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
오선덕
드라이플라워가 좋을까 하다
꽃병에 꽂기로 했다
맨 먼저 리본을 풀고
코팅된 철사 끈을 풀고
튕긴 고무줄에 손가락을 얻어맞고
가위로 자를까 하다가
언젠가 묶인 비닐봉지가 쉬이 풀리지 않아 찢어버린 적이 있었다
그런 나를 보고
매듭은 자르는 게 아니라 푸는 거라고
인연도 얽히면 단번에 가위로 자를 거냐는 말이 생각났다
꽃들이 웃고 있다는 착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몇 번의 고무줄을 더 푼 후에야 보이는 가지마저 묶여 있다
여덟 번이나 묶인 채 긴 시간 숨죽이고 있었다
입도 크고 속 넓은 화병에 꽂아주니 그제야 웃는 얼굴이 보였다
여태껏 나를 묶고 있는 고무줄과 철사 끈들을 밤새도록 헤아렸다
크루아상
집으로 가는 늦은 오후
쇼윈도우에는
몇 개의 크루아상이 쟁반에 담겨 있다
찢어진 빵 껍질 사이로 보이는
뭉개진 새하얀 속살
고소한 향기가 빠져나간
딱딱할 것 같은
멀어진 꿈처럼
닳아가는 신발 뒤축의 속도를 비웃듯
더디었던 시간들
먼 피라미드 끝 세상을 향해 쉬지 않고
걸었던 날들
끊임없이 허기에 시달리는
하루를 낳고 하루를 떠나보낸다
등을 말아 올리며 달려올 것만 같은
성난 파도를 닮은
크루아상이
식탁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