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시간이 없다는 핑게로
글나루의 서평과 소식지 게재를 못했습니다.
늦었지만, 오늘부터 정리해서 차곡 차곡 올려 나가겠습니다.
많이 밀려서이기도 하지만
서평1과 2 두편만 따로 따로 올리면서
서평을 찾아 읽기 쉽게 단순화 하겠습니다.
이전에 서평집 18호까지 올렸기 때문에 그 다음호인
19호인 2009년 7월의 서평1부터 올리겠습니다.
<문화사랑방 인서점>의 글나루 도사공 아저씨 심범섭 올림
글나루 19호------------------------------------------------------
85) 09, 7월 <글나루> 서평1
체 게바라의 영혼을 찾아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 (구광열 지음) 실천문학사
인구의 80%가 혼혈인 중남미, 그러나 막상 그들의 성과 이름은 모두.. 그렇다 모두가 아니 100%가 백인들의 성과 이름이다. 그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중남미는 결코 백인들의 세상이 아니다. 어찌 된 일인가. 이유는 단순하다. 혼혈 1세대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을 병기했지만 세대를 거듭하면서 어머니의 성을 버리게 되었으니 아버지의 성만 남게 된 것이다. 왜? 마음 속으로 백인이기를 바랬거나 아니면 백인들에게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과연 뉘 탓인가. 우리도 한 때 창씨개명이 유행했던걸 어찌 잊으랴 만서도 말이다.
체 게바라의 체취가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는 쿠바, 특히 체의 묘지가 있는 산타클라라엔 체가 혁명동지 피델 카스트로에게 남긴 편지글 석상이 있다. 체는 이 글에서 ‘우리가 나누었던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은 가능성이 아니라 모두 현실이었다’며 ‘혁명을 할 때 수 많은 동지들이 승리를 향해가는 길목에서 숨지지 않았는가’라고 형명동지 피델에게 진지하게 묻고, 이제 그 때처럼 다시 죽음을 짊어지고 쿠바를 떠날 때가 되었음을 밝힌다. 그러면서 ‘내가 어디에 있든 민중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가야 할 길임을 밝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나를 아들로 받아준 쿠바 민중의 곁을 떠나지만’ 그럼으로써 오히려 “나는 내 영혼의 한 쪽이 찢어지는 아픔을 위로 받을 수 있다고 보네!” 라고 혁명동지인 피델 카스트로와 쿠바민중과의 마지막 이별의 비장한 각오를 다진다. 권력을 얻고자 한 것이 아니라 단지 민중을 사랑하는 마음 그 것뿐이 혁명투쟁의 목적이었음을 피델 카스트로에게 행동으로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랬다. 어쩌면 87년 6월 민주항쟁과정에서 우리의 젊은이들이 그랬듯이 말이다.
쿠바혁명 이후 카스트로와 함께 쥐고 있던 1인지 하 만인지상의 권력을 고스란히 쿠바 땅에 내려놓고 아니 민중에게 반환하고 혁명이 기다리는 새로운 땅 콩고로 떠난다. 그러나 한마디 더 다짐하듯 카스트로에게 남기는 말을 잊지 않는다. “그들이 먹고 교육 받고 살아가는데 ‘국가가 뒷바라지 할 것’이기에…”라는 말로 자신이 여전히 혁명동지인 피델을 믿기 때문에 그 믿음을 전제하고 새로운 혁명의 땅을 찾아 떠날 수 있음을 밝힌다. 그랬다. 참으로 멋있다. 자랑스럽다. 진정한 혁명가의 모습이 이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영광과 영화를 미련 없이 내려놓고 그가 새로운 혁명을 찾아 떠날 때 누군가 체 게바라를 향해 말했다. ‘씨를 뿌리고도 열매를 따 먹을 줄 모르는 바보……’라고. 체가 대답했다. “그 열매는 이미 내 것이 아닐 뿐더러…” 라면서 여기에 한마디 더 덫 붙인다. “아직 씨를 뿌려야 할 곳들이 많다네!”
체 게바라가 그렇게 쿠바를 떠난 후 숱한 고난을 겪어 낸 끝에 1967년 10월 9일 13시 10분이었다. 한방의 총소리가 들렸다. 아! 이 위대한 혁명가 체 게바라, 그러나 그는 허무하게도 그가 그렇게 사랑했던 한 민중이 단지 몇 푼의 상금을 받기 위해 신고함으로써 그리고 그의 아비에 마리오 테란이라는 사람에 의해 사살되었다. 그 때 체 게바라의 나이는 39세였다. 극히 짧았으나 세계가 그의 생애를 찬양했듯이 그는 우리 지구촌의 영원한 지평 위에 생애를 묻었다. 인류의 영원한 담론 혁명의 씨앗으로 흩뿌려 졌다. 그래서 일까. 오늘 세계의 젊은이들은 체 게바라를 생각의 품에 품고 있지 않았는가. 마치 무슨 예쁜 꽃씨처럼 말이다.
하여간, 체 게바라의 사살은 체가 그렇게 저주했던 제국주의 미국은 물론 세계의 경악 속에 사실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그가 남긴 홀쭉한 배낭에선 ‘색연필로 덧칠한 지도’와 ‘두 권의 비망록’과 그리고 ‘노트 한 권’이 발견되었는데 ‘두 권의 비망록’은 <체 게바라 일기>로 간행되었으나 어쩐 일인지 ‘노트 한 권’은 지난 40년 동안 베일에 싸인 채 우리의 기억에서 까맣게 잊혀져 가고 있었다.
이 책은 우리가 그렇게 잊었던 ‘한 권의 녹색 노트’에 빼곡히 적혀 있던 시 69편과 이 시들이 왜 체 게바라의 사랑을 받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시인들은 어떤 사람들인지를 추적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체가 엄청난 독서광이었을 뿐만 아니라 체가 단지 이런 시편들을 읽고 감상한 것만이 아니고 시를 썼던 시인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그 시들이 체 게바라의 생각을 생성해 나갔다는 것을 차곡차곡 밝혀 나가고 있다. 이 시들이야말로 그래서 체의 생각과 사상과 철학이 담긴 마음이며 영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책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에서 읽어 내야 할 것은 그 무엇도 아닌,제국제의가 작동하고 있는 인종 문제다. 체 게바라가 죽음을 짊어지고 뛰어든 곳, 혁명의 전장은 바로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현지의 인디오나 흑인종을 노예나 성노리개 또는 상품이나 청소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백인들의 반 인간적인 제국주의적 인식의 바다였으며 인간을 단지 자연으로 보고 있는 인종의 숲이었다. *
이 글은 아저씨의 서평이 흔히 다른 언론에 게재 되듯이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09, 7월호 ‘인서점아저씨의 <글나루>란에 게재된 원고의 초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