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
이 글은 필자가 동국대 경주한방병원과 자매 결연한 상하이 중의과대학〔中國上海中醫學院〕서광병원〔曙光醫院〕의 초청으로 간 연수기간중 이루어진 중국 내 대한민국임시정부(이하, 임정혼용)의 발자취를 찾아 나선 과정을 정리한 글이다.
중국체류기간은 1999년 11월 29일부터 1999년 12월 24일까지 약 4주 가량이었다. 중국에는 항일투쟁과 관련된 유적이 많이 산재되어 있다. 특히, 임정과 관련된 지역은 상하이(上海), 항저우(抗州), 전쟝(鎭江), 치쟝, 충칭(重慶)등이 대표적이다.
임정시기는 또 크게, 臨政 整立期(상하이기), 臨政 守勢期(1932∼1939), 抗日全面鬪爭期(치쟝, 충칭기) 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위 지역들을 모두 답사하여 당시의 숨결을 느끼고 싶었지만 연수 목적으로 간 여행이라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잠시 잠시 짬을 내어 다녀올 수밖에 없었다. 다녀온 지역은 상하이를 비롯하여 항저우(12, 4. 12, 14), 전쟝(12, 12), 난징(12, 17)→창사(12, 18)→꽝조우(12, 19)→충칭(12, 19-12, 20) 이렇게 7개 도시를 다녀왔다. 여행 선후에 따라 기술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으나 대한민국임시정부사의 전체 흐름을 이해하는 데는 임정 이동 도시순으로 써내려 가는 것이 좋을 듯 하여 그렇게 썼으며 생동감을 높이기 위해 과거형과 현재형을 혼용 기술한다.
11월 29일. 만감이 교차하는 하루였다. 많은 생각들이 춤추듯이 일어나고 가라앉았다. 처음 떠나는 해외여행이라 다소 흥분된 마음으로 공항버스에 올랐다. 편안히 몸을 기대고 앉아 바라다 뵈는 경주의 기린내 내남들판이 여느 때보다 아름답게 보였다. 걱정반, 기대반. 공항에 도착하여 출국소속을 밟고 무려하게 탑승시간을 기다려 자리를 찾아 앉았다. 생각보다 기내는 좁았고, 좌석이 창문과 떨어져 있어 답답하게 느껴졌다. 어젯밤, 뒤척인 탓으로 이내 잠이 들었는데 옆에서 깨워 일어나 보니 입국카드를 기록하라고 하였다. 기입란을 다 메우고 나서 옆사람에게 말을 건넸다. 그는 중국인이었고, 관광차 서울, 부산을 다녀간다고 했다. 경주는 잘 모른다고 해서 메모지에 우리나라 역사와 경주의 관계를 간단하게 써주었더니, '고맙다'고 했고, '자기가 사는 꽝조우(廣州)에 오면 연락하라'고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다. 이런저런 필담(筆談)을 나누는 사이 비행기는 벌써 상하이 홍교(虹橋)공항에 착륙하고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중국 입국수속을 밟았다. 긴장감이 감돌았다. 공항관계자의 제복은 촌스러웠지만 조금은 위압감을 주었다. 화물 나오는 곳에서 가방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내 가방은 아무리 살펴보아도 나오지 않았다. 이쪽 칸 저쪽 칸으로 찾아다니자니 열이 확 바쳐 올라오고 별별 생각이 다 났다. 결국, 중국공항 관계자에게 도움을 청하고서야 가방을 찾았을 수 있었다. 세관은 가볍게 통과했는데 이번엔 마중 나오기로 한 분이 없었다. 정말 첩첩 산중이었다.
이리 저리 전화하고 난 뒤 다시 한참을 기다리다 하는 수 없이 목적지인 서광병원〔曙光醫院〕으로 가야겠다고 출입문을 나서는 순간 여러 사람들이 내게 우르러 몰려와 '어디 가느냐'고 야단들이었다. 택시를 타려해도 여의치 않아 "화이하이루(淮海路) 수강이위엔(曙光醫院)"이라고 했더니 승용차로 안내하며 '100위엔(元)'이라고 해서 '비싸다'고 했더니 그렇지 않다는 말투였다. 몰려왔던 사람은 암달러상인 듯 했다. 얼얼한 기분도 잠깐, 그 승용차는 지루했던 공항을 빠져나가 자꾸만 허름한 골목길을 지나고 있고 이내 약간의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어찌 되겠지' 하는 체념을 넘어 어렵게 말을 꺼냈다. '여기에서 병원이 얼마나 먼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 지?' 등등. 이렇게 말을 주고받는 사이 두려움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안도감과 턱도 아닌(?) 고마움에 팁을 얼마나 주어야 할 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국, 목적지에 도착해 100위엔에 5위엔을 더 보태 주었다. 나중에, 요금이 60-70위엔(元)정도면 충분하다는 것을 알았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별로 아까운 생각이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