로 간간이 나무를 흔들기는 하지만.
태풍 하면 정확히 언제인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어릴 때 TV에서 논밭이 온통 물바다가 되고 온갖 가재도구 소 돼지등 가축들이 떠내려가고 사람이 초가지붕위에서 손을 흔들며 구명을 요청하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고 시골 우리집 마당에 있던 오래 된 석류나무에서 주먹만한 석류들이 마당에 툭툭 떨어져 벌겋게 벌린 잇발을 드러내던 사라호 태풍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링링이 평양쪽을 방문하고 있다니 정은이도 그 몸을 가지고 동분서주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일 날씨가 평온을 되찾으면 링링이 얼마나 들판을 들쑤셔 놓았는지 나가봐야겠다.
2019.9.7 (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