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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시도되는 '다신전' 해부> ② '다신전'이 오늘의 차인들에게 주는 메시지 만들고, 물 끓여, 달이고, 마시는 법 까지 세세연연 변치 않을 덖음 녹차의 진수, 덖음 차 품평의 진수 차문화유적답사기 저자 김 대 성
몇 년 전부터 ‘차 품평(品評)’이 대유행이다. 차전문 대학원에서도 정식과목으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는 실정이다. 어느 곳에서든 성질 급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중국으로 건너가 사진 몇 장 찍고 급조된 자격증을 받아 와서 목에 힘을 주는 자칭 차전문가들이 활개를 치는 세상이 되 버렸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자격증을 받기위한 중국관광까지 모집되고 있다. 차 품평이 낳은 서글픈 현실이다.
한국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차 중심 거리. 서울 인사동 찻집에 들어서면 전에는 들을 수조차 없었던 야릇한 소리가 귀에 그슬린다. “쓉, ㅆ~ㅂ” 아무리 좋은 점수를 주려해도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다. 뜨거운 국물이 있는 음식을 먹을 때 혀와 입천장 목구멍 등 입안의 여기저기를 데이지 않기 위해 입술을 오므리며 숨을 들이 쉴 때 자연스레 나오는 본능적인 소리를 인위적으로 내기 때문이다.
“쉬~입 씌~ㅂ” “후~루 후~르 ㅆ~ㅂ” 이 소리는 차에 관심을 가진 차메니아라면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소리다. 전문적으로 차를 품평하는 전문가들이 맛과 향을 품평하기위해 찻물을 혀 바닥 아래에 잠깐 머물게 하다가 목구멍으로 제 빨리 빨아 당기는 순간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소리이다. 일반인은 잡아 낼 수없는 은밀한 차의 맛과 향을 꺼 집어내기위해 차품평이라는 직업이 만들어 낸 소리다. 품평하는 자리에서나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하는 소리를 찻집에 앉아 듣기는 좀 그렇다. ‘내가 차를 품평할 수 있는 정도의 전문가요’하고 한번 봐 달라고 폼 아닌 폼을 잡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음식을 먹을 때 씹는 소리, 쩝쩝거리거나 훌쩍거리는 소리 등은 옆의 사람을 아랑곳 하지 앉는 제멋대로 된 사람의 행동이라고 했다. 기본예의와는 거리가 먼 쌍스런 짓이라고 교육받아 왔다. 여염집 사람들은 음식을 먹을 때 자연스레 나오는 이런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수없이 듣고 자랐다.
문화란 엄격한 의미에서 예의이다. 언제부터인지 차문화가 모든 문화의 바탕이라고 큰소리치던 차전문가들이 찻자리에서 차를 마시는 소리가 공해중의 공해가 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반성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차전문가라기 보다는 사이비가 아니면 얼치기 찻군들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유의 차전문가들이 활개를 치는 곳은 서울 인사동 뿐 아니라 전국의 차 중심가라는 곳에서는 흔히 들을 수 있는 풍경이다.
최근에는 만나는 사람마다 “차를 품평하는 지름길의 안내서가 있는가”고 물어 온다. 나는 그때마다 다음과 같이 대답을 한다. “떡차(團茶․固定茶)에 관해 알고 싶으면 육우가 쓴 '다경'을 통째로 달달 외우십시오. 그냥 암기가 아니라 잠꼬대 같이 줄줄 나오도록 말입니다. 또 일본이 자랑하는 다도, 즉 말차나 점차(點茶)는 송나라때 황제인 휘종(徽宗)의 '대관다론(大觀茶論)'을 중점적으로 읽으시오.
요즘 한․중․일에서 유행하는 덖음녹차는 지금 이 난에서 중점을 두고 거론하고 있는'다신전'을 진지하게 한자도 놓치지 말고 어느 대목을 물어 오더라도 답할 수 있도록 공부하십시오. 또 전국을 유행병처럼 휩쓸고 있는 중국이 자랑하는 명차 보이차와 청차류는 '다경'과 '대관다론' '다신전'을 합쳐서 참고하면 훌륭한 교과서가 될 것 입니다”라고 답해준다.
