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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반박글을 올려드립니다. 저는 구원받지 못한 분들에 대해서, 그분이 목사이든 교인이라 불리든 그 분들에게 기본적으로 그리스도의 연민으로 대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제 글이 "아마도" 목사님이실 것 같은 님에게 다소 충고투로 들릴지 몰라도 용납하여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믿음의 결국 곧, 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9)
이 말씀을 잘 분석해 보면 믿음은 구원을 받기 위한 출발이고 과정이지 구원의 완성은 아닙니다.
--> 답: 한글킹제임스 바른 말씀으로 인용합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결과, 곧 너희 혼들의 구원을 받음이니라(벧전 1:9).
Receiving the end of your faith, even the salvation of your souls(Peter 1:9).
자, 저는 헬라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만일 님께서 A.D.100년 이전의 코이네 헬라어 완벽 구사자를 상대로 글을 쓰셨다면 저는 님의 글에 대해 헬라어에 헬라어로 대응해 드리겠지만 아시죠, 이 까페는 대부분 영어도 구사하기 힘든 분들이 많고 한국말을 쓰는 한국 사람들이 계시니까 저는 그분들의 입장을 존중해서 한국말과, 필요하면 영어로만 설명할 것입니다.
그냥 단순히 보자면 믿음의 결과가 "혼들의 구원"을 가져왔다고 해석해야 됩니다. 영어로도 end of faith, 구원의 결과로서 혼들의 구원이 왔다, 그렇게 말씀합니다. 영어도 과학적인 말이라서 전반 후반절 상호 일치를 보면 the end of your faith가 the salvation of your souls 라는 것은 미국 초등학생도 킹제임스 성경만 보면 쉽게 아는 내용입니다. 그러니 이런 "쉬운 것들"을 가지고 헬라어로 뒤집으려 하신다면 만일 님께서 혹시나 "구원받으신 게 맞다면"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서 님 궤변을 해명해야 할 것입니다. 아..그런데 그리스도의 심판석을 모르실 테니...아무튼 그런 게 있습니다.
구원은 마지막 심판때 가서 결정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으면 곧바로 구원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고 또 그렇게 전도도 합니다. 그러나 구원은 마지막 심판 때에 가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유월절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 홍해를 건넜으나 곧바로 가나안으로 들어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무려 40년의 기나긴 광야길이 있었습니다.
무엇을 보여줍니까?
구원을 향한 출발과 도착 사이엔 기나긴 시련과 연단과정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 답: 구원은 마지막 심판대에 가서 결정된다, 정말 그렇게 믿고 계십니까? 저는 남의 구원을 함부로 판단하고 다니는 경솔한 사람은 아닙니다만 대놓고 "나 구원 못 받았어요" 하는 분에게는 그렇군요 맞네요 대답해 드릴 수 밖에요. 님이 갖고 계신 믿음이 카톨릭 신부들이나 불쌍한 천주교 신자들보다 무슨 점에서 차이가 있는지, 또 님이 자주 인용하시는 청교도 설교들과는 무슨 상관이 있는지 깊이 생각 안해 보셨습니까? 청교도들은 결코 님처럼 말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구원은 이미 살아있을 때 받고, 이루어지는 것이며, 최후의 심판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드릴테니 제가 소개하는 성경구절들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거부하지 않고 님도 믿으시면 지금이라도 구원받으십니다. 저는 다른 분들보다, 님이 이걸 보고 구원을 받으셨으면 해서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2,13 그러나 누구든지 그를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구너세를 주셨으니, 즉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니라. 그들은 혈로나 육신의 뜻으로나 또한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였고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라
요한일서 5: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다는 것이라.
에베소서 1:13 그분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 구원의 복음을 듣고서 그분을 신뢰하였으니 또 너희가 그분을 믿고서 약속의 그 성령으로 인침을 받은 것이니라.
요한복음 10: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그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또 아무도 나의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할 것이니라.
고린도후서 5:17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옛 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
각 구절들을 또다시 헬라어 사전 찾아서 반박하시려 한다면 저는 한국말이나 영어로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그리스 사람이 아니고 여기 계신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니까 그게 상호 편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수많은 비유들을 통해서도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씨를 뿌리자 곧 열매가 맺힌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씨앗이 열매가 되는 과정에는 파종과 성장과 추수라고 하는 중간과정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복음의 말씀은 씨앗이며 그것이 우리의 심령 밭에서 잘 성장하여 그리스도를 닮은 알곡이 되어야 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 씨뿌리는 비유를 행위구원에서 그렇게 적용한다는 것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 씨앗이 열매가 되는 과정을 행위와 노력이라고 해석한다면 저는 님에게 반문하고 싶은 것이 한 가지 생깁니다. 님 마음 밭의 관리자는 성령님입니까? 아니면 님의 자아와 육신입니까? 누가 그 밭을 관리하고 곡물들을 성장케 보살피는 것입니까? 님 자신이 씨를 파종, 성장, 추수한다고 설마...생각하진 않으시죠?...물론 좋은 밭(좋은 성품)에서 좋은 곡식, 더 많은 곡식이 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면 씨가 심겨졌다면 곡식은 적든 많든 납니다. 곡식이 안 나는 사람은 씨가 제대로 안 심긴 것(구원 못 받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서 열매로 보여야 되는 것은 "그 자신의 구원의 증거"(열매들), 그리고 다른 더 많은 씨가 없는 황량한 밭들을 찾아다니며 복음의 씨를 뿌려서 거기서도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열매낼 수 있게" 도와주는 그 일(하늘창고의 곡식들)입니다. 님은 그 일을 하고 계십니까? 그렇다고 하면 어떻게 씨뿌리는 비유를 열심히 노력하고 선하게 살아서 천국가자는 본문으로 인용하실 수 있는지 저는 전혀 이해가 안 가네요. 그렇지요?
