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정부-의사 갈등 사태를 보면서 입맛이 씁쓸해지는 건 본인만이 아닐텐데…
무책임한 양비론처럼 보이긴 하겠지만, 무소불위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집단과
실질적인 문제의 해결보다는 악의 축을 하나 만들어 선거에 이용해 보려는 두 집단 간의
똥물 튀기는 싸움으로 밖에 안 보인다.
그 난장판 속에서 뜻 있고, 진심으로 고민을 해온 사람들(예컨대 사명감으로 일하는 의사분들)조차
같이 똥물을 뒤집어 쓴 형국.
의사들은 옛날부터 이렇게 압도적인 직업이었을까를 생각하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듯.
의사들의 사회적 지위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의대의 위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좀 과장해서 얘기하면
예전에는 서울대 정원이 100명이면 전국 1등~100등이 서울대 가고,
101등부터 연고대를 간다는 ‘느낌’이었다면, (물론 실제는 꼭 그렇진 않다)
지금은 의대 정원이 100명일 때 1~100등이 의대 가고,
101등부터 서울대가는 느낌? (지금도 꼭 그렇진 않다)
물론 아다시피 의대 뿐만 아니라 메디컬 자체(치한약수)가 엄청난 강세를 보이는 중
단적인 예를 들어보면,
89학번인 본인의 고등학교 동문선배는 1지망으로 쓴 서울대 공대에 떨어지고,
2지망으로 서울대 의대에 합격했었다.
(당시에는 같은 학교에 1, 2, 3순위 지망 학과를 정하고 원서를 쓰던 시절)
즉 당시 서울대 의대는 탑 공대들한테 밀리는 수준이었다.
반면 최근 입시판 얘길 들어 보면 서울대 공대와 건국대 수의대를 동시 합격한 친구가
건대를 선택한다고 한다.
국내 탑 공대가 의대도 아닌 수의대에도 밀리는 세상. 정말 많이 다르다.
물론 의대와 메디컬이 대접받는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의술은 윤리적으로나 국민복지 측면에서나, 경제/산업 측면에서도 아주 중요한 영역이다.
죽도록 고생을 한 최고의 인재들이 사회에 큰 기여를 하니, 그들에게 사회적 인정과
커다란 경제적 보상을 부여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아주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흥미롭게도 의대 쏠림이 시작된 후에 우리나라 바이오 산업의 수준이 상당히 업그레이드
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최고급 인력이 의학/바이오 업계에 쏟아져 들어간 덕분이라고.
다만 문제는 그 쏠림의 정도가 과해도 너무 과하다는 것이다.
명문대 이공계에 입학해 놓고 메디컬 가려고 반수, 반수해서 붙으면 또 삼수해서 지방대 의대 도전,
합격하면 또 수능 봐서 인서울 의대 도전, 그 다음엔 인서울 상위권 의대…
이게 머 하는 짓인지... 이런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와이프의 친구 조카가 6수 끝에 연대 이공계에 합격해 올해 입학했다.
6수라… 요즘 제대로 재수 한번 하려면 년 3~6천만원까지 드는 상황에서
그 집 부모도 대단하다. (그 비싸다는 의대 등록금의 몇배가 든다)
그랬는데, 이 애가 이번엔 약대에 도전하겠다 해서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근데 안 봐도 뻔하다. 약대에 붙으면 그 다음에 의대 타령 나올 게다.
(당연히 약대에 바로 붙는다는 보장도 없다)
‘더 이상 뒷바라지 못하니, 이젠 니가 벌어서 준비해라’ 라고 하니 본인 시집 자금으로
비용을 대달라고 한단다.
물론 애들 탓을 하긴 어렵다.
애들을 이렇게 몰고간 사회적 환경과 분위기, 애들을 독립 인격체보다는 본인들 허영심을
채우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적잖은 부모들(본인들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탓이겠지.
그런 압도적 환경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아이들만 탓하는 건 공평하지 않다.
본인이 대학에 입학하던 90년 전후 이과의 최고봉은 서울대 제어계측학과나 물리학과,
컴퓨터 공학과 등이었고, 의대는 원탑의 느낌은 없었다.
특히 제어계측학과는 도대체 머 하는 곳인지 짐작도 안 가는데, 항상 전국 이과 탑을 차지하고
있어서 지금까지도 인상 깊게 남아 있다. (당연히 아직까지도 멀 배우는 곳인지 모른다.)
반면 당시 지방대 의대의 커트라인 성적은 이름 있는 인서울 공대보다 떨어져서
공부로는 전혀 존재감이 없던 동기가 지방국립대 의대를 갔다고 해서
살짝 놀랐던 적도 있었다.
그랬던 의대가 이렇게 인기가 치솟게 된 건 당연히 평생 일할 수 있는 직업 안정성과
높은 소득 덕분이겠다. 97년의 기사를 보면서 깜짝 놀랐는데, 당시 ‘고용 의사’의
연평균 소득이 4~5천만원 수준으로 대기업 부장과 비슷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반면 지금은 대기업 부장의 3배가 넘는 2.7억원 수준이라 하니
그 것만 봐도 의사/의대의 위상이 급격하게 변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참고로 현재 변호사업 평균소득은 1.2억 (이건 또 너무 적은데…)
결국엔 먹고 사는 게 제일 중요한 이슈인 게다. 애들부터 부모들까지 생각이 비슷하다.
이런 의대 쏠림은 우리 사회와 경제를 심하게 왜곡한다는 점에서도 심각하긴 하지만,
이제 아이들조차 낭만을 잃은 것 같아 더 슬프다…
개인적인 얘기를 하자면 집안에 의사도 없고, 의대에 대한 관심도 열망도 전혀 없는 문과 집안이라
(애부터 양가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다 그러함. 그 것도 신기함.)
본인 인생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는 주제이긴 한데, 남의 얘기라 더 편하게 생각나는 대로 써봤다. ㅎㅎ
당연히 교훈도 없고 맥락도 없는 글이니 적당히 넘기시길…
그러고 보니 코쓰에도 예전에 의대생이 한명 있었네…
첫댓글 의대 나오면 거의 의사가 되고 취업이 보장되지만 법학과 나오더라도 변호사가 되기는 힘들고...좋은 일자리 많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지금 어린 애들을 두고 계신 부모들은 여러모로 더 고민들이 많으신 거 같더라구요...
모든 것의 근본은 먹고 사는 것이죠.... 아~ 아무 일도 안하고 먹고 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