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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석 작가시대 현역 육군소령 시절 등단 1959~1981 필명 韓史郞 육군준장 전역 1981~ 이후 박경석 | ||
1981년 7월 31일. 47세 한창나이에 전두환의 12.12 군사반란 직후, 정치군인과 결별, 8년차 육군준장의 군복을 벗고 전업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내가 전업작가의 길을 선택한 내면에는 요지경 속보다 더 황당한 정치군인의 실태를 작품의 소재로 활용해 진실을 밝혀 정의를 되찾아야 되겠다는 의지가 숨어 있었다. 백의종군 이순신처럼 정의로운 험로를 향해 뚜벅뚜벅 걷기로 했다. 이무렵 현충사 은행나무는 애티가 송송 흘렀지만 지금은 몰라보게 자랐을 것이다. | ||
시인 소설가의 길에서 | ||
1985년 3월 22일 서울 엠버서더호텔 대회의장 일붕 서경보 스님으로부터 일붕문학상 시부문 대상을 받는 나 박경석. 이어서 소설부문 대상도 받았다. 두 장르의 수상 작가는 내가 유일하다. 삼국사기에는 신라의 볼교가 종교적 가치관보다 국가 보위를 위한 호국 신념이 더 깊게 취급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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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가을. 한국문인협회 시화전 문인협회 시화전에서 내 작품 '천년송' 앞에서 기념 촬영. 오른쪽 부터 나 박경석, 손소희 소설가, 예총 회장 조경희 수필가. 김병권 수필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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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 ||
전역 후 대학교에 적은 두지 않았지만 서울대,이화여대를 비롯, 몇개 대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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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가을 세종문화회관 왼쪽은 당시 문예진흥원장으로 재직중인 작가 송지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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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펜클럽 대회에서 조병화 시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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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세미나에 참석한 나 박경석. 박태진 시인과 대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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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단 화요회 맴버들이다. 영등포역 롯데백화점 내 중국음식점 만리성에서 연말이면 회식을 가졌다. 화요회 정회원은 신동한(평론), 구인환(소설), 홍승주(희곡), 윤병로(평론), 홍윤기(시), 박경석(시), 이영걸(시), 이동희(소설). 이상 연령순. 초청자인 내가 중앙에 있다. 두 여인은 옵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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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으로부터 한국문학평론가협회 회장을 역임한 원로 평론가 신동한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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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진구 자양동 한양아파트 집필실에서의 나. 이곳에서 부터 부정(不貞)한 아내와 헤어져 독신 생활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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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군과 문단 두 모임에 적극 참여하고 있었다.
군사평론가협회.한국군사학회 창립 | ||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4층, 한국군사평론가협회 및 전우신문사 사무실 현판 앞에서의 전우신문 회장단. 오른쪽으로부터 전우신문 부회장 김동호, 다음이 나 박경석 군사평론가협회 및 전우신문 회장. 다음 석정원 전우신문 부회장. 다음 박종화 전우신문 편집국장. 나는 무보수 봉사직으로 월요일에만 출근해 일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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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전쟁기념관 내 한국군사평론가협회 및 한국군사학회 회장실에서 회의 주재하는 나.(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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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P.E.N클럽 학술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하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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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P.E.N대회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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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을 벗고 전업작가로 변신 후,재충전을 위해 외국을 여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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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군 장교군번 1번의 이형근 장군(좌측)과 당시 합참의장 정호근 장군(중앙)과 함께 촬영한 기념사진이다. 이형근 장군은 육군참모총장과 합참의장을 역임했다.
