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의 1~3강의 이야기를 이어 4~7강의 이야기는 ‘어떻게’ 에 대해 이야기한다. 돈에 대한 가치판단과 자본주의 구조에 대해 이해하고 문제가 무엇이며 그 대안에 관해 설명한다. 내가 읽고 요약한 부분에 대해 공유하고 깨달은 지점에 관해 나누는 것으로 순서를 진행하려한다. 4강_자본주의의 바깥을 상상하자. -박권일 과거에서 현대의 사회로 시간이 흐르면서 가치의 기준은 달라졌다. 사람들이 어떤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느냐에 따라서 가치의 척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금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권력을 재는 가장 강력한 척도는 ‘돈’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프랑스 학생들과 달리 사회의 불합리에도 시위가 일어나지 않는다.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하면서 본인의 권리를 쟁취하지 못하는 이유는 ‘같이 나선다.’는 개념이 없을뿐더러,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돈을 버는 이유는 무엇일까. 돈은 개성이 없고 가치 중립적이며, 단지 객관적인 기준일 뿐이다.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은 그의 저서에서 “돈은 우리를 신분으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을 만들어 주었고, 숫자로 추상화함으로써 인간관계를 중립화시켰다. 타인과의 관계를 돈을 통해 맺도록 강제하는 체제가 바로 자본주의이다.”라고 서술한다. 자본주의사회는 노예든 귀족이든 은행에서는 같은 이자를 주는 등의 차별을 두지 않는 평등적이며 신분 질서로부터 해방적 측면이 있다. 당시에는 해방적 측면이 있었지만, 지금의 우리에게 돈은 폭력적이고 구속적인 가치로 변화됐다. 경제학자 게리 버커는 ‘휴면 캐피털’ 즉 인적 자본이라는 것은 다 경제학적으로 환산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종교’ 같은 현상들은 경제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현실에서 돈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오늘날 현대 경제학, 주류 경제학의 인간관이 위기에 처했다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제도 주의 학파의 ‘과시적 소비’는 기존 경제학의 가정에 대한 반박이다. 인간은 합리적으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소비도 한다는 주장이다.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의 ‘증여’(대가 없이 주는 행위)와 행동 경제학의 ‘손실 회피 경향’은 호모 이코노미쿠스(기존 경제학)를 부정하는 여러 증거다. 사회에서 돈을 사용하는 주체는 ‘개인’, ‘기업’, ‘국가’로 나눌 수 있다. 그중 개인으로서 소비할 때 소비자, 노동자, 시민으로서의 측면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착한 소비라는 말이 나온 배경에는 ‘나쁜 기업’ 이 있다. 착한 소비를 한다고 해서 하나의 나쁜 기업의 불매를 한다는 것으로는 나쁜 기업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저자는 세 가지의 대안을 제시한다. 첫째, 원시 공동체를 만든다. 둘째, 착한 기업을 만든다. 셋째, 생활 협동조합을 만든다. 하지만 이런 대안들도 완벽한 착한 소비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소비 자체를 줄여야 악순환을 해결 할 수 있다.’ 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막스 베버의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선 자본주의 체제의 배경에 개신교 윤리, ‘청교도 윤리’가 근검절약같이 자본 축적을 돕는 가치관이 종교적 계율 속에 있었다는 것이다. 뤽 볼탄스키가 쓴 [새로운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책에서 프랑스혁명이 어떻게 새로운 자본주의 정신을 잉태했는지를 말한다. 자본주의에 가장 반대했던 정신이 어떻게 새로운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이후의 정신을 잉태했는지를 서술했다. 자본화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 또한 자본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착한 기업이나 착한 소비 또한 하나의 자본주의 테두리 안으로 포섭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자본주의 정신’을 이야기할 때 ‘자본주의 바깥’을 상상하는 것이 중요하다. 