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無比스님과 함께 하는 유마경 공부(2020.09.17.PM7시)
유마경 불국품
보살의 정토행(淨土行)
서울쪽에서 많이 오셨다.
21세기 뛰어난 기술로 개인방송을 한 집에 몇 대씩 차려도 아무 불편이 없고 어려움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제가 화엄경을 좋아하고 유마경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다행히 이렇게 방송국을 개설할 수 있어서 좋은 일이다. 오늘 유마경 8번째 시간인데 먼저 다음까페 염화실 <염화실TV 질문방>에 석상정진 보살님의 질문이 올랐다.
큰스님께 질문드립니다 ;경계(境界)
-釋상정진-
염화실TV 잘 보고 있습니다.
큰스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스님들의 법문을 들을 때마다 경계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제가 가지고 있는 불교용어사전에는 "넓은 의미에서 인식하거나 가치를 판단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라고 짧게 나와 있습니다. 큰 스님께서 분별해서 설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경계라는 뜻이 뭐냐?
스님들 법문할 때마다 경계, 경계 하는데 저도 잘쓰는 말이다.
경계는 무엇인가.
첫째는 대상을 경계라고 한다.
눈의 대상은? 물질, 눈에 보이는 모든 물질을 눈의 경계라고 한다. 귀의 대상은? 소리다.
눈의 경계, 귀의 경계, 이처럼 대상을 경계라고 한다.
코의 경계는 향기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대상을 경계라고 한다.
이럴 때의 경계는 대상이다.
또 한 가지는 ‘상태’를 경계라고 이야기한다.
‘그 사람 경계가 어떻더냐?’
‘그 사람 기도하고 나서 경계가 어떻다 하대?’
이런 식으로 어떤 기도나 참선이나 공부를 어느 정도 했을 때 만날 수 있는 공부의 상태,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다 있는 것은 아니다. 간혹 그런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런 것, 그런 ‘상태’를 경계다라고 표현한다.
눈의 대상 귀의 대상 코의 대상 등등 이러한 ‘대상’을 경계라고도 하고, 그다음 공부의 ‘상태’를 경계라고도 한다.
상정진보살님, 그렇게 이해하면 되겠다.
*
벌써 많은 분들이 이렇게 동참을 했다.
이 시간이 주부들에게는 어려운 시간이라고 하는데, 제 생각 같아서는 만사 제쳐놓고 이 시간에 동참하고 그다음에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그런 생각도 든다.
또 핸드폰으로 다 들을 수가 있으니까 핸드폰을 켜놓고 일을 실컷 할 수도 있다.
그렇게도 가능하고 정 바쁘면 녹화된 것을 다음 시간에 들을 수도 있다.
가능하면 이 생방송 시간, 라방? 라이브 방송? 라방시간에 동참하면 서로 생기가 난다. 벌써 63명이 들어왔다.
*
유마경 여덟 번째 공부하겠다.
‘보살의 정토가 어떤 것이냐’ 하는 문제를 가지고 쭉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난 시간에는 세 가지 마음이 보살(菩薩)의 정토(淨土)다 하였다.
직심(直心)이 보살(菩薩)의 정토(淨土)다
심심(深心)이 보살(菩薩)의 정토(淨土)다
보리심(菩提心)이 보살(菩薩)의 정토(淨土)다
이렇게 이야기 했었다.
오늘은 ‘육바라밀이 보살의 정토다’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2>육바라밀
보시(布施)가 시보살정토(是菩薩淨土)니 보살(菩薩)이 성불시(成佛時)에 일체능사중생(一切能捨衆生)이 내생기국(來生其國)하니라
“보시가 보살의 청정국토니 보살이 성불할 때에 일체를 능히 주고 제공하는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나느니라.”
보살의 정토, 보살의 청정국토는 배려하고 베풀고 나누고 서로에게 좋은 것을 주고 서로를 위해주는 삶, 그런 사회, 그런 가정, 그런 단체, 그런 사회가 보살의 청정국토다.
거리를 황금으로 장식을 하고 자동차나 비행기를 황금으로 만들어서 타고 다닌다고 그것이 무슨 보살의 청정국토가 되겠는가?