화가인 아내와 함께 시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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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김혜린과 시인 박경석. 화가 김혜린은 이화여대 미대 출신으로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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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앞에서의 박경석 시인과 김혜린 화가
두 사람 가운데에 있는 아래 그림 두 작품은 김혜린 화가가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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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문학,군사학 전공의 나와 아내 김혜린 화가는 각기 창작활동에 바쁜 한해였으며 성과도 컸다. 이 의미있는 한해를 보내면서 세모를 맞아 소년시절 조치원 고향 친구였던 이른바'竹馬故友' 인 전 목원대학교 유근종 총장을 비롯하여 대전고교 선배인 최극 작가, 군사평론가 이선호 박사, 군사평론가 정창인 박사를 광화문 일식집에 초대 식사를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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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상록수 시절의 나. 집필에 몰두 하느라 상록수에서 꼬박 10년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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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석 시비 '횃불이어라' 제막식 행사에서. 오른쪽 나 다음이 내 직속상관이었던 이별형 장군, 다음이 박정인 장군. 내 바로 옆 진한 회색 차림이 이병형 장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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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정보학교 교가 작사 기념으로 교장 은용석 준장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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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세미니를 마치고 만찬 리셉션에서의 나. 일본인 다나카히사히로 박사와 친교 | ||
1988년.저명 일본인 예술가 다나카히사히로 박사와 나. 일본인 유일한 친구이다. 나보다 연상이지만 매우 가깝게 지낸다. 그는 한국을 무척 사랑한다. 이 사진은 서울 한식점에서 폭탄주를 만들기 위해 소주잔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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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거북선 전시실에서의 나와 다나카히사히로 박사(왼쪽에서 두번째). 그는 일본인이지만 이순신 장군을 숭배한다고 했다.그 는 이순신에 대한 일본측 기록을 모아 나에게 주어 나의 이순신 연구를 도왔다.특히 일제시대 만주 일대에서 우리 독립운동가와 독립군 소탕작전을 감행, 학살을 일삼았던 관동군 예하 조선인의 '간도특설대'의 자료를 제공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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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벳부온천장에서의 나와 다나카히사히로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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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예술인 '다나카 히사히로' 박사 (오른쪽) 일행을 위한 오찬. 1990년.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프린세스 레스토랑 왼쪽 홍윤기시인,유희남 작가 25년 후의 대전에서-다나카와 나 28년 후의 대전에서-다나카와 나 이 사진 이후 다음 해인 2018년 봄 다나카 박사의 사망 소식에 접했음. 그는 마지막 만남에서 비로소 자기가 백제인의 후손임을 고백했다. | ||
국제 P.E.N 대회에서, 중앙 미국 대표와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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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참전시인협회장 당시의 나. 오른쪽 문중섭 장군, 왼쪽 이병기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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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 시인과 함께. 내 왼쪽 이승은 시인, 오른쪽에 신순애 시인 하나건너 이정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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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국도 문산 못미처 통일공원에 건립된 박경석 시비 '횟불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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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PEN대회 참석차 다이베이에 도착. 왼쪽 문정희 시인. 오른쪽 김여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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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LA 한국인 교포 문인들이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한 후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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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문학회는 각 장르 별 충청문학상을 시상한다. 나는 시부문 대상에 이어 소설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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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인협회 시화전에서의 나. 라스베가스. 그랜드캐년. 요세밋 | ||
군복을 벗은 뒤 한때 머리를 길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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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뿐만 아니라 세계의 관광 명소로 꼽히는 국립공원 그랜드캐년에서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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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1999년 미국 그랜드캐년에서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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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켈리포니아주 요세밋 국립공원에서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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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겨울 요세밋 국립공원에서의 나 폭음시절 | ||
문인들과 술판에 어울리다 보니 체중이 10Kg이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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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문인들과 폭음하는 것이 일상처럼 이어졌다. 색안경을 끼고 오른쪽에서 폭소하며 서있는 나 박경석. 내 앞에 신동한 평론가, 내 왼쪽에 장백일 평론가. 이어서 구경서 시인. 민용환 시인 등이 보인다.
문학상 수상 | ||
한국전쟁문학상 시부문 대상을 수상 후 수상소감을 말하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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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PEN클럽 학술회의에 한국대표로 참석하고 있는 박경석, 이기진, 박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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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한국전쟁문학상 시상식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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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PEN클럽 학술회의 한국대표로 참가 후 만찬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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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서울대학교 앞 마당인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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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충전을 위한 외국 여행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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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PEN대회에서 여류 작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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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문학상 수상식에서의 수상자 박경석. 송원희. 그 옆 조경희 예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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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베이 국제PEN대회에 참가한 한국의 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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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호텔 전쟁문학상 시상식에 참석한 역대 전쟁문학회 회장들 오른쪽부터 홍익대학교 문과대학장 윤종혁 전 회장 예비역 육군소장 문중섭 전 회장 박경석 당시 회장 송병철 전쟁문학회 사무총장.