또 예수님이 말씀하신 달란트 비유나 므나의 비유를 보면 반드시 종들에게 사업자금을 나누어주시는 것이 있고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난 후 그것을 결산하시는 장면을 볼 수 있는 데, 이것은 하나님의 일에도 투자가 있고, 또 결산이 있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 당연히 하나님 일에는 정산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정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영원한 것들을 놓고 정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니므롯이나 느부캇넷살을 통해서도 자신의 일, 즉 배교한 백성을 징계하는 일을 맡기십니다. 그일을 잘 수행했으면 그들은 이 세상에서의 부귀와 권세를 다소 받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상은 그분의 종들의 것입니다. 세상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반드시 결산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 즉 그를 믿어서 거듭나는 일이 하나님의 일로서 "결산"할 일입니까? 그리스도인이 구원받을 때 그는 자기 구원에 대해 아무 노력(육신적 노력) 없이 오직 믿음으로 받는데 감히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저, 참 잘 믿었지 않습니까? 댓가를 주세요 믿은 댓가" 하면 얼마나 어리석고 창피한 짓입니까? 주님께서는 거저 선물로 주신 구원인데 그걸 삯을 받고자 한다면...믿음은 하나님 왕국에서 "결산 대상"이 아니고 믿음의 행위들, 즉 복음전파가 그 결산 대상입니다. 제가 제대로 바로잡아 드렸습니까?
또 성경에서는 예수님과 성도사이를 신랑과 신부로 비유하고 있는데, 유대인의 결혼제도를 보면 약혼과 결혼식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약혼과 결혼 사이엔 준비 기간이 있는 것입니다.
이 기간에 남자는 집을 준비하고, 여자는 결혼 예복을 준비한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있을 곳을 준비하러 가시겠다 하셨으므로(요14:2), 그 사이에 성도들은 흰옷을 준비해야하는 것입니다. (계19:7)
--> 당연히 약혼과 결혼 사이에는 일정 기간이 있습니다. 유대인의 결혼 제도가 그런 게 아니라 모든 문화가 다 그렇습니다. 한국도 약혼과 결혼 사이에 약혼 기간이 보통 있습니다. 물론 약혼 안하고 바로 결혼할 수도 있지만 보통은 약혼 기간을 이 결혼을 정말 할지 심사숙고하는 숙려기간으로도 사용하니깐요. 그러면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몸된 신부를 약혼 상태에 두시는 이유가 주님께서 이 신부랑 결혼할까 말까 숙려기간으로, 즉 마음에 안 들면 파혼해 버리려고 그런 기간(2000년 교회역사)을 두셨다고 지금 믿으시는 건 아니겠죠? 물론 신부는 결혼예복을 이 기간동안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결혼 예복을 멋있게 화려하게 준비한다 한들, 정작 신랑이 거부해 버리면 다 소용없습니다. 지금 님께서 신부 예복 단장을 결혼 조건으로 생각하시는 건 주님을 마치 변덕스러운 신랑으로 만들어서 조금 기분나쁘면 마음을 바꾸는 그런 존재로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착각하시는데 계19:7에서 그 성도들(대환란에 처한)이 흰옷을 스스로 예비한 것도 아니라 주어집니다. 흰옷은 성도들의 의라고 했으니 대환란 때는 그리스도의 값없는 의가 아니라 어느정도 노력으로 구원을 얻는 요소가 있음을 설명합니다. 이걸 행위복음주장하는 분들은 이 시대 그리스도인이라고 믿어 버리지요.
어쨋든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다는 것은 이제부터 예복을 눈물나게 지어서 신부 심사에서 탈락 안 하려고 노력하는(행위)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예복을 스스로 지을 수도 없습니다. 성령께서 도와주셔야 그 열매들을 내고 예복이 단장되는 것입니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먼저 이 은혜 안으로 돌이켜서 "혼의 구원"을 받고,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대로 십자가 안에 들어와 쉼을 얻는 것입니다. 성경 몇 구절 인용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구절들 중 하나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쉼을 주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서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에 쉼을 얻으리라.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기 때문이라."고 하시더라(마 11:28~30).