그러고도 서로 싸우고 서로 질투하고 조금도 남을 생각하지 않고 배려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슨 청정국토가 되겠는가?
그래서 보시가 보살의 청정국토다.
아주 기가 막힌 해석이다.
지계(持戒)가 시보살정토(是菩薩淨土)니 보살(菩薩)이 성불시(成佛時)에 행십선도만원중생(行十善道滿願衆生)이 내생기국(來生其國)하니라
“지계가 보살의 청정국토니 보살이 성불할 때에 열 가지 선(善)한 도를 행하는 소원이 만족한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나느니라.”
지계(持戒) 계행을 잘 지니는 것이다. 십선(十善) 십선도를 행하는 것, 십악(十惡)을 반대로 바꾸면 십선이 된다.
그런 것들이 전부 보살의 정토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불필요한 살생을 한다든지 투도, 남의 물건을 훔친다든지 아니면 사기를 친다든지, 아니면 부당하게 이익을 노린다든지, 아니면 매점매석을 한다든지, 이번에 코로나로 마스크가 한창 귀할 때 여러사람들이 다 나눠써야 하는데 그걸 또 매점매석해서 이익을 창출한다든지 그런 것이 전부 도둑질이다.
사음 이것도 십악이고 그것을 행하지 않는 것이 선(善)이다. 이런 것은 기본적인 것이어서 세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지계(持戒) 인륜과 도덕과 질서를 잘 지키는 것 그것이 보살의 정토다. 보살의 청정국토다.
부처님다운 말씀이시다.
우리의 이상국토, 보살의 정토, 그것이 우리가 건립하려고 하는 이상국토다. 그 이상적인 국토 다시 말해서 보살의 정토 그것은 세 가지 마음, 그것이 모두 넉넉하고, 육바라밀이 다 행해질 때 이루어진다.
육바라밀의 보시 지계 다음으로 인욕이 나온다.
인욕(忍辱)이 시보살정토(是菩薩淨土)니 보살(菩薩)이 성불시(成佛時)에 삼십이상장엄중생(三十二相莊嚴衆生)이 내생기국(來生其國)하니라
“인욕이 보살의 청정국토니 보살이 성불할 때에 32상으로 장엄한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나느니라.”
인욕, 잘 참는 것이다. 살다보면 참을 일이 많다. 그럴 때 전부 참고, 잘 참으면 그것이 살만한 곳이다.
참을 일이 없어서 안 참겠는가?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신경질 내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다 속으로 꾹꾹 눌러서 참고 그렇게 해서 가정이 안정되고 이웃과도 화합하게 지내고 나라가 편안해지고 이런 것이 보살의 청정국토다.
그런데 여기에 보살이 성불할 때 32상으로 장엄한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난다고 하였다.
32상으로 장엄한 중생하고 인욕하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아주 긴밀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사람 잘났다. 마네킹처럼 다듬어놓은 것 같이 생겼다. 그것이 아니다. 정말 인욕하고 부드럽고 유화하고 그런 어떤 모습 그것이 말하자면 32상으로 표현된다. 그것은 인욕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여기서 32상을 거론하는 이유다.
아무리 모양이 잘났다 하더라도 얼굴에 화를 잔뜩 머금고 있고, 찌푸린 얼굴을 하고, 그러면 좋은 얼굴이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여기에 32상이 소개된 것 같다.
정진(精進)이 시보살정토(是菩薩淨土)니 보살(菩薩)이 성불시(成佛時)에 근수일체공덕중생(勤修一切功德衆生)이 내생기국(來生其國)하니라
“정진이 보살의 청정국토니 보살이 성불할 때에 일체의 공덕을 부지런히 닦는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나느니라.”
정진, 열심히 하는 것, 좋은 일이라고 여겨지면 그것을 쉬지 않고 열심히 하는 것이다.
우리가 유마경 공부, 화엄경 공부 이런 일들을 열심히 하는 것, 쉬지 않고 열심히 하는 것, 그것을 정진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렇게 하면 그것이 전부 우리 마음에 차곡차곡 뿌리를 내리고 길이 나고 축적이 된다. 그것이 어디 가겠는가?
