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카톨릭은 전통적으로 로마 카톨릭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교리를 고수하면서 다른 종교에 대하여 배타적 입장을 취해왔다. 그러므로 라테란 공의회(Lateran Council, 1215)에서 "교회 밖에서는 전혀 구원이 없다"고 선언했으며, 교황 보니파스 8세(Boniface VIII, 1302)는 "교회 밖에서는 구원도 죄용서도 없다"고 선포하였고, 플로렌스 공의회(Florence Council, 1442)에서도 "자선을 베풀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피를 흘렸다 해도 카톨릭 교회의 울타리 안에 머물러 있지 않는 사람은 결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로마 카톨릭의 그처럼 철저한 교리에 의하여 많은 이교도나 크리스챤들이 종교재판소의 정죄를 받고 고난을 당하였으며, 중세기에 수 많은 참 성도들이 비참하게 순교당하였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2nd Vatican Council, 1962-1965) 이후, 과거의 전통적 배타주의를 완화하고 다른 종교와 대화하며 그들을 포용하는 포괄주의로 방향전환 하였다. 그래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 4차 회의(1965)에서 공의회는 하나님이 온 인류를 만드시고 그들에게 동일하게 은혜를 베푸셔서 이 땅에 거하게 하셨으므로 인류 모두는 동일한 공동체이며,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의 섭리와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다른 종교 안에도 인간의 양심을 비추는 하나님의 빛과 은혜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하였고, 다른 종교의 신앙과 교리와 생활양식을 존중하고 관용과 사랑으로 그들과 대화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하였다.
더욱이 2000년 새 천년기를 맞이하면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hn Paul II)는 전 세계의 다른 종교인들과 로마 카톨릭에서 분리해 나간 모든 교파들을 포용하고 새로운 기독교 천년기(New Christian Millennium)를 출발하기 위하여, 2000년 3월 12일 "용서의 날(The Day of Pardon)" 미사에서 로마 카톨릭이 저지른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였다. 그는 미사 집전에서 "우리는 기독교 분열에 대한 책임을 느끼며 용서를 구하고, 진리의 사역에서(in the service of truth: 종교재판, 십자군, 강제개종 등의 집행을 말함) 저지른 폭행에 대해서 용서를 구하며, 타 종교인들을 불신하고 적대시 하는 것을 당연지사로 여긴 과오에 대하여 용서를 구합니다" 라고 발표하였다. < BBC News, Mar. 12, 2000 > 그리고 문화 속에 잠재해 있는 이방종교의 풍습을 기독교에 접목시키기 위하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hn Paul II)는 그의 회칙에서 "기독교의 토착화(Inculturatio)"를 강조하면서 기독교가 인류의 토착문화를 수용함으로써 그 문화의 참 가치가 드러나고 또한 기독교가 문화 속에 스며든다고 정의하였다. 그러므로 로마 카톨릭은 다른 종교와 대화하여 이해하고 다른 종교를 존중하는 것과 각 민족의 문화를 기독교에 적용하는 것을 선교 사명으로 여긴다. 제2 바티칸 공의회 이후 로마 카톨릭은 유대교, 회교도 등 기타 다른 종교에 속한 사람들도 여러 가지 이유로 하나님의 백성의 테두리 안에 있음을 시사하면서 그들에게 접근하여 대화에 힘쓰고 화합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가리켜서 21세기 에큐메니칼 공의회(21st Century Ecumenical Council)이라고도 불려진다. < Wikipedia >
이상과 같은 로마 카톨릭의 대 변화에 대해서 다른 종교 지도자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대화의 마음을 열며 손을 잡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 내에서도 많은 지도자들이 로마 카톨릭의 그러한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로마 카톨릭이 이제는 과거의 카톨릭이 아니고 새로운 카톨릭으로 탈바꿈 한줄로 알고 카톨릭을 수용하고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한국 기독교 안에 기독교 토착화를 주장하면서 한국의 불교문화나 유교문화를 교회 안에 적용하는 풍조로 찬송가를 불찬가처럼 5음계로 사용하여 부르는 것이나 일부 교회의 설교 강단이 사물놀이 또는 배뱅이 굿놀이 하는 현장처럼 되어가는 것도 로마 카톨릭에 동조하는 WCC(세계교회 협의회)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영향으로 보인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에 카톨릭의 놀라운 변화에 대해서 카톨릭 내부에서도 혼란과 오해가 점차 증대되어 왔다. 그 이유는 교황청이 교황청의 종교간 대화평의회(The Pointifical Council for Inter-religious Dialogue-PCID) 라는 기구를 새로 발족하고 " (카톨릭)교회가 믿는 모든 진리들이 성경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다" < 하나님의 계시법규-9 > 라고 하면서 다른 종교의 진리를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와 화합하고 일치를 이루기 위하여 본격적으로 에큐메니칼 운동에 박차를 가하면서 세계교회 협의회(WCC)와도 적극 협력관계에 들어갔다. 교황청의 종교간 대화평의회(PCID)의 정관에 보면, 종교간 대화평의회의 방법론(Methodology of PCID)의 3항에 "본 교황청의 종교간 대화평의회는 종교간 대화의 에큐메니칼 중요성을 염두에 두며, WCC 안의 (카톨릭과) 유사한 사무국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라고 되어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에 아래와 같은 교황의 행보와 발표문들을 볼 때 로마 카톨릭이 이제는 더이상 전통적 카톨릭의 신학과 교리를 지키지 않는 것으로 보여지게 되었다.