이렇게 첫 믿음을 가지는 것은 구원이라는 종착역을 향하여 출발하는 시작임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의 결국 곧, 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9)
이 본문에서 "결국"이란 말은 원어로 [텔로스]인데, 끝, 마지막, 목적, 목표라는 뜻이 있습니다.
즉, 믿음이라는 길의 마지막에 가서야 혼의 구원이 있게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본문에 나오는 <받음이라>는 말이 현재형으로되어 있으니 이미 구원을 받아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실지 모르지만, 그것은 현재 받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믿으면 그 결과가 구원을 받는것은 불변의 진리이기 때문에 현재형으로 쓴 것입니다.
--> 첫 믿음과 나중 믿음의 가치를 분리하는 것은 결국 믿음을 이원화시켜서 구원받는 믿음은 과거에 잠깐 통과한 경험 정도로, 그리고 현재는 오로지 견디고 견디는 것으로 오해시키는 것입니다. 님은 헬라어로 끝 이라는 단어를 해석하셨는데, 개역에는 결국 으로 되어 있지만 결국 그것이 그것이고, 마지막, 끝이란 말입니다. 자, 저는 헬라어 사전이 해결해 줄 수 없는 마음의 문제를 여기서 보게 됩니다. 그 끝을 무슨 끝으로 해석하는 것은 해석자의 주관입니다. 지금 님께서는 그 끝을 이 세상 끝, 또는 최종심판 자리의 그 끝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베드로전서 1:9의 그 성구에서 그런 끝을 말씀하시는지 근거가 되는지 그걸 말해야 순서입니다. 그런데 님은 현재형은 틀렸다는 것을 강조하는 데만 여념없으시고 정작 님이 설명하고자 하는 그 끝이 최종심판이라는 근거 제시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제가 님 하는 식으로 그 구절을 설명해 볼테니 님이 어떤 모순을 만드시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결과, 곧 너희 혼들의 구원을 받음이니라
-> 님 해석: 이는 너희 믿음의 결과(백보좌 심판석), 곧 너희 혼들의 구원을 받음이니라(??).
님, 영원한 현재형을 여기에 적용한다는 것은 넌센스를 증폭시킵니다. 제한적 인간은 영원한 현재형의 대상이 못 됩니다. 주님께서는 계시록에서 종종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전에도 있고 지금도 앞으로도 있는 영원한 "현재"이신 하나님이심을 선포하십니다. 그런데 님은 지금 영원한 현재형으로 인간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더라도 사람은 그대로 사람입니다. 독생자의 것을 사람에 영광 돌리면 그건 부끄러운 정도가 아니라 두려운 모독이 될 수 있습니다. 헬라어를 너무 공부하시다보니 쉬운 한국말도 잊어버리신 게 아닌가 염려됩니다.
믿으라는 명령형은 연속적인 믿음을 의미한다.
헬라어 문법에는 명령법이라는 것이 있는데, 영어에서의 명령법은 원형동사를 사용하지만, 헬라어에서는 현재형을 사용하기도 하고, 과거형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현재형을 사용할 때는 그 명령이 반복적이며 계속적임을 말하고, 과거형을 사용할 때는 단회성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신약에 나오는 <믿으라>는 구절들은 대개 현재형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막11:22)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요4:2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요14:11)
--> 자, 제가 역시 쉬운 한국말로 다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반복형이다 완결형이다 구분하는 의미에 대해서 님이 그렇게 설명하시는데, 그러면 님은 그걸 이론적 형이상학적으로만 다룰 게 아니라 스스로도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반복적이고 계속적으로 당신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났다고 계속해서 반복하여 고백하고 또 고백하여야 한다면 님은 어느 주기로 그렇게 하시는가 말입니다.
저를 예로 들면 저는 처음 구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모신 후에 단 한번도 저를 다시 구원해 주세요. 저 구원이 뭐가 틀렸습니다 하고 기도한 적은 없습니다. 저를 형편없다고 생각하실 게 뻔하지만 저는 저의 구주이신 분께 저는 당신을 신뢰하지 않으니까 당신 일(구원)을 똑바로 다시 해 주세요. 하는 말은 못하겠더군요. 그리스도인이 맞다면 누구든 저와 같을 것입니다. 심지어 구원을 잃어버릴까 겁내는 진짜 구원받은 크리스찬이 있다 해도 제 생각이지만 그들도 이미 받은 구원을 또 달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도 뭐가 이상한 줄 아니까 구원을 잃는다고만 걱정하지 "또 받을 궁리"는 안 하는 것입니다.
