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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으로 가는 편지
고전산문 011
출처 한국고전번역원 www.itkc.or.kr
해가 바뀌었습니다. 새해 첫날에 하루가 더 흘러 1월이 되었습니다. 한문 임고생 여러분. 올 11월 말(임고 1차 필기 예상)까지 330일 정도이니, 하루에 한 면씩 관리할 수 있는 노트를 준비해보세요. 거기에다 일단 날짜를 쭉 적어봅시다. 그리고 24절기, 명절들을 기재하시고요. 그리고는 대략적인 월별 계획, 구체적인 주간계획을 작성해나가시고, 하루를 보내면서는 여러분이 공부한 내용을 기록해보세요. 이렇게 한 두 달을 달을 하다보면 여러분의 생활이 치밀해지면서 자신감이 생길 겁니다. 올 한해 반드시 뜻을 이룹시다.
나무뿌리로 만든 베게
글쓴이 : 정필용
나무가 길옆이나 밭두둑에서 자라 소, 양에 시달리고 도끼가 찍어 가지가 밖으로 뻗지 못하고 뿌리가 땅 속에서 뭉치고 얽혀 구불구불 구부러져 해가 지날수록 더욱 울퉁불퉁한 혹이 달리고 상하 좌우로 꺾기고 구부러졌다. 농부가 밭두둑을 개간하다 파서 뽑아 길 가운데로 던져 버렸다.
이것을 내가 우연히 발견하여 특이한 것으로 생각하여 간직할 만한 것이라고 여기고 끌고 집으로 가져 왔다. 칼로 깎아 다듬고 좀 먹은 부분은 파서 도려내고 썩은 부분은 깎아내어 베개를 만들었다. 이 베개를 뒤로 물러나 앉아서 바라보니 넘어지지 않게 버티는 것은 발 같고 뾰족하게 솟은 것은 뿔 같고, 높으면서도 평편한 것은 등 같아, 돌이 많이 쌓여 있는 것 같으면서 울퉁불퉁하고 앙상한 모양을 한 기이하게 생긴 물건이었다. 나는 웃으면서 이 물건은 산촌(山村)에 있는 집의 기이한 노리개가 아닌가 여겼다.
매양 사립문으로 손님이 떠난 후 초당이 낮에 고요하면 책을 읽고 시를 읊다가 기력이 차츰 떨어져 고달픔을 느끼게 되면, 혹 비스듬히 이 베개에 기대기도 하고 혹 고이고 눕기도 하면서 펄펄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어 꿈속에서 남가(南柯)와 화서(華胥)의 사이에서 인생을 즐기면서 자적(自適)하였기 때문에 나는 이 베개를 매우 소중하게 여겨 호박으로 꾸미거나 무늬를 수놓은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베개와도 바꾸고 싶지 않았다.
아, 나는 일찍이 대개 행복과 불행이 그 사이에 있다고 나름대로 생각하였다. 무릇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 가운데서 자라나서 소·양과 도끼의 재난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번성한 가지와 조밀하게 난 나뭇잎이 무럭무럭 자라 무성하고 빽빽하게 우거져 드높은 하늘처럼 높고 그 그늘은 소를 가릴 수 있을 만큼 크게 자라나 천수를 다하게 된 것은 곧 나무의 행복이다.
그런데 지금 이 나무는 길 옆 밭두둑에 나서 도끼가 가지와 줄기를 상하게 하고 소·양이 가지와 뿌리에서 돋아난 싹을 해쳐 마침내는 파서 뽑아서 던져 버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그 불행이 어떠하다고 하겠는가. 그러나 가령 이 나무가 길 옆 밭두둑에서 자라지 않아서 소·양과 도끼의 재난을 입지 않았다면 뭉치고 얽혀 구불구불 구부러져서 울퉁불퉁 혹이 달리고 상하 좌우로 꺾이고 굽어 기이한 모양의 뿌리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생김새가 기이한 뿌리가 되었더라도 파서 뽑아내어 던져진 환란을 당하지 않았다면 그 기아한 형체와 특이한 모양을 필시 스스로 밖으로 드러내 보였더라도 진실로 나같은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또한 거두어져 베개가 되지 못하고 마침내는 썩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니 이른바 행복이라는 것은 과연 행복이며 이른바 불행이라는 것은 과연 불행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 이 또한 불행 중 다행으로 나를 만나게 된 것이다.
문득 나는 여기에서 마음에 느낀 바 있다. 바야흐로 이 뿌리가 길 가운데 내버려졌을 때 이것을 본 사람 중에 누가 쓸 데 없다고 하지 않으랴! 그러나 나에게 한번 거두어져서 마침내는 유용한 기물이 될 수 있었으니, 이로부터 천하에 애당초 버릴 수 있는 물건이 없다는 것을 알겠다.
이 세상에서 탁월하고 훌륭한 선비로서 큰 도(道)를 품고 재주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알아주는 이를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한정이 있겠는가. 그러나 매우 불우하고 곤궁하고 뜻을 이루지 못한 때를 만나면 빈천(貧賤)에 허덕이고 우환이 밀려들어 용렬한 사람과 비루한 사람까지도 그를 눌러 움츠리게 하고 학대하며 욕보인다.
이 때문에 훌륭한 선비는 기세가 꺾여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재덕(才德)을 감추어 두고 두각을 나타내지 않고 용이 서리고 있는 듯이 자벌레가 움츠리고 있는 듯이 깊이 숨고 깊숙한 곳에 엎드려 있어 재주는 당대에 나타나지 못하고도 도(道)는 세상에 쓰여지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훌륭하고 탁월한 기(氣)는 꽉 막혀 몸 가운데 축적되어 있다가 혹 원망과 불평에 격동되어 때로 밖으로 발로되는 경우가 있는데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버림받은 사람으로 여겨 모른 체 한다.
아, 현명한 임금과 어진 재상이 알아주어 등용하지 않는다면, 위에서 말한 길 가운데 버려진 나무와 같이 되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되겠는가! 무릇 만물은 사람과 더블어 그 이치가 한가지이니 국가를 소유한 사람이 진실로 나의 이 설(說)을 얻어 간직한다면 생민의 심신을 거의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이다.
