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거사가 미륵보살에게,
"미륵보살님, 깨달음은 몸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또 마음으로 얻는 것도 아닙니다. 적멸이야말로 깨달음입니다. 그것은 모든 모양을 없앴기 때문입니다.모든 대상과의 관계를 끊었기 때문에 관찰하는 일이 없는 것도 깨달음이며, 생각이 없으므로 행하지 않는 것도 깨달음입니다. 그릇된 소견을 끊어 없앤 것도 깨달음이며, 망상을 떠난 것도 깨달음이며, 욕망을 막는 것도 깨달음이며, 안팎의 모든 경계에 탐착하지 않는 것도 깨달음이며, 진여에 따르는 것도 깨달음입니다. 사물의 본성에 머무는 것도 깨달음이며, 사물의 진실한 존재에 이르는 것도 깨달음이며, 마음과 마음이 파악하는 대상에서 떠나 분별하지 않는 것도 깨달음이며, 허공과 같아서 평등한 것도 깨달음입니다.
생하고 지속하며 멸하는 일이 없으므로 무위도 깨달음이며, 중생의 마음과 생을 아는 것도 깨달음이며, 안팎의 경계를 만나 거기 영향을 입지 않는 것도 깨달음입니다. 번뇌의 습성으로부터 떠나 있는 것도 깨달음이며, 취하거나 버릴 것이 없는 것도 깨달음이며, 항상 스스로 적정하여 혼란하지 않음도 깨달음입니다. 미혹을 떠난 경계도 그 본성이 깨끗하므로 깨달음이며, 반연을 떠났기 때무에 대상에 집착하지 않음도 깨달음이며, 모든 것이 평등하므로 다르지 않음도 깨달음이며, 비유할 수 없으므로 비교할 길이 끊긴 것도 깨달음이며, 모든 법은 알기 어려운 것이므로 미묘함도 깨달음인 것입니다." (유마경 보살품)
1) 깨달음에 대한 훌륭한 묘사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깨달은 또는 깨달은 뒤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지 깨닫는 순간의 행동이나 상태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2) 번역이 문제인지 원전 자체가 문제인지, 부정확한 표현이 눈에 띈다.
"허공과 같아서 평등한 것도 깨달음입니다." "모든 것이 평등하므로 다르지 않음도 깨달음이며..." --> 평등하거나 다르지 않음이 깨달음일 수는 없다. 사물을 평등히 대하거나 다르게 취급하지 않아야 한다고 알게되는 것이 깨달음이다.
"무위도 깨달음이며..." --> 무위가 깨달음이 아니라 그 경지에 오르는 것이 깨달음이다.
"비교할 길이 끊긴 것도 깨달음이며" --> 비교할 길이 끊긴 것이 아니라 그것을 끊는 것이 깨달음이다.
"미묘함도 깨달음인 것입니다." --> 미묘함이 깨달음일 수는 없다. 미묘함을 아는 것이 깨달음이다.
불교 경전이나 서적에는 이렇게 부정확한 표현들이 매우 많다. 모두 자연스러운 한국어에 맞게 고쳐야 한다.
(보충)
부처님이 보안 보살에게,
"깨달음을 성취한 보살은 법에 얽매이지도 않고 법에서 벗어나지를 구하지도 않으며, 나고 죽는 것을 싫어하지도 않고 열반을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소. 계행 가지는 것을 공경하지도 않고 파계를 미워하지도 않으며, 오래 수행한 이를 소중히 여기지도 않고 처음 발심한 이를 업신여기지도 않소. 왜냐하면 온갖 것이 모두 원각이기 때문이오. 이를테면 눈빛이 앞을 비추되 그 빛은 원만하여 사랑도 미움도 없는 것과 같으니, 그것은 빛 자체는 둘이 아니어서 사랑과 미움이 없기 때문이오. 보살과 미래 중생이 이 마음을 닦아 성취하면, 여기에는 닦을 것도 없고 성취할 것도 없을 것이오. 원각은 널리 비치고 적멸해서 차별이 없고. 이 가운데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불국토가 마치 헛꽃이 어지럽게 일어나고 스러지는 것 같아서, 합하지도 떠나지도 않으며, 얽매임도 풀림도 없을 것이오. 중생이 본래 부처이고, 생사와 열반이 지난밤 꿈과 같아 생가와 열반이 일어나는 것도 없어지는 것도 없으며, 오는 것도 가는 것도 없소." (원각경 보안보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