님은 구원을 과거, 현재반복으로 임의 구분해서 쓸데없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 믿음이라는 단어를 현재 반복으로 해서 구원받아야 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님의 발상이신 것입니다. 자, 만일 정말 현재반복과 완결의 헬라어 의미가 그렇게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고, 그것 때문에 반복해야 되는 걸 한번 받는다 오해해서 실족할 것 같았으면 님 생각에 성령께서 그 단어를 구별되게 달리 주셨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하십니까? 그러나 성령께서는 그냥 단순하게 "믿으라"고만 하셨습니다. 님이 하셔야 할 일은 거기서 시제 나누는 데 골몰하시는 게 아니라 시키시는 대로 그냥 "믿으시면" 구원받으시는 겁니다.
이상 위에 인용된 <믿으라>는 말은 모두 명령법 현재형이므로 '계속해서 믿으라'는 뜻임이 분명합니다. (다만, 위의 제시된 성구들 중 요4:21절은 NA(네슬알란드)에서는 현재형이지만, TR(공인본문)에서는 과거형을 써서, 단회적 명령임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또 중요한 행16:31절의 바울의 간수에게 하신 말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란 말씀에서 '믿으라'란 말씀이 명령법 과거로 되어 있어서 어리둥절하게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구절을 이렇게 이해합니다.
이방인인 간수이기에 개종을 권유하는 뜻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개종은 한번이면 족하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롬1:17)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믿음은 단회적이 아니라 연속적인 성질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 제가 한가지 제 경험적 얘기를 하자면, "계속해서 믿으라", "믿으라"를 구별하려 치열하게 애쓰시는 님을 위하여, 제 경험을 통해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자,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저는 거듭났습니다. 저는 24시간 어느 한 순간도 그리스도께서 내 죄나 실책이나 다른 무슨 이유로 해서 저를 생명책에서 도려내실까봐 두려워 떨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마찬가지로 내 죄나 실책이나 어떤 이유로 해서 제 행위와 생각이 부정한 것으로 나타나서 주님을 슬프게 하는 것을 염려합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에게도 따뜻하게 주님 사랑을 전하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과거에 제가 마귀의 자식이었고 거듭났을 때 내가 믿은 믿음은 단순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모든 죄를 그분께 맡기고 홀가분해 진 것 밖에 없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첫 믿음의 순간을 항상 기억하며 기회 있을 때마다 저의 주님께 그 때 일 참 감사했습니다. 저 절대 안 잊겠습니다. 기도합니다.
님...믿음은 본질적으로 "현재진행"입니다. 왜냐하니 믿음 자체가 주님의 선물이기 때문이고 이 믿음에는 주님의 "불멸"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주님께로부터 받은 그 "믿음"이요, 자기 상상의 믿음이 아니라면 그 믿음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입니다. 제가 한 것처럼 님은 못 하실 겁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야,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래서 지금 열심히 노력해서 쟁취하려고 하시는 거잖아요. 님...죄송합니다. 님이 믿으시는 그 믿음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그것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님의 "노력에 대한 믿음"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이제라도 영접하시고 헛된 소망들 대신 그분을 붙잡으시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청합니다.
잘못된 구원의 확신을 주입하지 말라
이렇게 구원이란 계속적인 믿음을 가짐으로써 그 마지막에 받는 것이므로 이제 겨우 믿기 시작한 사람에게 구원을 이미 받았다는 식으로 교리를 주입한다거나 구원의 보장을 억지로 심어주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가졌으니 이 보배로운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두려워하면서 잘 지켜나가라고 가르쳐야 성경대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과 여러 사도들이 보여준 합당한 태도인 것입니다.
--> 자, 저는 "계속적인 믿음"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주님께서 이 육신 안에서 어찌됐든지 결국 저를 구원해서 주님의 아름다운 형상으로 변모시켜 주시리라는(부활과 휴거) 그 소망입니다. 이 소망은 저의 계속적인 믿음과 관련있지, 제가 과거에 구주를 믿을 때 고백했던 그것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의 믿음을 지지하시는 분은 제 안에 계신 성령님이지 제가 임의 창작한 믿음이 아닙니다.
님께서는 구원의 보장을 억지로 심어주려고 하면 안된다 말씀하시는데 그 말은 매우 합당합니다. 구원받지 않고 어떻게 구원의 보장을 신뢰하겠습니까? 저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구원의 보장을 갖게 해 주려고, 구원도 안 받은 상태에서 그렇게 하려고 시도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닙니다. 먼저 구원을 받았다면 구원의 보장은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성령을 통해 배우고 터득하여 자연히 그 이치를 알게 됩니다. 물론 성경도 공부해야 오해하지 않지만 말입니다.
님께서는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잃어버릴까봐 두려워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제가 두려워하는 분은 "하나님"이시지 제 "두려움을 두려워하지는" 않습니다. 자기 두려움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겁쟁이이며, 세상에서는 경건하다 인정받을지 모르나 주님 앞에서는 실격자인 것입니다.