<원문>
木根枕說(南坡先生文集卷之十 / 雜著○說)
木之生於道傍田畔者 厄於牛羊之牧 斧斤之尋也 其枝柯不能條達於外 而根鬱結盤屈於地中 歲久而益擁腫輪囷焉 田夫之闢其疇者 掘而拔之 擲棄之途中焉 余偶遇而異之曰 此可居 挈之歸 加以刀削 剔其蠹刮其朽 而以爲枕焉 却坐而視之 撑者如足 曳者如尾 昂然者若頭 嶄然者若角 隆然而平者若背 磈礨龍鍾焉一怪物也 余笑曰 此非山家之奇玩耶 每柴扉客去 草堂晝靜 讀書哦詩 神氣稍倦 或欹而凭 或支而臥 栩栩然蝴蝶 自適於南柯華胥之間也 余甚愛惜之 雖世之以琥珀飾而文繡被之者 亦不願易也 噫 余嘗嘿而思之 蓋有幸不幸者存乎其間焉 夫生乎高山深谷之中 遠乎牛羊斧斤之厄 繁枝密葉暢茂蔥鬱 以至昂霄之高 蔽牛之大 而得終其天年者 乃木之幸也 今是木也 道傍田畔之是生也 斧斤戕其柯榦 牛羊賊其萌孼 終至於拔掘之擲棄之 斯其不幸也何如哉 然使是木也不生於道傍田畔 而不厄於牛羊斧斤也 則無以鬱結盤屈擁腫輪囷而怪於根矣 雖怪於根 而不遭拔掘擲棄之患 則其奇形異態 必不能自呈露於外矣 奇形異態雖得呈露於外 而苟不能遇余之知之 則亦莫得收以爲枕 而終歸於腐朽而止耳 然則其所謂幸者果幸耶 其所謂不幸者果不幸耶 嗚呼 其亦幸於不幸 而得遇於我矣 抑余又有所感於心者 方是根之棄擲於途中也 人之見之者 孰不以爲無所可用也 然而一見收於余 而終得爲有用之器 以此知天下初無可棄之物也 世之卓詭瑰奇之士懷道抱才 而不見知者何限 當其厄窮坎壈之甚也 貧賤汩之 憂患萃之 庸人鄙夫皆得以轢蹙而折辱之 是以 摧藏韜匿 蟄其頭角 龍蟠蠖屈 潛深伏隩 才無所著於時 道無以行乎世 而其瑰奇卓詭之氣 壅鬱蓄積於中 或因怨懟不平之激 而時有所發露於外者焉 彼不知者以爲棄物而置之 嗚呼 不有明君良相遇而識之 引以登之 則幾何其不爲途中之棄木也 夫物之與人 其理一也 有國家者 苟得吾是說而存之 則生民之奠枕 其庶矣乎
매 기르기
글쓴이 : 이의강
매는 맹금류로 사육하기가 어렵다. 세상의 매를 사육하는 자들은 길어야 삼사 년을 기르고 짧으면 일이 년을 기르며, 심지어는 두 세 달을 넘기지 못하고 매가 달아나거나 죽거나 하여 오래 사육하지 못한다.
어떤 노인이 매를 삼십오 년이나 사육하였지만 그 매가 죽지도 않고 도망가지도 않았다. 매를 기르는 어떤 자가 그에게 가서 물었다.
"매는 사육하기 지극히 어렵습니다. 소인이 매를 사육해 보았지만 길어야 삼사 년이고 짧으면 일이 년이었습니다. 심지어는 두세 달을 넘기지 못하고 매가 달아나거나 죽거나 합니다. 지금 들으니 선생께서 매 한 마리를 기르는데 삼십오 년이 되었지만 죽지 않고 달아나지도 않는다고 하니, 어떻게 된 것입니까. 이에 대해서 묻고자 합니다."
노인은 이렇게 답하였다.
"내가 매를 기르는 특이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네. 무엇을 그대에게 알려주겠는가. 그러나 그대가 나에게 굳이 물으니 내가 그대에게 숨기지 않겠네. 그대는 들어보게.
무릇 매는 맹금류이네. 장백산 기슭에서 태어나 덕림산 벼랑에서 성장하는데, 넓은 바다와 높은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네. 매는 산림에 대한 본성과 창공을 날고자하는 의지를 지녀 기르기가 옹졸한 닭이나 오리처럼 쉽진 않다네. 사냥꾼이 그물을 쳐서 그물코에 매가 걸리면 끈으로 매의 몸을 잡아 묶고 가죽으로 된 팔찌에 올려놓고 먹이지. 낮에는 팔뚝에 올려놓고 밤에는 등불을 켜 놓고 기르면서 가까이는 노끈으로 시험해 보고 멀리는 휘파람소리로 시험해 보지. 상아, 녹각, 쇠방울로 자태를 아름답게 꾸며 주고 쥐, 비둘기, 닭, 참새로 배를 채워 주지. 그리하여 조금씩조금씩 사람과 가까워지게 한 뒤 굶기기도 하고 물을 주지 않기도 하면서 길을 들여 그 훈련이 몸에 완전히 배게 만들지. 그리하여 매의 산림에 대한 본성을 틀어막아 사람에게 양육되는 데 익숙해지도록 하고, 창공을 날고자 하는 의지를 잊게 만들어 사람의 손에 길이 들도록 하지. 삼십 일쯤 되면 매는 사람과 가까워지고 오십일쯤 되면 서로 스스럼없게 되지. 그러나 매의 산림에 대한 본성은 변함이 없고 창공을 날고자 하는 의지는 굳건하여, 마음을 움직여주는 것이 있으면 그동안 길러준 것을 돌아보지 않고, 기운을 충동시켜 주는 것이 있으면 그동안 훈련받은 것을 생각지 않게 된다네.
무릇 바람은 만물을 움직이는 것인데 새는 바람을 좋아한다네. 매는 날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날아서 바람을 만나면 그 기운이 바야흐로 솟아나서 스스로 멈출 수 없다네. 한 번 날면 마음이 흡족해지고 두 번 날면 자유자재로 날고 세 번 날면 구속을 벗어나 구름을 가로질러 하늘 끝까지 올라가 아득히 가는 곳을 알 수 없게 된다네. 그래서 나는 창문 아래에 깃발을 세워놓는다네. 아침에 일어나면 그 깃발을 살펴보아서 바람이 불면 매를 날리지 않는다네.
