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이어 2번 째 메시에 마라톤이다. 작년에는 90mm 굴절로 참관만... 올해는 참관같은 참가를 하자는 생각으로
토요일 예정됐던 마라톤을 기상의 변화로 금요일에 하게 됐다. 뭐 공식적인 행사가 아니니 뜻 맞는 사람끼리 밤하늘 좋을 때 별 보는거니 시간이 무슨 상관이랴...
금요일에 날씨가 좋아 혼자라도 볼 생각으로 일정 조정하고 스바루님에게 연락을 하니 다른 별지기들도 금요일에 보기로 했다고 한다.
주섬 주섬 장비들을 챙겨서 보현산으로 향한다. 작년 메시에 마라톤 때 오고 1년 만이다.
무지개님, 석우님, 스바루님이 이미 마라톤 스타트를 끊었다. 장비를 편다. 바람이 세차다 춥다. 헉... 오늘따라 관측의 필수품 핫팩을 놓고 왔다. 다행이 스바루님이 여분 2개를 준다. 이거 없었으면 이날 관측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파인더의 위치를 호핑에 편한 위치로 드릴 작업해서 옮겨서 파인더 정렬을 다시 해야 한다. 그리 오래지 않아 파인더 정렬 끝낸다. 74,77은 포기하고 지는 31과33을 잡기위해 광축은 급한 불부터 끄고 잡기로 한다.
그런데 어라? 지난번 관측 때와 별상이 크게 다르지 않다. 자정으로 향하면서 냉각이 되어지며 별상이 더 차분해지고 또렷해진다. 이번 주말에 돕 밑에 주경 나사를 보호하는 장치를 달면 광축이 틀어지는 경우는 더 줄어들 것이다. 역시 통돕이 짱이다.
1. 겨울철 대상들 (25개)
8시 34분에 첫 대상 31,32,110을 어렵지 않게 본다. 다음 33이 위치는 맞는데 보이지 않는다. 몇 번을 되돌이 하다 이미 초저녁 급한 대상을 모두 찾고 여유부리고 있는 무지개님의 삼각형 자리에서 호핑하는 방법으로 보아도 안 보인다. 무지개님 16인치 돕으로 보면 희미하게 흔적이 보인다. 트레스12는 (GS12인치 돕 애칭) 보인다고 할 수 없다. 못 본 것으로...
초반 3개를 놓치고 103까지 큰 무리없이 찾아 나간다. 52에서 의외로 15분정도 헤맨다.
천장 부근에 있는 35를 ms1570 쌍안경으로 보았을 때의 아름다움과 박진감이 장관이다. 물론 35만이 아니고 그 주위에 있는 은하수의 다른 별들과 어우려져서 이루어낸 장관이다. 지금까지 보았던 35가 너무 초라하게 생각된다. 70구경 쌍안경으로 플라이아데스가 최고였는데 이제는 35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 같다.
앞으로 1570이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대상들의 어떠한 새로운 모습들을 보여 줄지 사뭇 기대된다.
겨울 대상들 다 보고 석우님과 인증 사진 놀이. 포즈가 좀 후진듯... 내년에는 설정에 신경 좀 써야겠다.
2. 사자자리, 큰곰 자리 은하들. (16개)
10시30분에 95,96,105 어렵지 않게 도입한다. 63,94,106,3,53,64는 거의 굴절로 거의 찾아 보지 않은 대상들이고 돕으로는 한번도 찾아보지 않은 대상들인데 걱정했던것보다 잘 찾아진다.
3월초에 달빚에서 101과 51의 나선팔을 잘 보았는데 오늘은 101의 나선팔이 그때와는 또 다르게 보인다. 왼쪽의 나선팔이 큰 붓으로 휘돌아 나간 것 처럼 크게 돌아 나간다. 오른쪽은 짧은 팔이 돌아 나간다. 좌우 비대칭이 재미있다. 핵 주위의 암흑대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전 관측에서는 암흑대가 암모나이트의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진한 검은 테들이 예쁘다.
51의 브리지와 작은 은하의 돌돌 말림은 전 관측보다는 약하다.
