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독백, 나이 먹음에 대하여...
나는 때때로,
사실은 자주, 독백을 합니다.
생각 속에 빠져있다가, 생각이 현실속으로 말이 되어 빠져나오는 겁니다.
이번 주는 다문화가족 방문 마지막 주간입니다.
가정마다 방문하여 결혼이민 여성들을 만난 지 4년 차가 되었습니다.
내년이면 오 년차에 접어듭니다.
오늘은 모든 방문 일정의 끝남을 공지하는 것을 핑계삼아,
결혼이민여성의 남편과 만나거나 통화하며,
그 동안의 만남을 통하여 발견된 아내의 장점과 잘 하고 계신 것,
남편으로서 도와야 할 점 등을 알려드렸습니다.
또 이번 주간의 마지막 남은 하루를 어떻게 마무리 할 것인 지에 대해 의논하니.
더욱 시간의 흐름이 실감납니다.
그 동안의 울고 웃으며 쌓인 '국경없는 정'을 뒤로 하고,
하루 일과의 목표인 아들 저녁밥 챙기러 집으로 갑니다.
영등포구 도림동 골목을 길게 빠져나와,
신길동 우신초등학교 사거리에서 우회전.
방문하는 지역과 심리적으로 가까워지기 위해,
한달에 십 삼만원을 내고 배우던 기타 학원을 지나,
사러가쇼핑을 오른쪽에 두고 좌회전,
신호대기중인 6652 마을버스를 보니,
타기 위해 뛰는 것 보다 집까지 걸어가는 것이 나을 듯 합니다.
또 한 해가 가는구나...생각하며 머리를 땅에 쳐박고 타박타박 언덕을 오릅니다.
내 발과 눈이 같이 움직이다가 문득,
도저히 고개를 들지 않고는 걸을 수 없는 정점에 다다릅니다.
신길동 사러가쇼핑쪽에서 신길동 해군회관 사거리를 통과하는 지하도 위 언덕.
도로의 끝만 보이는 듯한 해군호텔 바다아파트 지평선에서,
갑자기 화~악 하늘이 펼쳐보이는 지점.
텅빈 하늘과 뾰족한 신남교회 탑만 존재하는 듯한 착시현상이 일어납니다.
.
신길동 해군호텔 꼭대기에 오르면,
시골 동산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바람이 있습니다.
연말 마다 꽃길에서 도로, 도로에서 꽃밭 등,
다양하게도 바뀌는 모습이 예산이 남아도는가? 싶을 만큼 의구심이 일지만,
꽃밭을 없애고 넓어진 도로 곁,
콩알만한 공원에 놓여진 작은 벤치의자에 앉으니,
가까워진 하늘과 싸늘한 바람이 모든 불만을 날려버립니다.
"하아~ 또 한 해가 가는구나..."
'나이 먹음'은 겁이 무엇인지,
자신이 얼마나 불완전한지 처절하게 알려주는 역할인가? 등
말 한마디,
글 한 줄 쓰는 것이 두려워지는,
나 자신의 심리적 출처를 밝혀내듯 생각에 빠집니다.
문득 한 숨을 길게 내 뿜다가,
"아아...이제 일 년 남았다.
일 년 정도만 더 다문화가정을 방문하고 그 다음엔 내 마음대로 살까?
그래도 한 분야에서 오 년 정도 했으니까 조금 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정말 신발이 닳고, 발바닥이 닳도록 영등포 일대를 돌아다녔구나...
혹시 돌아다니기만 하고,
발바닥이 닳도록 다닌다는 의미를 잊고 있은 것은 아니겠지?
2006년, 농활이 끝날 무렵 결심하며 사람들 앞에서 말하였던 것,
마을 세 군대를 두루 다니며,
밑바닥 사회복지를 사 오년 정도 하고 싶다고 했던 그것이,
날 수만 채우는 것은 아니었겠지?
사회사업 닫사자라고 여겼던 그 사람들.
나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나를 만났던 그 사람들의 생각이 동일할까?
나이를 먹는다는 것,
경험이 많아진다는 것...
16살,
그 때는 내가 점점 완벽해진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인생의 반을 살았는데,
사는 것이 왜 이렇게 자신이 없어지는 걸까...
댓글 한 줄,
말 한 마디,
갈수록 조심스럽고 자신감이 없어지지?"
마을버스를 타면 금방 도착할 거리를,
구태여 땅보고 걷다가 또 하늘보고 걷다가,
한참만에 내가 참 좋아하는 길에 섰습니다.
언덕에서 떨어지듯 내려가서,
해군회관 사거리로 진입하는 은행나무 길게 늘어선 오솔길.
불빛 사이로 사람들이 바쁘게 왕래하는 그림자가 보이고,
오솔길 옆 식당가에 택시기사들의 분주한 주차소리를 들으며 마음이 바빠집니다.
또 다시 문득,
"에이~ 난 신이 아니잖아.
평생 죽을 때 까지 난 불완전한 인간인데, 뭘...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한 오 년 방황하고,
올 해 시월에 돌아가신 언니 생각에 또 방황하고,
난 언제쯤 정서적으로 안정되는 거야?
또 언제쯤 완벽하게 사람들을 대할 수 있는거야?
뱉어낸 말과 글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는 때는 도대체 언제인거야?"
그리고 해군회관 사거리에 도착해서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동작구 대방동으로 건너려는 막바지 건널목에 설 무렵,
뭔가를 끝내려는 듯 소리칩니다.
"주님~ 전 사람이잖아요!!
그냥 신이신 하나님 흉내 안 내고, 사람답게 울퉁불퉁 살래요.
실수하면 어때요. 저인걸요.
완벽하려면, 전 평생 잠수타야 할 테니까.
사회복지, 완벽하게 언제 하겠어요?
그냥 할 수 있는 만큼 할래요."
괜히 가만히 계신 주님께 소리치며 주절거립니다.
아마, 주님은 익숙하실테니 괜찮겠지만,
지나가는 사람이 수상히 여길까봐 괜히 허우적 둘러봅니다.
나이 먹음...
나에게 '나이 먹음'이란,
'혼자 묻고 답하는 주절거림이 더 많아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술 먹고 비틀거리며 혼자 걸어가는 사람도,
지하철에서 피곤에 지친 듯 졸고 있는 사람도,
무거운 폐지 리어카를 수더분한 모습으로 끌고가는 백발의 할머니도,
'그냥 그대로 봐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저도 남이 보면, 혼자 주절거리는'얼빠진 여자' 일 수도 있을테니.
첫댓글 오늘의 독백. 잘 읽었어요.
"에이~ 난 신이 아니잖아. 평생 죽을 때 까지 난 불완전한 인간인데, 뭘..."
저도 종종 이렇게 혼잣말 해요. 나도 그렇고, 내가 만나는 모든 이들이 그렇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