무릇 저녁은 만물이 슬퍼하는 바이고, 산림은 새가 돌아가는 곳이라네. 해가 져서 산이 어두워지면 온갖 새들은 숲에 있는 보금자리로 들어가지. 서로 짝을 부르고 암수가 호응하여 높고 낮은 울음소리가 숲에 울려 퍼지지. 그런 소리를 매가 들으면 마음에 느낌이 일어 방황하고 주저하다 동쪽서쪽 돌아보고는 마침내 달아나버리게 된다네. 나는 산 위에서 해를 살펴보아 해가 기울었으면 매를 풀어놓지 않는다네.
무릇 매는 맹금이지만 그 혈맥과 근골은 사람과 다름이 없다네. 몸도 너무 수고롭히면 고단해지고 정신도 너무 사용하면 피폐해진다네. 매는 꿩과 크기가 서로 비슷하고 그 힘도 서로 별 차이가 없다네. 매도 꿩을 닮아 날면 혈맥이 동요되고 발톱으로 쳐서 잡으면 근골이 피폐해진다네. 한 마리의 꿩을 잡을 때는 힘이 왕성하지만 두 마리를 잡으면 힘이 쇠해지고 세 마리를 잡으면 힘이 고갈된다네. 힘이 고갈되면 병이 들고 병이 들면 죽게 되는 것이라네. 세속의 매로 사냥하는 사람들은 이를 경계하기는커녕 공을 탐내고 많이 잡은 것을 자랑하고자, 매의 힘이 쇠해졌는데도 만족하지 않고 힘이 고갈되었는데도 멈추지 않고 사냥을 계속 시켜 네 마리, 다섯 마리, 심지어는 열 마리까지 잡는다네. 그리하여 매의 기량이 더욱 쇠해지고 기력이 더욱 고갈되면 매는 능히 치솟을 수도 없고 능히 진퇴할 수도 없게 된다네. 숲에 부딪쳐 날개가 찢어지고 바위에 충돌하여 허리가 부러지는 낭패를 당하여 거꾸로 떨어져 허무하게 죽고 만다네. 나는 꿩을 세 마리만 잡으면 매를 날리지 않는다네.
무릇 매가 도망가게 되는 길이 두 가지이고 죽게 되는 길이 두 가지인데, 나는 이 네 가지를 삼가 지키기 때문에 매가 삽십오 년이 되었지만 죽지도 않고 달아나지도 않는 것이라네."
질문한 사람이 재배하고 나오면서 말하였다.
"선생의 가르침을 삼가 잘 들었습니다."
어떤 군자가 이 말을 듣고는 기이하게 여겨 속으로 생각하기를,
"그 사람은 현자인가? 현자로서 매에 은둔한 사람인가?"
하고는, 직접 가서 물었다.
"선생의 매를 기르는 조리있는 말씀을 전해 들었는데, 제가 비루하여 그 비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감히 이에 대하여 묻고자 합니다."
그 노인이 대답하기를,
"나는 매를 직업으로 기르는 사람이오. 단지 매에 관해서 알 뿐이니, 어찌 다른 것에 관하여 알겠소."
하였다. 군자가 대답을 강요하자, 그가 말하였다.
"내가 젊었을 때는 유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훌륭한 선생들의 문하에서 노닐었고 고금의 전기(傳記) 내용을 대략 들었지요. 전기의 내용을 가지고 고찰해 보겠소.
한 고조(漢高祖)는 스스로 사냥하는 방법을 안다고 여겼는데, 진(秦) 나라와 초(楚) 나라를 과연 사냥하였지오. 그러나 한신(韓信)과 경포(경布)는 모두 매처럼 하늘에 치솟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자들이었소. 한신은 제(齊)를 바람으로 삼았고 경포는 회남(淮南)을 산림으로 삼았는데, 한 고조는 능히 경계하지 못하였지요. 그래서 한신은 제 때문에 망하였고 경포 역시 회남 때문에 망하였던 것이오. 진 소왕(秦昭王)도 일찍이 여섯 나라를 사냥하였지요. 그러나 백기(白起)가 장평(長平)의 높지 않은 성벽에서 힘을 다해 싸워야만 했고 결과적으로 그 뒤 두우(杜郵)에서 자살해야만 되었소.
한 무제(漢武帝)도 역시 흉노를 사냥한 적이 있지요. 그러나 이릉(李陵)이 준계산(浚溪山)에서 흉노가 굴러떨어뜨리는 바위덩어리에 기력이 꺾여 항복함으로써 그동안의 공적이 무너지고 말았소. 그러므로 '공을 탐내는 자는 멸망하고 얻은 것을 자랑하는 자는 잃는다.'고 하는 것이오. 천년의 역사에서 사냥을 아는 사람으로는 오직 한(漢) 광무제와 송(宋) 태조가 거기에 가까울 뿐이오.
내가 훌륭한 선생들에게서 듣고 전기의 내용에서 살펴본 것은 이와 같을 따름이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군자가 길게 한탄하며 말하였다.