님께 거듭 충고드립니다. 주님만 두려워하십시오. 그 주님께서는 님의 구원을 위해서 모든 특권을 내려놓으셨고 그 분 자신의 모든 인격을 땅으로 낮추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믿고 구원받기에 충분하도록 모든 조건을 미리 형성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님께서 아직 그분께 마음을 드리지 않고 생각으로만 복종하며, 여전히 두려움으로 구원얻겠다는 거기에 머물러 계신다면, 님이 그렇게 자주 부르는 예수님께서 슬퍼하실 것입니다.
이제 가식으로 부르지 마시고, 친절하신 아버지이시며, 님을 영생의 소망을 주시고자 모진 고난을 겪으신 자애로운 구세주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 사랑만 구하십시오. 어렵지 않은 것입니다. 단지 너무 쉬워서 해봤자라고 여기고 이솝우화의 "신포도와 여우" 이야기처럼 외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은혜 있으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구원을 아직 받지 않았다면 어떻게 찬송하고 기뻐할 수 있을까요? 라는 질문도 있을 법한데요.
그것은 이미 복음을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 또는 그리스도의 크신 권세와 능력, 성령님께서 시시 때대로 보여주시는 은혜등을 고려할 때, 그렇게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즉, 성삼위 하나님이 늘 보호해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은혜를 볼 때에 우리는 결국은 약속하신 대로 구원에 이를 수 있겠구나 하는 소망과 안도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그로 인해 감사하고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 님...저는 이 말, 이 언급이 참으로 서글프고 안타깝게 들립니다. 왜냐하니 님께서는 구원을 못 받으시고, 네 본인 입으로 나는 아직 못 받았다고 하시니까, 그 상태에서 기뻐하고 찬송한다고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하늘 모든 존재로부터 그리고 땅의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찬송받으시지만 "하나님의 것"으로 본질이 채워지지 않은 어떤 추한 존재로부터 안 받으십니다. 주님께서는 마귀나 마귀의 천사들이나 마귀의 자식들(불신자, 구원받지 못한 자)로부터는 찬양을 받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지상 생애 동안에 마귀들린 자가 다가와서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고 찬양하는 것을 막으셨습니다. 주님의 이름은 지극히 높고 위대하기 때문에 마귀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불경"이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실로 자의적으로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돌짝같이 굳어있고 은혜나 자비를 받을 토양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주 마리아"나 "주 마호메트"나 "주 부처"는 가끔 말할지 몰라도 그 헛된 것들에게조차도 "사랑의 세레나데"는 보내지 못합니다. 왜냐하니 그 대상들은 숭배자들에게 그리스도인이 주님으로 받는 그 "위안"을 못 주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자기 자녀(거듭난)를 모든 환난과 박해과 시험에서 지키십니다. 그런데 님은 자녀가 아니면서 그 특혜를 받겠다고 하십니다. 먼저 구원받으십시오. 그러면 자녀의 권리도 배우게 될 것입니다.
다만, 신앙생활 과정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 너무 확실하게 믿어지므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고 과거형으로 말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만.
그것은 개인적인 확신에서 할 수 있는 일이지 공개적으로 교리를 만들어 가르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제가 알기엔 겨우 믿기 시작한 사람에게 <구원을 받았다>고 주입하는 식의 전도방법을 쓴 것은 60년대 이후 신복음주의자들이 교회 성장에 급급한 나머지 만들어낸 잘못된 관행이라고 생각합니다.
--> 저는 우스갯말을 잘 하지 않지만 이 말에는 조금 할 수 밖에 없는데요. 용서하십시오. 저는 불신자들을 데리고 장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말에는 조금 해야겠습니다.
"구원을 받을 것이 너무 확실하게 믿어지므로", 구원받았다고 과거형으로 말한다는 것이 대체 무슨 말씀입니까? 님이 그렇게 너무 확실하게 믿어지면 그것은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그렇게 믿으면 됩니다. 그런데 "구원을 받았다"라고 말할 수는 있다는 건 무슨 추측이십니까? 님은 그런 추측으로 믿음 생활 하시고 계십니까? 이런 성구를 기억 못하십니까?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아무것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 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과 같으니(야고보서 1:6)
야고보서 말씀이 뭘 말씀합니까? 믿음이 아니면 의심이라는 얘깁니다. 둘 중 하나만 있지 믿으면서 의심하거나 의심하면서 믿지 못합니다. 인간은 꽤 단순한 존재라서 믿거나 의심하거나 둘 중 하나만 택할 수 있습니다. 둘 다 한다고 말하면 그는 궤변론자입니다. 그런데 님이 권하시는 "믿음의 해법"은 추측하며 믿으라, 혹시 내가 진실히 믿는다면 나는 "구원받을 것이 확실하다"고 미래를 상상하며 믿으면 된다, 고 하십니다. 님은 주변에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열심히 앞날의 광영을 꿈꾸며, 우리 모두 언젠가 구원받을지도 몰라, 왜냐하면 확실히 믿으면 주님께서 다른 죄인들보다는 좀 낫게 여겨주실 테니까..
