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100% 현미밥을 먹어야 한다.”는 글을 올리자 사람들이 다양한 반응을 보였기에 참고 하시기 바라는 뜻에서 사족을 다는 것을 양해 바랍니다. 금빛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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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미밥을 먹지 않았는 데도 건강하다.”
젊음과 건강이 천년 만년 지속이 된다면 아무 것이나 먹어도 상관이 없지만 언젠가는 기력이 쇠하고 늙어서 죽을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다. 그러므로 노년의 삶을 생각하여 건강을 비축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하고 지혜롭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현미밥을 먹지 않는 옆집 할머니는 100살이 넘었는 데도 병도 없이 건강하다.”
선천적으로 건강을 타고난 사람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백미밥보다 더한 밥을 먹고, 봉지커피를 하루에 100봉을 먹고, 황토를 주식으로 먹어도 상관이 없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그런 사람들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바보놀음일 수밖에 없다.
“얼마나 오래 살겠다고 맛도 없는 현미밥을 먹으라는 것인가?”
행복하려면 죽기 직전까지 건강할 수 있어야 한다. 암과 지병에 시달리고 치매에 걸려서 가족을 모두 고생시키고, 있는 돈 없는 돈을 의사에게 바쳐가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보다 더한 불행은 없다. 현미밥은 장수가 목적이 아니라 건강수명을 늘리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요즘은 노후 건강을 위해 건강보험에 드는 일이 유행인데 백미밥을 먹으면서 보험에 드는 것은 바보짓일 수밖에 없다. 보험보다 현미밥을 먹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이고 지혜롭기 때문이다. 보약은 밥을 잘 먹고 잘 소화시키기 위한 것일 뿐이다. 현미밥을 상식하는 것이 보약을 먹는 것보다 훨씬 더 좋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현미가 거칠고 맛이 없다고 생각되면 현미를 구입할 때 현미찹쌀을 함께 구입하여 밥을 지을 때 섞어서 밥을 짓고, 현미를 하루 전에 물에 담가 두었다가 지으면 더욱 부드럽게 먹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아드레나린을 걱정하기도 한다. 밥을 맛있게 먹어야 엔돌핀이 많이 나오는데 현미는 부정심이 작용하기 때문에 아드레나린으로 인해 오히려 더 해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맛의 본질을 모르기 때문이다.
맛은 음식을 기분 좋게 먹게 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이다. 맛이 목적이 아니라 좋은 기분과 긍정심을 갖게 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이다. 현미를 긍정하는 경우에는 맛에서 생기는 아드레나린보다 훨씬 더 많은 엔돌핀이 발생하여 아드레나린을 상쇄시키게 될 것인데 그 매카니즘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부자병 성인병 국민병>의 글을 읽은 사람치고 현미가 백미보다 훨씬 더 좋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현미는 세계가 모두 인정하고 과학으로도 충분하게 밝혀져 있기 때문이다. 다만 맛이 없고 거칠어서 먹기가 쉽지 않고 편하지 않아서일 뿐, 현미 자체의 유용성이 부정될 수는 없다.
이런 경우에 인간의 의식은 현미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의식은 자의식(自意識)과 잠재의식으로 존재하고, 잠재의식은 자의식을 통해서 녹화된 자의식의 복사판이다. 무의식도 존재하지만 건강과 직접적인 영향이 없으므로 무의식에 대하여는 제외한다.
현미가 좋다는 것은 자기도 모르게 잠재의식에 녹화가 되는데 그 이유는 글을 읽으면서 현미를 긍정했기 때문이다. 만인이 공감하는 지식과 상식은 거부가 거의 불가능하여 본능적으로 잠재의식에 녹화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맛이 없고 거칠다는 부정적인 생각은 어떻게 될까?
부정적인 생각도 잠재의식에 당연하게 녹화된다. 그렇지만 현미에 대한 부정심은 개인적인 생각이고 지엽적인 생각에 불과하여 집단의식화한 긍정심보다 강할 수는 없다. 현미는 네거티브보다 포지티브가 훨씬 더 크고 강하기 때문에 현미를 싫어하고 부정하는 사람도 인체에 더 유익하게 작용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맛은 음식을 목구멍으로 넘기기까지의 느낌으로 위장으로 들어간 후에는 사라지고 마는 순간적인 의식이고 쾌락일 뿐이다. 맛은 음식이 섭취되어 생명의 원천으로 작용하는 시간 동안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음식은 섭취가 중요한 것이지 맛이 더 중요할 수는 없다. 맛이 음식을 섭취하는 수단과 방법이라면 섭취는 목적에 해당된다. 순간적인 맛보다 몇 천배나 더 긴 섭취를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맛과 섭취를 돈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맛이 섭취를 위한 수단과 방법이듯이 돈도 세상을 살아가는 수단과 방법일 뿐이다. 맛과 돈에 현혹되어 세상을 사는 사람은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알지 못하는 인생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맛이 악의 원천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예수가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을 구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석가가 “5욕(욕심)은 물론 7정(감정)까지도 버려라.”고 가르친 것은 맛이 미욕(美慾)을 유발하고, 미욕이 욕심을 창조하고, 욕심이 악의 원천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맛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국민의 절반 이상이 종교인이라고 하는데 욕심을 드러내어 권장하는 종교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도 TV는 맛타령을 경쟁적으로 보도하기 일쑤인데 그것은 욕심과 악의 부추기가 아닐 수 없다.
맛타령을 보도하는 TV의 PD들도 절반 이상이 종교인일 것이다. 종교인은 비종교인과 어깨를 겨루면서 맛타령 보도에 경쟁해서는 안되는데도 천편일률적으로 맛만을 보도하고 있으니 유감이 아닐 수 없다.
PD들이 음식을 맛있게 하는 식당을 보도할 일이 있을 때는, 화장실과 조리실의 위생 상태를 보도하고, 식재료 사용과 종업원의 처우와 복지를 소개하고, 업주의 가정을 방문하여 가정화목과 자녀교육을 위해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함께 보도하여 국민을 선도하고 계도시키는 역할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금빛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