교황 베네딕트 16세는 터키, 이스탄불의 한 회교사원을 방문하여 기도하였는데, "교황이 회교 사원 내에서 기도한 것은 이교도 사이에 새로운 지평선이 되다" 라고 로마발 뉴스로 발표 되었다. < The Global Information Gateway, Dec. 7, 2001 >
교황 바오로 2세는 21세기를 맞이하여 "아씨시(Assisi, Italy)에 함께 모여서 평화의 기도를 드리자"는 초청장을 세계 종교 지도자 들에게 보냈다. < The Christian Herald, Dec. 2, 2001 >
교황 베네딕트 16세는 에큐메니칼 운동에 적극 개입하고, "에큐메니즘은 모든 크리스챤들에게 의무적이다"라고 하면서 WCC와 깊은 협력 관계에 있음을 암시하였다. < Catholic World News, Sep. 5, 2005 >
교황 베네딕트 16세는 "불신자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요지의 담화문을 바티칸발 뉴스로 발표하였다. < Zenit.org, Nov. 30, 2005 >
교황 베네딕트 16세는 터키에서 열린 종교 지도자 컨퍼런스에서 세계 3대 교파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서로 협력하는 일에 있어서 (카톨릭이) 꾸준히(timelessly) 노력할 것을 재확인 하였다. < Catholic News Agency, Nov. 8, 2005 >
교황 베네딕트 16세는 브라질, Porto Alegre에서 열린 제9차 WCC 총회에 축하 메세지를 보내면서 "종교간 연구와 대화는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절대 필요한 의무이다" 라고 하면서 앞으로도 WCC와 계속 협력할 것을 서약하였다. < Journey Online, Feb. 15, 2006 >
1. 과연 로마 카톨릭은 변하였는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마 카톨릭이 만일 변하였다면, 그 변화는 어떤 성격의 변화일까? 많은 사람들은 로마 카톨릭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근본적으로 변화한 줄 착각한다. 만일 진정한 의미에서 로마 카톨릭이 변했다면, 그 변화는 그들의 교리가 변했다는 것이며, 그것은 곧 카톨릭의 신학이 변했다는 뜻이다. 로마 카토릭의 신학을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교리들, 특히 성경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은 그들 신학의 중요한 부분들은 교황의 무오설(papal infallibility), 교황의 그리스도 지상 대리자(Vicar of Christ on Earth), 연옥의 존재(the existence of Purgatory), 마리아의 무염시태(Immaculate Conception of Mary), 교황의 사도적 계승(Apostolic Succession of the Pope), 죽은 성인에게 기도(devotion to the Virgin Mary and the saints), 등과 이것을 종합적으로 다룬 카토릭 교리문답(Catholic Catechism) 이 로마 카톨릭을 대변하는 카톨릭의 신학 이다. < Wapedia-Wiki: Roman Chatholic Theology >
이 카톨릭의 신학은 절대로 다른 종교와 공유할 수 없으며, 타협할 수도 없는 오직 카톨릭만의 독특하고 유일한 신학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용서의 날(The Day of Pardon)" 미사에서 로마 카톨릭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들< 종교재판, 십자군, 강제개종 등 >을 인정하고 카톨릭을 대표하여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다면, 그러한 과오를 범하게 한 그들의 잘못된 교리들 < 위에 열거한 그들의 핵심 교리를 > 을 수정하는 변화가 있어야 했다. 그래야 진정한 의미에서 로마 카톨릭이 변한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현실로 나타나는 변화는 카톨릭의 "신학과 교리의 변화"가 아니라 "다른 변화"이다. 이점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로마 카톨릭 안에서도 착각 속에서 혼란스러워하였다. 로마 카톨릭 안에서도 카톨릭이 교리와 신학 면에서 전통을 벗어버리고 점차 변화해 가는 것으로 착각하고 의아스러워 했으며, 좀 더 분명한 것을 알기 위하여 여러 분야에서 로마 교황청에 문의가 쇄도하기에 이르렀다. 더 이상 묵과할 수 없게 된 교황청에서는 카톨릭의 교리와 신학을 전적으로 담당하는 로마 교황청의 신앙교리성으로 하여금 로마 카톨릭의 분명한 교리적, 신학적 입장을 밝히도록 하였다.
