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명절도 코로나19 때문에 아무 데도 못 간다.
집에 누가 오지도 않는다. 엄마가 오지 말라고 하셨다.
너무 외로운 명절을 맞이하고 있다.
그때 그 시절 명절이 너무나 그립다.
명절 때가 되면 퇴소생 언니, 오빠들이 하나둘 찾아온다.
평소 보다 2배 이상의 음식을 해야 하니 일손이 많이 필요하다.
여자애들은 다들 식당에 모여 샘들과 함께 명절 음식을 준비한다.
다들 초등학교 때부터 일을 하도 많이 해서
손도 빠르고 정말 일을 잘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곰손인 나는
나보다 2~3살 어린 애들이 야물딱지게 전 부치는 걸 보며 감탄한다.
가난한 고아원도 명절엔 먹을 것이 넘쳐났었다.
정부에서(대통령 하사품), 이웃에서, 또 후원자들이 보내주는 선물로
정말 풍족할 때다.
게다가 퇴소생 언니, 오빠들이 놀러와서
세배를 시키고 용돈을 준다. 주머니가 두둑해진다.
몇 명이서 우르르 몰려가서 무조건 앉혀놓고 절을 하고 용돈을 강탈하는 경우도 있다.
10대 후반~20대 초반의 그들이 무슨 돈이 있다고 그렇게 인심을 썼을까.
아마도 그들은 명절을 손꼽아 기다렸을 것이다.
50원, 100원에도 행복해했던 자신의 옛날 모습을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퇴소생 오빠와 눈이 맞아 결혼한 애들도 몇 된다.
그때 우리들의 눈에 그들은, 너무나 어른스럽고, 멋있게만 보였다.
그때 평화의마을은 옛날 수용소식 건물 그대로라,
가운데 복도가 있고 양쪽으로 방이 있었다.
사무실 옆방이 1번 방, 그 옆으로 2번 방, 3번 방....
1층에는 10번 방까지 있고, 다 같이 모여 TV를 볼 수 있는 휴게실이 있었다.
(그 당시 다 함께 모여앉아 '토토즐', '전설의 고향'이나 미드 '브이'를 보던 기억이 난다.
무서운 장면이 나오면 여자애들은 눈을 가리고 보다가 소리를 꺅꺅 지르기도 하고,
남자애들은 일부러 뒤에서 놀래키기도 하고, 서로 싸우고, 때리고...
그러다 제일 큰 형이나 누나가 시끄럽다고 하면 또 조용해지고...
다 함께 TV를 보는 그 시간이 참 재밌었다.)
2층에는 11번 방부터 16번 방까지 있었는데
2층은 가장 오래된 보육사 선생님의 카리스마에 의해 거의 군대처럼 조직화되어 있었다.
막내부터 고3까지 위계질서가 딱 잡혀있어서 뭘 해도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어 냈었다.
명절마다 강당에서 열리던 "방별 장기자랑"
1등 상품이 뭐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어쨌든 각 방의 자존심이 걸려 있었다.
거의 한 달 전부터 저녁을 먹고 나면 각 방마다 장기자랑 준비에 열심이다.
노래, 율동, 연극 등 아이들이 다 준비하는데,
의상, 분장, 음향까지 어설프게나마 다 갖추었다.
다들 타고난 무대 체질이었다.
내 기억 속 최고의 공연이었던,
15번방 아이들의 "권총, 그것이 알고 싶다"
우리 부모님을 앉혀놓고 취조를 시작한다.
검사역할을 맡은 아이가 그간 권총에게 쌓였던 불만이나 사건들을 하나하나 짚어간다.
권총은 '예, 아니오' 로만 답할 수 있다.
자기들이 겪었던 일이라 다들 웃느라 정신이 없다.
옆에 앉은 우리 엄마도 당했다.
엄마는 '말순(끝순)'이라는 본명이 촌스러워서 '안나'라는 세례명을 쓰고 있었는데
본명이 그날 공개된 것이었다.
"권총 사모님을 우리는 지금까지 김안나 전도사님이라고 불러왔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는 그녀의 행적을 파헤치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김. 말. 순.
신분증에 적혀 있는 이 이름이 본명 맞습니까?"
그 어느 개그프로보다도 재미있었던 정말 잊지못할 추억이다.
검사역할을 맡은 아이는 지금까지도 친동생 이상의 관계로 항상 내 곁에 있다.
아빠가 평화의마을 총무에서 복지관으로 옮기신 후에는
명절이 되면 우리집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퇴소생들을 초대했다.
가장 오래 계셨던 15번방 선생님댁에 모이는 팀,
아빠 다음 총무님이셨던 최소자 국장님댁에 모이는 팀,
또 각자의 보육사 선생님을 찾아가기도 한다.
우리집에는 나와 함께 자란 시기의 퇴소생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다 내가 첫 아이를 낳은 후 엄마가 우리와 함께 살게 되고
아빠도 복지관을 그만두신 후 서울로 오시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최소자 국장님 댁에서 모임이 계속 되었다.
명절이 되면 시댁부터 갔다가, 다시 서울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대전에 가서
반가운 얼굴들과 함께 식사도 하고 얘기도 나누었다.
작년 설 이후 코로나19 때문에 지금까지 그 모임을 못하고 있다.
다시 모여 옛날 일 얘기하며 기쁘게 음식을 나눌 코로나 이후가 너무나 기다려진다.
첫댓글 권총 님, 행복하셨군요^^
눈에 그려집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2.02.12 13:26
네~ 맞아요^^
잘 지내셨어요?!
와우! 반갑습니다! 엄마랑 저희 가족 잘지내고 있어요~
@권총딸 오~~ 건강하시다니! 기쁘고 고맙습니다^^
내공 쌓아(?) 인도가자, 이후로 기독교백주년기념관에 한국 법인 만들 때 권총 님을 도왔지요^^
김조년 교수님과 함석헌 님 씨알 모임도 알고 참여하던 터라 공유점이 더욱 있었어요.
선생님의 아버님을 그리시는 그 마음...
글에서 평안 가운데 느껴요. 자녀님들의 삶을 응원합니다^^
ㅎ 맞아요. 공유점 많으신것도요.
응원감사합니다. 앞으로 뵐일 있겠지요?
@권총딸 ㅎㅎㅎ그럼 좋겠어요^^
만난다면 따뜻한 허브티 마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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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어머니께서 차를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