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3장 34-35절 우리들의 사랑법
어제 고구마 캐시느라 고생들 하셨습니다. 오늘 가실 때 모든 분들에게 고구마 나누어 드립니다. 고구마를 심고
캐신 분들도 토요일인데도 일하신 분들도 저마다의 모습으로 몸을 돌보거나 마음을 돌보거나 고3수험생을
위해 애쓰신 분들, 누군가를 섬기신 모든 분들은 저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하느님 나라를 섬기신 아름다운
모습들입니다. 하느님이 주신 귀한 열매는 열심히 하느님 나라를 섬기신 모두에게 주시는 은총의 선물입니다. 똑 같은 고구마도 교회 고구마는 더 맛있습니다. 일주일만 숙성 시키십시요. 그러면 물기가 좀 마르면서 당도가 많이 올라갑니다. 맛있게 드시면서
더 아름다운 사랑을 이루십시요. 우리가 함께 나누며 바라는 건 딱 한가지입니다. 좀 더 아름다운 사랑를 이루십시요.
지난 주에 파주 곡릉천으로 가람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생태기행을
다녀왔습니다. 2시간 반정도 곡릉천 일대를 돌아다니고 마지막으로 산에 올라가 한강과 습지 일대를 보고는
밥먹으로 갔으니 산에 올라간 시간대는 프로그램 거의 끝날 무렵이었습니다. 산 중턱에 올라가서 아이들과
함께 구경을 할려고 하는데 한 남자아이가 훌쩍 훌쩍 우는 거예요. 보통의 경우 애들끼리 장난치다가 밟거나
툭치거나 그래서 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워낙에 출발할 때부터 말을 안들었던 아이들이라 이때쯤이면 선생님들도
피로감이 조금은 밀려오고 보통 일어나는 일들을 상식선에서 판단하기 쉬운 때입니다. 출발때부터 선생님
설명하는데 간식 까먹으면서 떠들지요, 내려서 망원경으로 보라고 하면 잠깐 보고나서는 다른 아이들 보는
시간에 서로 치고 받고 툭툭치죠. 괜시리 또 본다고 애써 맞춰놓은 망원경 다리를 건딜어 망가뜨리죠. 그렇게 조용히 하라고 새들 도망간다고 다른 사람들 보는데 방해되니 조용히 하라고 해도 옆에서 신나게 신발 던지기
놀이를 하지 않나 ㅎㅎㅎ 괜히 산에 오르내리면서도 남자애들이 여자애들 툭툭 치면서 괴롭히지를 안나 치고 도망가지를 않나 그러면서 누군 때리고 누군
울고 불고 난리나고. 이게 애들이요. 갑자기 한 아이가 막 훌쩍 훌쩍 우는 거예요. 누구에게 맞았겠거니 하면서 물어봤더니 대답을 않해요. 집중하고 설명해야하는데
한쪽에서는 시끌시끌하면서 한쪽에서 울고 그러면 이쯤되면 반드시 선생님 한분이 신경질을 내면서 화내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요. 센터장님! 고단수에요. 선생님 선생님 울게 내버려둬요. 울고 싶을때는 실컷 울어야 돼요. 그러더니 그냥 놔두시는 거예요. 이 아이가 왜 울었을까요?
남자아이에다가 고학년이예요. 나중에 달래서 내려가면서 이야기하는데 아이가 고소공포증이 있었던 거예요. 그
자리에서 꿈쩍도 못하고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울기만 하는 거예요. 옛날에 고소공포증이 있는 청년과
산에 한번 간적이 있었는데 차를 타고 산정상까지 가는데 창문밖을 보지를 못하더라구요. 젊고 튼튼하고
등치도 좋거든요. 그런데 발발발 떨면서 애가 되요. 당사자는
매우 심각한데 옆에서 보는 사람은 놀리고 싶어요. 보통 이런 상황이 닥치면 아이들과 하루 있으면서 쌓여왔던
경험치로 그 상황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쉽게 윽박지릅니다. 싸운거 아니냐, 누가 때렸냐, 누구
그랬냐, 더 나가면 너 니가 그랬지 하면서 엄한 사람 도둑놈으로 모는게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센터장님 쉽게 넘겨집지를 않아요. 끝까지 기다리구요. 끝까지
물어보시고 끝까지 소통하시더라구요. 한번도 기다릴 줄 알고 한번더 물어볼 줄 알고 한번더 소통할 줄
아는 지혜가 전혀 예상치 못한 경험속에서 벌벌떨고 있는 한 아이의 아픈 가슴을 만져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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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예수님 이야기는 돌아가시기 전에 고별설교를 하면서
제자들에게 하신 마지막 부탁이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께서는 이 부탁을 하시기에 앞서서 자신이 손수 무릎을 꿇고 한사람 한사람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었습니다. 발을 씻어주는 행위는 종이 주인에게 해 주는 행위였습니다. 제자가
스승에게 해 주는 행위였습니다. 요한 복음은 영적인 책인데 참된 영성의 핵심으로 사랑이라 가르치는 책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이냐 기존의 종교적 질서와 관념 통념을 뒤집는 사랑입니다. 날때부터 소경된 사람은 날때부터 죄인인 사회입니다. 그러나 날때부터
소경된 자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이건 하느님의 섭리와 뜻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진정한 성전은 예루살렘에만
있어요. 예루살렘성전에서 제사를 드려야 진정한 제사인 세상에서 예루살렘에서 제사를 하든 저 사마리아
수도에서 제사를 하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수 만 있다면 니가 서있는 곳이 곳 교회다라는 말씀도 하십니다. 존경과
사랑은 아이가 어른에게 하는 것이고, 제자가 스승에게 하는 것이고 종이 주인에게 하는 것인데 그 판을
뒤집습니다.
