河翁之帽 하옹지모
대머리를 점잖은 말로 독두禿頭라 한다. 민둥산은 독산禿山이고, 정수리에 털이 없는 수리 새는 독禿수리다. 여기서의 독자는 공히 대머리 禿독자이다. 사람이나 자연이나 독자가 들어가면 볼썽사나워 진다. 내가 독두가 될 줄은 십여 년 전만 해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사십대 중반을 지날 때까지만 해도 머리를 감고 말리는데 불편할 정도로 머리숱이 많았다. 그때의 내 머리는 산으로 친다면 울울창창한 숲이었다. 쉰이 가까워지면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탈모로 인해 한해가 다르게 숲이 황폐해지기 시작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산림 복원 작업에 나섰다. 발모에 좋다는 음식도 먹어보고 약도 바르고 두발 클리닉센터도 다녀 보았으나 한번 황폐해진 숲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내는 머리 때문에 한결 늙어 보인다며 자산自山의 나무를 옮겨 심든지(아래쪽 모근의 이식) 인공 숲(가발)을 만들든지 하라지만 전자는 비용이 만만찮으며 과정도 고통스러울 것 같고, 후자는 쓰고 벗고 관리하기가 귀찮을 것 같아 그냥 생긴 대로 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탈모가 점점 심해지면서 억울하고 속상한 일이 자꾸 생겼다.
언젠가 옛날에 근무했던 여직원이 결혼 후 처음으로 네 살짜리 딸을 데리고 사무실에 들렀는데 꼬마가 나를 보고 할아버지라 불렀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할아버지 소리에 나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고 꼬마의 엄마는 당황해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때만 해도 탈모가 많이 진행되기 전이었고 할아버지 소리를 듣기에는 이른 나이였지만 꼬마의 눈에는 정수리 부분이 제법 훤한 모습이 할아버지로 보였던 모양이다. 속으로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단순하고 정직한 아이의 눈에 그렇게 비쳤다면 도리가 없는 노릇이다.
탈모가 제법 진행된 후에 친구들과 어울려 식당 같은 델 가면 머리숱이 많은 친구들은 종업원으로부터 아저씨라 불리는데 나는 할아버지라 불릴 때가 가끔 있다. 머리가 빠지기 전엔 내가 제일 어려 보인다고 했는데... 요즘은 60이 청춘이라는데 지명知命에 할아버지 소리를 듣기는 싫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낸 것이 모자를 써 보는 것이었다.
모자에 관심을 가져보니 모자 종류가 엄청나게 많음을 알게되었다. 우리가 중절모라고 하는 파나마 모자, 해군모자 같이 생긴 세일러 거브해트, 일본말로 도리우찌라고 하는 헌팅 캡, 목동들이 쓰는 카우보이 모자, 마술사들이 주로 쓰는 볼러, 라틴 음악의 대부 트리오 로스판초스의 트레이드 마크 텐갈렌,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햅번이 썼던 카노테르, 닥터 지바고의 나타샤가 썼던 토크, 에스키모나 러시안들이 쓰는 방한모 코작, 터키인들의 전통 모자 페즈, 동남아 인들이 즐겨 쓰는 우리나라 삿갓 비슷하게 생긴 콜리, 중동 남자들이 쓰는 터번, 여자들이 쓰는 히잡 그리고 내가 즐겨 쓰는 베레모 등. 이 외에도 수많은 종류의 모자가 있었다. 이 많은 종류의 모자가 거의 서양 모자인 걸로 보아 서양인들은 모자 쓰기를 무척 좋아했나 보다. 그 중에서도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자 패션은 많은 화제를 남기기도 했다.
처음에는 중절모와 중절모 비슷한 페도라를 써 보았는데 이런 종류의 챙이 있는 모자는 한두 가지 난처한 점이 있었다. 바람이 불면 쉽게 벗겨져 버린다는 것과 실내에서는 모자를 벗어야 한다는 서양식 예법 때문이다. 독두를 캄푸라지 하기 위해 쓰는 모자를 실내에서 벗어야 한다면 별무소용이다. 여러 가지 모자를 섭렵하며 나에게 어울리고 실내에서도 쓸 수 있는 모자를 찾다가 최종 선택된 것이 지금 쓰는 베레모이다. 같은 서양 모자이지만 챙이 없는 모자여서 인지 베레모는 실내에서 쓰는 것이 용납되는 것 같았다.
