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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복지국가 사회복지연대'라는 모임에서, 특강을 주최할 기회가 있었어요.
이 전에 '사회적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시던 홍기빈님이 떠올라 제안했어요.
그래서 부천의 사회복지사 분들을 모시고,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경제적 이익인가 "좋은 삶"인가'의 주제로 특강을 열게 되었어요.
홍기빈님은 칼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책 내용을 전하며,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동기는
'인생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정신적 문화 공동체'이다 라는 이야기로 시작했지요.
이어 여러 이야기가 이어졌어요. 구빈법과 신구빈법, 경제학적 관점, 사회복지 정책, 사회적 관계….
와닿는 부분이 많았어요.
"복지는 사람을 다시 살리고 사회적 관계와 공동체를 복원하는 일 … "
" … ‘인생의 주인 되는 과정’이라고 봐요.
이것은 국가의 서비스제공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사회적 관계의 재구성이 필요해요.
원자화 된 이 마을에서 사람에게 필요한 건 사회적관계입니다. … "
"사회복지사 분들이 현장에서 이러한 분들을 만나는 것들이 아주 미시적인 물방울인데,
이 사회라는 게 그 물방울들의 총합이거든요.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가 정말 중요해요."
"신자유주의는 인간을 상품화하고 파괴하는 기업, 기관들이 많아요.
사회적 관계를 복원하는 역할을 하려는 기관은 없어요.
(부담을 드리는 듯해서 죄송스럽지만)
사회복지사분들이 유일하게 남은, 이 역할을 하는(하실 수 있는) 분들인 듯해요."
"이제부터 복지와 복지행정의 관점을
사회적 관계의 재구축과 사회적 관계로의 전환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야기하고 학습하고 행동했으면 합니다. …
이와 관련한 어떤 긍지, 기술이 생기면
이를 계속해서 교육시키고 성장시키는 길드로의 발전가능성도 봅니다."
'길드'이야기가 나왔을 때, 사회복지정보원이 생각났어요.
뜻있게 실천하시는 사회복지사 분들과 그 분들의 사례들, 그리고 감사한 마음 한가득.
'사회적 관계'와 관련된 홍기빈님의 특강 내용을 공유하고 싶어 정리해보았어요.
한글파일로도 첨부할게요~
20150602 홍기빈님강의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경제적 이익인가, '좋은 삶'인가).hwp
2015.06.02. 홍기빈님 특강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경제적 이익인가, "좋은 삶"인가」
3년 전, 스웨덴 사민주의에 대한 책 쓰고 특강을 한 적이 있어요.
특강이 끝나고 질문을 받는 시간에 어느 사회복지 공무원분이 그러시더라고요.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다. 좋은 이야기 인 건 알겠는데, 현장경험 안 해보셨죠?”라며
현장을 모르시는 듯하다 고요. 기초생활수급자들은 응급실 이용이 무료라지요?
술이 잔뜩 취해서 와서는 응급실 침대 내 놓으라 소리 지르고, 코 골며 자다 간다고….
복지를 줘서 사람이 망가졌다고…. 여기가 스웨덴인지 아냐고….
‘망가진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하셨는데,
이 짧은 이야기의 저변에 얼마나 큰 인간관이 깔려있는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사람은, 굶어 죽을 만큼의 고통이 없거나 눈앞에 금이 왔다 갔다 하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을까요?
18C 말 맬서스는 빈곤의 이유를 인구가 너무 많아서라고 봤어요.
그래서 굶어죽게 내버려 두는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어요.
이러한 흐름들이 있던 시대에 구빈법이 철폐되고 신구빈법이 제정되었죠.
이런 인간관이 팽배했던 시기에 전통 경제학자들이 이론을 정립했어요.
밀턴프리드만은 실업자들이 실업상태를 선택한 것이고, 그러니 불쌍하지 않다고 했어요.
이런 인간관이 사회복지정책으로 이어졌죠.
배고픔의 공포와 금전적 이익이 있어야 움직이는 것이 인간의 자연적 본성인데,
복지를 제공하면 이를 모르게 한다. 타성에 젖어 망가진다.
원칙적으로 현대 경제학 관점에서 보면 사회복지는 필요 없는 것이에요.
굶어죽는 게 맞다고 보는거죠. 19C까지 이러했고, 20C와 21C엔 그래도 완화되었지만
기본적으로 보수파는 사회복지정책은 쓰지 않아도 되는 돈이라 치부하고 최소한의 인본주의적으로만 제공했죠.
그 사회복지 공무원 분의 짧은 이야기에 이 생각이 깔린 것이죠. 그래서 소극적으로 필요한 만큼만….
