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만에 도착한 그림 엽서.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 섬에 사는 나는 아빠가 일하시는 스위스로 아빠를 만나러 갔다.
전에는 아빠와 같이 스위스에 살았으나 지금은 형편상 같이 살지는 못하고 아빠의 고향인 팔레르모에서 엄마와 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방학때가 되면 아빠를 만나러 스위스로 가는 것이다.
이번 방학에도 아빠를 만나러 스위스로 갔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시칠리 섬과는 완전하게 다른 자연 경관과 깨끗한 환경은 올 때마다 낯선 느낌을 준다.
이번에는 이런 생생한 모습을 담은 사진을 처음 부임해 오신 선생님에게 전해 주리라 마음먹고 가자마자 아름다운 스위스 경관이 담긴 그림 엽서를 사서 선생님께 보냈다. 잘있다는 정성어린 마음까지 필체에 담아서.
시원한 여름을 보내고 팔레르모로 되돌아 왔다.
하지만 엽서를 받고 인사말 정도 해줄줄 알았던 젊은 여 선생님은 아무 말도 없으셨다.
한편 서운하기도 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다. 지난 1979년도의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짐작컨데 50대 중 후반은 되 보이는 여자분 음성이었다.
내 이름과 출신학교를 물어보는 그 분은 어쩐지 나를 알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 고등학교 선생님!!!
처음 부임해 오셔서 어리둥절 하시던 그 선생님이셨다.
너무 반가와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거의 30년 만의 듣는 목소리였다.
그 선생님도 거의 소리를 지를 듯이 반가워 하시며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하셨다.
내가 되려 고마워 해야 할 텐데 선생님께서 자꾸 고맙다 하신다. 미안한 마음에 죄송 스럽기 까지 하다.
선생님께서는 그림 엽서 보내줘서 고맙다고 몇 번이나 감사의 인사를 하셨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무슨 그립 엽서냐고 되물었더니 스위스에서 내가 보낸 그림 엽서라고 했다.
그제서야 나는 30년 전에 선생님께 보낸 그림 엽서를 기억해 냈다.
새삼스럽게 그림 엽서 때문에 인사치레를 받는 것이 쑥쓰러웠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선생님의 말씀은 달랐다.
그 그림 엽서를 오늘 받았다는 것이다. 뭐라고!! 그 그림 엽서가 오늘 도착했다고??????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30년 전에 보낸 그림 엽서가 오늘 도착하다니 이 무슨 뚱단지 같은 소리인가??
그러나 선생님은 거짓말을 하신 것이 아니었다.
그 그림엽서는 분명 오늘 도착했다. 30년이 지난 오늘 도착했다.
아무리 이탈리아 우편 서비스가 엉망이라고는 하지만 스위스에서 팔레르모 까지 30년이 걸렸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사실이다.
하루에 100미터 정도 걸어서 누가 가지고 왔단 말인가?
어이없기도 했지만 나는 그 빛바랜 그림 엽서로 인해 그동안 잊고 살았던 청소년기의 추억을 되살릴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거북이 우체부여..
오늘이라도 전달해 주어서 감사합니다.
결코 기다려서 되지 않는 일이 없다는 이탈리아인의 철학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좋은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