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소장님 또 궁금증이 있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1.Ferdowsi(피드로우시)가 1010년에 완성한 페르시아 서사시 '샤나메(Shah-nama)'에서 고 구려로 추정되는 나라와 사산 조 페르시아의 접촉이 확인되었다는 글을 보았는데요.
샤나메에는 'Key-Khosrow(호스로 2세?)는 모크아란에 도착해서 일출을 보았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Fereydun Joneydi 교수에 의하
면, 샤나메에 등장하는 Mokraan을 한국에 비정할 수 있다고 합니다. 비정의 근거로는 중국쪽에서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 중국 또는 한국
인데, 중국은 따로 언급되어 있으니 한국이라는 것입니다. 헌데 모크란은 돌궐 비문에서 고구려로 비정되는 뫼클리와 발음이 비슷하고, 비
잔틴 사서 'Historiam'에서 고구려로 비정되는 무쿠리와도 발음이 비슷하여 고구려로 추정할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역사적 사실을 전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서사시일 뿐이겠지만 중동에서 어떤 식으로든 고구려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
었다는게 흥미롭습니다.
이런 내용인데 이 글의 내용이 사실일까요? 그리고 중동 쪽에서 또 고구려를 인식했을 만한 국가는 없을까요?사마르칸트에 사신을 보낸 연개소문이 생각나서 여쭤봅니다.
2.제가 예전에 돌궐과 나제 동시 침략 때 고구려가 한강 유역 상실에 대한 은폐를 위해 연대를 조작해 동시 공격으로 바꾸었다??는 취지의 글을 보고 소장님께 한번 여쭈어 보았는데 소장님꼐서는 관심이 없다 답변하셔서..
근데 노태돈 선생이 이러한 견해를 말씀하셨다는 것을 우연히 보아서 제가 어떤 서적에서 찾아봐야 할지도 모르겠구 소장님꼐서 이에 대해 알고 계시는 것이 있으시면 답변 부탁드립니다.
3. 돌궐은 실위에 토둔을 설치했고 고구려는 실위가 돌궐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철을 제공했다는 글을 보았는데.. 소장님꼐서도 연개소문전에서 철을 제공했다고 언급을 하셨는데 정말 돌궐 댐에 철을 제공한 것이 맞을까요?
그리고 돌궐의 이계찰과 고구려 말갈 군대가 전투를 벌여 돌궐이 패했다는데 이 전투가 일어난 배경이 돌궐이 속말말갈에 토둔을 설치해서 인가요?그리고 돌궐 .고구려 충돌기사가 551년이랑 이계찰 뺴고 더 알고 계시는 것이 있으신지 여쭤봅니다.
4. 유연의 잔당 세력들이 고구려에 유입됬다는 동로마의 시모카데스가 남긴 기록이 있다던데. 그 진위여부에 대해 여쭤봅니다. 그리고 다른 유목세력 예를 들면 돌궐이나 설연타 등등이 고구려에 내부한 기록은 전혀 없을까요?그리고 유연잔당 흡수에 돌궐이 불편한 시선을 보이지 않았을까요?
5.빌게 카안의 동생 퀼 티긴(Kül Tigin, 중국명은 궐특근) 장군의 비문에는 고구려를 뵈퀼리(Böküli)라는 이름으로 기록하고 있다.라는 글을 보았는데
박한제 선생은 돌궐이 3개의 천하관이 있어 그 세계를 다스리는 가한이 있고 그 중 하나는 고구려라는 돌궐이나 고구려가 서로를 대등하게 본 천하관을 엿볼 수 있다.라고 언급을 했고
(돌궐비문연구,Talat Tekin 저 이용석)에서나 다른 서적( 뵈클리를 고구려를 칭하는 것이 아닌 다른 존재로 보는 분들도 계시고
이러한 예로는 퀼테킨 비문에 돌궐이 정복한 각 부족(키르기즈)등의 지도자를 가리키는 비문에서도 키르기즈 가한을 칭한다 것을 근거로
고구려 왕이란 뜻으로 카간이라 불러준 듯 하다는 인식도 있고 연개소문전에 소장님꼐서 젤 강조한 고구려 독자적 천하관에 관련된 주제인 듯 한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 부분은 자세한 견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