칼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책의 12장 중간에 이러한 이야기가 나와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동기는 ‘인생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정신적 문화 공동체’라고요.
19C 중반에 백인들이 해변가 위주로 노예무역을 진행했는데,
후반부에는 제국주의 열풍으로 내륙에 들어갔어요.
산림과 부족들을 파괴하고 아주 박살을 냈죠.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데려가고….
그 때 도망간 사람들이 있어요, 밀림 속으로.
호모 이코모니쿠스적 관점에서 보면 운동화 문수가 안보이도록 움직였겠지요?
먹을 것이 지천에 있었고…. 그런데 그 부족 사람들은 해변가에 떠밀려온 고래처럼 숨만 헐떡이다 죽었어요.
왜 그랬을까요? 앞서 말한 인간의 동기와 관련되어 있다고 봐요.
논리적으로 설명이 힘들지요. 내면적 경험이기 때문에….
인류학자 마가레트 미드가 이러한 현상이 무수히 많이 발견된다고 기록했어요.
이와 관련한 일화들을 몇 개 더 알려드릴게요.
제가 캐나다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 뉴펀들랜드에서 온 여학생 친구가 한 명 있었어요.
뉴펀들랜드는 어촌마을인데, 1980년대에 캐나다 정부가 물고기 보호를 위해 수 년 동안 어획을 금지했다고 해요.
그래서 그에 따른 이주비, 교육비 등 보상금을 주고 복지를 강화를 했어요.
여기에서, 경제학적 인간의 관점이라면 행복해졌을텐데….
풍요로워지고, 원하는 공부를 하거나 원하는 곳으로 이사를 하거나….
음, 거의 대부분의 남자가 모조리 알콜중독자가 되었데요.
남자들은 오랜 기간 동안 어부로서 자라면서 남자다움과 남성성, 우정 등의 세계관 모두
어촌마을과 연관하여 그 문화를 형성했는데, 한 순간에 멈추게 된 것이죠.
알콜부터 가스까지 흡입할 수 있는 것은 다 흡입해서 몸이 망가졌다고 해요.
그것은 가정폭력과 성폭력으로 이어졌지요. 또 다른 예시도 볼까요?
이누이트, 에스키모 있죠. 환경단체의 반발로 바다표범 포획을 제한한 적이 있어요.
어떻게 되었을까요?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고 해요.
한 번 TV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누이트 족의 생활을 본 적이 있어요.
1년의 삶이 모두 바다표범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더라고요.
바다표범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먹고, 기름으로 불을 지피고, 뼈로 공예품을 만들고….
영혼의 일부분 같았어요.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야기, 춤, 행사 등등 바다표범이 없는 것이 없더라고요.
메콩강 주변에 무엇을 건설해야 할 경우가 생겨서 메콩강 주변의 한 부족을 도시로 강제이주 시킨 일이 있었어요.
산림을 모두 밀어버리고…. 그 부족의 청소년들은 어땠을까요?
도시생활을 하게 되었으니 좋아했을 듯한데, 청소년들이 모두 그냥 자살해버렸다고 합니다.
심리학자들이 이에 대해 해석하길, 청소년들은 15살과 16살 정도엔
개인의 자아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시기이기에 삶터인 자연과 공동체를 자신과 하나로 보았을 것인데
그것이 하루아침에 모두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라고 해요.
인생의 의미는 사회적 관계에서 부여받습니다. 정신적 문화를 공유하는 관계들의 반응에서요.
인생의 의미는 누구나 가지고 있어요.
돈이 많건 적건 어떤 모습을 했건 어렸을 때부터 한 땀, 한 땀 쌓아온….
칼 폴라니가 실제로 노동의 동기들을 조사했습니다.
무지하게 다양했다고 해요. 하지만 공통적인 결정인자는 있었다고.
그것은 그 사람이 속한 ‘공동체의 문화’에 따라 다양했다고 합니다. 미학, 정치, 종교 등….
베네딕트 수도회의 경우 끊임없이 노동을 합니다. 30분 단위로 나누어서요.
시계도 이 사람들이 발명했다지요. 내 영혼을 구원고자 하는 동기로 노동을 합니다.
폴라니는 앞서 말했던 이 ‘멍한 상태’에 대해 개인적 경험을 이야기해요.
폴라니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는데, 남자들은 처음 전쟁에 나갈 때는 낭만적 환상을 가지고 나가요.
이 나라를 위해 싸워서 영웅이 되서 돌아오리라….
하지만 실제로 1차 세계대전은 소모전이었지요.
