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흰나비가 돌아왔다
이기철
도라지꽃 곁에 쪼그려 앉아 '너도 대구에 가고 싶니' 물
으면
도라지꽃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창문을 달면 비둘기가 올 거라 믿었다
물새 발자국을 따라가다 되돌아온 오후엔
맨발로 산그늘에 앉아 동화를 읽었다
학교에서 배운 말들은 한 마디도 읽지 않고
고추밭에 간 어머니의 호미 소리만 읽었다
43년에 태어나서 43년 동안 시를 쓴다
손이 작아서 가슴이 여려서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
어서
시를 쓸 때 내 어깨 위로 흰나비가 날아왔다
홑적삼이 땀에 젖은 어머니가 날아왔다
-시집 『흰 꽃 만지는 시간』(민음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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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꽃한테 말고
나한테 '너도 대구에 가고 싶니' 물었으면
'네'라고 답했을 텐데 ...
시인은 도라지꽃을 제 자리에 앉혀 둔다.
도라지꽃이 있어야 할 자리는 바로 거기
시인은 도라지꽃 앞에 쪼그려 앉아 유년을 불러들인다
학교에서 배운 말 보다
풀꽃잎 입술 여닫는 소리
눈썹새 날갯짓 소리
어머니의 호미 소리를 읽었기에
현재의 시인이 존재하는 것이리라
시인의 손이 작음을 확실하게 인정한다
'숙경이 그 손으로 뭐하겠노?' 하셨지만
시인의 손을 만져 보고 잡아 본 사람은 안다
딱~ 시를 쓰는 손일 수밖에 없음을...(혼날 수 있음 ..ㅎ)
43년 동안 쉬지 않고 시의 밭을 일궈낸
시인께 화랑 한 잔 올려야겠다.
9년 전 흰나비처럼 날아든 시인과의 인연에
영원이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앉기를...
시인의 오늘 밤 꿈엔
흰나비와 어머니가 출연하기를 바라면서...
2017년 유월
박숙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