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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성당이 세군데 있는 모양인데, 내가 가서 본 곳은 두곳뿐.
사진에서 가운데 황금 왕관이 씌여 있는 돔 모양 바로 아래, 내가 밟고 서 있는 바로 아래가 '로사리오 성당'이고,
처음 생긴 기념성당은 '동굴 성당'이라고 하는데, 큰 성당 아래층에 있단다. 난 그 성당을 찾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감기 몸살이 몹시 들어서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랜 여행이 이 늙은 몸을 못견디게 했었나 보다.
그리고제일 윗쪽에 있는 종탑이 있는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대성당'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대성당'입구.
우리들은 이곳 들어가자 왼쪽에 있는 경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이곳 벽에는 우리나라 교회와 관련된 흔적이 남아있다. 오래 전의 평화신문 기사를 보자.
*화제* 루르드 동굴 위에 한글 성모송이 새겨진 까닭은? 세계적 성모발현성지인 프랑스 루르드의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마리아성당 왼쪽 내벽에 '성모송'이 한글로 새겨진 석판이 붙어 있다. 1876년 성당 봉헌식을 거행할 때 인각(印刻)해 부착한 것이다.
"성총을 가득히 입으신 마리아여, 네게 하례하나이다."
옛 성모송 첫 구절이다. 석판 좌우 양 옆에 붉은색으로 새겨져 있다. 중앙에는 같은 구절이 라틴어와 한문(申爾福瑪利亞)으로 적혀 있다.
성모 마리아가 18회에 걸쳐 발현(1858년)한 마사비엘 동굴 위에 세워진 기념비적 성당 벽면에 누가, 왜 한글 기도문을 새겨넣었을까.
#'박해의 땅' 조선에 도착한 것 감사
석판 본문에 궁금증을 풀어줄 실마리가 있다.
"결백하신 동정녀 마리아의 도우심으로 험한 항해의 위험에서 보호를 받은 조선반도 선교사들은 루르드 성전 내벽면에 돌을 부착하고, 돌 위에 글자를 새겨 이렇듯이 큰 은혜를 기념하고자 하는 바이다."
이 석판을 봉헌한 사람은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리델 주교, 리샤르 신부, 블랑 신부다.
리델 주교는 박해가 한창이던 1861년 조선에 입국, 충청도에서 복음을 전하다 병인박해로 쓰러져가는 조선교회 사정을 알리기 위해 중국으로 탈출했다. 이후 일본과 만주 일대에서 재입국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는 사이에 제6대 조선교구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1876년 재입국에 성공했으나 만주로 보내는 편지가 발각돼 5개월간 옥고를 치르다 풀려나기도 했다. 블랑 신부는 훗날 제7대 조선교구장이 됐다.
이 석판은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박해 위험이 상존하는 조선에 잠입해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 시작한 것에 감사하는 취지로 봉헌했다. 선교사들에게 조선 선교는 곧 순교로 인식되던 시절이다.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음 닮길 바라며
이 석판은 한국교회 수호자가 성 요셉과 원죄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대축일 12월 8일)로 정해진 배경을 파악할 수 있는 단서이기도 하다.
조선대목구 설정(1831년) 당시 조선교회는 북경교구에 속해 있는 관계로 북경교구 수호성인인 성요셉을 수호자로 모셨다. 그러나 제2대 조선교구장 앵베르 주교가 교황청에 청원, 1841년 무염시잉모태성모(無染始孕母胎聖母,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도 수호자로 모실 수 있는 허락을 받아냈다.
선교사들이 그런 청원을 한 이유는 박해받는 조선교회를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께서 지켜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선교사들은 김대건 신부가 라파엘호를 타고 조선에 입국할 때, '바다의 별' 성모 마리아에게 의지해 험한 바닷길을 무사히 건너온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게다가 당시 무염시태 신학논쟁이 끝나지 않았지만 서구사회, 특히 프랑스 파리에서 무염시태 신심운동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었다. 누구보다 성모신심이 강했던 선교사들은 그 신심을 조선에 전파하고 싶어했다. 조선 신자들이 거룩하고 티없이 깨끗한 성모의 마음을 공경하고 닮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성모께 대한 감사와 기원을 석판에 새겨 봉헌한 것이다.
혹시 이곳이 동굴성당 입구가 아닐까? 사진은 찍었는데 어디인지 궁금하다.
로사리오(묵주 기도) 성당, 성당 내부의 벽을 둘러가면서 묵주의 기도 각 신비를 그려넣은 제대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빛의 신비를 하도록 결정이 되어, 건축당시 없었던 빛의 신비는 성당 외벽에다 그려 넣었다.
스페인을 떠날때 부터 몸이 으실으샐한게 감기 기운이 있었다. 그래서 감기약을 얻어 먹고 잠을 잘 자고 기분이 좋게 깨었는데,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한시간이나 일찍 나갔다. 그래도 20-30여명이 내 앞에 있었다.
아침 일찍 침수를 하러 가면서 옷을 얇게 입고 갔다. 약 한시간동안 바깥에서 가다려야 되었다. 그렇게 춥게 있으니 몸에 한기를 느겼다. 둘러보니 내가 앉아 있던 자리 옆에 담요가 있어서 대충 둘렀다. 그리고는 찬 물속으로 들어갔다(침수예식). 그러니 감기 몸살이 다시 온 듯했다.
그래서 저녁 행사는 하나도 참석을 하지 못했다. 촛불 로사리오기도, 성체거동등의 행사는 포기!!
십자가의 길은 성당 뒷산에 길을 따라 있다. 산에 오르니 멀리 피레네산맥의 설산이 보엿다.
십자가의 길을 하는데 정말 서있기도 어려웠다. 나중에 신부님께 "힘이들어 겨우 십자가의길을 따라 다녔다." 고 말씀을 드렸더니, "정말로 참된 십지가의길을 하셨군요!!" 하시는게 아닌가! 정말로 그러한 것 같았다.
제 1처 예수님께서 사형선고를 받으심을 묵상합시다.... 순례객 두명이 무릎을꿇고 기도를 한다. 위 계단에 있는 사람은 무릎으로 계단을 오른다. 난 몸을 가누기가 어려워 기도문의 듣기만 하고 겨우 버텨서 있었다.
14처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을 묵상합시다. 무듬은 이 산의 자연동굴...
난 어기까지 어떻게 걸어 왔는지!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길을 어떻게 걸으셨는지? 얼마나 힘이 드셧는지?
이곳은 15처도 만들어 놓았다. 동굴 무담이었다. 동굴을 막아 놓았던 돌을 만들어 놓았다.
예수님은 이곳에, 무덤에 계시지 않는다. 이 무덤을 나오셔서 우리들 마음인에 계신다. 내 마음 안에 계신 예수님을 자주 만나뵙고 잘 모셔야 되는데...
며칠 있으면 예수님께서는 아기가 되셔서 우리에게 또 오신다. 매년 오시는 예수님을 우리는 얼마나 반겨 드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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