그것이 주님의 사랑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주님께서 벌레만도 못한 죄인들이 상상하고 추측하고 그런다고 해서 더 낫게 봐주신다는 근거가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자기가 몸으로 하신 일"로 당신을 구속하려고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님의 추측으로 구원받으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제 말들을 마음판에 새기시고 "구원에 대해 다시 생각하시어" 주님 앞으로 다시 나아와 참된 구원얻으시는 님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댓글 아멘!
넘 쉽게 풀어주신 진리의 말씀으로 은혜로운 아침에 기도와 묵상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내 안에 그 어떠한 선한것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오직 선하신 주님께서 신실하게 인도할 뿐입니다. 이제는 나는 없습니다. 신실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물 만난 고기가 따로 없군요. 그 동안 언쟁할 사람이 없어서 어지간히도 심심하셨나 봅니다.
<주님께 순종>님에게 '영감을 주어 감사하다'고 하신 말이 빈말이 아니었군요.
그런데 제가 보기엔 웬지 '영감'이 아니라 '전의'가 아닐까 느껴집니다만...
지나쳤다면 죄송합니다.
아무튼 순종님이 퍼오신 이 글은 제가 쓴 글이므로 제가 답변을 하는 것이 옳은 것 같습니다. 설마 <순종>님을 겨누어 반박글을 올리신 것은 아닐테니까 말입니다.
이점에서 양해를 구합니다.
누가 쓰셨든 크게 상관은 없습니다. 어쨋든 그분께서도 생각을 똑같이 공유하신다는 같은 생각으로 옮기셨을테니까요. 저는 특정인에 유감이 있어서 반박글을 쓴게 아니라 은혜복음을 다르게 전하는 그 사실, 그 사상에 대해서 쓴 것입니다. 순종님이 글 하단에 글쓴이를 명기했는데 주의하지 않은 부분은 저도 실수입니다.
갈렙님. 저는 언쟁에 목마른 게 아니라 바른 복음을 전하는 데 목마른 것입니다.
물론 갈렙님께서 제 글에 반박하시겠다면 받아들이겠고, 의향이 있으시면 그렇게 하십시오.
저는 많은 말을 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렇게 님처럼 솟아나는 영감도 없고, 전의도 없습니다.
다만, 이 말 한마디만 간단히 드리겠습니다.
믿음이란 말입니다. 마음의 문제입니다. 마음에 대하여 성경에서 어떻게 설명하셨던가요?
"심히 부패한 것이 마음이라."고 예레미야서에서 말씀하시지 않았던가요? 노아 홍수도 마음이 패괴하였기 때문에 있었던 것이고요.
예수님도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는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시면서 온갖 추잡한 것들이 다 마음에서 나온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믿음이라는 것이 바로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이말입니다.
마음이란 지.정.의로 되어 있다고 흔히들 말합니다.
인간은 스스로 마음을 개혁할 수 없다...갈렙님이 섬기시는 개혁교회의 사상도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칼빈은 인간의 마음이 너무 부패해서 스스로 의지적으로 하나님을 믿을 수도 없다고 잘못 가르친 것이죠(칼빈주의의 전적타락).
알미니안들은 칼빈주의의 이 맹점을 제대로 짚어내서 믿기 위해서 의지를 발휘하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잘했지만 그 다음에 그들은 의지로 믿었기 때문에 의지로 구원은 잃어버릴 수 있다고 하는 결론으로 가 버린 것입니다.
제가 믿고 있고 수시로 전파하는 것은 개혁주의나 알미니안이나 모두 믿음에 있어 오류들이 있습니다. 성경적 구원론으로 바로잡힐 필요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일일히 찾아 말하진 않겠지만, 지식이나 정서나 의지 모두가 다 부패하였다고 바울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완전하지 않은 마음에서 나온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니 믿음인들 완전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 내 마음에 나온 믿음은 완전하고 불변해! 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의 마음을 너무 모르는 소치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조석지변이라는 말도 있듯히 거기에서 나오는 믿음 역시 언제나 가변적입니다. 즉 믿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자기의 믿음이 틀림이 없는 것이고, 완전하다면 왜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결혼후에 불과 몇년도 못되어 마음 아픈 이혼을 하겠습니까?
저는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평신도지만
믿음이 인간의 마음에서 나온다는 말은 처음 들어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예수그리스도의 피의 공로에 근거한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내 마음에서 나오는 믿음으로 구원 얻음과 버려짐에
영향을 받는다면 저는 천국에 갈 자신도 자격도 없습니다.
갈렙님은 목사님이신 줄 아는데 참 제가 혼란이 오고
목사님 말씀하신 그것이 복음이라면 제겐 기쁜 소식이 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태클아니구요, 갈렙님 댓글보면서 들었던 생각을 적어 봅니다...
주제넘었다면 죄송해요.