그래도 이 공부가 조금이라도 복잡하고 미심쩍다는 생각이 들면 “중국말을 배워 직접 중국에 가서 시험을 쳐 중국의 차전문가도 어렵다며 고개를 흔드는 제1급 국가자격증을 받으면 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나의 조언을 듣는 이들은 입을 딱 벌리면서 ‘뭣이든 하루아침에 되는 건 없구나!’라며 목소리에 힘이 없어진다. '다록(茶錄)'의 정식 제목은 '장백연 다록(張伯淵 茶錄)' '다신전'의 원전, '다록'은 중국 명나라때 쓰여진 덖음녹차(炒靑綠茶)의 진수가 실려 있는 명저 중의 명저다. 여기서 우리는 먼저 '다록'을 쓴 장원(張源)이란 이름을 가진 저자에 대해 알아보고 넘어가야 한다. 장원에 대한 기록은 충분치 않아 좀 더 상세히 공부를 하려는 후학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장원의 자(子)는 백연(伯淵), 호는 초해산인(樵海山人) 포산(包山) 등을 쓰고 있다. 지금의 중화민국 강소성(江蘇省) 진택현(震擇縣) 태호(太湖)의 서쪽 호숫가에 몸을 반쯤 담그고 있는 동정서산(洞庭西山)에서 살았다. 생몰(生沒)연대도 확실하지 않다. 다만 고대전(顧大典)이 소장한 '다록'의 서문에서 ‘그는 산 속에 은거하면서 다른 일은 하지 않고 매일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진리를 탐독하고 있다. 휴식을 할 때는 샘물을 떠서 차 끓이기를 즐긴다’고 대략적인 것만 기록해 두었다. 『다록』의 저술 년도만은 1595년으로 분명하다.
지금까지 발견된 '다록'의 간본은 명나라때 유정(喩政)이 1613년(明 萬曆 40년)에 '다서(茶書․일명 茶書全集)'에 갑본(甲本․1614년)과 한해 뒤에 을본(乙本)을 편찬했다. '다서'에는 그 때까지 출간된 육우의 '다경'을 비롯한 역대 차에 관한 책 28종이 편집되어 있다. 이 책은 일본 국립공문서관과 중국 남경도서관에 각각 소장되어 있다. 을본은 갑본을 증보한 것으로 갑본에 없는 '장백연 다록' '다고(茶考)' '다설(茶說)' '다소(茶疏)' '다해(茶解)' '몽사(蒙史)' '채단명별기(蔡端明別記)' '다담(茶潭)' 등이 실려 있다.
그리고 초의스님이 칠불암에서 베껴온 '만보전서'의 '채다론(採茶論)'은 서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인 '고서(古書) 10-20-49'의 '경당정정(敬堂增訂) 만보전서'를 전사(轉寫)한 것이다. 소장본의 겉장에는 ‘시도소조천(矢嶋小助川)’이란 일본사람의 이름이 쓰여 있다.
또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장원의 '다록'은 1990대 말 중국 남경도서관과 연결이 되어 남경까지 찾아가 어렵게 복사를 부탁했으나 그때는 중국과 우리의 국교에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며 정중하게 거절당했다. 그러다 2005년 봄에 지인을 통해 일본 동경도서관에서 지난 1988년 12월 급고서원(汲古書院)이 발행한 '중국다서전집'(편자 布目潮渢 누노메 쵸후․1919~2001)이란 책, 상(上) 하(下)를 찾아내 어렵게 전사를 해 소장하고 있다.
23편으로 구성된 '다록' 본문 1347자, 제목 68자 등 모두 1415자 현재 태평양 디아모레 뮤지엄에 소장되어 있는 '다신전' 가로 14cm, 세로 23cm 크기의 한지에 누가 베껴 썼는지를 알 수 없는 필사자가 분명하지 않으나 우리나라에서는 하나 밖에 없는 귀한 것이다. 「채다론(採茶論)」이란 제목 아래에 ‘만보전서에서 베낌(抄出 萬寶全書)’라고 써놓고 있다. '다신전'은 전체를 22편으로 나누고 22편의 소제목 50자 본문 1363자와 초의스님이 '다신전'을 엮은 이유를 밝힌 발문 98자 등 모두 1520자가 7장의 분량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꼼꼼하게 붓글씨로 쓰여 있다.
