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0%입니다. 문법적으로 잘 맞지도 않는 이 이상한 문장은 지금은 서른 살이 넘은 딸이 대학 입학 지원서에 자신을 소개하는 에세이의 제목이었다. 생물학적으로는 엄마가 한국인이고 아빠가 백인이니 50% 더하기 50%해서 100%여야 한다. 하지만 사람을 평판할 때 생물학적인 면보다는 그 사람의 문화적 배경이 더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 된다고 가정을 한다면 딸아이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즉 자신은 문화적 배경이 100% 한국인이며 동시에 100% 미국인이니 200%라는 것이다. 대단한 자신감이다.
딸은 어렸을 때부터 한국노래, 옛이야기들을 들으며 자랐고 다섯 살 때부터 한국 고전무용단에 들어갔다. 이후 대학 갈 때까지 고전무용을 배우며 자연스럽게 한국문화와 역사에 접하였다. 당시만 해도 아이들이 미국 사회에 살면서 한국에 대해 듣고 보는 건 제한이 있었고 그나마 긍정적인 것은 별로 없었다. 나는 아이에게 한국에 대해 좋은 것만 가르쳐 주리라 결심했다. 그렇지 않으면 딸아이가 어떻게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데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겠는가. 미국인으로 사는 건 어차피 미국인 아빠 밑에서 미국 사회에서 자라고 있으니 따로 가르쳐 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남편은 웬만한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 역사에 대해서는 억지로 학교에서 배워야 했던 나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 '전략'이 유효 했던지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니면서부터 친구들에게 자신을 한국 애라고 소개하고는 했는데, 친구들은 백인 얼굴을 가진 애가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말하는 걸 하나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걸 보며 역시 아이들은 피부색에 대한 선입견이 없다고 생각했다. 주위의 어른들이 피부 색깔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가르쳐 줄 때 까지는.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전학을 갔는데 그 학교에는 한국인은 고사하고 동양인조차도 별로 없었고 유색인종 자체가 드물었다. 새로운 학교 같은 반에 한국 애가 한 명 있었다. 우리 아이가 전학해 오자 그 애가 제일 먼저 달려와 친구가 되었다. 재미있는 일은 우리 아이를 방과 후 자기 집에 초대했다. 그 친구 엄마가 애들을 데리러 갔는데 우리 아이를 아무리 찾아도 안 보여서 자기 딸에게 물어보니 바로 그 옆에 서 있었단다. 한국 애라고 자기 딸에게 들었는데 미국 애가 서 있어서 몰랐다며 한참 웃으며 나에게 얘기해 줬다.
어떻게 똑같은 아이를 아이들은 순종 한국 아이라고 의심 없이 받아들였고 한국 어른들은 당연히 백인 아이라고 단정 지었을까. 그만큼 우리는 우리만의 생각에 갇혀 아이들처럼 순수하게 그 아이 자체를 보아주지 않고 어른들의 잣대로 판단하기에 그런 일이 생기는 것 같다.
딸아이가 자기 소개 하는 에세이에서 주장하고 싶었던 것은 많은 타인종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미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타인종에 대한 지식과 이해 그리고 편견을 가지지 않은 열린 마음인데 자신은 자라온 가정환경 덕분에 누구보다도 그걸 잘해 낼 수 있다는 거였다. 당연히 그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고 이 사회를 잘 이끌어 갈 수 있는 그런 리더들을 찾아서 키우고 싶은 대학 측에서 듣고 싶어 하는 말이었을 게다. 뛰어나게 학교 성적이나 SAT 성적도 높지 않고 과외활동은 많이 했지만 특별한 상을 받은 적도 없었다. 그런데 무난하게 원하던 대학에 합격한 걸 보면 그 에세이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나도 딸아이도 지금까지 생각한다. 그러니 다민족 가정에서 자라난다는 것은 이렇듯 쉽게 간과해 버리면 안 되는 장점이 있다.
내가 살아온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나는 항상 나 자신을 증명해 가며 살아야 했다. 한인사회에는 아직도 '국제결혼'한 여자들에 대한 편견이 곳곳에 남아있다. 사실 국제결혼이라는 단어 자체도 내 경우에는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나는 결혼 당시 법적으로는 미국인이었기에 타인종 간의 결혼(interracial marriage)이라고 해야 하지만 그게 다른 사람들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한편 미국 주류 사회에서는 동양 여자들에 대한 그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이 잘못돼있는 거라고 깨우쳐 주며 평등한 대우를 직장이나 사회에서 요구해야 했다. 더구나 내가 장장 31년이나 몸담아 일했던 직장은 특히 내 직업이 당시에는 거의 전부 오만한 백인 남자들 위주였기에 쉽지 않았다.
나는 주위에서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경험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지금도 나는 누가 나를 차별하는 듯 하는 말을 하면 촉각을 세우고 싸울 준비를 한다. 그들은 그런 나를 보며 자격지심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과연 그게 사실일지는 본인들만 알 게다. 어쩌면 자신들이 자각조차 못 할 수도 있다. 요즘처럼 인종 간의 갈등이 많은 사회에서 분명한 것은 우리는 열린 마음으로 타인종에 대해 배우고 이해하고 서로 감싸며 살아가야 더 좋은 사회 건강한 사회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항상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 사실을 기반으로 한 것인지 확인해 봐 가며 어린아이들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했으면 좋겠다. 더 이상 몰이해와 편견으로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남을 아프게 하는 사람들이 없어지는 날이 올 때를 기대해 본다.
딸은 학교를 졸업한 후 세계 굴지의 기업 인사과에서 근무하며 지구 곳곳에서 찾아오는 지원자들을 고용하는 일을 하고 있다. 딸이 열린 마음을 가지고 공평하게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있으리라 믿는다. 아마 그 회사가 딸을 고용한 것도 그 애의 그런 면을 봤기 때문일 것 같다. 그런 딸이 얼마 전 임신을 했는데 사위와 함께 내게 청탁을 해왔다. 아기가 태어나면 꼭 한국어만 사용해 달라고 말이다. 내가 딸을 키운 방식으로 손주에게도 그 사랑을 전하리라 생각하니 벌써 기분이 흐뭇해지며 어깨가 무거워져 온다. 지난 30년간의 변화와 앞으로 손주가 장성할 때까지의 변화에 맞추어 아이를 키우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