돈이 없는 사회를 상상하는 것이다. 돈으로써 움직이지 않는 새로운 영역을 상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5강_돈이란 무엇인가. -강신주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마치 성경의 십자가와 비슷하다. 돈에 대해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 숭배하기 때문이다. 돈이란 무엇일까. 첫째, 돈은 상품과 함께 발생한다. 물물교환 시대에서의 상품은 ‘상품’이자 ‘돈’이었다. 하지만 상품을 돈으로 사용하기엔 쉽게 변하거나, 물건의 가치가 달라 교환할 때의 어려움으로 화폐라는 것을 발명하게 되었다. 즉 화폐는 상품을 거래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탄생하게 된 것이다. 둘째. 돈은 모종의 권력을 전제한다. 물물 교환의 이면에는 공동체가 전제되어 있다. 필요한 물건이 있지만 평화롭게 주고받을 수 없을 때, 권력이 작용하게 된다. 필요한 물건을 사람들이 나눠 갖는 데 문제가 생기게 되면 해결하기 위해 공동체가 개입하게 된다. 서로가 안정적으로 여분의 ‘상품’을 만들어 거래할 수 있으려면 이처럼 국가권력 혹은 모종의 공동체가 전제되어야 한다. 교환이 성립되면 공동체가 있다는 것이고, 공동체가 있다는 건 바로 권력이 있다는 것이다. 돈에 의한 교환에도 교환을 보증하는 권력이 존재한다는 걸 망각하지 않아야 한다. 정치적 권력의 정도에 의해 국가의 화폐의 가치가 결정된다. ‘기축통화’를 통해 ‘돈의 위계’를 알 수 있고 그로 인해 정치와 경제는 하나의 현상으로 엮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장에 권력이 개입하는 방법은 국가가 돈의 흐름을 조절하는 것이다. 중앙은행을 통해 직접 돈을 찍어 통화량을 조절함으로써 돈의 가치를 조절하기도 하지만, 금리(이자율)를 통해 시중의 통화량을 조절한다. 이러한 권력의 시장 통제는 돈이 신용의 형태로 바뀌며 더욱더 손쉬워졌다. 정치를 바꾸려면 그 기저에 있는 경제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경제에 대한 이해를 깊이 있게 하려면 국가의 개입과 같은 정치적 판단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셋째. 돈은 종교적 가치를 갖는다. 자본주의 세계에선 돈 자체에 가치와 목적을 지니게 만들어 신성시되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와 자본주의 사회가 양립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1인1표제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주주총회에서의 1표는 1주를 의미한다. 자본주의에서는 거액의 주주를 소유하고 있다면 대주주의 뜻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우리는 진정한 민주주의에 살고 있는 것 일까? 물물교환의 시대에서 돈이 생겨남에 따라 물건들은 오로지 상품으로 존재하게 된다. 시간의 흐르며 상품의 범위는 넓어져 ‘노동’ 또한 상품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노동이 상품이 되어가면서 배움의 기회 또한 더 좋은 상품으로의 가치를 올리는 수단이 되었다. 사람이 좋은 상품이 되기 위해 구매자인 기업의 입맛에 맞춰 스펙을 쌓고 있고 자본주의는 학문과 대학을 이렇게 길들인다. 자본이 판단하기에 ‘사용가치’가 없는 것은 버려진다. 넷째. 돈은 인간을 지배하고 인간관계를 매개한다. 시멘트는 벽돌과 벽돌을 이어주지만 직접 만나게 하지는 않는다. 자본주의에서 돈은 이 시멘트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돈이 매개가 된다면 인간성은 배제된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관계 속에서도 경제적 역할을 전제로 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돈은 우리를 노예로 만든다. 하지만 우리는 저항해야 한다. 우리를 상품화하는 것을 반대해야 한다. 사람이 ‘상품’이 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고, 돈으로 사람의 가능성을 규정짓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사회를 만들려면 새로운 세상을 꿈꿔야 한다. 피에르 클라스트르의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에 나오는 인디언들의 생활양식에는 약육강식의 방식이 아닌 그들만의 경제체제를 만들어 공동체를 유지한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를 문명적으로 발전한 사회라 하지만 여기서 문명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약육강식의 사회, 약하고 가난한 자들이 억압을 받는 사회가 과연 문명의 사회라 할 수 있는지를 말이다. 