"옛날에 포정(庖丁)은 현자로서 소잡는 데 은둔했고, 윤편씨(輪扁氏)는 현자로서 수레바퀴를 깎는 데 은둔했습니다. 당신은 진실로 현자로서 매 기르는 데 은둔했다고 하겠습니다.“
<원문>
養鷹者說(立齋先生遺稿卷之十六 / 說 )
鷹鷙鳥也 難畜 世之畜之者 遠者三四年 近者一二年 甚者或不過兩三月 而鷹或亡或死 不能久也 有畜之三十有五年 而鷹不死 又不亡者 有同業者往問焉曰 鷹至難畜也 小人畜鷹 遠者四三年 近者一二年 甚者或不過兩三月 鷹或亡或死 今聞先生畜一鷹三十有五年而不死 又不亡者何也 請問焉 其人曰 吾畜鷹無異術焉 何以告子 雖然 子之問我也 固我將無隱乎子 子其聽之 夫鷹鷙鳥也 生於長白之阿 長於德林之岸 游於玄海之濱 逸於絳霄之表 其山林之性 雲霄之志 非若鷄鴨之拙而易畜也 及其虞羅之所施 一目之所加 絛焉絆其身 鞲焉養其口 晝養於臂 夜養於燈 近而試諸繩 遠而試諸聲 象鹿金鈴之餙 華其表 鼠鳩鷄雀之食 充其裏 浸之涵之 飢之渴之 擾之馴之 優之游之 熟之揉之 塞其山林之性 而使之耽於人之養 忘其雲霄之志 而使之習於人之手 三旬而親 五旬而狎 然其性本山林也 其志固雲霄也 心有所感 則養有所不屑矣 氣有所乘 則習有所不戀矣 夫風者動物者也 鳥者喜風者也 鷹惟不飛 飛而風焉 其氣方洋而不能自止矣 一擧而適 再擧而橫 三擧而逸 絶雲烟凌霄漢 飄然不知其所逝矣 吾於牖下 樹夫㫌焉 朝起而視㫌焉 風焉則鷹不放焉 夫夕者物所悲也 山林者鳥所歸也 日入山暝 百鳥投林 儔侶相呼 雌䧺相應 和鳴下上 頡頏其音 則鷹之聽之 其情感矣 彷徨躊躇 東顧西望而終焉去矣 吾於山上 視夫景焉 景仄焉則鷹不放焉 夫鷹鷙鳥也 然其血脈筋骸 與人無殊也 形太勞則竭 神太用則敝 鷹之與雉 小大敵矣 力勇均矣 周旋追逐 血脈動矣 繫搏擒戮 筋骸敝矣 一雉而逞 二雉而衰 三雉而竭 竭則病 病則死 俗師不戒 猶且貪功誇得 衰而不厭 竭而不止 四雉五雉 至于十雉 而伎倆益衰 氣力益竭 騰躑不能 進退不可 頓林薄而羽毛摧 觸碨磊而腰脚折 狼狽顚倒 倐然而死 吾得三雉焉 則鷹不放焉 夫鷹亡之道二 死之道二 愼斯四者而行焉 故鷹三十有五年 不死 又不亡矣 其人再拜而出曰 敬聞先生之命矣 有君子者 聞是語也而異之曰 是其賢者歟 賢者而隱於鷹者歟 往問焉曰 仄聞先生有緖言於養鷹者 小子陋不得其旨 敢請問焉 其人曰 我業鷹者也 只知鷹焉 他何知焉 強之 曰吾少也業儒 曾遊於先生長者之門 略聞古今傳記之言矣 以傳記之言攷之 漢祖自謂知獵 而獵秦楚矣 韓信,黥布皆有鷹揚之心 信也以齊爲風 而布也以淮南爲山林 而漢祖不能戒之於始 信也以齊亡 布也以淮南亡 秦昭王亦嘗獵六國矣 白起力竭於長平之三雉 而身僨於杜郵 漢武帝亦嘗獵凶奴矣 李陵氣頓於浚溪之碨磊 而績敗於西北 故曰貪功者滅 誇得者喪 千載之下 知其解者 惟漢之光武 宋之太祖 其庶幾乎 吾所以聞於先生長者 而攷於傳記之言者 若是而已矣 吾子以爲如何 君子者喟然歎曰 昔庖丁賢而隱於解牛 輪扁賢而隱於斲輪 吾固曰賢者而隱於鷹者也
우계총(友鷄塚)의 교훈
글쓴이 : 조창래
1. 현명한 모성
눈 먼 암탉이 둥지에서 알을 품고 있는데, 바른편 눈은 완전히 덮였고 왼쪽 눈도 반이상 실눈이 되어 있었다. 먹이가 그릇에 가득하지 않으면 쪼아 먹지를 못하고, 다니다가 담장에라도 부딪치면 헤매다가 돌아 나오곤 하니, 모두들 저래가지고는 새끼를 기를 수 없다고 하였다.
마침내 날짜가 차서 병아리가 되어 나오니 빼앗아서 다른 어미에게 주려하였으나 한편으로 측은하기도 하여 차마 그러지 못하였다. 얼마 후 살펴보니, 별다른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항상 뜰 주변을 떠나지 않는데 병아리들은 똘똘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다른 어미를 보면 대개가 병들고 상처받아 죽거나 잃어버려 혹은 절반도 제대로 못 기르는데 유독 이 닭만은 온 둥지를 온전히 길러내니 어쩐 일인가?
흔히들 새끼를 잘 길러낸다고 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즉, 먹이를 잘 구하는 것과 환란을 잘 막아주는 것이다. 먹이를 잘 구하려면 건강하여야 하고 환란을 막으려면 사나워야 한다.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오면 어미 닭은 흙을 후비고 숨어 있는 벌레를 찾아내느라 부리와 발톱이 다 닳아빠지며, 사방으로 흩어지는 새끼들을 불러 모으느라 잠시도 편히 쉴 틈이 없다. 또 위로는 까마귀와 솔개, 주위로는 고양이나 개들을 살피며 부리를 세우고 깃을 펄떡여 목숨을 내걸고 항거함이 마치 용사가 맹적을 만난 것같이 한다. 그러다가 숲속으로 달아나서는 때맞추어 불러서 몰고 오는데 병아리는 삐약거리며 낭창낭창 뒤따라 오긴 하지만 힘이 빠지고 병들기 쉽상이다. 때로는 엇갈리어 길을 잃기라도 하면 물이나 불 속에 빠져 생사를 기필할 수 없으니, 이렇게 되면 먹이를 구해준 것도 허사로 돌아간다. 또 조심조심 보호하고 타오르는 불길같이 맹렬히 싸워도 환란이 스쳐가고 나면 병아리 6∼7할을 잃고 만다. 게다가 너무 멀리 나가 사람의 보호도 받을 수 없으면 사나운 새매를 무슨 수로 당해내겠는가. 이렇게 되면 환란을 방비하느라 애쓴 것도 허사가 된다.
