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르파티 누가복음 7장 34절
여름철 텃밭에 가면 먹을게 많습니다. 텃밭 일을 하기 전에
무슨 일을 하든 일단 하나 먹고 시작하는게 뭔지 아세요? 오이입니다.
오이는 95%가 수분으로 되어 있답니다. 오이를
키워보면 물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어요. 저녁때 물을 주잖아요.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면 오이가 거의 두배가 됩니다. 자라는게 눈에 보일 정도로 빨리 자랍니다. 그정도로 물이 많습니다. 등산할 때 물대신 오이를 먹으면 왔다입니다. 비타민 C도 많구요. 텃밭에서
탈진도 막아줍니다. 오이를 30-40주를 심은 것 같은데
벌써 200여개 정도를 따먹은 것 같애요. 벌써 피클을 담아놓은
게 두통이나 됩니다. 텃밭에서 인기 으뜸입니다.
그렇다고 토마토도 뒤지지 않습니다. 토마토에는 비타민 B가 많데요. 적혈구 합성과 DNA합성에
도움을 주는 성분이래요. 그래서 비타민 B가 많으면 피로
회복, 스트레스 회복에 도움이 되고 기억력 감퇴를 막는데 도움이 된데요. 섬유질이 풍부해서 숙변, 변비에도 좋고 피를 맑게 해줘 심혈관질환을
앓는 환자들에게도 좋답니다. 만병통치약같지요?, 라이코펜이란
성분이 많아 노화도 막아준데요(제가 그래서 안늙나봐요) 적당한
당도 있어서 일하다가 당 떨어질 때 먹으면 최고예요. 지난 수련회때도 텃밭 방울 토마토를 한자루 따갔는데
하나도 남김없이 다 드셨어요. 인기가 많습니다.
올해 심은 고추는 덜 매워서 인기가 특별히 많아요. 주일에
갖다 놓으면 식사때 거의다 사라져요. 텃밭에 투자하신 분들 정말 좋은 일 하신 거예요. 요즘 이제 막 나기 시작하는 게 있어요. 가지예요. 모든 사람이 가지를 다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가지를 채로 잘 썰어서 살짝 구운 후에 옥수수 피망, 이런 저런 야채 넣고 치즈뿌려서 살짝 익혀 먹으면 가지 그라탕이 되요. 간식으로도
최곱니다. 입에서 살살 녹습니다. 제가 누구라고 예기는 못하지만
그래서 텃밭에 가면 유독 가지만 따가는 사람도 있어요. 그렇게 먹는 것들만 인기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올해 이재원집사님이 국화와 맨드라미, 해바라기 꽃씨들을
많이 뿌렸어요. 요즘 하나씩 둘씩 피기 시작해요. 텃밭의
품격을 높여주고 있어요. 특히 이재원 집사님이 국화를 얼마나 애지중지 키우시는지 몰라요. 작년에 대국 보셨지요. 국화가 자라는데 대국처럼 꽃대 하나를 올려서
잘 키워 큰 국화를 보려면 손이 많이 가더라구요. 물도 거의 이틀에 한번 꼴로 주구요. 옆으로 올라오는 순을 일일히 하나씩 다 따주구요. 꽃이 잘 필 몽우리를
살려두고 그렇지 않은 걸 적당히 잘 가지쳐주셔요. 그걸 여러분들에게 하나씩 선물해 드릴려고 화분에 옮겨심었어요. 소위
그린 테라피 프로젝트에요. 식물과 꽃은 사람을 치유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잘
키워서 여러분 주변에 몸과 마음이 아프신 분들에게 나누어 드리라고 그린 테라피 프로젝트로 국화를 키우고 있어요.
이놈들은 우리에게 아무런 먹거리를 주지 않아요. 그래도 귀해요. 그냥 존재 자체로 그냥 그자리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귀해요. 어떤
존재는 풍성한 먹거리를 줘서 귀하지만 어떤 존재는 그냥 그 자리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귀해요. 흙은 흙대로
지렁이는 지렁이대로 거미는 거미대로 어느 것 하나 귀하지 않은 것들이 없어요.
사람들이 해충이라고 부르는 벌레들이 있지요. 사람입장에서는
그게 해충이지만 그 해충을 잡아 먹는 것들이 있지요. 대표적인 게 거미, 박새 요런 놈들이예요. 그 해충조차도 사람에게는 해충이지만 거미에게는
거미를 살려주는 생명친구들인 거예요. 그 거미들이 튼실하게 자라면 텃밭을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줍니다. 그래서 해충은 해충대로 귀해요.
