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어가 씌여지기 이전에 *
2002년 11월 28일 도솔천명상센타 카페를 처음 열고 컴퓨터의 글자판을 익히며 더듬더듬 독수리타법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쓴 글들이 꽤 많아서 부끄럽지만 책으로 엮어 출판도 했습니다. 이제 쓸 내용이 별로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틈틈이 글을 쓰고 있는 걸 보면 참 신기합니다.
모든 것은 찰라로 변합니다. 몸의 세포가 끝임없이 생멸하므로 조금 전의 몸과 똑같지 않으며 생각이나 뜻도 변하여 조금 전과 다른 느낌과 생각이듯이 한 날 한 시도 멈추어 있지 않고 이 세상과 만물은 변합니다. 모든 것은 끝임없이 변화하므로 아나운서가 날마다 소식을 거르지 않고 전해줍니다. 다음날도 다음날도 새로운 뉴스를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나서 하룻동안 일어난 일과 앞으로 전개될 내용을 알려주는 것처럼 글도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는가 봅니다.
나는 가끔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기도 합니다. 어떤 고상한 시는 수수께끼처럼 무슨 뜻인지 몰라 한참을 생각해야 겨우 알 수 있는가 하면 코를 엉덩이에 붙이고 손을 머리에 붙이고 눈을 등에 붙여서 마치 피카소의 그림처럼 묘한 느낌을 주는 나름대로 특색있고 매력적인 글도 있습니다.
또 방대한 지식을 장황하게 나열한 글도 있고 자기 자신도 무슨 글을 쓰고 있는지조차 모를 복잡하게 헷갈리는 글을 읽다가 싫증나서 접기도 하는데 욕망과 분노의 글이 있고 사랑과 질투의 글이 있으며 동화처럼 아름다운 이야기와 영혼을 울리는 글도 있습니다.
법정스님은 주옥같은 글을 많이 썼는데 임종에 이르러 글빚을 청산하고 싶다며 책의 출판을 금지하라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분의 유언에 따라 베스트셀러였던 책들이 지금은 절판된 상태입니다. 청정하게 사신 분의 마음이 그러하거늘 내 글이 빚덩이나 되지 않을지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수려하고 오묘한 어휘와 문장은 아니지만 거짓 없이 진실하며 논리가 분명하여 모순이 없고 향기롭고 품위가 있는 글은 사람들의 마음에 오래 남아 감동을 줍니다.
먼지가 뽀얀 작업실에서 나무를 깍고 다듬으며 정성을 다해 예술혼을 불어넣어야 아름답고 멋진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는 것처럼 글도 그와 같은 과정을 거칩니다. 반복하여 읽어보고 지웠다 쓰기를 되풀이하며 정성과 노력으로 씌여진 글이 세상에 빛이 되고 감동과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깨끗한 종이 위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사랑도 없고 미움도 없으며 슬픔도 없고 기쁨도 없으며 옳은 것도 없고 그른 것도 없으며 좋은 것도 없고 나쁜 것도 없으며 높은 것도 없고 낮은 것도 없으며 시간도 없고 공간도 없습니다. 언어가 쓰여지기 이전의 하얀 백지의 공(空)은 그윽한 고요인데 언제 주절주절거리던 손길을 멈출지 모르지만 그때까지 슬픔 고통 두려움 번민이 없는 세상 홍진을 벗어난 맑고 밝은 여여한 세계를 그려보려고 합니다.
각우 윤철근
첫댓글 ()()()빛속으로님 글. 늘 한결같이 평온하고.안정감을 줌니다.감사해요.전 아직도 아프면 아프다. 슬프면 슬프다를 합니다.고통에 흔적을 외면하고 가자니.
어느 구석에서 또 스물스물 올라와.슬픈 망상에 빠져...아애 드러 내놓고.털고.글로 비우면서.스스로 치유하고 가자로 결론 내렸어요.*^^*
나름 또 그것이 한발을 내딛게 해줍니다.법륜스님께서도 나쁘지 않다.안에 상처가 있는데.계속 덮으려고 하면.또 올라오게 되어 있으니.그 방편도 방법이라 하시기에 크게 위안이 되었더랬습니다.
빛속으로님 처럼 여여함 너무도 멀지만.슬픔.괴로움에 잠겨. 헛 시간을 보내는건 너무나 아까운 일이기에.오늘도 부처님을 생각합니다()_
아프면 아프다 하고 슬프면 슬프다고 하면서
스스로의 아프고 슬픈 마음을 치유하면서 정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그러면서 한발 한발 나가다 보며
어느 때인가 부처님처럼 거룩한 성자가 될 것입니다,, *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