2~3년 동안 적진을 두고 총질만 계속되거나, 독가스로 눈이 멀기도 하고,
갑작스런 폭탄에 몸을 다치기도 하고…. 폴라니는 당시 멍~ 해진 상태였다고 해요.
말을 타고 가다가 말이 쓰러졌는데, (보통 이런 경우엔 몸을 얼른 빼야 더 큰 부상을 피할 수 있지요.)
어떤 반응도 않은 채 그냥 그대로 함께 쓰러졌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한 상태에서 유일하게 있던 책인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읽는데,
햄릿의 그 마음이 크게 공감되었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 유령이 나타나서, 너의 어머니는 창녀였고,
삼촌과 합심해서 나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것이라며 복수하라고 하면 어떠실까요?
그 후 햄릿은 그 ‘멍한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여기에서 유명한 독백이 있죠. “To be or not to be” “사느냐, 죽느냐”로 잘못 해석되는….
이렇게 보면 엄청나게 심오한 고민을 한 듯한데, 실제로는 “살아서 뭐하냐~”하는 의미에요.
있는 거나 없는 거나 무슨 차이인지 자문하는.
옛날 연극 무대의 구조를 보면, 앞으로 불쑥 튀어나와 있었어요(℧).
그리고 객석은 2층에는 귀족들이 있고, 1층에는 가난한 계층이 있었죠.
이 햄릿의 독백은 그 무대의 맨 앞에 걸터앉아 읊조리듯 했다고 해요.
이러한 상태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들리도록 한 것이죠.
매일이 즐겁고 축제 같은 귀족들은 이해하지 못할 감정이니까요.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그 후엔 아마 아노미 상태였을 거예요. 앞서 말한 그 멍한 상태….
하지만 우리의 아버지들은 악착같이 일했어요. 예외이지요. 왜일까요?
처자식을 책임져야한다, 자기 힘으로 일어서야 한다.
그게 인간의 도리라고 생각해온 독특한 문화적 전통 때문이라고 봐요.
빈곤이나 전쟁을 겪었던 라틴 아메리카나 아시아의 다른 나라와는 다른 현상을 보인 거예요.
다 열심히 일하지 않았거든요.
처음에 이야기했던 응급실 병상을 요구한 수급자 분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복지를 해서 사람이 망가졌다고 하는데, 인과관계가 바뀌었어요.
그 수급자 분은 아마 중졸일 확률이 높을 듯해요.
15~16살에 자기 인생의 의미를 축적할 시간이 없었을 거예요.
낮은 학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뻔했을 테고,
언제 술을 배우고 어떤 공사판에서 어떤 사고의 위험성이 있었을지….
단 한 번도 어떠한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경험을 하지 못했을 거예요. 사회가 사람을 그렇게 대했는데….
이를 다시 복구시키는 게 ‘복지’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사람으로서 대하고. 자신이 어디서 어긋났는지 되돌아보고
다시 한 땀, 한 땀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요. 물질적인 것과 동시에 정신적인 것으로요.
최소한의 것을 전달하는 것은 좋다고 봐요. 하지만 그것만은 아닌 거죠.
공동체적 관계의 회복, 사회적 관계의 복원이 중요해요.
최근 2~3년 간 복지 관련 예산만 가지고 논의가 있지요.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전달할지,
전달 형태는 어떻게 할지, 그 저변에 깔린 철학은 무엇으로 할지가 중요합니다.
마을공동체를, 사회적 기업을 어떻게 볼지
그리고 사회복지사는 어떤 권리가 있으며 어떤 긍지 혹은 직업의식을 가지고 임해야 할지
이에 대한 논의가 더 필요해요. 경제학적 관점에서는 사회복지를 필요악쯤으로 보니까, 돈 계산만 하려들고….
복지는 사람을 다시 살리고 사회적 관계와 공동체를 복원하는 일인데 도요.
액수도 중요하죠. 하지만 어떻게 해야 사회적 관계를 회복할지,
수급자, 납세자, 전달자 모두가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도울지도 중요하다고 봐요.
이 전에는 정치로, 중앙국가 위주의 사회복지였다면
이제는 지역에서, 사회복지 실천가가, 마을에서 마을공동체로서 사회복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래로 부터 시작하는 게 맞다고 봐요.
[질의응답]
Q1. 한국사회는 뼛속까지 신자유주의가 내면화 되어 있는 듯해요.
사회복지사조차도…. 이런 학습이 여러 곳에서 있으면 좋겠지만, 이런 담론들이 설 힘이 없는 듯해요.
저라고 뚜렷한 답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자유주의는 정신적 문화가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닙니다. ‘돈’이라는 정신적 문화가 있는 것이죠.
