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가 있은 지 54년이 지났으나 한반도는 아직 냉전의 긴장 속에 있다. 이런 냉전의 초기와 한국 현대사에서 이승만(사진) 대통령은 공과를 떠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미국에서 활동하던 이대통령은 1945년 10월16일 귀국, 조국이 남북으로 분단된 현실과 남한에서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을 2개월 동안 지켜본 후 라디오를 통해 대국민 연설을 한다.
공산주의를 없애고 민주주의를 건설하자는 이 연설은 민주 대한민국 건설의 초석이 되는 명연설이다.
이대통령은 “한국이 공산당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세계 각국에 선언한다”며 당시 현실을 공산주의로 인해 다시 위태롭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우리 대한에는 원래 공산주의를 아는 동포가 없었다”며 공산주의 실체를 지적하고, 특히 “이 분자들이 노국(露國:러시아)을 저의 조국이라 부른다니 과연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요구하는 바는 이 사람들이 한국에서 떠나서 저의 조국에 들어가서 저의 나라를 충성스럽게 섬기라”며 러시아를 등에 업은 공산주의자들의 저의를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다.
연설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가 지금 이 문제를 우리 손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종시는 동족상쟁의 화를 면치 못하고 따라서 결국 다시 남의 노예 노릇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며 미래를 경고한다. 그런 후 “그러니 경향 각처에서 모든 애국 애족하는 동포의 합심 합력으로 단순한 민주정체 하에서 국가를 건설해 만년무궁한 자유복락의 기초를 세우기로 결심합시다”라며 강한 어조로 민주 대한민국 건설을 호소하며 연설을 끝맺고 있다.
이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공과는 다양한 평가를 내린다. 연설 부분에서 이대통령은 한국의 명연사는 물론 세계의 명연사라는 평을 받는다. 일제 식민주의를 갓 벗어난 당시 우리 국민들에게 이대통령의 연설은 희망 그 자체였으며 자기 나라의 지도자가 없던 한국민들에게 지도자의 목소리를 라디오로 들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
이대통령은 미국을 주무대로 활동하면서 우드로 윌슨 대통령과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등이 라디오를 통한 연설을 정치에 적극 활용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이를 한국에 맞게 잘 실행한 것이다.
이대통령은 음량과 고저를 라디오 매체에 맞춰 듣기 편하게 했으며 내용 면에서는 국민들에게 자긍심을 불러 주는 명연설로 지도자의 역할을 수행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