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숙영의 회복적 생활교육 이야기 66
‘복도에서 뛰지 않기’의 성찰
약속이란 학교 공동체의 공유된 가치를 드러내는 긍정적인 행동을 말한다. -케이 프라니스
규칙은 깨지기 마련이다. 변화는 복잡한 과정이어서, 변화는 관리되지 않으면 언제든 이전 습관대로 돌아가게 된다. 규칙이나 약속도 내면화되기 위해서는 관리가 필요하다. ‘복도에서 뛰지 않기’라는 당연해 보이는 규칙에 대해 세 가지 측면에서 성찰해 볼 것이다. 이를 통해, 관성의 법칙에서 벗어나서 변화를 어떻게 이끌어 올수 있을지 탐색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측면, ‘복도에서 뛰지 않기’가 공동체에 주는 유익
‘복도에서 뛰지 않기’의 유익은, 무엇보다 '안전‘이다. 복도에서 뛰다가 다른 사람과 부딪치거나, 미끄러져 부상을 입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예방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부딪쳐서 괜한 싸움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도 예방한다. 복도는 통행 공간이다. 안전한 걷기로 통행이 원활해질 수 있다. 쉬는 시간에 독서나 공부로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배려할 수 있다. 쉬는 시간마다 붕 떠있는 분위기를 침착하게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매번 학생들이 뛰지 않도록 잔소리해야 하는 교사의 에너지도 절약하고 교사는 좀 더 의미 있는 일에 힘을 쏟을 수 있다. 누군가 뛰면 너도 나도 뛰는 조급한 문화가 형성되기도 하는데, 뛰지 않으면 오히려 여유로운 마음가짐을 가지는데 도움이 된다.
두 번째 측면, ‘복도에서 뛰지 않기’가 지켜지기 어려운 이유
‘복도에서 뛰지 않기’가 많은 유익이 있는데도 아이들은 왜 뛰는 걸까? ‘복도에서 뛰지 않기’가 학교에서 지켜지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아이들은 성장과정 상 뛰고자 하는 욕구는 본능이어서 통제되기 어려운 부분이다. 뛰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래서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복도에서 뛰고 싶은 욕구는 말릴 수가 없다. 그런데다가 학교엔 놀이 공간이나 휴식공간이 부족한 편이다. 헌데, 최근 신축한 학교의 복도는 뛰기 좋게 넓게 만들어져 있다. 빡빡한 학교 일정도 문제다. 쉬는 시간이 짧아서 아이들이 운동장까지 가서 놀다 들어오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미세먼지까지 심각해지면서 아이들이 실내에 머무는 시간들이 늘어나고 실내놀이 공간은 부족하다. 교사들의 일관성 없는 지도와 교사마다 다른 기준도 문제가 된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누군가 때리고 가면 곧바로 쫒아가서 때려 줘야 한다. 그 외에 다른 방법을 잘 모르는데 그것도 문제다. 교실을 이동하고 돌아올 때, 서로 알게 모르게 먼저 일등으로 들어오려고 경쟁하는 분위기가 있다. 경쟁문화에 젖어버렸다. 누군가 뛰면, 아이들은 덩달아 같이 뛴다. 주변 영향을 많이 받는다. 교사들도 바쁘다고 하며 복도에서 자주 뛴다. 우리는 어느 새 바쁘고 여유없는 삶의 문화에 젖어 있다.
세 번째 측면, 잘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지원과 도움이 가능할까?