그런데 저 눈 먼 닭은 하나같이 모두 이와는 반대이다. 멀리 갈 수 없으므로 사람 가까이에서 맴돌고, 눈으로 살필 수 없으니 항상 두려운 마음으로 행동을 조심조심하며 노상 끌어안고 감싸준다. 그러므로 힘쓰는 흔적은 보이지 않아도 병아리들은 저들끼리 알아서 먹이를 쪼아 먹고 자라난다. 무릇 병아리를 기르는 것은 마치 작은 생선을 삶는 것과 같아서 교란시키는 것이 가장 금기인데, 저 눈 먼 닭은 지혜가 있어서 그리 한 것은 아니겠으나 방법이 적중하여 마침내 양육에 만전을 이루게 된 것이다.
사물을 양성하는 방도는 한갓 젖먹이는 은혜에 달려있는 것이 아님을 이제야 알겠다. 통솔하되 제각기 제 삶을 이루도록 해야하니, 그 요령은 오직 잘 인솔하여 잃어버리지 않는 것 뿐이다. 나는 이 병아리 기르는 것으로 인하여 사람을 양육하는 도리를 깨달았다.
<원문>
瞎雞傳(星湖先生全集卷之六十八 / 小傳 雜傳附)
有伏雌在窠而瞎 右睛全翳 左通微睇 穀不滿器 不能啄 行觸垣牆 彷徨以回避 皆曰是不可以有乳矣 及日滿雛成 將奪而與佗 又憐而不忍也 旣而視之 無佗技能 常不離於階庭之際 而雛便茁壯長焉 觀佗乳者擧不免摧殘損失 或不能半存 而此獨有完巢之功何哉 凡世所謂善乳者有二 善求食也 善防患也 求食尙健 防患尙猛 雛旣出殼 母能撥土揀蟄 嘴爪爲之磨鈍 規規四出 時無安息矣 仰察烏鳶 傍伺猫犬 厲吻鼓翅 拚棄死命 誠若快利得其路 然奔走林莽 及時呼引 而雛也啼號跟隨 力則竭 體則病 或至於違失而水火是蹈 患殃猝逼 此求食無益也 其愼護禦鬬 猛若烈火 然患已去而雛亦爲之六七分摧敗 旣又遠出 人亦失護 鷙物之勇 有以勝之 此防患無益也 彼瞎者一皆反之 行不能遠 故依止近人 目不能察 故常懷畏懼 動息徐徐 抱覆頻頻 不見用力之迹 雛自啄拾而成矣 夫養雛若烹小鮮 惟忌攪亂 彼非智有以及之 而適中方便 畢竟萬全者 在此不在彼 始知物之養成 不但在於哺鷇之恩 卽帥之有術 而各遂其生 其要在善御而不忘而已也 余於是因養雞而得養人之道
2. 형제간의 우애
내가 암탉 한 마리를 길렀는데 성품이 매우 자애로워 병아리 한 배를 길러놓고 두 번 째 병아리를 기르면서 먼젓번 배의 병아리도 함께 먹이고 있었다. 앞 배의 것은 겨우 깃이 생기고 뒤의 것은 아직 솜털뿐인데 하룻밤에 어미 닭이 들짐승의 먹이가 되고 말았고 병아리도 큰 것은 역시 잡혀갔다. 암컷 한 마리가 요행히 도망쳤으나 역시 대강이와 쭉지에 털이 빠지고 전신에 상처를 입어 모이도 제대로 못 쪼았다.
병아리 떼는 삐약거리며 몹시 애닯게 어미를 찾고 있었는데 상처 입은 암컷이 상처가 조금 나아지자 즉시 병아리 떼를 불러서 품어주는 것이었다. 집안사람들이 처음엔 우연이려니 하였으나 이윽고 먹이를 보면 반드시 부르고, 다닐 때는 꼬꼬꼬 하는 어미 닭 소리를 내며 뜰 앞을 떠나지 않고 혹 깃을 벌려 환란을 막기도 하였다. 또 어쩌다 서로 엇갈리면 두리번대며 미친 듯이 날고 뛰면서 찾아다니니, 크고 작은 것이 서로 자애하고 따름이 흡사 그 어미와 새끼 같았다. 또한 짐승의 해를 피하여 사람을 가까이하고 처마 끝 돌출된 곳에서 자곤 하였는데, 때 마침 큰 장마가 두어 달 계속되니 그 두 깃으로 병아리를 덮어 비에 젖는 것을 모면하게 하려 하였다. 그러나 몸도 작고 다리가 짧아서 굽힐 수가 없으니 밤새도록 꼿꼿이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기를 여름부터 가을까지 한결같이 하니 보는 이마다 감탄하였다. 이에 이름을 '우계(友鷄)'라고 명명하고, 사람들이 불선한 행동을 하면 서로 주의 주기를 "우계를 보아라 우계를"이라고 하면 부끄러워 굴복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러므로 볏가리의 곡식을 쪼아도 차마 몰아 내지 못하였으니 사람에게 신임 받기를 이처럼 하였다.
마침내 병아리는 자라서 크기가 주먹만큼씩이나 한데 우계는 여전히 치약한 모습 그대로였다. 그래도 변함없이 먹이고 덮어주고 하느라 자신은 병이 드니, 이것은 밤에 이슬을 맞아가며 병아리 기르기에 애쓴 노고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더욱 더 측은하게 여겼다.
그런데 들짐승이 몰래 엿보고 있을 줄이야. 마침내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잃어버렸는데 집안사람들이 쫓아갔으나 놓치고 말았고 고작 산길에 흩어져 있는 부러진 깃만 찾아내었을 뿐이었다. 내가 마침 외출에서 돌아와 그 말을 듣고 하마트면 눈물을 왈칵 쏟을 뻔하였다. 혹 잔해라도 남은 것이 없나 하고 두루 찾아보았지마는 없었고 산길에 떨어진 깃을 주워모아 상자에 넣어 산에 묻고 '우계총(友鷄塚)'이라고 지칭하였다.