내가 자발적으로 낮아져서 타인을 섬기고 돌보고 존중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근데 중요한게 있습니다. 가난도 내가 당하면 비참합니다. 그런데 선택한 가난은 당당합니다. 나는 부자로 떵떵 거리며 살고 싶은데 미국 몬트레이라는 도시에 가면 바닷가가 자기 개인 소유지에요. 나는 그런 곳에서 낚시나 하면서 해수욕이나 하면서 썬텐이나 즐기면서 살고 싶은데 먹고 살기 위해서 매일같이
태양볕에 밭에 나가서 일해야 한다면 그게 지옥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농촌으로 내려가서 누가 등 떠미는
것도 아닌데 수없이 많은 날들을 새벽같이 일어나서 수천평 옥수수 농사 지으면서도 만나면 생태 농업에 대해 날새는 줄도 모르면서 이야기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른 교회에서 오라고 해도 가지도 않아요. 더
좋은 조건에서 더 많은 사례비를 주고 하고 싶은데로 목회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해도 스스로 고된 노동과 가난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발적인 선택에는 긍지와 자부심과 나름의 철학이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자발적으로 존중하고 먼저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자가 되라는 겁니다.
여러분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진다라는 책을 보니까
이민규라는 심리학자가 그런 말을 해요. 정말 그 사람을 바꾸고 싶으면 그 사람을 좋아하래요. 정말 좋아하래요. 사람들은 올바른 말을 하는 사람들의 말을 절대
듣지 않고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의 말을 듣는데요. 매사에 사사껀껀 내 눈에 걸리는
사람을 좋아하는 건 자존심도 상하는 것 같기도 하고 비굴해지는 것 같기도 하죠. 그런 사람을 좋아하는
일에 도전해 보라는 겁니다.
내가 그 사람을 정말로 좋아해 보십시오. 더 많이 웃어주고 더 많이 안부를 묻고 필요에따라 챙겨주고 식사에 초대하고 떡이라도 하나 더 생기면 챙겨주고
관심같고 예기 들어주고 어떤 듣기 싫은 이야기도 들어줘보세요. 제가요 지금까지 뭔가를 지속적으로 챙겨준
사람치고 저를 싫어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더라구요. 반드시 그 사람은 나를 좋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내 편으로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여러분 스포츠에서 상대편을 이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뭔지 아십니까? 여기는
박찬호가 있고 저기는 선동열이 있는 거예요. 요즘은 류현진인가요? 두팀이
천적이예요. 그래서 앙숙처럼 만나기만 하면 싸워요. 상대
팀을 확실하게 이길 수 있는 방법 박찬호 팀에서 선동열까지 사와서 우리팀 벤치에 앉혀 버리는 겁니다. 그
모든 적을 자기 편으로 만들어버리면 경쟁할 일도 없고 싸울일도 없고 그 모든 사람은 삶의 자산이 되어 버리는 거죠.
신앙생활 특별한 거라 생각하지 마십시요.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해도 아무리 열심히 하나님 믿고 살아도 봄에 뿌린 씨앗 봄에 거둘 수 없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기도하고 매달려도 뿌리지 않은 씨앗에서는 절대로 싹이 나지 않습니다. 성실한 땀과 노력없이, 애정과 신뢰, 존중없이 관계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마리아복음서에서 말하는 안트로포스
/ 신앙생활은 참 인간의 길을 걸어가는 성실한 걸음 속에서 맞이하는 세상입니다.
관계에서 마음의 결들을 들여다 보면서 소통하고 기다리고 한번 더 존중하면서 안트로포스 참 사람의 길에 더 깊어지는 이 가을이 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