'다신전'의 원전인 '다록'은 「장백연 다록(張伯淵 茶錄)」이라고 쓴 제목 아래에 줄을 바꾸어 ‘명포산장원백연저(明包山張源伯淵著․명나라 포산에 사는 장원 백연이 지음)’라고 쓰여 있다. '다록' 원전은 이 연재가 끝날 무렵 책의 끝머리 부분에 참고부록으로 별첨하게 될 계획으로 있다.
'다록'은 23편으로 나누어져 본문 1347자, 제목 13자 소제목 55자 등 1415자로 엮어져 있다. '다록'에 비해 '다신전'이 끝머리의 발문(98자) 때문에 14자가 많다.
먼저 찻잎따기(採茶)에서 차만드는 법(造茶)이어 품질식별(辨茶)' 보관(藏茶 '불다루기(火候)」 「끓는 물 가리기(湯辨)」 「여리게 끓인 물과 재대로 끓인 물(湯用老嫩)」 「차 우리기(泡法)」 「다에 차넣기(投茶)」 「차마시기(飮茶)」 「향」 「색」 「미」에 이어 제14편에는 ‘차는 조금이라도 오염되면 그 성품을 잃는다’는 「점염실진(點染失眞)」편으로 이어진다.
제15편에는 「변한 차는 절대 마시지 말라(茶變不可用)」에 이어 「물 가리기(品泉)」 「우물물은 쓰지 마라(井水不宜茶)」 「물의 저장(貯水)」 「다구(茶具)」 「찻잔(茶盞)」 「잔 닦는 수건(拭盞布)」 「차통(分茶盒)」 「다도(茶道)」 등 23편으로 마무리 짓고 있다.
특이한 대목은 '다록'에 있는 제22편의 「분다합(分茶盒)」은 '다신전' '보만보전서' 빠져있다. 제23편의 「다도(茶道)」편은 '다신전'과 '만보전서'에는 「차위(茶衛)」로 제목이 바뀌어져 있다. 그리고 '다신전'의 출처가 분명한 「발문」으로 끝을 맺고 있다. '다신전'은 초의스님의 간절한 염원이 담긴 실천적 지침서 당․송대에 성행한 병차(餠茶․떡차․찐 덩이차)를 만드는 방법은 ‘쪄 익히고, 찧고, 덩이 지어 구워서 말린’ 방법으로 만들어 졌다. 당나라때 육우가 쓴 '다경'에도 녹차라는 용어는 있지만 녹차 만드는 방법은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는 그 당시 말이나 소에 실려 보내는 이동성과 보관 방법이 문제가 돼 병차가 주류를 이뤘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같이 만들어 졌던 병차가 명나라에 들어서면서 그 방법이 전혀 다른 지금 주류를 이루고 있는 솥에서 덖어내는 ‘덖어 익히고, 비벼서, 말리는’ 덖음 잎 녹차 즉 초청차(炒靑茶)로 발전했다. 마시는 음다법 또한 '다경'에서 얘기하는 끓이거나(煮茶), '대관다론'의 가루 낸 차를 물에 타서 마시는 방법(點茶)에서, '다록'이나 '다신전' 기록대로 우려내는 전다(煎茶), 또는 포다(泡茶)로 바뀌게 된다.
'다신전'에는 역대의 다서(茶書)들과 차에 관한 시문(詩文)들이 종횡무진하게 섭렵되어 함축적 표현과 심오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초의스님은 역대 차문헌에 정통하였고 당대 세도가와 교류를 통하여 당시 중국 차에 대한 들어서 공부하는 것(聞識)이 짧지 않았다.
