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강 스피치와 시낭송 문학의 집‧구로 2014. 3. 31. 월
살아볼 만한 이유
민문자
오늘은 살아볼만한 이유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축복입니다. 하찮은 미물이나 짐승이 아니라 만물의 영장인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저는 칠십년 전 여름 어느 날 고고성을 울리며 가난한 농부집안의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80%가 농업에 종사하고 문맹률이 70% 정도 일 때입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으로 이 땅에 태어났지만 내가 세상에 태어날 당시에는 이 나라가 너무나 가난했습니다. 의식주 해결하는 것이 국민 모두의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이와 빈대가 득시글거리는 환경에서 모든 물자가 부족하여 옷을 기워 입는 것은 보통이었습니다. 누더기 옷에 영양실조로 얼굴 머리할 것 없이 피부부스럼이 덕지덕지 솟고, 손등은 갈라져 트고 누런 코가 길게 나와 훌쩍거리며 방황하는 거지들의 모습은 흔히 보는 일이었습니다.
당시에 선진국에서 보내오는 구호물자인 옥수수가루와 분유로 끼니를 연명하고 헌 옷을 받아 입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일곱 살 어린 눈으로 6·25 전쟁을 경험한 세대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집집마다 자동차가 있다는데 전쟁이 없는 그런 나라에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만 진학해도 선망의 대상으로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던 때였습니다. 그 엄혹한 시절, 겨우 중학교 2학년 때 서른아홉 살의 아버지가 세상을 하직하여 상급하교는 꿈도 꾸지 못할 형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천에서 상업하시던 숙부의 도움으로 어렵게 고등교육을 마치고 교사로 세상 경험을 한 것은 지금 와 생각해 보아도 천우신조였습니다. 어려운 시대에 지극정성으로 어머니와 우리 형제를 경제적으로 지원해주셔서 숙부와 숙모님 덕분으로 저희 형제들이 이만큼 품위를 지키며 살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어린소녀가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반세기도 더 훌쩍 시간이 흘렀습니다. ‘우리도 잘 살아보자’는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한 역대 대통령들의 지도력 아래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국민들이 모두 열심히 따라서 일한 보람의 열매, 우리나라 산업화의 성공으로 이제는 나라도 개인도 잘살게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종료 후, 수많은 독립국가 중에서 경제부흥과 민주화를 함께 이룩한 국가는 대한민국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후진국의 여러 나라가 부러워하며 우리나라를 배우고자 합니다.
그래서 그 옛날 선진국들의 도움으로 우리가 이렇게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었듯이 우리도 이제는 후진국들을 돕게 되었습니다. 바로 한국국제협력단(韓國國際協力團, 영어: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KOICA)이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즉 개발도상국의 인재를 초청하여 우리나라를 소개하고 선진 기술을 전수하거나 전문 인력을 파견하여 개발도상국 현지에서 기술과 경험을 전수해 주고 있습니다.
직업 훈련원, 병원, 학교 등을 지어 주는 등 민간단체 지원 사업교육 및 의료 시설을 지원합니다. 한국해외봉사단을 파견하여 해외 오지에서 봉사 활동을 하며 그 나라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심어 주는 일을 하고,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쓰나미 피해 지역 등 전쟁과 자연 재해로 어려움에 처한 국가의 재난 복구 지원 사업도 합니다.
이제는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남을 돕는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많이 받고 살아왔듯이 나도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조금이라도 남에게 도움을 주는 생활이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저는 인생의 끝자락에 서있습니다. 인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삶의 방식을 배워야 합니다. 공부하는 마음은 준비하는 마음입니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노력하다보면 자기가 추구하는 기회가 옵니다. 준비하는 자에게 기회는 반드시 옵니다. 나의 삶 후반기는 계속 열정적으로 배우고저 노력하는 삶이었습니다. 나의 이 열정에 박수치는 분들에게 그 열정을 나누어 주고 싶습니다. 삶에 대한 열정을 나누어 주는 일, 이것이 바로 살아볼 만한 이유입니다. 오늘은 살아볼 만한 이유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문정희 시인 약력
1947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 1969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했다.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마케도니아 테토보 세계문학 포럼에서 작품 「분수」로 <올해의 시인상>(2004), 2008년 한국예술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최우수 예술가상> 문학 부문 등을 수상했다. 『문정희시집』, 『새떼』,『혼자 무너지는 종소리』,『찔레』, 『하늘보다 먼곳에 매인 그네』, 『별이 뜨면 슬픔도 향기롭다』, 『남자를 위하여』, 『오라, 거짓 사랑아』,『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나는 문이다』 외에 장시 「아우내의 새」등의 시집이 있다. 1996년 미국 Iowa대학(IWP) 국제 창작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영어 번역시집 『Windflower』, 『Woman on the Terrace』, 독어 번역시집 『Die Mohnblume im Haar』, 스페인어 번역시집 『Yo soy Moon』, 알바니아어 번역시집 『kenga e shigjetave』, 『Mln ditet e naimit』외 다수의 시가 프랑스어, 히부르어, 일본어 등으로 번역되었다. 동국대학교 석좌교수, 고려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를 역임했다.