견문위종(見聞爲種)이라. 보고 듣고 경전 한 구절이라도 게송 하나라도 잘 보고 잘 듣고 그것을 마음에 새기면 그것이 살림살이가 되고 내 삶이 된다고 하는 원리다.
그래서 정진이, 부지런히 좋은 일에 정진하는 것이 보살의 정토다. 청정국토다 라고 하였다.
선정(禪定)이 시보살정토(是菩薩淨土)니 보살(菩薩)이 성불시(成佛時)에 섭심불란중생(攝心不亂衆生)이 내생기국(來生其國)하니라
“선정이 보살의 청정국토니 보살이 성불할 때에 마음을 거두어 산란하지 않은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나느니라.”
선정, 육바라밀은 우리 불자들의 상식이라서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마음이 딱 안정되어서 산란하지 않는 상태, 그렇게 되어야 어떤 환경이라도, 외부 경계, 외부 환경은 어떻다 하더라도 내 마음이 정말 안정이 되어서 산란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보살의 청정국토다. 살만한 곳이다.
불교는 그 근원이 바로 마음이고, 주인공이 바로 마음이다. 마음이 전부 좌지우지한다고 하는 그 원리에서 끊임없이 이렇게 이야기 한다.
청정국토는 외부 환경이 아니라 외부 경계가 아니라 바로 내 마음에서 안정이 돼서 마음이 산란하지 않는 것, 남을 배려하는 것, 나누는 것, 베푸는 것, 그러한 마음이 가득할 때 그것이 바로 청정국토다. 보살들이 살만한 세상이 되는 것이다.
지혜(智慧)가 시보살정토(是菩薩淨土)니 보살(菩薩)이 성불시(成佛時)에 정정중생(正定衆生)이 내생기국(來生其國)하니라
“지혜가 보살의 청정국토니 보살이 성불할 때에 바른 선정의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나느니라.”
지혜가 보살의 정토다.
불교에서 지혜를 얼마나 강조하는가?
이것은 바른 선정을 통해서 지혜가 생기기 때문에 그래서 바른 선정의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제 육바라밀이 끝났다.
육바라밀 하나하나 우리가 한 번 생각해 보자.
육바라밀을 우리가 실천하고 있으면 바로 그 자리, 그 시간, 그 환경, 그 관계가 그대로 보살의 청정국토다. 살만한 세상이다. 아름다운 세상이다. 불보살이 희망하는 세상이다 하는 것이다.
그런 것을 우리가 생각해 볼 때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여러 가지 상황들이 참 너무 험악하다.
유마경에서 말하고 있는 것과는 너무 거리가 멀다.
우리 불자들이라도 부디 이러한 것을 염두에 두고 가능하면 경전의 말씀처럼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
<3> 사무량심(四無量心)
사무량심(四無量心)이 시보살정토(是菩薩淨土)니 보살(菩薩)이 성불시(成佛時)에 성취자비희사중생(成就慈悲喜捨衆生)이 내생기국(來生其國)하니라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四無量心]이 보살의 청정 국토니 보살이 성불할 때에 자(慈) 비(悲) 희(喜) 사(捨)를 성취한 중생이 그 국토에 와서 태어나느니라.”
자비희사(慈悲喜捨) 대승불교에서는 사섭법 사무량심 육바라밀 이런 것을 걸핏하면 이야기 한다.
그 사랑의 마음이 어느 정도인가? 이것은 지나가는 이야기로 들으셔도 좋고, 또 그만치 마음에 새겨서 교훈으로 삼아서 실천을 해도 좋다.
사랑하는 마음, 또 어여삐 여기는 마음, 살아있는 생명을 전부 그렇게 생각하고 실천하려고 하는데 심한 경우는 식물에게까지도 자비의 마음을 베푸는 사례들이 적지가 않다.
불교에서는 불가피한 일이 아니면 풀을 함부로 뜯지도 말라고 하고, 들에 불을 놓지 말라고 한다.
들에 불을 놓을 때 타죽는 벌레들이 너무 많다.
논이나 밭에 추수를 하고 나서 보통 불을 많이 놓는데 불교에서는 절대 불을 놓지 말라고 한다.
