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에 암기 할 詩(91)
가을날
라이너 마리아 릴케
(Rainer Maria Rilke 1875-1926)
김주연 옮김
주여. 시간이 되었습니다, 여름은 아주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던지시고,
평원에는 바람을 풀어줍소서,
마지막 열매들을 가득가득 하도록 명해주시옵고,
그들에게 이틀만 더 남녘의 낮을 주시어,
무르익는 것을 재촉하시고
무거워가는 포도에 마지막 달콤함을 넣어주소서.
이제 집이 없는 사람은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도록 살 것이며,
깨어 앉아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나뭇잎이 구를 때면 가로수 사이를,
이리저리 불안하게 방황할 것입니다.
◇ 시인에 대하여 ◇
모든 시인 중의 시인, 릴케 윤동주는 <별 헤는 밤>에서 별 하나에 릴케의 이름을 붙여주었고, 김춘수는 <릴케의 시>라는 시를 지어 릴케를 기리기까지 했다. 뿐만 아니라 김수영은 릴케를 ‘시인 중의 시인’이라 극찬한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릴케론>을 외워서 읊을 정도라고까지 말했다. 이처럼 릴케 시는 우리나라 문학계를 이끌어온 시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시인으로, 지금도 여러 사람에게 많은 시가 애송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