물론 저희 어머니도 돈을 매우 밝히시지만, 신자유주의자는 아니에요.
자린고비를 경험했던 사람으로서 이지요.
신자유주의는 하나의 가치관인거에요. 단순히 ‘돈이 좋아’가 아니에요.
돈(물질)이니, 정신과 대치하여 지레 겁먹고 사람들은 싸우지 않으려 하지요.
다른 문화적 가치관으로 상대해야 해요. 제 생각에는 신자유주의는 하나의 종교 같아요.
누구나 예쁘고(멋있고) 돈 많은 상대를 만나고 싶어 하지요.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고 좌절은 하지 않잖아요.
하지만 이를 정신적 가치로 두는 사람은 정말 좌절해요.
거울 앞에 서서, 결혼과 취업시장에서의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는 분들 계시죠.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구조조정을 해요. 기업의 구조조정이나 마찬가지에요.
나와 세계를 바라볼 때, 무엇을 가치로 둘 것인가.
돈을 지향으로 두는 것은 자기개발서에 구현된 듯해요.
미국에서 공부하다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
지하철에서 자기개발서를 읽으시는 분들 표정을 보는데 종교인 분들이 성격 읽듯이 읽으시더라고요.
“그래 맞아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해.” 이렇게요.
대안적 세계관으로 말싸움을 해야 해요. 요즘 쿨생쿨사로 안 싸우려 하는데, 안돼요.
신자유주의는 인간을 상품화하고 파괴하는 기업, 기관들이 많아요.
사회적 관계를 복원하는 역할을 하려는 기관은 없어요.
(부담을 드리는 듯해서 죄송스럽지만) 사회복지사분들이 유일하게 남은,
이 역할을 하는(하실 수 있는) 분들인 듯해요. 예전엔 교회나 사찰이 행했는데,
한국사회에서는 요즘 이 또한 비지니스에요.
서양에서는, 보수적으로는 교회가 이 역할을 하고 진보적으로는 노동운동이 이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돈이 좀 있으면 살아가는데 큰 불편이 없지만, 하위 30% 분들은 계속 어렵지요.
사회복지사 분들이 현장에서 이러한 분들을 만나는 것들이 아주 미시적인 물방울인데,
이 사회라는 게 그 물방울들의 총합이거든요.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가 정말 중요해요.
Q2. 사회복지와 사회적 경제를 어떻게 연결하면 좋을까요?
저는 나누어 생각하지 않아요. 동일한 미션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사회적 관계의 복원이요.
5,60년대 케인즈 주의와 국가주의 등에 의한 ‘빈민관리’에서 7,80년대에는 이에 비판받고 문제의식을 가졌어요.
수급자 개인의 ‘인간발전(Human Development)’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는데,
저는 이것을 ‘인생의 주인 되는 과정’이라고 봐요.
이것은 국가의 서비스제공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사회적 관계의 재구성이 필요해요.
원자화 된 이 마을에서 사람에게 필요한 건 사회적관계입니다.
국가와 공공기관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지만,
실제적으로 집행되고 전달되는 과정에서는 사회적 관계를 재생해야 해요.
사회적 기업이 영리조직이 아니잖아요.
사회적 가치와 사회적 관계의 회복에 경제활동이 결합된 것이에요.
복지행정의 전달사업을 마을 공동체로서 하면, 마을 주민과 협력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요.
동네에 가보면 지역복지와 사회적 경제를 함께 하는 것이 맞지 않나, 그것이 현실적이라 생각이 들어요.
Q3. 홍기빈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건강한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요?
제가 좋아하는 철학자 Cornelius Castoriadis가 있는데요.
이 사람이 말한 것 중에 “Autonomy”라는 것이 있어요. ‘자율, 자치’라고 옮겨 쓸 수 있을 듯한데요.
'Auto'는 ‘스스로’, ‘Nomy’는 ‘법률’의 어원을 가지고 있어요.
스스로의 법률을 스스로에게 부여한다는 것인데요. 인생의 주인 되는 것이지요.
내가 내 인생을 어떤 식으로 계획할지 생각하고 행하는.
가장 이상적으로 자유로운 상태이지요.
이에 대해 아테네인들은 공동체 전체가 “Autonomous”하지 않으면 개인도 그러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얼마 전에 성매매 여성분들을 만나는 실천가분들 교육이 있었어요.
정부는 2년 안에 그 사람들을 재활시키라 하는데(주거나 직업과 관련하여) 속이 터지는 거죠.
