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놀라시겠지만, 군에 의한 관리매춘은 우리의 한국전쟁 당시에도 있었습니다. 서울, 춘천, 원주, 강릉, 속초 등지에 위안부대가 설치되었습니다. 서울의 위안소는 현재 중구의 백병원에서 쌍용빌딩으로 가는 그 고갯길에 있었습니다. 공식 보고에 의하면 1952년 서울 세 곳과 강릉 한 곳에 수용된 위안부는 모두 89명이었으며, 그해에 위안소를 방문한 병사는 총 20만 4,000여 명으로서 위안부당 하루 평균 6명의 꼴이었습니다. 제가 만날 수 있었던 어느 참전 용사의 회고에 따르면 춘천 소양강변에서는 여러 채의 천막이 세워지고 병사들이 죽 늘어서서 순서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일본군 병사들이 위안소 앞에서 줄을 서 있는 광경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고 생각됩니다. 이외에 각 부대는 부대장의 재량으로 주변의 사창가로부터 여인들을 조달하여 병사들에게 보급하였는데, 부대에 따라서는 위안부를 ‘제5종 보급품’이라고도 했습니다. 저는 그 보급품을 트럭에 싣고 전선을 이동한 특무상사 출신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위안부를 전선으로까지 데려가는 것은 허락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드럼통에다 여인을 한 명씩 담아 트럭에 싣고 최전선으로까지 갔답니다. 밤이 되면 전(廛)이 펼쳐졌는데요, 미군들도 많이 이용하였답니다.
첫댓글 여자들은 어떤 전쟁이든 소모품 전리품으로 사용되잖아 안그랬던 전쟁을 찾아볼 수가 없어
개좆같네 조팔조팔조펄
ㅆㅂ졸라싫어 그래놓고 인간이냐 아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