3. 목성 유로파와 이오의 영과 경현상
한참을 은하와 씨름하고 있는데 목성 영현상이 있다고 한다. 목성의 계절엔 목성을... 7mm 아이피스로 바꾼다. 바람이 많이 불어 많이 흔들린다. 달빛이 그립다. 그 와중에 스바루님이 유러파와 이오의 경 현상도 보자고 한다. 이 바람에는 불가능하다. 포기한다.
스바루님이 보인다고 한다. 냉큼 달려간다. 한참을 보니 왼쪽에 있는 유로파가 검은 그림자 옆으로 하얗게 보인다. 처음에는 유령처럼 깜빡 깜빡거리다 익숙해 지니 계속 보인다. 다음은 이오... 이 놈은 유로파보다는 쉽게 보여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하얀 자태를 보여준다.
지난번 가니메데 경현상은 쉽게 보았다. 스바루님은 가니메데는 크기도 하고 지구에서 가까워서 그럴거라고 하는데 내 생각은 바람 때문인 것 같다.
트레스12로 와서 보니 보인다. 스바루님 에토스보다는 약한 듯 하지만 그래도 잘 보인다. 나에게 최고의 아이피스는 펜탁스다. 작고 단단하며 아이컵 편하고 별상 쨍하고 화각은 답답하지도 않고 과하지 않다.
4. 머리털 자리, 처녀 자리 은하단. (18개)
12시30분에 머리털 자리에 있는 3을 시작으로 53,64를 찾는다.
12시50분에 98 옆에 있는 머리털 6번 별이 보이지만 사자자리 데네볼라에서부터 정성스러럽게 호핑해서 98을 찾는다. 이후에 파인더 호핑과 아이피스 호핑을 병행해 가며 깔끔하게 60을 1시20분에 마친다.
이날 마라톤 내내 트레스12의 눈으로 우주를 보며 탄성을 질러 댔는데 처녀자리 은하단을 여행하면서는 악악 괴성의 연발이었다. 옆에서 보던 석우님과 스바루님께 적지 않게 방해가 되었을 듯 싶은데... 관측의 효과음 정도로 생각하고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셨길 빈다.
지금까지 처녀자리 은하단을 본 것 중에 가장 개운하게 본 것 같다. 적절하게 힘들고 적절하게 아름답다. 이번에는 20mm 아이피스로 보았는데 다음에는 14mm나 10mm로 보면 좀더 진한 콘트라스트로 진득한 처녀자리 은하단 여행이 될 것 같은데 어떨지 모르겠다.
기분 좋게 처녀자리 은하단을 빠져 나오고 옆에 있는 석우님에게 오늘 80개 목표였는데 100개도 찾을 것 같다고 망언을 했다. 망언의 댓가를 치르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다.
49,61은 돕으로는 물론 굴절로 거의 시도하지 않았는데 두 개 찾는데 20분정도 공들여 찾는다.
90mm 굴절로는 광량 부족으로 찾아도 별 감흥이 없고 호핑 자세도 어려워 이곳에 있는 은하들은 갈 때 마다 시도는 하는데 찾다가 중간에 그만 두기를 반복했다. 이제는 트레스12로 재미있게 은하들과 놀 수 있을 것 같다.
20mm로 보는 104 솜브레로가 앙증맞다. 전 관측보다 더 작아진듯하고 쨍하니 옹골차다. 깜놀이다. 14mm로 바꾸니 바로 흐리 멍텅해져서 바로 20mm로 바꾸어도 방금 전의 똘망함은 온데 간데 없다. 쨍할 때 더 봐두어야 하는건데...
앞으로 큰 대상의 은하들은 쨍할 때 되도록 20mm로 가능하면 오래 도록 본 뒤에 14mm로 바꾸어 보아야겠다.
5. 여름철 구상성단들 (14개)
2시에 5번과 13번을 시작으로 구상성단을 시작한다. 이곳도 역시 처음 찾아보는 대상들이 많다. 주로 가을부터 2월까지 관측했던 관계로 이곳 대상들은 아직 뜨기 전이거나 뜬지 얼마 되지 않았고 또 봐도 그놈이 그놈이라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102 대신 찾은 5866 바늘은하는 정말 찔릴 것 같다.
뱀 주인 자리에서 10번에서 12번 가는데 정말 가관이다. 30분동안 몇 번을 되돌아 가고 있다. 버퍼링도 아니고 힘들다. 바람은 불어 제끼고 목은 아프고 배는 고프다. 정성스럽게 호핑하고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아서 아이피스를 들여봐도 딴 동네다. 별 배치도 영 다른 것 같다.
