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다니고 있는 경의선은 수색로와 나란히 가는 구간이잖습니까?
그런데 서울에서 파주, 개성, 의주를 가는 최단 경로는 아시겠지만 예나 지금이나 현재의 통일로를 경유하는 경로이고, 수색로를 경유하면 총 6km 가량 우회하는 결과가 나옵니다.(용산이 기점일 경우에도 금촌까지는 별 차이가 안나지만 월롱 윗쪽으로 올라가면 무조건 통일로가 최단경로입니다.)
제가 궁금한 점은 경의선을 개설할 때 최단경로인 통일로-의주로 방향으로 개설했으면 좋았을 텐데 왜 굳이 수색로 방향으로 우회해서 경의선을 개설했을까 하는 점입니다.
당시 철도가 용산을 기점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 그랬을까, 아니면 통일로-의주로를 경유하는 지역에 수색로에 비해 지형적 장애물이 많아 당시 기술로는 철도를 건설할 수 없는 지형이었기 때문일지가 궁금합니다만 관련 지식이 있으신 회원분들께서 제가 가진 궁금점에 대해 좋은 답변 부탁드립니다.
첫댓글 지형적 장애일 것입니다.
통일로는 1972년 개통되었습니다.
경의선 개설 당시는 의주로입니다.
삼송역~문산수억고 구간 774번 노선이 의주로와 일치합니다.
의주로에 관하여는 아래 블로그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blog.naver.com/vkwndldirl/220610502021
조선 초 기준으론 기존의 의주가도는 통일로와는 달리 광탄~고양동~삼송을 통하는 경로였지만, 조선 후기로 들어오면서 경의가도를 봉일천~관산동 방향으로 옮겨 건설했습니다. 이 중 문산~홍제까지를 박정희 시절 통일로로 명칭을 바꾼 것입니다. 고양동 방면이라면 저도 가 본 적이 있어 지형적 장애가 극심하다는 점을 익히 알지만,
옮겨진 의주가도인 관산동 방향(현재의 통일로)으로 경의선을 개설했을 때도 경의선을 개설하지 못할 정도로 지형적 장애가 극심했는지는 의문입니다.(통일로 방향 지형적 장애:무악재, 박석고개, 숯돌고개 정도?, 수색로 방향:애오개(아현고개)) 이정도로 알고 있는데..
아무래도 지형에 따른 어려움, 건설비 등을 감안했겠지요. 한강 따라서 주로 평지라서 건설이 수월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