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법을 배워라.
몽테뉴와 죽음의 탈비극화
하루하루가 죽음을 향해 다가가고 마지막 날은 이에 다다른다. … 그대는 살아 있기 때문에 죽는다. 죽음은 병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그대를 죽인다. … 자연 자신이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용기를 준다. 짧고 격렬한 죽음이라면 우리는 두려워할 여유가 없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병이 깊어갈수록 어느 정도는 자연스럽게 삶을 무시하게 된다. … 우리는 행동하기 위해 태어났다. 나는 우리가 행동하며 삶의 직무를 연장하고 싶어 하고, 내가 배추를 심을 때 죽음이 찾아오면 죽음에 무심하며 다 일구지 않은 밭에는 더욱 무심하기를 원한다.
죽음은 삶의 계획 속에 새겨져 있고 삶의 자연스러운 결과다. 우리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죽는 게 아니라 생명을 지니기 때문에 죽는다. 죽게 마련인 우리의 삶은 세계의 조화와 마찬가지로 모순되는 요소들로 이루어진 기묘한 삶이다. 우리는 이러한 기묘함에 겁을 먹고 두려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으면서 이를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사유에서 두려움의 원인을 몰아내면 죽음은 모든 사유의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강박적이든 잠재적이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삶을 즐기지 못하게 방해한다. 그런데 삶의 가치는 삶의 길이가 아니라 삶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판단된다. 또 ‘어디서 끝나든’ 삶은 우리가 사는 매순간 속에 그대로 ‘완전히 존재한다’. 분명히 드러나든, 모습을 감추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에게서 자유를 앗아간다. 우리는 행동하면서 자유롭지, 자신의 두려움이나 다른 이들의 편견이나 의지를 따르면서는 그렇지 않다.
죽음에 맞서 우리가 지닌 최고의 무기는 죽음에서 낯선 면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는 죽음을 신뢰하면서 – 어느 순간에 죽음을 맞을지 모르는 만큼 언제나 떠날 준비를 갖추자 – 자연을 신뢰하면서 – 우리 의식은 자신에게 닥칠 죽음에 언제나 적응하게 마련이다 – 삶을 만들어가면서 – ‘삶이라는 직업’에 분주한 우리는 현재의 삶을 사는 것이다 – 사방에서 우리에게 묶은 매듭을 풀면서 우리 자신만큼이나 우리의 소유에도 초연하면서 이루어진다.
요컨대 우리는 사는 법을 배우면서 죽는 법을 배운다. 우리 자신을 통해 ‘인간 조건의 형식’을 이해하려고 하면서, 학식으로 거북해하지 않고 영혼에 앎을 통합하면서, 옛 저자들의 글을 읽고 이들의 경험을 통해 우리 자신의 경험을 빛으로 밝히고자 하면서, ‘세계라는 커다란 책’을 독파함으로써 우리의 정신을 고정관념으로부터 해방시키면서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죽음은 우리가 삶의 짜임 속에 그것을 포함시키는 순간부터 친숙해진다. 탈비극화된 죽음은 ‘적절한 삶’이라는 결정적인 목표를 실현하도록 우리를 도와준다.
죽는 법을 배워라.
그대는 인식 가능한 대상만 ‘배울’ 수 있고 죽음은 인식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대에게 자신의 영역 밖에 위치한 죽음을 배우는 일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대는 그대로 지내지는 못하고 죽음은 그대의 일이다.
그대가 배우지 못하는 일이 그대를 앗아갈 것이고, 그대의 마음은 두려움으로 가득 찬다.
미지의 대상을 ‘배우기’ 위해 그대는 인식 방법을 택해야 한다.
삶을 아는 만큼 삶이라는 방법을 통해 죽음을 대하라.
자신의 삶은 소멸하게 마련이라 생각하면서 그대는 현재의 행복에 합당한 가치를 부여한다.
현재에 존재하면서 그대는 삶으로 가득 차게 되며 따라서 죽을 준비도 갖추게 된다.
자신의 적응력을 지켜보면서 그대는 자신의 의식에 신뢰를 갖게 된다.
죽음의 위험이나 불치병에 맞서 의식은 그대를 이에 적응시켜준다.
자연은 성실히 일하므로 자연이 그대 안에서 할 일을 하도록 내버려두라.
죽게 마련이기 때문에 삶이 부조리하다고 여기는가? 그러나 삶은 짧기 때문에 가치를 지닌다!
재앙으로 죽을까 봐 두려운가? 의식은 악몽을 믿게 된다!
암에 걸릴까 봐 두렵거나 이미 걸려버렸는가? 각 운명은 유일하고 모든 의식은 적응할 줄 안다.
갑작스러운 죽음이 두려운가? 그렇다면 정말 잘못된 생각으로 이는 오히려 바랄 만한 행운이다!
건강한가? 기뻐하라. 그리고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는 생각하지 마라!
병에 걸릴까 봐 두려운가? 조심하라. 두려워하다 우려하던 일이 발생한다!
삶에 지쳤다고 느끼는가? 그렇다면 행동하라.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감내하기만 하면 삶은 피곤한 법이다!
근원적이며 본능적인 불안의 심연에서, 대중매체에서 전하는 모든 끔찍한 소식 너머로 나는 듣는다. “너의 삶을 이용해 죽음으로 하여금 네가 생명을 지니는 존재임을 느끼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