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나는 아사쿠사에 있는 마츠이 도장을 방문했다. 당시 나의 아들이 마츠이 도장의 소년부에 다니고 있었다. 그런 관계로 일주일에 한 번 아들을 데리고 아사쿠사에 다녀갔다.
그 날, 마츠이 도장의 지도원이었던 요네다 유타카와 코바야시 사토시를 도장 근처의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두 번째 책인 ‘신세기 격투기론’에 관한 취재가 가장 큰 이유였지만 어느새 이야기는 오오야마 총재님의 후계자 문제로 이어졌다.
사실 이 이기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화제를 사람들에게 물어보곤 했다. 물론 어떤 근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취재를 할 때마다 그렇게 흘러가 버렸던 것이, 지금에 와서 새삼 신기할 따름이다.
적어도 내가 봤을 때 오오야마 총재님은 건강함 그 자체였고, 변함없이 목소리는 크고 식욕도 왕성하셨다. 그러나 역시 그것은 ‘불길한 징조’였는지도 모른다. 그 시기 그렇지 않고서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X-Day’의 이야기를 했을 리가 없다.
해가 바뀌어 1994년 1월, ‘공수도 전과’의 원고 집필이 좀처럼 진척이 없었다. 나는 극진회관의 잡지인 ‘월간 파워 공수도’의 편집장이었던 이노우에 료이치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덧붙여서 말하면 이노우에는 마에다 타츠오(비디오 회사 사장)과 함께 ‘월간 공수도’시절부터 도움을 준 이 분야의 대선배이다. 나는 독립한 후로 몇 년 동안 이노우에의 밑에서 ‘월간 파워 공수도’의 편집을 도왔다. 이노우에는 일이 없는 나를 항상 챙겨주었다. 또한, 오오야마 총재님과의 사이에서 문제가 생기거나, 지부장들과 분쟁 때문에 고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이노우에를 찾아가 고민을 털어놨다. 그러면 이노우에는 언제라도 나를 위해 앞장서서 도움을 주곤 하였다.
나는 이노우에에게 ‘공수도 전과’에 관한 문제와 불만들 털어놓았다. 이노우에는 ‘코지마씨의 마음도 이해가 갑니다’며 편을 들어주면서 몇 가지 조언을 해 주었다. 이때도 왠지 이야기의 마지막엔 오오야마 총재님의 후계자 문제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공수도 전과’의 편집이 생각만큼 진척되지 않는 초조함이 ‘총재님은 후계자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는 말이 되어 내 입에서 나왔던 것 같다.
그러자 이노우에는 표정을 바꾸며 ‘그것은 아닙니다’며 생각지도 못한 반응을 보였다.
‘물론 저도 얼마 전까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총재님은 지금 진심으로 후계자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설마 오사카의 츠우라씨는 아니겠지요? 츠우라씨가 후계자라면 저는 극진회관을 떠나겠습니다’라고 농담 섞인 말을 했다.
당시 츠우라는 관서본부 책임자이며 오오야마 총재님의 사위이기도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도 츠우라를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오야마 총재님의 사위라는 점을 이용하며 미디어 관계자들에게 불합리한 것들을 제멋대로 결정하고 행하였던 남자이다. 츠우라가 전일본웨이트제 대회의 총책임자였던 시절, 각 미디어 관계자들에게 취재를 허락하는 조건으로 막대한 금품을 요구했다. 그 모든 일은 오오야마 총재님을 시작으로 한 간부들에게는 비밀로 말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