교황청 신앙교리성(구 종교재판소)의 발표
신앙교리성(The Congregation for the Doctrine of the Faith: CDF)는 어떤 곳인가? 그곳은 로마 카톨릭의 교리와 신앙문제들을 총괄적으로 감독하고 주관하는 기관이며, 총수는 로마 교황이지만 대리로 신앙교리성 장관(Prefect)를 임명하여 주관하게 한다. 본래의 이름은 악명높은 "종교재판소(Congregation of the Holy Office of the Inquisition, or simply the Holy Office)"이었으나 제2 바티칸 공의회에서 그 이름을 현재 이름으로 변경하였다. 로마 카톨릭의 "종교재판"은 로마 교황 이노센트 3세(Innocent III)의 교서에서 그 성격이 어떠함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1199년에 내린 그의 교서에서 언급하기를, "누구든지 (카톨릭)교회법(Chruch Dogma)과 마찰을 일으켜 하나님을 개인적 견해로 해석하려는 자는 불쌍히 여기지 말고 반드시 화형에 처하여야 한다"고 하였다(Helen Ellerbe, The Dark Side of Christian History, p.77). 프레드릭 3세(Frederick III)가 1224년에 제정한 헌법에는 교회재판소(an ecclesiastical court)에서 이단자로 입증된 자들은 화형 시켜서 고통 가운데 죽어야 한다고 선포하였다.
그리고 제4차 라테란 공의회(4th Lateran Council, 1215)에서 제정된 교회법 제3조에는 명시하기를 거룩한 카톨릭 신앙에 반대하는 모든 이단자들을 파문하고 저주한다는 말로 시작하면서 이단자로 입증된 자들은 세상 법원에서 처벌되어야 하며, 이단자들을 처벌하여 그 땅을 정결케 해야 한다는 교회의 요구에 응하지 않는 집행관이 있다면, 그는 그 지역 사제에 의하여 파문 당할 것이고, 만일 1년 안에 시정되지 않으면 그 사실을 교황청에 보고하여 태만한 그 봉신(vassal)을 직위해제한다. 그리고 정죄된 이단자들을 멸절시키는 카톨릭 교도에게 그 땅을 관할하게 하고 논의의 여지 없이 그 땅을 소유하게 하며, 그로하여금 참 신앙(카톨릭 신앙) 안에서 그 땅을 보존하게 한다(Canon, 3)는 요지의 말로 기록되었다. 바로 그 라테란 공의회에서 성찬예식에 봉헌된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상징이 아니라 실제라고 하는 카톨릭의 중심 교리인 화체설(Transubstantiation)이 확정되었다. 그 때부터 카톨릭의 화체설이나 미사(Mass)집행을 거부하면 이단자로 정죄받았으며, 수 많은 성도들이 처참하게 고문당하고 화형되었다. 그 집무를 행하던 "종교재판소"가 "신앙교리성"으로 이름만 바꾸어 현존하고 있다. 이제 그 신앙교리성"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오늘날 카톨릭의 교리와 신학적 입장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밝혔다. 그것이 바로 2007년 6월 29일에 아래와 같이 발표한 "(카톨릭)교회의 확고한 교리에 대한 몇가지 질문에 답변"이라는 발표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