아, 고금의 말이 만물도 한 가닥의 트인 것이 있다고 하는데, 까마귀의 자식노릇과 벌의 신하노릇이 가장 두드러진 것이다. 그러나 벌은 분봉(分蜂)이 있어 떼 갈림이 있고 이익과 해독을 함께 할 수 없으며 까마귀도 젖먹은 은혜를 보답할 뿐이고 우애의 도리에 있어서는 천고에 존재하지 않았다. 우애란 부모의 심정을 미루어 형제에 미치는 것으로 사람도 쉽지 않은 것인데 더구나 동물이야 말할 것 있겠는가.
무릇 사람이 착한 일 하는 것은 혹은 선배가 이끌어 주기도 하고 혹은 풍속의 본을 받기도 하며 또는 명성을 위하여 가식을 좋아하기도 하는 이가 있으니 그 속마음을 알 수 없는 수도 있지마는, 지금 이 동물은 누가 가르치고 누구에게 배웠으며 또한 무엇을 위하여 가식을 하였겠느냐.
인간의 행실은 본래 어른과 아이의 구분이 있다. 그러므로 해박한 상식과 돈독한 행실은 어린 아이에게 바랄 수 없는 것이다. 또한 행한다 하더라도 시종여일하기란 어려운 것인데, 지금 이 동물은 병아리를 채 못벗어났는데도 처음부터 끝까지 게을리 하지 않았으니, 얼마나 기특한가. 내가 듣기로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것은 성인이라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이 동물은 성인이었을까. 형태의 본성을 실천하는 것이 성인이라고 하였는데 날짐승으로서 인간으로도 어려운 일을 하였으니 이것은 형태에 구애받지 않은 것이 아닌가. 공적을 이루고 자신은 죽어 보답을 받지 못하였으니 어쩌면 이치는 통달함을 부여 받았으나 운수를 각박하게 만난 것이라고나 할 수 있을까. 남들은 예사롭게 여기지마는 만물이 서로 엇비슷함이 있으니 길가에 무덤을 만들어 오가는 이를 보게 하노라.
<원문>
友雞傳(星湖先生全集卷之六十八 / 小傳 雜傳附)
余畜一母雞 性甚慈 雛成而再乳 幷哺其大者 大者纔翼 小者尙毳 一日夜母雞爲野獸所食 雛大者亦爲其所攫 而一雌偶逃 頭肩毛脫 病不能啄 羣雛啼號 求母甚憐 而一雌病少間 卽爲之引抱 家人始以爲偶然 旣而得食必呼 行作喌喌聲 不離庭階 或張翮防患 偶有相失 遑遑尋求 飛踔若狂 小大相慈愛 恰恰然一似其母也 又避害近人而宿於露檐 時大霖雨數月 卻以兩翼覆雛 俾免霑濕 而體眇小脚不能屈 正立達夜 閱夏秋一如也 見者爲之感歎 命之曰友雞 凡人有不善 輒相戒曰視雞視雞 而無不媿屈 故雖啄囷粟不忍驅 其孚信於人如此也 至雛長大於拳 而一雌尙在稺弱 猶哺覆不衰 身則病矣 人益憐其㬥露勤劬之祟 殊不覺野獸之又陰伺矣 竟昏夜而失之 家人追不獲 惟有摧翎落羽散在山逕間 余適自外還聞之 幾於隕淚 或慮其殘骸有遺者 遍索不得 乃收拾羽毛爲棺而葬之山 指以爲友雞塚 嗚乎 古今言物有一路之通 如烏之爲子 蜂之爲臣 其最著也 然蜂自是離羣不得 利害與共 而烏亦報鷇育之恩 至於友道 絶千古不存 友也者 推父母及于兄弟 人而或鮮 况于物乎 夫人之爲善 或先覺導掖 或習俗觀效 又或有好名修飾 而其心有未可知者 今此物孰斅而孰學之哉 又孰爲而外假爲哉 人之制行 本有長少之分 故周知博行 不可責之童幼 又或不免有始終之差 今此物未離雛僆 首尾無惰 何其異且奇哉 吾聞生知爲聖 是其物之聖者歟 踐形爲聖 禽而人行 是不囿於質者歟 功成而身陷 不見報施 其理之旣通而値數之局者歟 人有不殤 物亦有相類者 葬諸行路之傍 要往來之觀焉
솥뚜껑 여는 묘수
글쓴이 : 정선용
옛날에 늙은 쥐 한마리가 있었다. 이 쥐는 먹을 것을 훔치는 데는 귀신같았다. 그러나 늙어서 눈은 침침해지고 기력은 떨어져 나다닐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러 쥐들이 그에게 가서 먹을 것을 훔치는 법을 배우고 그 대가로 훔쳐온 것을 그에게 나누어주곤 하였다. 이렇게 얼마간 지나자 쥐들은 마침내 늙은 쥐의 술수를 다 배웠다고 여기고 다시는 먹을 것을 나누어 주지 않았다. 이에 늙은 쥐는 분을 품은 채 지냈다.
어느 날 저녁, 시골 아낙네가 밥을 지어놓고 돌로 솥뚜껑을 눌러놓은 채 이웃으로 마실을 나갔다. 여러 쥐들은 밥을 훔쳐 먹으려고 갖은 꾀를 다 부렸으나, 훔쳐낼 방도가 없었다. 어떤 쥐가 말했다.
"늙은 쥐에게 방법을 물어보자."
다른 쥐들도 모두 그게 좋겠다고 하여 일제히 늙은 쥐에게 몰려가서 방법을 물었다. 그러자 늙은 쥐는 노기를 띠면서 말했다.
"너희들은 모두 내게 방법을 배워서 항상 배부르게 먹고 지냈다. 그런데 지금 와서는 나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지 않는다. 나는 가르쳐 주고 싶지 않다."
쥐들이 모두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하면서 사정하였다.
"저희들이 참으로 잘못하였습니다. 지난 일은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는 잘 모시겠으니, 부디 우리들에게 밥을 훔쳐 낼 방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자, 늙은 쥐는 이렇게 일러주었다.
"솥에는 발이 세 개 있다. 그중 발 하나가 놓인 곳을 파내면 조금만 파도 솥이 기울어져서 저절로 뚜껑이 열릴 것이다."
여러 쥐들은 달려가서 땅을 파냈다. 그러자 과연 늙은 쥐의 말대로 솥뚜껑이 열렸다. 쥐들은 배부르게 실컷 먹은 다음 남은 밥을 싸가지고 와서 늙은 쥐에게 바쳤다.