우리는 ‘경쟁’을 ‘문명’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문명의 도구를 다른 사람을 억누르는 데 쓴다면 그건 야만이다. 문명이란 인간이 동물의 세계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6강_돈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강신주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돈은 어떻게 위력하는가. 사물도 사람처럼 어떻게 관계하느냐에 따라서 존재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장 보드리야르는 주장한다. 사물을 도구, 상품, 상징, 기호로 네 가지 차원으로 구분했다. 이 네 가지 중 자본주의와 가장 밀접한 것은 어떤 것일까? 보드리야르는 네 번째 차원‘기호’에 주목한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사람들이 사물을 ‘기호’로 소비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기호적 소비란 도구적 기능보다는 그것을 소유함을 통해 욕망이 채워지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해 나갈 방법으로 첫 번째, 상품의 형식에 들어가지 않는 것들을 확대해야 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물이 상품화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저항하는 길이다. 도구와 상징으로 사물의 지위를 강화해야 한다. 돈을 목적이 아닌 삶을 편리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사물을 사용하거나, 만남의 기쁨을 표현하는 선물로서만 사물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사용한다면 자본주의는 붕괴한다. 이 방식이 현실에서 실현되기 위해서는 탐욕을 버려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두 번째, 개인들의 권력이 회복해야 한다. ‘중앙권력은 개인이 만든 증서의 불확실성을 증폭’ 시킨다. 개인 간의 증서를 사용하게 된다면 중앙은행의 화폐 없이도 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국가의 권력이 약해지기 때문에 국가는 불신을 강조하며 국가의 공권력만이 안정된 거래를 보장한다고 선전하게 되며 국가의 개입으로 상호 불신은 더 커진다. 따라서 인격적 관계, 상호 신뢰를 회복한다면 절대적인 교환 수단인 국가의 화폐 즉, 돈의 지위는 조금씩 약해질 수가 있다. ‘대안화폐’를 사용하며 자본주의 바깥으로 상상해볼 수 있게 된다. 세 번째, 돈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보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돈을 제외한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든다. 결국 돈이 목적이 되고, 사물이나 인간은 돈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자본주의는 더 나아가 인간 또한 돈을 위한 수단으로 바라보게 한다. ‘스펙’이라는 단어로 인간이 수단임을 알 수 있다. 칸트의 ‘정언 명령’은 자본주의의 행동 강령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행동 지침으로 기능할 수 있다. 서로가 목적으로 여기게 된다면 그 안에 신뢰가 생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이용한다. 우리는 권력이나 자본이 주는 인간에 대한 비관적 전망을 극복해야 한다. 네 번째, 인간관계의 직접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돈의 영향을 줄이면 인간들의 직접적 만남이 필요하게 된다. 돈의 위력을 발휘하려면 개인이 파편화되고 전문화되어야 한다. 전문성이란 자본주의 체제가 규정하는 전문화된 활동을 말한다. 전문화된 활동의 대가로 돈을 받고, 그것으로 다른 전문화된 활동으로 만든 상품을 구매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도시 생활을 하면서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건 자본이나 권력의 종속된다는 것과 같다. 