문학상 시상 | ||
전쟁문학회 회장인 내가 김두조 시인에게 국제 안중근 의사상 수상 전쟁문학 유공 | ||
계룡대 지상군페스티벌 특강 | ||
계룡대 육군본부 주최 지상군페스티벌 행사에 초청받아 [전쟁문학]특강 차 방문한 나와 아내를 마중나온 두 장군과 대령 일행과 기념촬영. 전역 후 35년 만의 모군 방문이라 각별한 감회를 느꼈다. 2014년 10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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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은 특강과 질의응답 등 당시 강의장 이모 저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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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석의 문학세계 | ||
박경석 소설문학의 바탕에는 긍정적 철학관에다 밝은 미래에의 간구가 깔려 있다. 특히 그는 31년간의 군 지휘관 생활을 통해 고난의 길을 걸어왔다. 육사 생도시절부 터 한국전쟁에 참전했는가 하면 베트남전에서는 저 유명한 맹호사단 초대 在求大隊長 으로 참전하여 발군의 전공을 세워 전쟁영웅이라는 명성까지 떨친 바 있다. 따라서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심리적 충격 그리고 조국에 대한 충정, 민족적 양심과 역사의식을 가지고 한 시대를 증언하고 있다. 박경석의 소설문학은 그의 시문학과 달리 서정성 보다 리얼리티에 더 중점을 두고 있 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소설을 통해 많은 애국지사나 이른바 군신(軍神)으로까지 일컫는 희생정신의 화 신(化身)들을 발굴, 오늘의 민족정기 함양에 기여하여 왔음은 그의 통찰력을 알게 하 는 한 사례가 될 것이다. 가령 장편소설 <묵시의 땅>을 통해서 우리나라 최초로 김좌진 장군의 위업을 세상에 알렸는가 하면 장편소설 <별>을 통해서는 6.25전쟁의 초기 위기를 극복케 한 김홍일 장군의 역사적 대첩을 발굴 세상에 알렸다. 또 그의 소설을 통해 맹호사단 초기 파월을 위한 훈련 중 부하를 살리고 순직한 강재 구(姜在求) 소령의 살신성인(殺身成仁)을 일깨워 온 국민의 감동을 불러 일으키는데 크게 기여 하였다. 특히 대하실록소설 <그날>과 <따이한>은 오늘날 전쟁문학을 하는 많은 문학인들에 게 전쟁소설의 원전(原典) 역할이 되어왔음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장편소설 <행복의 계절>에서는 그가 군부정권에 항거하여 순탄한 불의의 영달의 길 을 포기하고 험난한 길이지만 정의를 선택한 사례에서는 고개가 수그려드는 숙연함이 온 몸을 감싸고 만다. 박경석의 시가 서정성이 돋보이는 순수 시문학이라고 지칭한다면 그의 소설문학은 조 국애에 포커스를 맞춘 전쟁문학의 진수라고 표현할 수 있다. 박경석은 6.25전쟁 및 베트남전 두 전역에 참전,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화랑무 공훈장 등 11개의 각급 훈장을 수훈하였음을 첨기한다.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윤병로 [출처] 한국소설가협회 NAVER사이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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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문학관 전시의 글(위)과 사진(아래) | ||
2015년 12월 31일 편집완료 |
세계한글작가대회
2015년 9월15일~18일 경주에서
대회 전야제에서 여류작가와 함께 (화백컴벤션센터) 전야제 작가 환영 공연 |
오동춘 시인(문학박사)과 함께 |
박영숙영 재미 시인과 함께 현대시인협회 송해일 이사장과 함께
문정희 한국시인협회 이사장과 함께
컴벤션센터 로비에서 |
첫댓글 < 여성 시인들>에게 포위 당해 찍은 사진... < 박경석 장군님>의 모습이 부럽습니다.
< 박경석 장군님>은 참 복도 많으시지요 !
여성 시인들이 장군님을 포위한 것은... < 지성, 야성, 감성> 을 갖추신 < 원조 얼짱 님>
이시기 때문 일 것입니다.
자주 방문해주시어 고맙습니다.
과찬의 글, 부끄럽게 간직하겠습니다.
장군님의 사진을 쳐다보다가..
박 정인 장군님의 모습이 보이네요..
백골 사단의 살아있는 귀신,,이라는 별명,,
아마 영원하리라 생각합니다.
사단 병력을 몰고서
혼자서 전쟁을 만들려고 했던 장군님.
김일성을 환장?하게 만든 장군님이지요..
미국에 빌붙어 살아야했던..그 시절,
손바닥을 비빌줄 모르고..
혼자서 책임을 뒤집어 쓰시고....
대한민국 영웅중의 한분 이시지요..
만약에...
박 경석 장군님과 박 정인 장군님이..
다음 세상에 건달?로 태어난다면...
```한분은 시라소니..
``한분은 김두한이 될지도 모릅니다...
존경의 표현을 웃는 개그로 표현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박정인 장군이 별세하셨습니다.
참 군인이었지요.
군복을 벗고 문학의 길로 들어선 것은 축복이었다.
보람찬 하루하루를 보낼수 있었다.
한국의 여러 문학의 장르에서 나를 반겨주었다.
많은 책을 냈지만 자비 출판의 경우는 거의 없었다.
네 권의 베스트셀러 행운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