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함이라”(고후4:10-11절)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편에선 들리지 않습니다. 진리의 성령이 아니면 어느 학자라도 그리스도께서 이룩하신 새 언약의 말씀은 듣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들의 인기를 끌 수는 결코 없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건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한 사람의 말일 겁니다. 바울의 믿음의 제 일보는 그리스도가 자신 안에 계시는 것을 알고 시험해 보고 확증하는 겁니다. 이게 안 되면 버림을 받은 자라고 단언을 합니다(고후13:5) 진정한 구원은 믿으려 애를 써서 믿음의 의를 얻는 게 아니라 듣고 믿음으로 의를 얻어 그 믿음에 의해 믿어져야 진짜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의 빛이시며(고후4:6) 하나님의 형상(고후4:4)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듣는 중에 아! 하고 깨달아지는 것은 진리의 성령께서 이를 알게 하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귀가 있음은 이미 거듭난 자리에 있고, 진리의 영의 지도를 받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실(갈6:15) 죄에 대해 죽고 하나님을 향해 살아 있는 자신(롬6:11)을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마16:24) 아무리 외쳐 봐도 소의 귀에 경을 읽어주는 격입니다. 죽어라고 하면 아마 의사나 열사처럼 몸을 던져 뛰어드는 것 밖에 모를 겁니다. 그래서 죽도록 충성하라(계2:10) 하면 몸을 던져 선교에 또는 복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요?
물론 몸이 장렬하게 죽는 순교도 순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묵상하고 그 십자가를 짊어지고 그 십자가게 자신을 넘겨주는 영적인 작업을 사랑하는 일은 산 순교입니다. 진짜 죽도록 충성하는 겁니다. 그래서 생명의 관(계2:10)이 주어지는 겁니다. 몸이 죽은 다음에 그 관을 쓰려고 애쓰지 마세요. 그 땐 저절로 새 생명으로 영원히 살게 됩니다. 대신 지금 쓰도록 하세요. 자신의 겉사람 속사람을 안다면 그리고 낡아지는 겉사람과 새로워져 가는 속사람을 가졌다면(고후4:16) 지금 그렇게 하세요. 항상 예수의 죽음을 짊어지고 그 예수의 생명이 내 몸에 나타는 일, 그로 인해 항상 그 죽음에 자신을 넘겨주는 재미(?)를 아는 사람은 그야말로 복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위력의 진가를 알고, 자신을 그 십자가로 어떻게 변신(?)할 수 있는가 그 비밀을 지닌 영적인 배트맨입니다. 저는 ‘여러분 분발하세요. 한 번 시도해 보세요’ 말하진 않겠습니다. 대신 들으세요. 그리스도의 복음 곧 그 아들을 들으세요. 그 아들을 먹고 마시고 그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정체감을 찾아 챙기고,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영광(가치)을 획득하세요. 그 공의의 십자가, 그 인자하신 구원의 사랑, 그 은혜 안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언약으로 그리스도와 동고동락하면서 항상 주의 십자가를 지고 거기에 자신을 넘기는 법을 배우세요. 그리하면 그 생명이 당신의 몸에 그리고 육신에 나타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