<원문>
餘話[老鼠](泰村先生文集卷之五 / 效嚬雜記下)
古有老鼠 神於竊物 而眼暗力衰 不能自行 群鼠往學術焉 以其所竊之物 分養老鼠 及其久也 群鼠自以爲盡老鼠之道 不復分養 老鼠含憤久矣 一夕 村婦炊飯鼎中 以石壓其蓋而之他 群鼠欲竊而計窮 一鼠曰 不如問于老鼠 皆曰諾 齊赴問計 老鼠怒曰 爾等得我道 飽食爲恒 而今不見分 余欲無言也 皆拜謝曰 某等有罪 但往者不諫 來者可追 願明以敎我 老鼠曰 鼎有三足 其一足峙處 幷力掘地 則深不過數寸 而鼎自傾 蓋自落矣 群鼠走掘 則果如其言 飽腹而歸 以其餘饋老鼠焉 噫 物亦然矣 况於人乎 李信之計不及王翦 武賢之謀不如充國 老少之異也 非徒用兵爲然 治國之道 亦無踰老成 秦穆所謂詢玆黃髮則罔所愆 是也 然而斯今 國柄付之黃吻 而耆舊旁觀 結舌不言 縱有鳳鳴之語 反被木拱之誚 相鼠若彼 人而不如 可勝歎哉
늙은 의원은 맹랑하게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글쓴이 : 정선용
병이 났을 때 어떤 의원을 찾아가는 것이 좋겠는가에 대해 묻는다면, 단연코 늙은 의원을 찾아가는 것이 좋다고 말하겠다. 어째서인가?
어떤 의원이 있었는데, 그의 의술이 뛰어난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이는 많았다. 갑(甲)이란 이가 그에게 급히 달려와 물었다.
"우리 부모님의 병환이 이러 이러하고 처자식의 증세가 이러 이러한데,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의원은 조금도 동요하는 기색 없이 덤덤하면서도 간단하게 말했다.
"이 약을 한번 써 보시오."
그 약을 보니 세속에서 흔히 쓰는, 다른 의원들의 처방과 다를 것이 없는 흔하디흔한 처방이었다. 갑은 떨떠름한 얼굴로 돌아와서는 화를 내면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우리 부모님과 처자식의 증세가 위급해서 내가 급히 달려갔는데, 조금도 놀래거나 동요하는 기색 없이 덤덤하게 이 약이나 한 번 써보라고 하더군."
그 약을 한 첩 써 보았더니, 과연 차도가 없었다. 갑은 그 약을 모두 내다버리고서 다른 의원을 찾아나섰다.
시장에 가보니 마침 어떤 의원이 좌판을 벌이고 앉아 있었다. 얼굴 생김새는 반반하고 말은 청산유수였으며, 금궤와 옥함(玉函)에 든 의서(醫書)를 좌우로 벌여놓고 인삼이니 복령이니 지초니 백출이니 하는 약재를 앞에다가 죽 늘어놓고 있었다. 갑이 다가가서 치료 방법을 묻자, 그 의원은 짐짓 놀라는 척하면서 마음을 써주는 듯하더니, 진지하고도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먼저 쓴 약은 엉터리 약이니 속히 약을 바꾸시오. 그렇지 않으면 3일도 못 넘길 것이오."
그리고는 드디어 자신의 의술에 대해 떠벌리는데, 천지와 자연의 조화를 넘나들고 음양과 오행의 이치를 주워섬겼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마치 물이 솟구치고 산이 내닫는 듯하여, 천하의 명의인 장중경(張中景) 이나 유원빈(劉元賓) 같은 이들도 미치지 못할 정도였다. 마음이 몹시 흡족해진 갑은 돌아와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오늘 훌륭한 의원을 만났으니 병은 다 나은 것이나 마찬가지야."
그리고는 그 의원이 지어 준 약을 써 보았다. 그런데 그 약을 복용한 환자는 정신이 가물가물하면서 가슴이 답답해지고 머리가 지끈거리면서 마음이 어지러워졌다. 두 세 차례 더 복용하자 증세는 더욱더 심해졌다. 갑은 나에게 글을 보내어 물었다.
"지난번에 늙은 의원이 지어준 약은 그래도 해는 없었습니다. 시장의 떠돌이 의원이 지어준 약은, 그의 말을 들어보면 퍽 그럴싸한데 복용하자 병이 더 심해졌습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나는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큰 지혜는 한 곳으로만 파고들지 않고 지극한 도는 평범한 가운데 있는 것으로, 오로지 경험이 많은 늙은 의원이라야만 그 이치를 아는 법이네.
자네가 앞서 늙은 의원에게 부모님과 처자식의 증세를 말하였을 때, 그도 인간인데 어찌 애처로운 생각이 들지 않았겠는가. 그런데도 그런 기색을 나타내지 않고 덤덤하게 말한 것은 이미 갖가지 병을 치료하면서 충분히 경험을 쌓았기 때문일세. 갖가지 병을 겪어봤기 때문에, 증상을 들으면 병의 근원이 무엇인지, 또 병이 어떻게 진전될 것인지 알지. 따라서 처방을 내리고 약을 복용시킴에 있어서도, 미리 계획을 짜놓고 기사회생시킬 확실한 방도를 찾는단 말일세. 그러니 어떠한 고질병이라도 그의 의술을 어지럽힐 수 없는 거네. 더구나 환자의 보호자가 달려와서 증세를 말하는데 의원이 먼저 놀라는 기색을 보일 경우, 그 사람은 마음이 놀랍고 혼미해져 허둥댈 것은 뻔한 일. 환자의 마음이 먼저 동요되면, 그 해는 심각하지. 이 때문에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은 채 덤덤하게 말한 것일세.