대장엄론(大壯嚴論) 3권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때 여러 비구들이 넓은 황야를 지나가다가 도적떼를 만나 입은 옷을 다 빼앗겼다. 한 도적이 말했다.「놓아두면 관가에 알릴 테니 그대로 죽여버리자.」「아니다. 사람을 죽이면 지옥에 떨어진다. 비구는 풀 한 포기도 죽이지 않는다 했으니 풀로 그들의 몸을 묶어 두고 도망가자.」그리하여 그들은 비구들을 제각기 얼마만한 간격을 두고 풀로 묶어놓고 도망갔다. 비구들은 낮에는 뜨거운 햇빛에 견딜 수 없고 또 목이 탔으며 밤이 되면 모기, 파리, 여우, 들새, 올빼미들의 성화에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몸을 빼치면 풀이 죽겠고 풀이 죽으면 계를 파하게 되는지라 차라리 신명을 버릴지라도 부처님의 계를 지키기로 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마침 국왕이 시종들을 데리고 사냥을 하러 나왔다가 상황을 보고 물었다.「그대들은 모두 건장한 체격을 가지고 병도 없고 힘이 센 듯 한데 무슨 인연으로 풀에 얽매어 움직이지 않는가?」「예, 매우 연하고 약한 풀을 아주 끊어 버리는 건 어렵지 않지만, 다만 부처님의 금강(金剛)과 같은 계(戒)를 지키기 위하여 감히 연약한 풀을 아주 끊지 못합니다.」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초계(草繫)비구라 한다. 풀로 묶어놓은 비구, 풀을 뜯지 않기 위해서 그 어려움을 견디는 비구다 해서 풀 초(草)자 하고 맬 계(繫)자 하고 초계비구다.
풀에 매여 있는 비구다.
우리 듣기에 따라서, 보는 사람의 시각 차이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그것도 하나의 좋은 본보기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왕이 그랬다.
『「장하다, 비구들이여. 신명을 아끼지 않고 법을 수호하여 계를 범하지 않는 성자들이여, 이제 나는 그대들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귀의하며 스님들의 큰 스승 석가모니부처님께 목숨을 버려 귀의하겠노라.」하고 곧 그들을 풀어 궁중으로 모시고 가 부처님의 계(戒)를 받았다.』
라는 이야기다.
일단 우리가 마음속에 새길만한 일이다.
그러면 농사는? 채소는? 어쩌란 말이냐?
그런 모순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이 하나만으로도 풀도 살아있기 때문에 우리가 함부로 뜯지 않는다는 그런 마음이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4무량심(四無量心)의 자무량심(慈無量心) 비무량심(悲無量心) 희무량심(喜無量心) 사무량심(捨無量心) 기쁘게 하고, 자(慈) 비(悲) 희(喜)는 대개 우리가 쉽게 안다.
그런데 네 번째 사(捨)자는 사무량심((捨無量心) 버릴 사(捨)자인데 자신에게 원한이 있거나 손해를 끼쳤거나 피해를 줬거나 비난과 음모를 하였더라고 그와 같은 감정을 다 버리고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이롭게 하는 마음이 한량이 없다. 사(捨)자는 차별심을 버린다는 뜻에서 버릴 사(捨)자다. 차별심을 버린다. 나에게 잘했든 나에게 잘못했든, 그 좋아하는 감정, 싫어하는 감정을 다 버리고 평등하게 행한다. 그래서 평등하다는 뜻으로 많이 설명한다.
그런데 뭐가 평등하다는 말이냐?
나에게 잘하고 잘못하는데 차별심을 일으키지 않고 평등하게 다 같이 마음을 쓰는 것이 사심(捨心) 사무량심(捨無量心)이다 그렇게 말한다.
<4>사섭법(四攝法)
사섭법(四攝法)이 시보살정토(是菩薩淨土)니 보살(菩薩)이 성불시(成佛時)에 해탈소섭중생(解脫所攝衆生)이 내생기국(來生其國_하니라
“네 가지 섭수하는 법[四攝法]이 보살의 청정국토니 보살이 성불할 때에 해탈로 섭수할 중생이 그 국토에 와서 태어나느니라.”
