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P에서 청계천으로 가는 길에서 시낭송회를 하며
새로운 실험의 무대 같은 우주선 DDP(동대문디자인프라자)에서 행복클럽 모임이 있었다. 400mm이상의 폭우가 있을 것으로 예보된 날씨이다. 흐리고 찌프린 하늘은 그래도 비를 멈추고 있었다. 다행이 우리가 행사를 하는 동안은 비는 잠잠해 주었다. 행운을 얻은 것 같았다. 그러나 동료들은 서로 건강을 염려한다. 아픈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100세 시대에 여기서 머물러 앉을 수는 없다. 우리는 열심히 육신을 위해서 노력하고 시를 쓰며 정신적인 건강도 지켜야 한다.
원두막 / 거송 정재문
동구 밖
산 아래 우산
평화로운 원두막
바람에 초연히
드리운 문짝이 춤춘다
먹구름 뒤 태양은
수줍은 몸 감추고
소나기 한줄기 불러
참외 따던 굽은 허리
아낙네 쉬어라 하고
남정네는 밭고랑
참외를 구둬 들여
망태기에 담아 가며
우산 속 찾아드는
발걸음이 가볍네
길고 긴 여름 하루
종달이 울음소리
아지랑이 따라 흐르고
너덜이 밭 앞 저수지 위에
영롱한 무지개 속
원두막은 김이 모락모락 --
덩굴장미 / 채동규
세월이 빨라
유월의 문턱에 서다
푸른 울타리에
장미꽃이 피더니
햇볕이 그 양을
더해 가면서
울타리에
덩굴장미가 풍요롭다.
복숭아꽃 / 김동일
떨어지는 꽃잎이 서러우랴
내리는 비도
기꺼이 머금었으리
혹여 거친 바람에
흔들려도
설레었으리
비 멈추고 바람 지나가고
덩달아
화려한 시절 가버렸더라도
한나절 햇빛이 감싸고
나비가 날아와
나를 품어주니
꽃보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줄
뉘 알았으랴
저기 딸아이가 손주를 안고
활짝 웃으며 내게로 오누나
바다는 파도를 들고 / 한을(翰乙) 정 숙진
바다는
더위에 힘들어 하는 도시인들을
백사장 구석구석 따라 나와
어루만지고 다독이며 안아 줍니다.
빗물에 씻긴 뽀얀 구름은
보송보송한 얼굴로
미소 지으며 내려다 보는 바다 한 모퉁이에
세상사 찌듦과 아픈 영혼을
깨끗이 씻어 주고 닦아 줍니다.
무거움이 하얗게 부서져
두둥실 떠내려간 자리는
순간의 행복이 머물러 있습니다.
일상사 버거움을 한 여름에 털어 버리려
도시의 영혼은 여름 바닷가에 모여
빨강 파랑 무지개 파라솔로 가리고
조금씩 뱀 허물 벗듯
한 꺼풀 두 꺼풀 치유합니다.
여름풍경 / 최현근
매미는 낮잠 자고
포르르, 모래밭에 메뚜기 뛴다
신나라, 미역 감는 벌거숭이들
헤헤 하하 호호
아, 여름 해 쨍쨍
비어있음의 그 충만한 웃음이여
따가운 햇빛이
내 살에 그리는
황홀한 문신
꽃 춘투 / 서창원
복사꽃이 너무 빨리
들판을 달려오다
넘어졌다
깨진 상처에
반창고를 붙이고
담 아래 목련꽃도
반창고를 붙이고 있다
꽃들은
올봄
춘투로 모두 상처투성이다
울긋 붉긋
상처 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