또, 사람의 병이 어찌 신선들이나 먹는 진귀한 약을 먹어야만 낫겠는가. 늙은 의원의 약은 간단하면서도 심오한 이치가 담긴 것으로, 한번 복용해서는 효험을 볼 수 없는 것이네. 그런데 자네는 어찌하여 두 번 세 번 복용시키지 않고 곧바로 약을 바꾸어버렸는가. 그의 약은 비록 효험을 보이지는 못하더라도 사람을 맹랑하게 죽이는 일은 결코 없을 걸세. 더구나 그 약은 반드시 효험이 있는 약인데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시장의 떠돌이 의원의 경우는 그렇지 않지. 그는 의서(醫書)는 보았으나 실습은 해보지 않아서 의술 따로 병 따로 논 다네. 환자의 증세를 들어도 어째서 병이 생겼고 어떻게 해야 치료되는지를 몰라 갈팡질팡, 두서를 못잡아. 그래서 자네의 말을 듣고는 놀라는 척하고 그럴 듯하게 떠벌리면서 아는 것을 죄다 동원하여 자신의 재능을 뽐낸 것이네. 그의 말이 청산유수면 그럴수록 의술은 더욱더 어긋나게 된지. 또 늙은 의원의 말이 먹혀들어 사람들이 혹 자신의 의술을 형편없다고 할까 두려워서, 3일도 못 넘길 것이라고 공갈을 쳤네. 이것은 어진 이를 모함하고 자신의 실속만을 챙기려는 심보일세. 그런데도 자네는 떠돌이 의원의 말이 단호한 것만 보고는 '이 의원은 반드시 병을 고칠 것이다.' 여겼으니, 이는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것일세.“
<원문>
老醫不孟浪殺人論月課(五峯先生集卷之七 / 論)
論曰 醫何取乎 取其老者而求之 何以言之 有醫於是焉 其爲術也未知其果精乎否也 而其年盖老焉 有病家以病來曰 吾父母病如是 吾妻子病如是 何療焉 醫聞之恬然 不色驚不心撓 其言平平然簡而近曰 服此藥 其藥盖世俗陳方 而不足以有異於人也 於是 其人憊然不悅 歸語人 且怒曰 吾父母病如是 吾妻子病如是 吾以急歸 不色驚不心撓 乃所言平平耳 試以其藥投之 不效焉 其人舍之而他求焉 入市門 有一醫者坐肆 貌甚韶 言甚辯 張金匱玉函之書 參,芩,芝,朮 顚倒於前矣 客就而問之 醫若聞之驚 而若念之動 其言厲而切曰 向之藥誤矣 宜速改也 不速改 將三日而斃矣 遂鋪張其說 出入乎天元玉策之書 覼縷乎陰陽五行之理 聽其言 如水涌而山出 劉張之屬所不及也 其人充然若有得 語家人曰今日吾得良醫矣 病其已矣 遂以其藥與之 病者瞀然而悶 憒然而亂 服之再三而病愈甚焉 其人始以狀問於余曰 向者老醫之藥 猶無害也 市醫之藥 聽其言若快 而用之則病愈甚焉 是何故耶 余應之曰 大智不鑿 至道在常 惟老醫得之矣 向子以父母妻子之病告之 彼固人情 豈不動於心而思所以救之耶 彼其所以不色驚不心撓 而所言平平然者 無他焉 以其經病多 取驗審也 經病多而取驗審也 故聞証而悟原 據候而知變 其投藥施方 皆有先謀 而起死回生 暸然有緖 其癱瘓摛搦 擧不足以擾我之術矣 况病家旣以病告 爲其醫者先有懼色 則彼必驚怖狂迷 顚倒錯愕 病者之心 先動而害有甚焉 此其所以不色驚不心撓 其言平平也 至於施藥 則必須熟視詳驗 爲世俗所可通行者 而後命之 未嘗立異而奇中 創新而倖安 此其涉於陳方而無以異於人也 人之病何必待赤丸靑散 而後可已耶 老醫之言 簡而該煩 近而喻遠 一投而不效 子何不再投三投而便改之耶 雖無見效 而必不至於孟浪殺人 况未必無效耶 市醫則不然 閱方而不比於病 撮藥而不經其驗 其爲術 盖魚自魚而筌自筌也 聞人之病 便不曉如是而致此如是而可治 眩亂主客 莫挈其維 眞恐其術窮才盡而無以應彼之問而顯吾之名 故若聞之驚 而若念之動 遂乃廣張疑似 盡其所學 以衒其能 此其說愈辯 而其術愈悖也 於是 又恐其老醫之說行而人或賤己之術 又嘖之曰 三日而斃矣 此不㡬於妨賢而自用者耶 子徒見其若聞之驚 若念之動 而又其言之厲而切曰 彼致意於吾言而盡其術焉 則惑矣 傳曰 醫不三世 不服其藥 又曰 人而無恒 不可以作巫醫 其不信然矣乎 余於是又有感焉 余嘗觀於古世 有一隊人者年少而氣銳 言辯而行矯 高談義理 掎摭經典 其心以爲擧天下之事 無不可做者 遂軟金鐵而卑山嶽矣 觀者高其辯博 以爲是力於爲事 遂相率而聽命 於是焉是老醫之藥 已改圖矣 彼方傲然自智 謂一世之士無出己右 取國家之條章而易置之 狹少祖宗之法 嘲評前輩之言 如是而市醫之藥 已三服而病愈甚矣 殊不知祖宗之法 經變多而講得穩便 雖有少害 而其利猶多 前輩之言 慮患深 說得周詳 雖有所短 而所長者衆矣 祖宗前輩 是皆慮其所自慮者 爲其所自爲者 約煩而就簡 斂攎而歸靜 行其所無事而已 此誠老醫之藥 詳試熟驗 爲世俗所可通行者 而向吾之所謂大智不鑿 至道在常者也 世之觀言者 孰不以老醫爲可取而市醫爲可遠也 惟其市醫之說 語新而有力 法奇而駭衆 故其藥必行而致誤其病 鼂錯所以起七國之兵 而介甫所以禍煕豐之政也 老醫之言 辭近而易狃 法陳而易厭 此其藥必廢 而輒見其改圖焉 是以無可紀之功而廢房,杜也 聽籠罩之說而短李沆也 余於劉元城之論文靖也 有取焉 謹論
http://cafe.daum.net/hanmuneducation
한문임용!내년에는 꼭 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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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번 제11호 산문레터도 음미하면서 읽을만한 글들이 많아요. 정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