사섭법(四攝法)은 대승불교에 아주 자주 등장하는 내용이다.
보시(布施) 애어(愛語) 이행(利行) 동사(同事)
보시(布施)는 배려하고 베풀고 남을 위하고 옆 사람 위하는 일이다. 채팅창에서 벌어지는 일에서부터 법당에 불공하러 들어왔을 때 기도하러 들어왔을 때 아니면 법문하는데 공부하러 들어왔을 때 등등 그럴 때 다 활용이 되는, 우리 일상생활에 실질적으로 적용이 되는 가르침이다.
애어(愛語)는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말만 쓰자는 것이다.
그것은 사실 남을 위한다기보다 자신의 인격을 위한 것이다. 좋은 말을 쓰고 교양있는 말을 쓰고 친절한 말을 쓰고 사랑스러운 말을 쓰는 것은 남을 위하는 것 같지만 그 이전에 내 자신의 인격에 해당되는 일이다.
이행(利行)은 이익하게 행한다, 이익이 되도록 한다. 이익한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사섭법 중에 제일 어려운 것이 동사섭(同事攝)이다. 같이 놀아주고 같이 일해주고 같이 함께 해주면서 그것을 방편으로 삼아서 결국은 정법(正法)으로 인도한다 그런 의미에서 동사섭이다.
사섭법 중에서 동사섭이 제일 어렵다. 잘못하면 동사섭을 해서 상대를 교화하려고 하다가 도로 그 사람에게 교화를 당하는 경우도 적지가 않다. 동사섭을 참 잘해야 된다.
그러한 것들이 전부 보살의 청정국토다.
<5> 방편(方便)
방편(方便)이 시보살정토(是菩薩淨土)니 보살(菩薩)이 성불시(成佛時)에 어일체법(於一切法)에 방편무애중생(方便無閡衆生)이 내생기국(來生其國)하니라
“방편이 보살의 청정국토니 보살이 성불할 때에 일체의 법에 방편의 문이 한정이 없는 중생이 그 국토에 와서 태어나느니라.”
방편(方便) 중생을 교화하고 제도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편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방편을 쓰지 않으면 쉽지가 않다. 바로 곧이곧대로 이야기 하는 것은 위험천만이다.
그래서 방편을 잘 써야 된다.
가족간에 어떤 요구 사항이 있을 때도 상대의 감정 상태를 잘 살펴서 요구를 하든지 권청을 하든지 하는 것, 이런 것이 다 방편이다.
<6> 삼십칠조도품(三十七道品)
37조도품이 나왔다.
근본교리의 수행방편이 다 이 37조도품에 들어간다.
대승불교의 수행방편은 6바라밀 4무량심 4섭법 그리고 방편까지가 대승불교의 수행방법이고 수행이다.
그다음에 소승불교라고 할까 초기불교의 수행 방편은 37조도품이다. 그래서 첫째 4념처를 이야기하는데 몸을 무상하고 더러운 것으로 관찰하라. 그래서 몸으로부터 싫어하는 생각을 갖도록 하라 등등 그런 여러 가지가 초기불교에 많다.
대승불교에서는 그런 것을 별로 중요하게 치지 않는다. 그러나 또 37조도품이 수행방법에 해당되고 아직도 남방불교 같은 데서는 이 37조도품을 중요하게 여긴다.
4무량심 4섭법 6바라밀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남방불교, 근본불교 또는 상좌부 불교 우리가 말하는 소승불교 이런 데는 6바라밀도 없고 4섭법 4무량심 이런 것이 없다. 방편도 없다.
4섭법 같은 것은 특히 이야기 안한다.
여기는 37조도품은 읽고 그냥 넘어가겠다.
삼십칠도품(三十七道品)이 시보살정토(是菩薩淨士)니 보살(菩薩)이 성불시(成佛時)에 염처(念處) ․정근(正勤)ㆍ신족(神足)ㆍ근(根)ㆍ력(力)ㆍ각(覺)ㆍ도중생(道衆生)이 내생기국(來生其國)하니라
“37도품이 보살의 청정국토니 보살이 성불할 때에 4념처와 4정근과 4신족과 5근과 5력과 7각지와 8정도의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나느니라.”