그렇게 중대한 인륜지 대사인 결혼의 상대 조차 판단하고 선택하는데 있어서 어리석었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왜 한번 한 결혼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하고 중도 하차하는 것입니까? 그만큰 의지가 약하다는 것 아닙니까?
이것은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인간의 지성.감정.의지...모두가 그렇게 신뢰할 만한 것이 못된다는 말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다."는 이 대명제에도 이 불편한 진실은 적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성경을 읽거나 설교를 들었을 때에 감동이 일어났습니다. 혹은 참된 진리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믿겠노라고, 아니 믿노라고 일어나서 강대상 앞으로 나가서 기도를 받고,
얼마 후에 침례를 받았습니다.
님의 주장대로 라면 이 사람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그 믿음이 죽을 때까지 불변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이 세상의 온갖 조건들이 잔잔하기만한 계곡의 옹달생처럼 명경지수입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날씨 변덕만큼이나 수없이 많은 질곡들이 그의 앞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위협, 핍박, 고통, 유혹, 안일, 실망, 이단등 수없이 많은 풍랑들이 몰아칩니다. 우리가 신앙적으로 말하면 그의 마음 속에 떨어진 믿음이라는 씨앗을 빼앗아가기 위한 시련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씨앗이 떨어졌다고 안심할 사항은 아니라고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 아닙
갈렙님...가능하시다면 생각하시는 그 내용들을 답글로 올려주실 수 있으면...제가 설명드리는 데 도움이 더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댓글에 일일히 달려니까 지저분해 질 것 같아서요...님 말씀은 제가 충분히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지 이해하고 있습니다.
니까?
원글에서도 언급한 것이지만 씨는 파종된 순간 열매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시와 엉겅퀴의 수난, 돌밭같은 토양의 고통, 뜨거운 태양 아래서의 수난을 끝까지 견디어서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만일 세파에 시달리다가, 혹은 일락에 빠져 방종적으로 살다가 구원에 대한 확신도 감격도 다 잃어버렸다면, 그래도 그가 믿음이 있는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내가 교회당에서 말씀을 들었을 때에 감동을 받고 믿기로 결심하고 강대상 앞에 나가서 기도를 받았고, 침례를 받지 않았습니까? "라고 항변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아무리 초등학생에게 물어도 이미 믿는 자는 아닌 것입니다.
그의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죽은 믿음도 믿음이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신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만,
구원의 조건이 믿음이라면, 그 가변적이고 불완전한 믿음을 온전히 유지해야 구원과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지극히 상식적인 것을 부정한다면 어떻게 말씀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믿음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그날 까지 견지할 수 있어야합니다.
심판은 시간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고, 우리의 믿음은 현재 가지고 있으되 가변적이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할 말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변함이 없지만 우리의 믿음은 떨어지지 말라고 하셨죠 한번구원 영원구원은 하나님입장에서 구원받고자 믿는 성도들을 책임져주시는 것이지 믿음에서 떨어지는 자. 미혹으로 빠져든자들까지는 너무 안타까워 하시지만 책임질수 없는것입니다~
미혹에서 건진자의 조건을 보면 그의 허다한 죄까지 사해주신다고했습니다.
그만큼 돌이키기 힘들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는 말씀이기도 하겠죠~
분명 믿음에서 떨어질자 있다는것입니다~
구원은 믿는다고 방심하는게 아니라 완성될때까지 이루어져가는것이라 확신합니다^^
마지막에 단번에 완성되면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노인되서 믿는다고 나설분 많을것같습니다~
갈렙님.
우리구원의 근거는 예수그리스도께서 흘리신 그 피를
하나님께서 보배로운 피 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피가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하심을 만족시켜 드렸단 말씀입니다.
죄인이 왜 지옥불로 갑니까?
죄값은 사망이다. 는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함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순종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용서로 구원할수있는 길을 연것이지요?
하나님께선
예수그리스도께서 흘리신 십자가의 피 를
<그 피는> 내가 치뤄야할 내죄값을 예수님이 내대신 치루신 피 였다고 믿으면
그 믿음이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함을 만족시켜 드렸으므로
죄인이 용서받아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주신것 입니다.
우린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위해 내가 한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음에도
하늘나라 천국백성이 되는 자격을 선물로 받았지요. 자격을 하나님이 주셨다니까요? 선물로.
행위로? 아니요. 예수님이 흘리신 피로 요.
이 자격을 땃느냐 못 땃느냐가
영생과 영벌로
나뉜다는것이
하나님 말씀 성경에 써 있지요.
바울이 이 값없이 받는 구원을 전파했기에
감옥에 갖히고 굶주리며 그 많은 고생을 한것 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땅에서 부터 영생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의 순종은 이 구원받은 믿음의 출발점 부터 나오니까요
.