자신의 삶을 자신이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사회, 파편화된 개인의 삶에서는 자본의 힘은 압도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러한 구조에서 탈출할 방법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성을 회복하고 신뢰를 회복하고 배려를 회복한다면 돈의 지배력은 약해진다. 신뢰로 구축된 인간관계는 서로를 구하지만, 돈은 언제든 우리를 버릴 수 있다. 지금까지 자본에서 벗어날 방법들이 습성이 된다면 자본에 정복당하지 않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7강_허생은 왜 돈을 버렸을까. -송승훈 문학 작품은 사람이 사는 이야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가장 자주 접하는 돈이 자주 등장한다. 윤흥길의 [아홉 켤레 구두로 남은 사나이]라는 작품에서의 돈은 주인공의 불안을 나타내기도 하고 권력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렇듯 여러 문학 작품에서의 돈의 역할은 각각이 다르다. [춘향전] 같은 고전이 사랑을 받는 이유는 주어진 조건을 뛰어넘는 사랑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인간은 부당한 것을 넘으려는, 정의를 향한 열망이 있는 존재이다. 과거 [춘향전]처럼 신분제에 의한 차별이 아닌, 현재에는 돈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허생전]에서는 돈에 대한 욕망, 욕심을 버리라고 말하며 돈과 행복은 관계가 없음을 말한다. 이렇듯 문학작품은 우리에게 진리를 알게 하기도 하며 깊은 고민의 질문들을 주기도 한다. 한 사람의 비참함은 모두의 책임이라는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의 구절을 통해 사회의 불균등을 보여준다. 돈이라는 가치가 기회조차도 불평등하게 나누고 공동체의 윤리의식 또한 잃어버리게 한다. 사회 속의 돈의 의미와 이중성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돈의 대한 여러 의미와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해 자세하고 쉽게 서술되어 있어 이해하기 수월했다. 특히 국가라는 공동체가 돈과 연결되어 권력을 이루는 구조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돈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바라보는 다양한 분야 속 저자들의 시선을 알 수 있었고 더 나은 방향을 향해 고민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책의 후반부를 읽으며 과거에서 현재까지 달라진 소비습관과 ‘돈’이라는 가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게 되었다. 과거 나는 자본의 충실한 상품으로 일을 하고 그 세계의 불합리를 느끼지 못하며 살았다. 돈은 많을수록 좋다는 사람들에 말에 동의하며 그 시스템에 이탈되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며 버텼다. 하지만 지금의 삶은 돈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움을 느끼고 있다. 어떻게 자본에 철저히 찌들어 있던 나에게 이런 변화가 생길 수 있었을까 생각해봤을 때 가장 큰 이유는 식-탁이다. 일터 자체에 대한 즐거움과 하나의 인격체로서의 회복이 삶과 가치관까지 변화를 준 것이다. 돈의 과거와 현재의 달라진 의미를 말하는 지점에서 평등에 관해 말할 때 과거 돈은 차별적인 구조를 평등하게 했다는 주장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왜 현재의 돈은 더욱 차별적인 구조를 양산하고 불평등의 출발선을 제시하게 되었는지에 말이다. 그 이유는 욕망 때문인 것 같다. 신분제에 대한 평등이 이루어지며 돈이란 가치가 강력한 힘이던 신분을 물리치고 그 자리에 앉았기 때문이다. 힘의 재정립이 될 뿐 인간을 완전한 자유와 평등의 구조로 살게 하지 못한 것이다. 책에서 말한 바와 같이 돈의 저항하기 위해 우리는 욕망을 버려야 한다. 욕망을 버리고 인간과 인간의 신뢰가 회복된다면 돈의 지배력은 약해진다. 돈 없이도 행복하다면 돈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 신뢰로 구축된 인간관계는 서로를 구하지만, 돈은 언제든 우리를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돈으로 돌아가지 않는 사회, 어떤 다른 영역을 생각하는 것들이 앞으로 새로운 세대를 위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자본주의의 바깥은 내가 식탁에서 느낀 것과 같이 본 목적의 회복이 있는 사회일 것 같다고 생각한다. 도시 정글에서 살아남길 바라는 우리가 자본주의를 넘어선 세상을 구축하고 돈에 대한 저항이 습성이 되어 버티는 사람들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