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보통 세상만사가 대부분 합리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사회에서는 언제나 가장 능력있고 훌륭한 사람이 지도자가 되고,
기업에서는 가장 일을 잘하거나 다른 사람에 비해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만이 간부나 임원으로 승진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사회는 항상 가장 합리적인 원칙과 판단에 의해서 움직일 것이라는 일종의 고정관념이다.
하지만 실제 사회는 그렇지 않으며 비합리적인 면이 매우 많다는 주장이 있다.
1914년 영국 해군의 수는 15만명, 군함 수리창의 관리와 사무원은 3200명, 여기에 근로자가 5만 7000명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14년 후인 1928년에는 전쟁이 없어 해군이 10만명으로 줄고 군함 수도 줄었지만, 수리창 관리와 사무원은 오히려 4600명으로 늘었다.
또한 해군의 수는 30% 정도 줄었지만 수리창의 관리와 사무원 수는 40%, 본부 관리자 수는 무려 80%나 늘어났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그 이유는 해야 할 업무는 줄어들었는데도 관리들은 자리수를 늘리기 위해 이것 저것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만들어 사람 수를 늘렸기 때문이다.
업무량 감소와 관리자 수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분석하여 하나의 법칙으로 제시한 사람이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사회생태학자인 노스코트 파킨슨(Northcote Parkinson)이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동안 영국 해군의 사무원으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1955년 관료제의 본질을 꿰뚫어 본 ’파킨슨의 법칙’을 만들어 발표했다.
그 내용은 ’공무원의 수는 업무의 양에 상관 없이 증가한다’거나 ’출세를 위해서는 부하의 수가 많아야 되기 때문에 자꾸 늘린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통계적으로 분석한 뒤 수식으로 만들었는데, 공무원 조직은 업무의 증감에 상관 없이 매년 평균 6% 정도 증가한다는 내용이다.
지금부터 50여년 전에 나온 법칙이지만, 아직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다.
비단 공무원 조직뿐 아니라 기업을 비롯한 사회 어느 조직에서도 이 법칙은 있다고 생각한다.
작은 기업이 계속 성장하고 성공을 해서 큰 기업이 되고 나이가 많아지면 대기업병에 걸리게 된다.
대기업병에 걸린 대다수 기업에서는 파킨슨 법칙이 이야기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파킨슨은 이 외에도 여러가지 흥미로운 법칙을 제시했다.
그 중 하나는 ’사소한 것에 대한 관심의 법칙’이다.
이 법칙은 어느 위원회에서 하나의 안건을 결정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예산액의 크기에 반비례한다는 것이다.
어느 위원회의 회의 내용을 보면, 1000만 파운드에 이르는 원자로의 설계에 관한 안건 처리는 고작 2분30초밖에 안 걸렸는데, 이는 위원회의 위원들이 대부분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해서 발언을 자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 안건으로 어떤 위원회의 회의 때 제공하는 간식비 50파운드에 관한 논의는 1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는 위원들 모두 한마디씩 했기 때문이다.
파킨슨은 이와 같이 사회 곳곳에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이 많기 때문에, 그 과정에 있는 허점들을 잘 알 수 있으면 비교적 유용한 의사결정을 얻어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만일 기업이나 우리 사회가 파킨슨의 법칙에 대해 좀 더 잘 알고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말 우수한 사람이 조직을 이끌고, 중요한 결정은 전문가들이 모여 신중하게 한다면 그 조직, 그 사회는 훨씬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윤종용 / 삼성전자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