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도그마에서 벗어나는 법]
좀더 유연하고 겸손하게
고재섭(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상임이사)
음식 도그마에 눈뜨다
자연의학을 공부하고 음식의 중요성을 알게 되면서,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연구해 왔습니다.
어떤 음식이 좋다 또는 나쁘다고 판단하는 버릇 또한 자연히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저의 판단에 근본적인 회의를 품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2009년 경북 영양에 귀농하였을 때였습니다. 겨울이었습니다. 이웃 주민들의 초대로 멧돼지 등 사냥한
짐승을 종종 먹게 되었습니다. 경북 영양은 오지이지만, 저희가 사는 곳은 영양에서도 오지였습니다. 겨울철에 아무런 것도 생산되지 않고 주위에 가게
하나 없는 이 산골에서 사냥한 짐승은 마을 주민들의 중요한 양식이었습니다. 이분들의 음식을 보면서 이분들의 식생활이 이곳 환경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겨울을 고려치 않고 이분들에게 채식을 권하는 것은, 비닐하우스를 세워서 가온을 해서라도 농작물을 생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에스키모인들에게 채식을 권하는 것처럼 생뚱맞은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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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험이 계기가 되어 음식의 또다른 차원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음식이 건강에 더 유익한가로만
음식을 판단하는 것을 벗어나, 환경 또한 매우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조금 더 살펴보니, 경제 등의 여건 또한 음식의 좋고 나쁨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저는
컵라면을 좋지 않은 음식이라고 생각해왔고, 컵라면을 먹을 때면 죄의식을 느낀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1000원의 돈밖에 없는 노숙자에게는 한끼를
때우는 데 컵라면만큼 좋은 음식이 있을까요?
음식 도그마가 갖고 있는 문제들
우리는 정치나 종교에서처럼 음식에 대해서도 어떤 신념을 지닐 수 있습니다. 어떤 음식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나와 나의 이웃 그리고 지구에 이로운 음식은 어떤 음식인지 하는 생각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반복되는 학습과
경험에 의해 강화되어 신념이 됩니다. 콜레스테롤은 나쁘다, 소금을 적게 먹어라, 육식을 줄여라, 탄수화물은 해롭다, 밀가루 음식을 삼가라 등등. 이러한 신념은 삶에 중심을 잡고 살아간다는 확신을 주기도 하고 선택에 따른 고민을 없애주는 편리함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념이 지나쳐 도그마(dogma)가 되면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 앞서 말한 것처럼 환경, 종교, 전통, 경제 등 다양한 맥락에서 음식을 고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하고 편협한 시각을 갖게 될 수 있다는 점,
둘째, 우리 인체는 개개인마다 독특한 생화학적 개성(biochemical
individuality)이 있으며, 따라서 인체가 음식을 소화 흡수하는 능력이나, 필요한 영양도 서로 다를 수 있는데 이를 간과하고 자신의 경험을
모두에게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점.
셋째, 내가 갖고 있는 음식에 대한 생각이나 필요한 음식도 관련 정보의 습득 그리고 시간의 경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영구하게 적용시킴으로써 발전의 기회를 가로막을 수 있다는 점,
넷째, 생활하다 보면 가끔 자신의 도그마를 스스로 실천하지 못할 때가 있는데, 이때 스스로에 대해
지나치게 강한 부정적인 감정을 갖게 된다는 점,
다섯째, 부모들이 이런 음식 도그마를 갖고 있을 때, 부모가 금지하는 음식을 숨어서 몰래 먹는다거나
폭식하는 등, 자녀들의 식생활이 나빠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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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음식 도그마 점검
내게도 음식 도그마가 있을까요?
다음과 같은 성향이 있는지 점검해 본다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가. 다른 사람들이 청하지 않는데도 음식에 대해 조언한다.
나.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내 방법의 식사법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 내 방법을 따르지 않는 사람을 나쁜 사람이거나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라. 건강을 위한 식사법이 오로지 하나라고 생각한다.
마. 나의 식사법은 의심없이 정확하다는 확고한 태도로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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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도그마에서 벗어나려면
1. 겸손한 태도를 지닌다. 말하기보다는 조금 더 들으려 하고 가르치기보다는 조금 더 배우려 한다면
음식에 대한 태도뿐만 아니라 삶 자체도 더욱 유연해지고 풍성해질 것입니다.
2. 몸의 이야기를 듣는다. 손발이 차갑다거나 에너지가 부족하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등의 증상이 있다면,
몸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더 많은 탄수화물이 필요하거나 지방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3. 열린 마음의 힘. 나와
의견이 다른 친구를 두십시오. 도전받을수록 나의 역량도 커질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입니다. 완전하지 않습니다.
* 이 글은 팔당생명살림생협에서 발간하는 소식지 "팔당! 살림살자" 2017년 봄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