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의 휴휴암좌선문 22
대포무외(大包無外)하고 세입무내(細入無內)하다
大包無外하고 細入無內하며, 神通智慧와 光明壽量과 大機大用이 無盡無窮하나니
(크기로는 바깥이 없는 데까지 포함하고 가늘기로는 안이 없는 데까지 들어가며,
신통지혜와 광명수량과 대기대용이 다함이 없고 다함이 없나니)
‘大包無外하고 細入無內하다’는 것은 앞서 나온 진여묘체, 즉 우리의 성품이 무한히 크기도 하고, 또한 무한히 작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동시적(同時的)인 것으로써, 때로는 크고 때로는 작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이 자기의 성품을 깨쳐서 그 참모습을 알고 보면, 크기로는 온 우주보다도 더 크고, 또한 작기로는 텅 빈 허공과 같아서, 가히 생각으로는 미치지 못합니다.
‘크기로는 바깥이 없는 데까지 포함한다’는 것은, 그 크기가 한이 없어서 가히 상대가 끊어졌다는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텅 비어서 참으로 온전히 깨어있으면, 밝고 두렷한 성품의 빛[공적영지]이 온 시방에 가득하고, 마음 자체가 마치 무한한 허공과 같아서, 그야말로 갓[邊]이 없습니다. 이는 물리적 개념으로는 물론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라는 것이 왜 이렇게 큰가 하면, 우리의 본래마음은 곧 우주만유의 본원이라, 우리 자성의 혜광이 곧 우주의 공적영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수행인이 자기 내면의 빛[공적영지]을 경험하면 불생불멸의 참나[眞我]를 의심치 않게 되고, 온 우주에서 끝없이 되풀이되는 인과의 원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이와 동시에 진여의 자성은 그 크기가 무한히 작은 것입니다.
실은, 그 본체가 완전히 텅 비어있어서 ‘작다’고 할 수조차 없습니다. 몽산 스님이 ‘가늘기로는 안이 없는 데까지 들어간다’고 했는데, 요즘말로 하면 ‘크기가 0일 정도로’ 작다는 뜻입니다.
‘세입무내(細入無內)’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면, 우리 성품의 지혜광명은 온 시방을 다 비추면서도 그림자조차 없으니, 그 크기가 이처럼 ‘안이 없는 데’까지 들어갈 만큼 작다는 것입니다.
수행인의 마음이 참으로 성성적적하여 안팎에 머물지 않는 때가 그렇습니다.
즉, 마음이 텅 비고 고요하여 몸 안에도, 밖에도 머물지 않으면, 이른바 심행처멸(心行處滅)이라 마음조차도 ‘있다’ 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때는 두렷한 자성의 혜광이 발하여 안팎이 두루 차별 없이 밝으며 그 가장자리가 끝도 없어서, 또한 이보다 더 큰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진여의 자성은 한없이 작은 동시에 또 한없이 큽니다.
이어서 ‘신통지혜와 광명수량과 대기대용이 다함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신통지혜’란, 우리 자성의 혜광이 곧 우주의 공적영지라, 모든 경계마다 거울처럼 늘 밝고 두렷하게 비추기 때문입니다.
‘광명수량’이란, 이와 같은 공적영지의 밝고 밝은 빛의 수명(壽命)이 무한하다는 것인데, 진공묘유의 우리 성품은 불생불멸이라, 이 영지의 광명이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기대용’이란, 위와 같이 밝고 두렷한 자성의 혜광이 일체 경계에서 자유자재로 쓰인다는 말인데, 오직 경계에 주착하지 않아야만 바르게 나투어 쓸 수 있습니다.
라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