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1: 언니 어떻게 지내?
청년시절에 몸담았던 성가대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활동을 했던 S언니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인상적이었다. 오른손이 조금 굳어있고 다리를 약간 저는 경증의 뇌성마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뇌성마비를 가진 사람은 그 때 처음 봤다.
S언니는 무척 성실했다. 연습시간 30분 전에 나와 연습실을 정리하고 간식을 나누어 주고 연습에 못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전화하고 뒤풀이 끝에 만취한 후배들을 알뜰히 챙겨서 택시에 태워 집에 보내고, 그 밖에 온갖 잡일을 다했다. 단원들은 그런 S언니에게 고마워했고 S언니의 약간의 불편한 손짓과 걸음걸이에 맞춰주는 친절도 베풀었다.
S언니는 식탐이 조금 많았다. 어쩔 때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음식 욕심을 부렸다. 다들 S언니의 식탐이 뇌성마비 증상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었는데, 몇몇 사람들은 그 점을 매우 불편해 했다. 개인들에게 피해가 크게 가는 것도 아닌데 S언니의 식탐이 그리도 불편해할 일인지? S언니의 식탐이 불편했던 것인지, 불편한 몸을 가진 S언니가 그냥 싫은 것인지 잘 모르겠어서 혼란스러웠다.
S언니와 나는 집이 같은 방향이라 천천히 걸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도 많이 하곤 했다. 여느 때처럼 신나게 수다를 떨다가 S언니는 문득 이렇게 말했다.
“난 내가 우리 부모님보다 먼저 죽었으면 좋겠어.”
툭 내뱉는 그 말을 듣고 나는 얼음처럼 굳어버렸었다.
“언니, ...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부모님과 형제들을 힘들게 하기 싫어. 나 이런 생각 진작부터 했어.”
“아, 언니.. 그런 말 하지마. 그러면 안돼. 그런 생각하면 안돼, 안돼.”
당황한 내가 안된다고 거듭 외치자 S언니는 “그래, 이런 얘기 그만하자.”라면 대화 주제를 돌렸다.
S언니의 말은 한동안 나를 매우 괴롭혔다. 장애를 대하는 나의 태도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S언니가 죽고싶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어떻게 했어야 하는지, 편견없이 S언니를 대하고 있었는지 등 모든 게 다 혼란스러웠다. 그러다가 우리가 S언니를 배려했던 것이 아니라 S언니가 우리를 배려했던 것이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언니가 가족들에게 짐이 되고 싶어하지 않았듯이 성가대 단원들에게도 짐이 되지 않으려고 무던히 배려했던 것 같았다.
S언니가 그런 말을 했을 때 꼭 안아주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그저 꼭 안아주는 것인데 그 조차도 못했던 점에 미련이 남는다. 그리고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여전히 밝은 표정과 쾌활함으로 무장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전화번호가 바뀌어서 연락이 닿지 않지만 통화가 된다면 이런 대화를 할 것 같다.
“언니, 나야. 잘 지내?”
“와, 오랜만이다. 덥다 더워. 나 땀 많이 흘려서 여름 싫어하는거 알지. 팥빙수 먹으러 한번 만날래?”
에피소드 2 : 양수검사는 왜 했을까?
노산이었던 나는 아이를 가졌을 때 온갖 검사란 검사는 다 받았다. 양수검사는 그 중 가장 불편했던 검사였다. 소위 기형아 검사라고 해서인지 검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불안한 마음으로 가슴을 졸였던 기억이 있다.
나의 출산을 축하해주러 왔던 대학 후배 Y는 나보다 1년 먼저 출산한 쌍둥이맘이었다. Y는 임신 중 양수검사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Y도 노산이었는데 왜 안했냐고 물었더니
“검사해서 기형이라고 하면 안낳을거야? 아니잖아. 낳을 건데 검사는 뭐하러 해”
어... 어랏.. 양수검사가 그런거였나? 아이가 기형이라 하면 임신중절을 할 수도 있는 것이었구나. 아, 나는 왜 몰랐지? 왜 거기까지 생각 못했지? 의사한테 안 물어 본건가?
생각해보니, 기형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기형이라는 판정이 나면 어떻게 되는지를 의사에게 물어보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니, 의사가 말을 했더라도 기형아인지 아닌지 보려는 거다 까지만 들으려했던 것일 수도 있다.
장애를 대하는 Y의 마음에 숙연해졌고, 나에게는 기형아가 안생길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했던 점을 반성하는 사건이었다.
에피소드 3: 수어를 배우고파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수어를 배우는 것이다.
“왜 배우고 싶어?” 라고 누군가가 묻기에 “그냥 배우고파. 몰라 나도. 왜 배우고 싶은지는” 이라고 말했다.
수어를 배우고 싶은 생각이 든 것은 20대에 만났던 나의 후배K의 영향인 것 같다.
20대 후반 친구들과 꽤나 술을 퍼마시며 청춘을 만끽(?)하던 시기, 후배K의 생일을 축하하러 모였던 술자리에서 주인공인 후배K가 갑자기 갈 곳이 있다며 생일모임을 마무리하자고 하였다. 모임이 절정에 다다를 즈음이라 모두가 술을 더 마시고 더 놀자며 만류하였다. 하지만 후배K는 반드시 가야하는 일이라며 자리를 정리했다.
“좀 더 놀자. 너 생일이라고 이렇게 모였잖아.”
“축하해주는 건 고마운데, 저 꼭 가야해요.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
“뭔데? 무슨 일인데?”
“음.. 시각장애인을 위한 책 녹음 하는 날이에요. 빠지면 안되어요.”
후배K의 말에 모두가 조용히 정리하고 일어났다. 그날 이후 후배K가 매우 다르게 보였다. 나와 결이 다른 삶을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후배K는 또박또박 잘 읽기만 하면 되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 내게도 해보라고 권하였는데, 놀기 좋아하는 시절이었기에 그냥 흘려보냈었다. 그런데 시간이 꽤 지난 지금, 그 때의 그 사건이 무의식에 남아있었던 것 같다. 그 때 못했던 책 녹음 대신 수어를 배워 나도 무언가에 기여하고 싶어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수어를 그냥 배우지 말고 수어의 의미, 농문화에 대한 이해 등을 바탕에 깔고 배워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곧 시작해 볼란다.
첫댓글 S언니랑 팥빙수 먹는 약속 잡으실 때, 저도 옆에 있다 같이 따라 가는 기분이에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