'동다송'의 주(註)에 예시(豫示․예를 들어 보이고 있는…)되어있는 '다서(茶書)'만 봐도 차 문헌조사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유불(儒彿)과 시서(詩書)와 차에 두루 능통하였던 초의스님이 장원의 '다록' 내용만을 유독 발췌해 베껴, 참고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만보전서'를 베껴 참고했다는 것은 당시 초의스님이 만들어 마시고 있는 차에 대한 생각과 동일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초의스님의 예리한 안목이 돋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장원은 명나라 때 강소성(江蘇省) 진택현(震澤縣) 태호(太湖)의 동정서산(洞庭西山)에 살았던 이다. '다록'의 제다법은 그 당시 강소성에서 행해졌던 덖음 녹차를 그대로 표현했을 것이다. 이는 육우의 '다경'이 당나라때의 찐 덩이차를 주로 말하고, 송나라때 채양이 쓴 '다록'이나 송나라 황제 휘종이 쓴 '대관다론' 등이 무이산 황제 전용차밭에서 주로 만들어진 용단봉병을 다루고 있는 것과 확연히 다르다는 점이다.
초의 선사가 차를 만들던 시절에는 덖음 차만 있었던 게 아니라 떡차와 발효차도 함께였다는 사실은 '동다송'과 다산 정약용(丁若鏞․1762~1836)이 쓴 '다신계절목(茶信契節目)'에서도 볼 수 있다.
'다록'에서는 명나라 복건성 차와 남부지역의 첫물차 따는 시기를 곡우인 4월 20일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사실 우리차에 대한 긍지로 떳떳하였던 초의스님은 '동다송'에서 '다서'에 찻잎은 그 따는 시기가 중요하다. 너무 이르면 차 맛이 떨어지고 늦으면 차의 향이 흐트러진다. 곡우전 닷새가 가장 좋고 곡우 후 닷새가 다음이며 다시 닷새 뒤가 또 그 다음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내가 경험해보니 우리나라 차는 곡우 전후는 너무 이르고 입하(양력 5월 5~6일) 전후가 적당한 때다’라 하였다.
그리고 다시 '동다송'에서 '동다기'와 '다서'의 부분을 인용해 ‘우리차가 절강차(중국의 차)에 미치지 못한다고 의심하는 이가 있는데, 내가 보기엔 색향기미(色香氣味)가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육안차는 맛이 좋고 몽산차는 효능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우리의 차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추었으니, 이찬황과 다성 육우가 살아 돌아온다 해도 내 말을 반드시 수긍할 것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한․중․일은 고대로부터 공통의 한자문화권을 형성하여 왔고, 차문화 또한 1000년 넘게 공유하여 왔으니, 장원의 '다록'에 대한 국적의식은 오늘날과는 달랐을 것이다. 맹목적 사대주의니 편협한 국수주의니 하는 논쟁은 뒤로 미루고, 초의스님의 차에 관한 선택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추적해 봐야 할 것이다. 허차서의 '다소(茶疏)'도 또 하나 초청녹차의 진수 '다록'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초청차 즉 덖음 잎 녹차를 다룬 또 하나의 대표적 명저는 '다소(茶疏)'라는 책이다. 장원과 같은 시기에 남쪽으로 약 300여km가 떨어진 이웃 절강성(浙江省) 전당(錢塘)에 살았던 허차서(許次紓․1549~1604)라는 유명한 차인이 쓴 책이다. 장원이 쓴 '다록'보다 2년 후인 1597년에 쓰여 졌다.
'다록'이 간결하고 명쾌하다면, '다소'는 풍부하고 다채롭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여러모로 닮은 두 책 사이에서도 엄연한 제다법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다록'의 조다(造茶․차만들기)편과 '다소'의 초다(炒茶․차 덖기)1)편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의미있는 차이는 ‘처음 덖을 때의 열도(熱度․뜨겁기)와 그 방식’이라 할 것이다.
'다록'에서는 ‘높은 열도에서 잽싸게 덖어 익힌다’는 급열급초(極熱急炒)한다. 대신 '다소'에서는 ‘낮은 열도에서 천천히 덖다가 뜨거운 열도로 덖어 익힌다’는 선문재무(先文再武)이다. 그밖에도 한 번에 덖는 차잎의 양(量), 손놀림, 비비기와 말리기의 방식 등이 다르다. 그 특징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항주(杭州) 근방에서 만들어 지는 작은 벽돌처럼 납작납작한 서호 용정차(西湖 龍井茶)와 작은 애벌레같은 소주(蘇州)의 동정 벽라춘차(洞庭 碧螺春茶)의 제다법에 여실히 반영되어져 있다.