대승불교에서는 이런 근본불교 또는 상좌부 불교의 교리들을 전부 흡수하고 같이 융화시키기 위해서 화엄경에도 아주 초기 불교 이야기가 많이 있다.
유마경 같은 데도 많이 있다.
결코 배척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아니고 다 받아들여서 같은 수행 방법으로 친다. 37조도품을 좀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들은 찾아서 보면 아주 자세하게 잘 나온 설명이 많이 있다.
<7> 회향심(廻向心)
회향심(廻向心)이 시보살정토(是菩薩淨土)니 보살(菩薩)이 성불시(成佛時)에 득일체구족공덕국토(得一切具足功德國土)하니라
“회향심이 보살의 청정국토니 보살이 성불할 때에 일체의 공덕이 갖추어진 국토를 얻느니라.”
회향은 대승불교에서 제일 좋아하는 말이다. 그중에서도 선근회향(善根廻向) 내가 한 선행을 내가 한 좋은 공덕을 전부 회향하라. 회향하는 마음이 보살의 청정국토니 보살이 성불할 때 일체 공덕이 갖추어진 국토를 얻는다.
회향을 잘하면 그 공덕으로 내가 금생에서는 물론 공덕이 갖춰지고 또 금생에서 미처 갖춰지지 아니하면 다음생에라도 그 공덕이 갖춰진다. 자기가 회향한 공덕의 결과는 누가 뺏어가지 못한다. 부처님도 그것은 가져가지 못한다. 부모라 하더라도 가져가지 못하고 자식이라도 가져가지 못하고 자기가 지은 공덕은 오직 자신만이 수용한다.
<8>삼악팔난(三惡八難)
설제팔난(說除八難)이 시보살정토(是菩薩淨土)니
보살(菩薩)이 성불시(成佛時)에 국토(國土)에 무유삼악팔난(無有三惡八難)하며
“여덟 가지 어려움을 제거함을 설하는 것이 보살의 청정국토니 보살이 성불할 때에 그 국토에는 3악과 8난이 없느니라.”
3악과 8난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같은 세 가지 악한 것
또 8난(八難)이라고 하는 것은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장수천(長壽天) 눈멀고 귀멀은 맹롱음아(盲聾瘖瘂), 아주 너무 풍요로운 데 태어나는 북울단월(北鬱單月), 세상 꾀만 많은 세지변총(世智辨聰) 또 불전불후(佛前佛後)라고 해서 불교가 있기 전에 태어나든지 아니면 이 지구상에 불교가 사라진 뒤에 태어나든지 그것을 불전불후라고 한다. 우리는 불교가 있을 때 태어나서 이렇게 훌륭한 불교의 가르침을 접할 수 있다. 그래서 이것은 우리에게 다 해당하지 않는다.
8가지 불법을 만나기 어려운 것이라고 해서 삼악팔난(三惡八難)이라고 한다.
<9> 금계(禁戒)
자수계행(自守戒行)하고 불기피궐(不譏彼闕)이 시보살정토(是菩薩淨土)니 보살(菩薩)이 성불시(成佛時)에 국토(國土)에 무유범금지명(無有犯禁之名)하며
“스스로 계행을 지키고 다른 사람의 파계함을 나무라지 않는 것이 보살의 청정국토니, 보살이 성불할 때에 그 국토에는 금계(禁戒)를 범했다는 이름이 없느니라.”
요즘 정치사회를 볼 때 전부 실수투성이 잘못투성이 잘잘못이 얼마나 많은가?
높은 직책이 아닌 사람들은 잘못해봐야 큰 잘못을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는다.
대개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 큰 잘못을 많이 저지른다.
지금도 얼마나 시끄러운가?
뉴스만 틀었다 하면 고위직들의 규칙을 어기고 법을 어기고 그리고 요리 빠져 나가려고 하고 조리 빠져나가려고 하는 것들,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 그런 것을 잘 지키면 저 밑에 서민들이 천명 만명 지키는 것보다 더 효과가 크다.