심지어는 잡초들도 쓸모가 있습니다. 봄에 밭을 갈때만해도
밭이 무척이나 질었어요. 농사가 될까 싶었어요. 그런데 이
잡초들이 자라면서 흙을 무척 부드럽게 해주고 있습니다. 잡초들 생명력이 무척이나 강하잖아요. 아무리 뽑아줘도 뒤에서 따라오면서 자라요. 이놈들이 뿌리를 뻗히면서
작물들의 뿌리가 자랄 수 있도록 길을 내준데요. 그래서 적당한 잡초는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준데요. 그래서 잘키워 적당한때 잘 뽑아 흙에 쌓아두면 이중 삼중의 효과가 있습니다. 적당한
뿌리는 땅속의 길을 터주고 적당한 풀들은 흙을 덮어주면서 멀칭효과를 내고 나중에는 하나씩 다 분해가 되어서 거름이 됩니다. 봄에만 해도 흙이 질퍽질퍽해서 농사가 될라나 했는데 왕겨도 뿌려주고 풀도 메주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분해되고 공기층도 생기고 하면서 흙이 엄청나게 부드러워졌어요. 풀조차도 해충조차도 어느 것 하나 버릴게
없어요. 풀은 풀대로 벌레는 벌레대로 식물들은 식물들대로 텃밭에 있는 생명들은 귀하지 않은 존재들이
없어요.
텃밭의 생명들만 그렇겠습니까?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도 누군가에게는
가지 같은 존재이고 누군가에게는 오이 같은 존재이고 누군가에게는 국화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한다고 귀할 수도 있지만요. 때때로 존재자체만으로도
나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않아도 그저 그 자리에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힘이 되고 의지가 되기도 합니다. 사실
지난 한주간이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러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단 한번도 만난 적이 없던 그 사람이 저에게 특별히 어떤 걸 해 준 것도 아니고 말 한마디 따뜻하게 해준 것도 없는데 그저 그분은 그분 스스로 자신의 길을 걸어갔을 뿐인데 얼마나 저에게 힘이 되고 의지가 되고 삶의 희망이 되었었는지 돌아가신다음에야 알 수 있었습니다. 월요일 아침에 그분 사망 소식을 들었는데 갑자기 밑이 쑥 빠져나가면서 다리에 힘이 쫙 풀리는데 한동안 앉아있지도
못하겠더라구요. 저를 받치고 있던 어떤 큰 기둥 하나가 무너진듯한 느낌이었어요. 페북을 보는데 제 페북에 올라오는 거의 모든 글들은 추모글들이었어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의지하고 지지하고 응원하며 살았는지를 그분이 살아생전에 알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도 해보았어요.
아내가 어느날 꿈을
꾸고 일어나더니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고 대성통곡을 하면서 막 우는 거예요.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거예요. 이게 무순 뚱딴지 같은 소린가….장인어른은 제가 결혼도 하기 전에
돌아가셨던 분이예요. 아내의 장인어른에 대한 기억은 좋은게 하나도 없어요. 어릴때는 첫째라고 맨날 혼난 기억밖에 없대요. 대학가는 것도 반대하시고, 그렇게 고생하는데도 돈 한푼은 고사하고 말한마디 따뜻하게 해주신 적이 없대요.
이사람도 고집이 있어서 일주일에 라면 한끼 먹으며 살아도 집에 가서 도와달란 말을 안했데요. 고집이
센거죠. 그런 아버지인데요. 돌아가셨음에도 불구하고 밤마다
꿈속에 자주 나타나셨데요. 그런데 그렇게 울던날 꿈속에 아버님이 나타나셔서는 이제는 내가 떠나야 할
것같다고 하시면서 꿈속에서 진짜 돌아가신 거예요. 그날 이후로 아버님이 꿈속에서 나타나지 않으신데요. 아버님이 진짜로 돌아가셨다고 대성통곡을 하면서 우는 거예요. 그렇게
원망하고 미워하고 서운했어도 그때까지도 아빠를 잊지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이땅에
흔적없이 사라지신지 25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아내의 인생에 아버님은 큰 기둥이셨던 겁니다. 우리 각자가 누군가에게 다 그런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누군가에게 버팀목이고, 기둥이고 티격태격 다투며 좌충우돌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는 전부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은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훈련해야 해요. 한번뿐인
인생인데 너무나 많은 시간동안 비교하고 평가하고 자학하고 열등감에 사로잡혀서 너무나 많은 시간을 우울해하면서 살아가는 것 아닌가… 그냥 잘하면 잘하는데로 못하면 못하는데로 인정할 것 인정하고 스스로에게 당당하게 살아가면 되는데 쉽지 않아요.