매일 변덕이 죽 끓듯 한다고요. 절대 안 된다고요. 1년 내내 이 과정이 반복되며 죽겠다 하시죠.
스스로에게 어떤 질서를 부여할지 남이 정해주는 건 아니라고 봐요.
자기 스스로 생각해낼 수 있고 삶을 지배할 수 있어야 해요. 이것은 혼자서는 안 되요.
그것이 민주정을 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고요. “Autonomy”를 지지하고 장려하는 규범적문화로요.
요즘에 이렇게 홀로서려 하면 어떻게 되나요?
사람들은 “배가 안 고픈가봐, 굶겨”라고 하며 위험인자가 되지요.
귀농한 한 친구가 마을이 감옥 같다며 힘듦을 토로한 적이 있어요.
이른바 공동체는 억압적인 요소가 분명 있지요. 감 놔라, 배 놔라….
민주주의 적이고 개방된 공동체가 건강한 사회의 모습이라고 봐요.
Q4. 그런 공동체 본 적이 있으시나요?
다리에 힘이 쭉 빠지네요. 표방하며 시작했지만 그렇게 되지 못한 공동체들…
진보정당, 노동조합 등을 많이 봐왔어요.
요즘은 협동조합과 사회적 경제 하시려는 분들이 많이 계셔요. 이런 분들이 늘어나시는 듯해요.
저 같은 경우는, 어린 사람과 대화할 때엔 나름의 원칙을 세웠어요.
그 사람이 3마디 할 때 저는 한마디 하는 방식으로요. 훈계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나름의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 베네딕트 수도원은 그런 공동체 아닌가요?
: 그곳은 위계가 강합니다. 수도원장이 시키는 대로 하지요.
# 그 규율을 지키겠다고 선택해서 들어간 것 임에도요?
: 프로레타리아들도 공장으로 선택해서 들어갔지요.
이는 “Autonomy”의 정반대인 “Heteronomy”에요.
종교가 기업 혹은 대학을 만드는 경우가 있지요.
이 또한 사회적 경제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사회적 가치가 음침한 경우도 있으니까요.
Q5. (기존 시장 경제 이미지와 반대되는 새로운 경제적 상상력을 일상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보자 얘기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적 경제나 협동조합, 지역 생협, 마포구 마을기업 등에 방문해보시는 것을 추천 드릴게요.
Q6. 요즘 드는 고민 중에, 나는 왜 일을 하나? 나는 정작 어떤 삶을 살길 원하나? 생각이 들어요.
저와 같이 사는 사람은 완전한 “Autonomy”이거든요. 선생님은 왜 일을 하시나요?
전 지금 “Autonomy” 이 상태에요. 10살, 12살 때부터 꿈이 멋대로 사는 것이었거든요.
# 같이 사는 사람은 일 안해도 행복해 보이던걸요?
: 오래 못가요. 초등학교 때 겨울방학 2월 생각나시죠?
사회복지사 분들께 정신 상담등과 같은 배려가 필요하다고 생각 되요.
사회복지사분들 중에 그저 ‘직업’으로 택하신 분들과,
앞서 말한 ‘비전, 사명’으로 택하신 분들로 분류할 수 있다고 보는데,
후자의 경우는 보통 힘든 게 아니거든요. Commitment(헌신, 책임)을 요구받는 것이기 때문예요.
이와 관련한 어떤 긍지, 기술이 생기면 이를 계속해서 교육시키고 성장시키는 길드로의 발전가능성도 봅니다.
Q7. 노인상담사로서 좌절이 많아요.
그 일을 하지 않는 동기와 무기력함.
사회적 복지도 중요하지만 심리적 지원이 적어 안타까워요.
개인의 힘으로 한계가 있지요. 계속해서 도시락 던져보아야 무엇이 변할까요?
이제부터 복지와 복지행정의 관점을 사회적 관계의 재구축과
사회적 관계로의 전환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야기하고 학습하고 행동했으면 합니다.
첫댓글 태인아~ 반갑다.
태인이 화곡살이와 배움 나눔 응원한다.
저도 학교 수 때 특강으로 오셨는데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신자유주의의 논리 중 효율 극대화가 있는데
이게 기업의 이윤추구원리 뿐만 아니라
우리 실생활에 스며드는 것이 문제라는 말을 듣고
놀랐습니다.
그리고 한국 복지가 잘 돌아가려면
사회조직이나 지역사회 조직에 대해서 말씀 하셨는데
완전히 신세계였습니다... ㅠㅠ
감사합니다. 지난번에 칼폴라니 책을 읽을 기회가 있어 강의를 들으러 가고싶었는데 못갔었거든요~마침 이렇게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