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와 경산은 꽤 높은 산들에 의해 남북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이 두 곳을 잇는 길이 25번 국도인데, 그 경계지점은 상당히 높은 고개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 두 곳을 오고 가기 위해선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는 이 산길을 넘어서야 합니다.
청도의 북쪽 끝에 있는 화양읍 송금리는 바로 이 고개 아래에 있는 마을로, 25번 국도가 없었다면 그야말로 심심산골이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서도 가장 깊은 골짜기에 대적사(大寂寺)라는 절이 있습니다. 그러니 '크게 고요하다.'라는 뜻의 절 이름은 절이 위치한 곳을 생각하면 참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것도 지금은 다 지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이 절 바로 아래에 몇 년 전부터 와인터널이란 곳이 생겨 이곳을 찾아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이 일대가 시장터처럼 북적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적사란 절 이름이 더는 맞지 않게 되어 버렸습니다.
대적사는 신라 헌강왕 2년(876년) 보조선사(普照禪師, 804∼880년)가 토굴로 창건하였다고 하나 그다지 기억해둘 필요는 없을 듯싶습니다. 어쨌든 조선시대에 들어와 1635년경 초옥 3칸을 짓고 대적사라고 하였다고 하며, 임진왜란 때 화재로 폐허가 된 것을 숙종 15년(1689년)에 성해대사(成海大師)가 크게 중수하여 삼존불을 모시고서야 비로소 절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그다지 내세울 것도 없는 대적사를 그래도 굳이 찾은 이유는 이곳 극락전(極樂殿) 때문입니다.
극락전은 18세기경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공포를 갖춘 맞배지붕의 건물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겉모습만 대충 훑어보면 그리 눈에 띄는 것이 없는 평범한 건물로 보입니다. 하지만, 건물을 받치고 있는 기단부에 눈길을 한번 주면 뜻밖의 아름다움에 놀라게 됩니다.
극락전 건물 자체는 바깥 모습보다는 안 모습이 더 아름답습니다. 바깥에 비해 고졸한 단청이 그대로 살아 있는 천장의 화려함으로 훨씬 더 볼만합니다.
원래 극락전은 아미타불을 모시는 불전(佛殿)인데, 이곳의 주불(主佛)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는 수인으로 보아 석가여래불로 보입니다. 간혹 이처럼 불전의 이름과 주불이 서로 맞지 않는 경우가 있기는 합니다.
이제 대적사 극락전 기단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계단 왼쪽 아래에 세운 자그마한 돌기둥에 자라 한 마리가 새겨져 있습니다.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그린 그림처럼 보이진 않나요? 마치 갓난아이가 팔다리를 벌린 것처럼 보이기도 하나 엄연히 자라입니다.
오른쪽 기단 벽면에도 어미 자라와 새끼 자라가 새겨져 있는데, 앞의 자라에 못지않습니다. 엄마 자라와 새끼 자라가 어디론가 바삐 걸어가는 뒤를 게 한 마리가 쫓아갑니다. 이뿐만 아니죠. 그 옆에는 꽃송이 가운데 새끼 자라 한 마리가 턱 하니 앉아 있습니다.
이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문득 이중섭의 은박지 그림들이 떠오릅니다. 당시 석공은 과연 무슨 생각으로 이런 그림을 이곳에 새긴 걸까요?
해남에 있는 미황사란 절의 대웅전 주춧돌에도 게와 자라가 새겨져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곳은 바닷가이니 그러느니 하지만, 대적사가 있는 이곳은 그야말로 심심산골입니다. 그러니 무슨 이유로 이처럼 자라와 게를 이곳에다 새긴 걸까요?
계단 오른쪽 소맷돌 측면에는 여의주를 입에 문 용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모습이 용이라기보다는 무슨 뱀장어와 같습니다. 용의 앞에는 연꽃처럼 보이는 꽃 한 송이가 있고, 용 머리 아래에 자라 한 마리가 있습니다. 다른 곳에 있는 자라와 같은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용은 구름을 딛고 하늘을 나는 다른 용들과는 달리 물 위를 헤엄치고 있는 걸까요?
왼쪽 소맷돌 옆면에도 또 다른 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양쪽으로 소용돌이 문양 같기도 하고 태극 문양 같기도 한 문양이 마주 보며 새겨져 있고, 그 가운데로 나팔꽃 꽃송이 모양의 문양이 따로 새겨져 있습니다.
이 문양은 또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걸까요?
대적사 극락전의 기단과 계단은 마치 그림을 그리는 캔버스와 같습니다. 몇백 년 전 이곳에 돌을 쪼아 기단을 만든 석공은 자신이 가진 아름다움에 대한 표현을 화가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듯 아마도 이처럼 귀여운 문양으로 새겼을 것입니다. 혹시 모르죠. 이 석공의 고향이 바닷가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