소주와 항주는 양자강 하류의 남쪽 지역으로 서로 이웃하고 있으나 동정호에 동정서산과 동정동산 등 동정양산(洞庭兩山)이 있는 태호(太湖)와 용정차(龍井茶)가 나는 서호(西湖)의 자연환경은 서로 크게 다르다. 장원이 살았던 태호가 바닷가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라면 허차서가 살았던 서호는 바로 옆이 바닷가이었다. 장원이 활동했던 강소성 태호 동정서산과 허차서가 무대로 했던 절강성 서호는 거리로는 약 300km 가량이다.
태호는 우리가 상상하는 자그마한 호수가 아니다. 지금도 거대한 철선이 항해하는 어지간한 바다만한 호수다. 호수의 북쪽은 육우가 천하 제2의 샘이 있다는 무석시(無錫市)가 있고, 서쪽에는 자사(紫砂)로 유명한 의흥시(宜興市), 동쪽에는 중국이 자랑하는 화려한 정원과 별장의 고장인 소주시(蘇州市)가 있다. 호수의 남쪽 가운데쯤에 육우가 천하의 명차산지라 자랑했던 자순차의 고장인 호주시(湖州市)가 있다. 호주시와 이웃한 남쪽이 바로 절강성이다.
두 지역 모두 온화하고 강수량이 풍부한 기후이나, 바다가 가까운 서호 지역은 강수량이 더 많고 특히 봄 차 철에는 비가 많이 내린다. 서호는 모래가 많이 섞인 사질(砂質) 토양인 반면, 태호 지역은 토질이 비옥하여 각종 과실이 잘 된다. 이러한 자연조건의 차이가 찻잎에 반영되어, 동정종(洞庭種)은 작으면서 단단하고, 용정종(龍井種)은 비교적 길고 가늘면서 부드러운데 이 같은 찻잎 성질의 차이가 서로 다른 제다법을 낳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남녘에 분포하고 있는 대부분의 차산지(産地)는 강이나 바다를 끼고 있는 온난다습한 지역이다. 강수량이 풍부하긴 하지만 봄 차 철에는 언제나 비가 부족하다. 우리 땅 서쪽지역 대부분은 고생대 이전의 지질이라서 바다가 융기되거나 빙하의 침식이 없었던 옥토(沃土)이다. 더구나 좋은 찻잎이 나는 차밭들은 거의 부엽토가 두터운 산록에 자리하고 있다.
우리와 가까운 찻잎은 장원이 살았던 태호에서 생산됐던 동정종이다. 이는 용정차와 벽라춘을 함께 우려내어, 제법의 차이에 의해 좌우되는 찻물의 색․향․기․미는 차치하고, 그 우려낸 찻잎의 생김새를 비교하여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때문에 허차서의 '다소'보다 장원의 '다록'이 우리의 여건에 더 가깝다는 것을 알고 택한 초의스님의 식견과 혜안이 돋보인다. '다신전' 제다법의 특징, 덖음 녹차(炒靑綠茶)의 진수 담아 '다신전'의 차만들기는 조금만 눈여겨보면 ‘열초(熱炒)’ ‘단나(團挪)’ ‘배건(焙乾)’ 이 세 가지로 크게 나누어 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열초(熱炒) : 열초는 ‘뜨거운 솥에서 덖어 익히기’이다. 여기서의 솥은 삶거나 찌기에 알맞은 날개와 뚜껑이 있는 가마솥인 부(釜)가 아니라 차만 전문으로 만드는 반구형(半球形) 노구솥인 과(鍋)나 당(鐺)이다. 열초는 솥의 열도, 투입량, 손놀림, 덖는 시간 등을 적절하게 조화시켜야 하는데, 덖어지면서 달라지는 차잎의 열도와 촉감, 냄새, 빛깔, 생김새 등을 면밀하게 살펴서 알맞게 익혀 내야 한다.