이 문제에 대해 니체가 주는 조언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어요. 니체는
춤추는 신을 섬길 것 권합니다. 우리가 춤을 추려면 일단 몸이 가벼워야 해요. 낙타처럼 무거운 짐을 지고는 춤을 출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를
무겁게 하는 삶의 수없이 많은 중력들을 거스르는 힘을 키워야 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에게 이익을 끼칠 수도 있지만 본의아니게 해를 끼칠수도 있어요. 내가 열심히 살아도 그럴때가 있어요. 특별히 내가 잘못하지 않아도 때로는 갇힐 수도 있고 눈에 귀신이 쓰여서 안보일 때도 있고 깜빡깜빡해서 실수할
수있어요. 인간이 완벽한 동물이 아니잖아요. 하느님이 그렇게
만드셨어요. 내 책임이 아니예요. 하나 하나 실수하는 것에 목숨을 걸면 인생 못살아요. 차라리
솔직하게 인정하는 거예요. 부족함은 서로 채워주면 되는 거구요. 실수는
인정하고 책임지면 되는 거죠. 카드를 가게주인에게 주고는 계속해서 지갑에서 카드를 찾아요. 주인도 카드를 받아놓고는 잊어버린 거예요. 그러더니 이 카드가 맞아요? 근데 이 카드가 왜 제 손에 있지요? 그런데요. 이제는 좀더 지나가면 이걸 들고 이게 뭐하는 거지 하는 때가 올거예요. 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며 살아가는 거죠.
그래서 니체는 아모르파티 자신의 운명을 사랑할 것을 조언합니다. 운명론자
결정론자가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삶을 주어진데로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실수도 한계도 약한 것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면서 그 모든 것들을 주체적으로 긍정화시켜나가는 겁니다. 비가 오면 부침개를 부쳐 먹으며 놀면되고 눈이 오면 눈사람을 만들며 놀면 되고 바람불면 산위에 돌아가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살아가는 겁니다. 궂이 부정할 필요도 없고 숨길 필요도 창피할 필요도 없는 거죠. 아프다고 창피한게 아니예요. 아프면
내가 좀 아프니 조심해 달라고 하면되는 거고, 내가 불안하고 약해지면 내가 지금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약해지니 기도좀 해줘 하면 되는 것이고요. 어떤 사람은 공동체적인데 어떤 사람은 함께 있으면 에너지가 빠져나가요. 그러면 대화를 하다가도 내가 슬그머니 뒤로 빠져 집으로 가면 그런줄 알아 하면서 서로의 약함이 약점이 아니라
독특성이 되고 다양성이 되고 배려해야할 일들이 되도록 긍정화 시켜나가는 겁니다.
삶에는 좋은 것도 있지만 아프고 힘든 것도 있지요. 행복한
것도 있지만 불행하고 슬픈 것들도 함께 맞이하며 살아갑니다. 익숙하고 편한 것들도 있지만 낯설고 이질적이고
의문스러운 것도 있고 노력한 만큼 수확이 결실될 때도 있지만 삶이라는 것을 그렇지 않을 때도 훨씬 많습니다. 그
모든 순간을 인위적으로 거부하지 않고 회피하지 않고 부정하지 않고 오는데로 수용하고 긍정화시켜 어떤 상황속에서도 자기 즐거움을 놓치지 않는 겁니다.
오늘 성서의 본문을 보시면 예수님은 먹는 걸 무척 좋아하셨구요. 사람을 무척좋아하셨어요. 주변에는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과 함께 좋은 친구가 되셨어요. 예수님을 반대하던 이들도 인정했던 이야기예요. 왜 내 주변은 이렇게 지질히 궁상일까 하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시대의 모든 사회적 편견, 종교적 굴레 속에서도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며 시대의 가난한 이들과 아모르파티하며 삶을 축제화시켜 나가셨어요. 존재 자체는 어느 누구에게도 기적이요 신비입니다. 예수님처럼
자신의 존재를 마음껏 긍정하고 사랑하고 축제화하는 삶의 기적이 한주간동안의 우리들의 이야기가 될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