한계령을 위한 연가 / 문정희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는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곱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헬리곱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이 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 대던 헬리곱터들이
고란이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 처음 짧은 축복에 몸둘 바를 모르리.
콩 / 문정희
풀벌레나 차라리 씀바귀라도 될 일이다.
일 년 가야 기침 한번 없는 무심한 밭두렁에
몸을 얽히어
새끼들만 주렁주렁 매달아 놓고
부끄러운 낮보다는 밤을 틈타서
손을 뻗쳐 저 하늘의 꿈을 감다가
접근해 오는 가을만 칭칭 감았다
이 몽매한 죄
순결의 비린내를 가시게 하고
마른 몸으로 귀가하여
도리깨질을 맞는다
도리깨도 그냥은 때릴 수 없어
허공 한 번 돌다 와 후려 때린다
마당에는 야무진 가을 아이들이 딩군다
흙을 다스리는 여자가 딩군다
물을 만드는 여자 / 문정희
딸아, 아무 데나 서서 오줌을 누지 말아라
푸른 나무 아래 앉아서 가만가만 누어라
아름다운 네 몸 속의 강물이 따스한 리듬을 타고
흙 속에 스미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아라
그 소리에 세상의 풀들이 무성히 자라고
네가 대지의 어머니가 되어가는 소리를
때때로 편견처럼 완강한 바위에다
오줌을 갈겨 주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그럴 때일수록
제의를 치르듯 조용히 치마를 걷어 올리고
보름달 탐스러운 네 하초를 대지에다 살짝 대어라
그리고는 쉬이 쉬이 네 몸 속의 강물이
따스한 리듬을 타고 흙 속에 스밀 때
비로소 너와 대지가 한 몸이 되는 소리를 들어 보아라
푸른 생명들이 환호하는 소리를 들어보아라
내 귀한 여자야
남자를 위하여 / 문정희
남자들은
딸을 낳아 아버지가 될 때
비로서 자신 속에서
으르렁거리던 짐승과 결별한다
딸의 아랫도리를 바라보며
신이 나오는 길을 알게 된다
아기가 나오는 곳이
바로 신이 나오는 곳임을 깨닫고
문득 부끄러워 얼굴 붉힌다
딸에게 뽀뽀를 하며
자신의 수염이 때로 독가시였음도 안다
남자들은
딸을 낳아 아버지가 될 때
비로서 자신 속에서
으르렁 거리던 짐승과 화해한다
아름다운 어른이 된다
부부 / 문정희
부부란
무더운 여름밤 멀찍이 잠을 청하다가
어둠 속에서 앵하고 모기 소리가 들리면
순식간에 둘이 합세하여 모기를 잡는 사이이다.
너무 많이 짜진 연고를 나누어 바르는 사이이다
남편이 턱에 바르고 남은 밥풀 꽃만 한 연고를
손끝에 들고
어디 나머지를 바를 만한 곳이 없나 찾고 있을 때
아내가 주저 없이 치마를 걷고
배꼽 부근을 내어 미는 사이이다
그 자리를 문지르며 이달에 너무 많이 사용한
신용카드와 전기세를 문득 떠올리는 사이이다
결혼은 사랑을 무효화시키는 긴 과정이지만
결혼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지만
부부란 어떤 이름으로도 잴 수 없는
백 년이 지나도 남는 암각화처럼
그것이 풍화하는 긴 과정과
그 곁에 가뭇없이 피고 지는 풀꽃 더미를
풍경으로 거느린다
나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네가 쥐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내 손을 한번 쓸쓸히 쥐었다 펴보는 그런 사이이다
부부란 서로를 묶는 것이 쇠사슬인지
거미줄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묶여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느끼며
어린 새끼들을 유정하게 바라보는 그런 사이이다
남편 / 문정희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되지 하고
돌아 누워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
나에게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 준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