‘스스로 계행을 지키고 다른 사람의 파계함을 나무라지 않는 것이 보살의 청정국토니’
여기는 내가 잘못한 점이 많다.
딴 사람의 규칙을 어기고 법을 어기고 하는 것을 나무라지 않는 것이 보살의 청정국토다.
크게 나무라지는 않았지만 언짢게만 생각한다.
그저 얼굴을 찌푸리고 ‘왜 저렇게 하나 왜 저렇게 하나’ 하고 늘 마음 아파하지 내가 어떻게 할 길이 없다.
그렇게 크게 나무랄 수도 없다.
그 사람이 내 주변에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이 방송을 통해서 나무란다고 해서 그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생각하면 답답하다.
그래서 다시한 번 읽으면
스스로 계행을 지키고 다른 사람의 파계함을 나무라지 않는 것이 보살의 청정국토니, 보살이 성불할 때에 그 국토에는 금계(禁戒)를 범했다는 이름이 없느니라.
질서를 어기고 법을 어기고 요리 빠지고 저리 빠지고 했다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느니라. 상상만으로도 좋은 세상이다. 너무 근사하지 않은가?
오늘 유마경 공부 여기까지 하겠다.
*
낮에 2시에 공부한 시간에 말씀드렸지만 방송 시간이 이제 정해졌다. 한 열흘 쯤 지나니까 이런 것들이 잡혔다.
그래서 월화수목 일주일에 4일간은 2시 방송, 7시 방송을 지금까지 해왔듯이 정상적으로 하고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은 쉬는 것으로 하겠다.
유튜브 안에 법문이 다 저장이 되어 있으니까 열 번 스무 번 듣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많이 권하시기 바란다.
그것이 전법이고 그것이 법공양이 된다.
다른 사람에게 권하는 것이 법공양이 된다.
부디 그렇게 하시고 좋은 시간 되시기 바란다.
주말에 더욱 코로나 바이러스 조심하시고 무사히 잘 보내서 월요일에 뵙겠다.
*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부디부디 부처님의 태양은 더욱더 빛나고
부처님의 진리의 수레바퀴는 항상 굴러가서
미몽에 허덕이는 중생들 하루빨리 눈을 뜨게 하고
인생의 진정한 삶의 길을 깨우치도록 우리 다같이 노력하십시다.
성불하십시오.
*
동참하신 분들이 지금 이시간 84분이 공부하고 있다,
제가 읽을 수 있는 분들 이름을 읽겠다.
여기에 쓰지 않고 공부만 하고 가시는 분들이 무수히 많다. 여기 이름이 올라있는 분들은 그래도 서로 인사도 나눈 분들이다. 가능하면 많은 분들이 가볍게 인사도 나누면서 채팅창에 간단한 인사를 나누는 것이 좋겠다.
이렇게 늦은 밤시간에 많이 동참해주셔서, 화엄법회 또 소화엄이라고 하지만 이 유마경 법회에 동참을 해서 성황을 이루니 영산회상이 따로 없는 것 같다.
바로 우리들이 이렇게 짧은 시간이나마 인터넷상에서 영산회상을 이뤄가고 있다.
잠깐이나마 모두 함께 영산회상을 이뤄가니 너무 환희롭고 고맙다.
성불하십시오.
첫댓글 _()()()_
무비스님 예경 공경하옵니다_()()()_
녹취록을 옮겨 주신 보살님 수희 찬탄 하옵니다_()()()_
_()()()_
_()()()_
맛있게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
@釋대원성 고맙습니다^^
_()()()_
_()()()_
감사드립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
_()()()_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고맙습니다. _()()()_
菩薩淨土--佛國土와 다름이 없겠습니다.
"딴 사람의 규칙을 어기고 법을 어기는 것을 크게 나무라지는 않지만 언짢게 생각한다. 그저 얼굴을 찌푸리고 ‘왜 저렇게 하나 왜 저렇게 하나’ 하고 늘 마음 아파하지 어떻게 할 길이 없다."
그래서 불교도들이 좀더 적극적이지 못한거라 생각됩니다.
_()()()_
_()()()_
_()()()_
_()()()_
_()()()_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_()()()_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