교사차원에서 ‘복도에서 뛰지 않기’의 규칙이 잘 지켜지도록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약속한대로 뛰지 않고 걷는 사람을 인정해주거나 칭찬해준다. 학급 학생들에게도 “우리 반은 잘 걷는 것 같아. 그래서 고마워”라고 간혹 긍정적인 피드백을 해준다. 뛰는 문제가 심각하다면 교사들 간에 모여 문제를 논의하고 동일하고 일관되게 지도한다. 복도 바닥에 “예쁜 발걸음의 시작”이라는 발판을 만들어 붙여놓는다. 수업시간과 쉬는 시간을 잘 지켜주어서 쉬는 시간을 침범하지 않도록 유의한다. 걷는 것의 좋은 점을 함께 나눈다.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무의식적으로 “빨리 다녀와라”라는 재촉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수업 끝! 중간 놀이 시작!” 또는 “타이머 10초 전, 5초 전” 등과 같은 경쟁을 자극하는 교사의 말이나 패턴을 돌아보고, 멈춘다. 대신에 “천천히 마무리하자”와 같은 속도 낮추는 언급을 자주 한다. 복도에 볼거리인 만화나 도서를 비치해두거나 의자를 놓아서 뛰기보다 멈출 수 있는 물리적 환경을 마련한다. 학생들과 함께 ‘복도에서 뛰지 않기’의 유익과 지키기 어려운 문제들을 허심탄회하게 나누고 할 수 있는 약속들에 대해 서클 방식으로 성찰 시간을 갖는다.
약속은 공유된 가치를 드러내는 긍정적인 행동
약속은 공유된 가치를 드러내는 긍정적인 행동들이다. 어떤 규칙은 너무나 당연해 보여서 협상 불가한 것도 있다. 그러한 규칙일지라도 그 의미를 발견하고 되돌아보는 것은, 지켜야만 한다는 책임감이나 당위성에 의존하는 것보다 힘이 있다. 앞서 언급했지만, 학급의 규칙이나 약속은 깨지기 쉽다. 학기 초 학급학생들이 모두 즐겁게 기대하는 마음으로 규칙과 약속에 합의했다 하더라도 관리되지 않으면 곧 깨질 수밖에 없다. 교사의 시선은 아이들이 규칙이나 약속을 어기는지 아닌지 감독‧감시하는 데 먼저 머물지 않는다. 교사가 우선적으로 신경 써야 할 것은, 학생들이 규칙을 잘 기억할 수 있도록 학급 규칙의 내용과 의도를 자주 떠올려 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학급 구성원들 모두가 규칙이나 약속을 세웠을 당시의 생각과 감정에 다시 머물도록 한다. 규칙들은 평소의 생활패턴과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많다. 그래서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복도에서 뛰지 않기’도 그렇고, ‘뒷담하거나 욕설하지 않기’와 같은 규칙들도 그렇다. ‘복도에서 뛰지 않기’는 ‘복도에서 안전하게 통행하기’로, ‘뒷담하거나 욕설하지 않기’는 ‘공감적으로 솔직하게 말하고 듣기’로 긍정적인 행동을 배우고 내면화하기 위한 시간을 마련한다. 뒷담으로 인한 문제가 늘어나고 있다. 학생들이 왜 뒷담을 하는지 살펴보면,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 한 사람을 희생양 삼거나, 누군가에게 화가 난 마음을 공감받고 싶어서이다. 친밀한 관계를 맺는 긍정적인 방법, 화가 날 때 이해받고 위로 받을 수 있는 공감의 방법들을 배울 기회가 필요하다.
이러한 접근을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어둠과 싸우기보다 빛을 확장하기’이다. 우리 삶에는 빛과 어둠이 있다. 삶의 죽음, 선과 악, 날숨과 들숨, 성공과 실패, 밀물과 썰물, 말하기와 듣기…. 온전한 삶의 모습은 이러한 역설을 품고 있다. 빛을 가져오려고 어둠과 싸우지 않는다. 빛을 가져오기 위해 빛을 확장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빛에 집중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빛 속에 머물게 될 것이다. 선순환이다.
마무리
‘복도에서 뛰지 않기’라는 규칙을 들여다보니, ‘복도에서 뛰는 행위’는 개인의 성향이나 욕구에만 관련되어 있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인적 요인뿐 아니라 학교구조적인 문제와 경쟁적이고 여유 없는 우리 사회문화와도 깊게 연동되어 있다. ‘삶의 여유 갖기’, ‘경쟁보다 함께 가기’의 노력은 알게 모르게 ‘복도에서 뛰는 현상’도 해소해 줄 것이다.
첫댓글 새학기 꼭 필요한 글이었네요. 글을 읽으면 좋은 방법들이 마구 마구 샘솟아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