스바루님에게 말하니 그거 쉬운거라고... 너나 쉽지... ㅠㅠ 다음에는 쉽게 찾기를...
12는 포기하고 잠깐 토성을 본다... 이쁘네...
심기 일전해서 4시20분에 14를 그리 어렵지 않게 찾는다. 이곳 구상 성단에서 14개를 찾는데 2시간 20분 걸렸다.
6. 박명 즈음에... (11개)
4시30분에 거문고 자리 57부터 시작해서 여름철 별자리들을 은하수 줄기를 따라 찾는다. 바람이 더 심해진다. 춥다. 배는 고프다. 집중력도 많이 떨어진다. 초코파이 당 섭취도 소용이 없다. 다음에는 사탕을 준비해봐야겠다.
여름철 대상들 중 궁수자리 이후는 본 적이 거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박명이 다가 오는데다 집중력도 떨어져 정석대로 호핑하지 않고 마구 헤집고 다닌다.
오메가 성운과 라군 성운을 10번도 넘게 본 것 같다. 역시 버퍼링이다.
생각해 보니 성도의 별 배치와 파인더와 아이피스에서 보이는 별이 달라서 계속 헤맨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때는 보이는 별 등급 설정을 다시 했어야 했다.
스바루님이 109개 다 찾았다는 선언을 하는 순간 나도 일어 난다. 의미없는 노동의 종식이다. 갑자기 한기가 몰려 온다.
차에 들어가 몸을 녹이며 개수를 헤아려 보니 84개이다. 궁수자리와 전갈자리 밑으로 폭망이라 걱정했는데 그래도 처음 목표했던 80개는 넘겼다.
7. 정화
8시30분부터 다음날 5시30분까지 9시간 동안 도날드 의자에 앉지도 않고 정말 뜨겁게 별을 본 것 같다. 작년 5월에 궁수님 돕으로 정말 인상 깊게 보았던 궁수자리의 멋진 대상들을 바보같이 삽질하며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인지 끝나고 나서도 개운하지 않다.
내가 하는 몸 공부 중에 역도가 있는데 운동을 만족스럽게 끝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몸이 정화되는 느낌이 드는 그런 날이 있다. 그러할 때는 영혼도 차분하게 정화되는 느낌이다. 별 보고 새벽에 집에 갈 때도 그러한 비슷한 느낌이 드는데... 그게 뭐랄까 역도하고 나서의 느낌과 약간의 미묘한 차이가 있다.
내년 메시에 마라톤이 기다려진다. 그때는 오늘 보다는 깔끔한 뒷맛을 기대한다. 끝나고 몸과 영혼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으면 더할 나위 없고... 그러나 내년의 마라톤을 위해 연습하지는 않겠다.
별 보기를 경이와 호기심으로 하고 메시에 마라톤도 경탄과 즐거움으로 하고 싶다. 메시에 마라톤이 누구를 이기기 위한 경쟁이 아닐진데... 마라톤이 내가 별 보는 즐거움을 훼손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별 보기에서도 내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익숙함과 편안함이다. 익숙함과 편안함. 그것은 생명의 다함이다. 죽는 그 날 까지 경탄과 호기심으로 항상 배우고 익히며 익숙함과 편안함을 거부하고 싶다.
8. 일출
장비를 정리하니 한기가 좀 가신다. 한 숨 돌리니 일출이다. 이곳에서 몇 번의 일출을 본 것 같은데 장관이다. 밤새 포항 광해를 막아주던 운해 위로 해의 기운이 올라온다. 그 운해 위로 해가 뜬다. 지평선도 바다도 아닌 구름 위로 해가 뜬다.
밤 새 따로 각자의 별을 보던 별지기들은 이제는 같이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본다. 이게 좋은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마치 전우애 비슷한 끈끈한 감정이 든다.
잘 있게 친구들... 잘 가시게 친구들...
첫댓글 ㅎㅎ 수고하셨습니다
저도 십년전쯤에 메시에 마라톤을 혼자 한적이 있었는데, 그때 제 점수보다 높네요. 이젠 힘들어서 못할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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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내용이 안보이네요!
비밀글에 체크하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