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위. 권천례 데레사(1784~1819년)
동정 지키며 몸과 마음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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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17년 3월 말 남편 조숙이 포도청에 끌려가자 남편의 뒤를 따라 포도청에 자수하는 권 데레사. 그림=탁희성 |
#교우 부부들의 모범이 된 동정부부
같은 양근 출신인 권 데레사는 한국천주교회 형성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인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 1751~1792)의 딸이자 1801년 신유박해 순교자인 권상문(세바스티아노, 1768~1802)의 동생으로, 6살 때 실학자 안정복의 딸이었던 어머니를 여읜데다 1791년 신해박해로 아버지까지 잃는 힘든 환경에서 자랐다.
박해로 집안이 풍비박산되고, 모든 재산을 잃고, 형제들이 유배되는 것을 보면서도 고통을 조금도 내색하지 않고 혼인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굳히며 살다가 얻은 영신적 승리였기에 권 데레사에게 동정부부로서의 삶은 더 할 나위 없는 기쁨이었다.
남매처럼 지내기로 한 약속을 지키며 부부는 기도와 복음 전파, 고신극기에 몸과 마음을 쏟았다. 가난하게 살면서도 결코 애긍을 잊지 않았다. 동정을 지키며 금욕에 대한 훈련을 하고자 일주일에 두 번씩 단식을 실천했다.
권 데레사는 몸이 자주 아프고 병치레도 많았지만 영신적 열성으로 고통을 기꺼이 참아냈다. 외관상으론 어떤 불편함이나 배고픔도 내보이지 않았다. 피로함을 생각하지 않고 고통을 받는 삶 속에서도 예수님 따르기만 열망하며 영신적 발전을 위한 일들에 완전히 전념했다.
1817년 음력 3월 말 정하상이 북경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동정부부는 우연한 사건에 휘말린다. 조숙이 가르치던 비신자가 자신의 교회력(敎會曆)을 도적에게 빼앗기면서 관청의 수색이 시작됐고, 조숙은 포졸들에게 잡혔다. 그때 함께 있던 부인 권 데레사와 고 바르바라도 조숙과 헤어지기를 원치 않아 함께 체포됐다.
수감된 지 2년이 지나도록 문초와 형벌, 기아, 궁핍을 견뎌내던 조숙은 1819년 7월 12일(음력 5월 21일, 음력 6월 13일이라는 최 브리지타의 증언도 있다) 33살을 일기로 참수 당한다. 같은 날 참수를 당한 권 데레사는 36살, 고 바르바라는 60세를 넘긴 나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