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10년차가 되니 대학 때 배운 걸 우려먹을 대로 다 우려먹은 것 같아. 이제 공부 좀 해야 되지 않을까. 공부를 하려면 강의를 들어야 할 텐데, 내 수준에 맞는 강의는 어떻게 골라야 할까. 일단은 독학을 할까? 독학을 하려면 교재를 잘 골라야 할 텐데. 교재만 누구한테 좀 골라달라고 해야 하나. 생각할 게 너무 많네. 에이, 당장은 회사나 다니자.”
진짜 공부하고 싶은 사람 맞나? 그냥 공부해라. 집에 있는 딸내미 문제집이라도 일단 풀어라.
"인생에 질문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겠어. 나에게 뿐만 아니라 나를 알고 싶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내가 질문을 던지는 일을 정말 하고 싶어. 그런데 질문을 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질문들이 따라오더라고. 이 질문들이 종국에 가닿는 곳이 어디일까? 원론적인 이야기가 궁금할 땐 고전을 읽으라고 했지. 그래, 고전을 읽어보자. 하지만 지금껏 날 것 그대로를 경험하며 얻은 나만의 답이 오래 걸린만큼 더 소중했는데, 고전에서 답을 쉽게 찾게 되면 날 것을 경험하는 용기가 더 이상 안 날까봐. 그것도 고민이네."
별게 다 고민이다. 그냥 좀 읽어라. 고전 한 권이라도 읽어보고 고민해라. 제발.
"탁구를 반년쯤 쳤더니 이제 탁구가 뭔지 좀 알 것 같아. 오늘은 관장한테 그동안 궁금했던 회전의 원리에 대해서 좀 물어봐야겠다. 나는 말이지, 운동이든 뭐든 원리를 깨쳐야 더 잘하게 되는 것 같아. 아니, 상대방이 회전 서브를 넣으면 받을 때마다 튕겨져 나가잖아. 회전 서브가 오면 반대로 받으면 된다는데, 상대방이 회전서브를 넣는지는 또 어떻게 아냐고. 또, 스매싱을 하라고 해서 있는 힘껏 공을 때렸는데 나보고 자꾸 힘을 빼고 치라잖아. 근데 힘을 빼면 어떻게 공을 치냐고! 오늘은 관장님하고 한판 토론이라도 벌여야할까봐."
관장님은 내말에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다. 그냥, 열심히 치다보면 알게 돼요. 3년만 그냥 치세요.
"글을 무척 쓰고 싶어졌어. 요샌 글쓰기 모임도 나가고 있다니깐. 근데 아직 한 달에 한번 글 쓰는 것도 무척 힘들단 생각이 드네. 책 리뷰는 어떻게 써야 잘쓰는 건지, 편지글은 또 어떻게 해야 상대를 감동시킬지, 남들에게 별 느낌이 없는 글을 쓴다면 글을 쓰는 의미가 없는 건 아닐까? 내 치유용 글이라면 그냥 집에서 일기나 쓸 일이지 뭐하러 남에게 내 글을 막 보여주고 그러겠어. 잘 쓰려니깐 글이 더 잘 쓰여지지 않는건 알겠는데, 그래도 잘 쓰고 싶은 이내 마음 어쩔 줄을 모르겠네. 아! 난 언제쯤 쓰고 싶은 글을 막 쓸 수 있는 사람이 될까?"
정작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하더라. 그냥 쓰세요.
그냥 공부해라.
그냥 읽어라.
그냥 쳐라.
그냥 써라.
내 머릿속은 남들 때문에 복잡한 게 아니었다.
내 실력도 달리 딸리는 게 아니었다.
나는 그냥 좀 해볼 필요가 있는 사람이다.
고민과 생각만 10년째 한 친구의 말을 빌자면, "그러다 똥 된다"
첫댓글 하하하, 맞습니다. 그냥 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오늘도 내일도 어제와 똑같아질 테니까요.
그냥 써볼 마음이, 진짜, 생기네요 ㅎ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저는 저지르고 보는 스타일이라 실수도 많고, 이것저것 건드리느라 성과가 없기도 합니다. 생각이 많아서 안정적인 것도, 계획보다는 일단 움직이는 것도 나름 괜찮지 않나. 그렇게 긍정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