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만드는 꽃나무]
나는 아름다움을 만드는 꽃나무가 되고 싶습니다. 스스로를 곱고 아름다운 꽃을 만들어 전하는 꽃나무가 되고 싶습니다. 나도 그렇게 내면으로부터 아름다움을 끌어 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유년의 시간은 언덕위의 십자가를 달고 있는 교회당에서 울려주는 종소리가 내게는 유일한 소리였습니다. 그 종소리는 하늘나라가 언덕위에 있다는 것을 암시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욕심이 없는 나는 하늘나라보다 언덕위에 있는 목련꽃이 더 좋았습니다. 하늘나라보다 나는 개울가의 네잎클로버가 더 좋았습니다. 개울물속을 헤엄치는 물방개와 송사리들이 더 좋았습니다. 높은 데 있는 하늘나라보다 개울물속에 구름과 같이 빠져 있는 푸른 색깔의 하늘이 더 좋았습니다.
나는 그러한 자연 속에 아름다음으로 점점 달궈졌습니다. 교회가 있는 언덕은 나의 놀이터였습니다. 내 놀이터는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하느님이 하늘에 게시다는 것도 믿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하느님에게 아무 것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노는 것이 더 즐거웠습니다. 욕심도 없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가 맛있는 밥을 가득히 담아주었습니다. 나를 키워주는 것은 어머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꽃을 키우는 것이 봄이 듯이 어머님은 늘 나의 봄이었습니다. 언덕위에서 하늘이 제일 가까워도 나는 작은 내 초가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어는 봄날 목련나무가 꽃의 순결한 내면을 보여 줍니다. 자만이 없는 빛이며 숨김이 없는 순은의 빛에 세상이 한꺼번에 아름다워집니다. 그렇게 나는 당신에게 아름다운 빛의 내면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목련꽃은 고운 빛깔과 섬세함의 함축으로 무언의 색말을 전하는 생명의 원형입니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혼자서 보는 것이 불안했습니다. 나는 이때부터 내 곁에 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아닌 당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내게 아름다움을 주기도 하지만 아름다움을 가져가기도 합니다. 이처럼 서로의 나눔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있기에 나는 아름다움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아주 조금이지만 그래도 나를 행복하게 하는 희망이었습니다. 당신은 내 유년의 교회당 언덕에서 종소리를 울려두던 꽃나무가 틀림없습니다. 화사하게 꽃만 매다는 꽃나무가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