어디선가 보았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연미복을 우아하게 차려입은 영국신사가 점잖은 자세로 한껏 폼을 잡으며 숙녀들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머리에는 멋진 페도라를 쓰고 손에는 개화장開化杖을 들었다. 갑자기 한 줄기 바람이 불어 와 모자는 날려가고 그 속에 감추어졌던 대머리가 드러나 버렸다. 굴러가는 모자를 줍기 위해 이리저리 허둥대는 모습이 민망스럽기 짝이 없다. 신사 체면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내가 중절모를 썼을 때 이와 같은 경험이 있었다.
우리조상들은 갓, 패랭이, 초립, 벙거지, 전립, 망건, 감투, 면류관 등 지위나 직업에 따라 다양한 모자를 썼으며 종류 또한 서양에 못지 않았다. 모자 중에서 제일 많이 사용하는 것이 선비들이 쓰는 갓이다. 선비란 벼슬을 하지 않았으나 학식을 갖춘 양반 대중을 말하는데 그들은 갓 아래에 탕건이란 모자를 하나 더 썼다. 모자를 이중으로 쓰는 민족은 우리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서 조상들의 지혜를 가늠해 본다. 갓은 말총으로 만들어 가볍고 멋스러우며 대부분 검은 색이어서 흑립黑笠이라고도 한다. 흰 도포에 검은 갓이 주는 담백하고 절제된 이미지는 선비정신을 표현한 패션 앙상블로도 손색이 없다. 그런데 갓 아래 탕건은 왜 썼을까. 선비들은 공식적인 자리에 참석할 때나 외출할 때, 또는 손님을 맞을 때 반드시 의관을 정제하지만 편한 자리에서는 갓을 벗는다. 옛날이라고 탈모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때 머리숱이 적어 볼품 없는 상투나 대머리를 감추어 주는 것이 탕건이 아니었을까. 갓은 중절모보다 오히려 챙이 더 넓어도 바람에 날려갈 염려가 없다. 갓에는 갓끈이 있어 턱 밑으로 단단히 묶었기 때문이다. 덕택에 모자를 줍기 위해 허둥거리는 체신 머리 없는 짓은 하지 않아도 된다. 모자에 있어서는 우리가 영국신사보다 한 수 위였던 것 같다.
궁여지책으로 쓰게 된 모자이지만 모자 덕을 본 점도 있다. 모자를 쓰기 전엔 아저씨, 할아버지, 사장님, 어르신, 카페 모임에서는 너러바회 등, 다양한 호칭으로 불렸다. 그러던 것이 베레모를 쓰고 난 뒤로는 '선생님' 이라는, 비교적 격이 있어 보이는 호칭으로 통일되었고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도 정중하고 친절해졌다. 아마 화가나 예술가들이 베레모를 즐겨 썼기 때문에 나도 그 카테고리쯤으로 여겨 서지 싶다. 하기야 지금 하는 일이 디자인 쪽이니 나도 예술가라면 예술가이다. 모자 하나가 대인관계에 있어서의 이미지와 품격에 이토록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도 예전엔 미쳐 생각 못한 부분이다. 유명인들이 왜 패션에 신경을 쓰는지, 코디네이터가 왜 필요한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외양은 외양일 뿐이다.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이 되지 않듯이 포장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알맹이의 견실함이 없다면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 외관에 걸 맞는 내실 또한 갖추어야만 진정한 멋이 될 것이다.
감투 쓴다는 말이 있다. 감투는 높은 벼슬아치들이 썼던 모자이다. 즉 높은 지위나 출세의 상징인 거다. 그래서 한 자리 하는 것을 두고 감투 쓴다고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감투 쓰는 것을 좋아해 감투를 서로 쓰겠다고 싸움질이다. 정치판의 이전투구도 따지고 보면 다 감투싸움에 다름 아니다. 감투 쓰는 것은 좋으나 그것에 걸맞은 책임과 의무와 품행이 있어야 함은 말할 나위 없다. 그럴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이 감투를 쓰게 되면 모두가 불행해 진다.
자의든 타의든 베레모를 쓰고부터는 선생님이라 불리게 되니, 실속은 없지만 이것도 감투라는 생각이 들어서 인지 그것에 어울리는 이름 값을 해야하는 부담도 생긴다. 그래서 은연중 '선생님' 다운 품위를 갖추려는 노력을 한다.
한 때 탈모로 인해 고민을 했지만 그 때문에 모자帽子를 쓰게 되었고 모자는 나를 범인에서 '선생님'으로 격상(?)시켜 주었다. 곁들여 격상된 품격에 걸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한 수신지로修身之勞까지 하게 되었으니 적어도 내게는 세상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가 아니고 하옹지모河翁之帽 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