절반만 용서받았거나 2/3 만 용서받은 사람들의 선한행위를 하나님께선
그행위는 걸레다.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인생들에게 완전하고 영원한 구원을 마련하셨음을 믿은 자들의
순종행위는 생명책 말고
또 다른책에 기록 하시기에,
걸레가 아니고. 기록이 되므로
우리가 받은 구원은 영원하다. 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물론 믿음이 부족해서 지옥불에 가서는 안되니까 외치구요.
우리가 받은 구원이 우리의행위에따라 왔다갔다 하지 않는다고 영원하고 완전한 구원을 외치면
그 외침은
우리주 예수그리스도를 높히는 것이고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신 하나님의사랑을 외치는 것 이기에
우리는 우리가 단번에받은 구원은 영원하다.
고 외칩니다.
댓글 4갭니다. 삭제 하지 마시길 부탁합니다.
전에 삭제 하셨기에.
브레드, 희망43님,
배교자들은 거듭남을 경험했을까요, 아닐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끝까지 인내하여 믿음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환란기간에는 짐승의 표를 받지않고 그 우상에게 경배하지 말아야 구원받습니다
오은환님.
제 개인적인 솔직한 심정은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배교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배교한다면 그의 거듭남은 지식구원 이었다고 믿습니다.
구원은 행위로 받은것이 아니기에 행위로는 구원을 잃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구원받았기에 믿음을 배도하면 영원한 형벌 입니다..
행위로는 구원을 잃진 않지만, 불가운데서 얻는, 부끄러운구원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땅에서도 보응을 받는데,
거듭난자가 회개없이 계속적으로 육신의 정욕. 안목의정욕. 이생의자랑 대로 살면,
징계를 받는데 일찍죽음을 당하거나
질병 혹은 물질의고난. 등등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를 거룩함으로 이끄십니다.
잘 들었습니다.
물과 성령으로거듭난다고 했는데
물은 무엇이라 보신가요?
거듭남이 어렵다고 보신가요?
신사참배했던 수많은 목회자들이
거듭남없이 목회했다고
생각하신가요?
그냥 생각을 나누고십습니다
엡1:4절. 우리가 (하나님)사랑안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우릴 구원하셨습니다.
또 선한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게 하시려고 우릴 구원 하셨습니다.
은혜로 값없이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선
우리안에 들어오셔서 친히 하나님의목적대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그러나, 내 의지가 하나님과 협력 할때에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릅니다.
내의지를 굴복시켜 하나님께 순종한 모든 행위와 열매는 그리스도의 심판대앞에서
상급. 보상.을 받는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답변: 물은 말씀 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에 제 댓글에 거듭남은 눈한번 깜빡이는것 보다 쉽다고 썼습니다.
죽어가는 사람이 눈 한번 깜빡하는거 얼마나 어려운지 저는 압니다.
마음문만 열고 아. 그렇구나.
그것이 영접 입니다. 요 1:12절말씀. 영접하는자에겐 하나님의자녀가 되는 권능을 그분께서 주셨습니다.
전에는 순종할 능 이 없었는데 이제는 순종할 능 을 주셨지요.
배도도 죽는순간까지 배도면 영원한 형벌이지만
그 생전에 회개하여 새롭게되면,
용서 못받을 죄는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피 보다 더 큰죄는 없습니다. 그리고 자격은 누구든지 예수님앞에 오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현재도 거듭남없이 목회하는 사람 많습니다.
믿었어도 믿은후에 +행위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죽어봐야 그후에 구원여부를 알수있다고 주장한다면
그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예수그리스도의 피의 가치.를 평가절하 하는것 입니다.
죽은 후에는 구원받을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이땅에서 구원 받았어야 천국 갑니다.
값없이 선물로주시는 하나님은혜= 구원의선물과
<구원받은후에> 순종의 열매는 금생과 내세에 상급입니다.
이것을 짬뽕 하면 안됩니다.
왜 짬뽕하면 안되는가?
값없는 구원의선물을 받은자들 만이, 하나님의은혜에 감격한 사람들 만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기 때문에 그 사랑이 동기가 되어 순종의길을 걷기 <시작하기>때문이죠.
하나님의 말씀을 행할수있는 능. power 가 그때 시작이 되기 때문에 입니다.
믿음+ 행위는 마귀의 걸작품.
세상사람들에게 믿음+행위 가 구원 이라하면 쉬어요.
그러나 값없는 은혜로 구원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해 보세요.
믿기가 어려워서 그들은 어려워 합니다.
천국은 믿음으로만 갑니다.
회개믿음님...제 글에 님 댓글 좀 지워주시면 좋겠네요...영혼소멸설 이단이시죠?...전 이단하고는 토론 안합니다. 시간낭비라서
아멘!
명쾌하고 참 좋은 글입니다.
희망43님의 댓글도 매우 좋은 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어 놓은 구원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이 구원받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우리는 구원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즉 믿을 수 없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하시는 신성한 구원의 역사에 어찌 벌레같은 존재, 장님인 사람의 행위를 보탤 수 있으리요
그렇습니다.
아멘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