제대로 익혀 만든 차의 향미는 맑고 은은하며 달고 매끄럽다. 태우거나, 설익히거나, 마르게 익히거나, 안팎을 고르게 익히지 못하거나, 일부를 제대로 익히지 못한 차는 탄 냄새, 풋 냄새, 뜬 냄새 등이 배여 있고 쓰고 떫으며 거칠고 텁텁하다. 쪄 익혀서 덖어 말리거나, 데쳐서 익히거나, 물을 가하여 익히거나, 많은 양을 높은 열도에서 익히면서 자체 수분으로 찌듯이 익히는 제법들은 모두 덖음차의 본령을 벗어난 것들이다. 비릿한 풋 냄새가 섞여 있고 답답한 맛을 낸다.
단나(團挪) : 단나는 글자의 뜻 그대로 ‘둥글게 덩이 지어 비빈다’는 뜻이다. 가볍게 덩이 지어 살살 비비다가, 조금씩 세게 비벼서 뭉치가 단단해지면 낱낱이 턴다. 비비고 털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여 제대로 비벼야 한다. 제대로 비벼진 찻잎은 단단히 말려 있고 생김새가 가지런하다. 비비다 만 차는 부스스하다. 털다 만 차는 뭉쳐져 있으며, 너무 세게 비빈 차는 가루가 나거나 부서져 있다. 찻물색이 맑고 밝으며, 우려낸 잎이 생생하게 살아 있으면 잘 만든 차이다. 찻물색이 뿌옇거나 어둡거나 누렇고 붉은 색을 띠며, 우려낸 잎이 깨지거나 동강나 있고 잎맥이나 잎줄기가 누렇거나 붉게 변해 있으면 잘 못 비벼 만든 차이다.
배건(焙乾) : 배건은 ‘덖어 말리기’이다. 익혀서 비빈 찻잎을 다시 솥에 넣고 점점 열도를 낮추어가며 덖어 말린다. 찻잎이 말라가는 정도를 잘 살펴서 솥의 열도를 알맞게 조절하여야 한다. 불기운이 고르게 잘 든 차에는 본연의 향기와 맛이 잘 살아 있는데, 맑고 상쾌하며 은은하면서 풍부하다. 불기운이 약하면 향기와 맛이 가늘면서 옅고, 불기운이 너무 강하면 탄 냄새가 배이면서 본연의 향기와 맛은 날아가 버린다.
냉풍이나 열풍에 말리거나 열판이나 온돌에 널어 말리면 손쉽다. 그러나 풋 냄새와 뜬 냄새가 섞이기 쉽고, 본연의 향기와 맛은 살아나기 어렵다. 그래서 마무리 덖기를 넘치게 하면 구수하면서 달직근한(甘) 쌀 볶은 냄새만 일색인 차가 된다. 김정희의 동생 김명희(金命喜)는 철종 1년(1850년)에 초의스님으로부터 차를 선물받고 답례하는 시에… ‘늙은 스님은 차를 부처님 고르듯 고르며 한 싹에 한 잎의 계율을 엄하게 지켰네 더욱 덖어 말리기가 교묘하여 충분한 깨달음을 얻으니 향기와 맛이 바라밀에 든다네’ 라고 했다. 초의스님은 옛 시문에 집착하여 차를 갑론을박하거나, 무리지어 놀면서 차를 음풍농월하던 이가 아니고, 실제로 차나무를 가꾸고 차를 만들면서 맛보았던 이이다.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제대로 된 우리의 차를 무척이나 만들어 보고 싶었을 것이고, '다신전'을 그 간절한 염원의 실천적 지침으로 삼으려 했을 것이다. 찻잎의 산화중지를 시키는 것이 살청(殺靑) 솥에서 덖어 살청하는 것은 초청(炒靑) 차나무에서 그해 뽀죽하게 처음 올라온 생옆(鮮葉)은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치든지, 뜨거운 김에 찌든지, 아니면 뜨거운 솥에 덖든지 어떤 방법으로 든 가공을 해야만 한다. 찻잎은 따는 즉시 왜 데치거나 찌거나 덖어야만 하는가. 찻잎은 차나무에서 따는 순간 산화되기 시작한다. 발효가 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녹차를 녹차답게 만들려면 일단 찻잎의 산화를 막아야 한다. 산화효소의 활성을 잃게 하는 동시에 산화의 진행을 정지시킬 수 있는 방법은 가공을 통해 단시간 내에 찻잎의 온도 자체를 섭씨 80도 이상이 되게 해야 한다. 이를 살청(殺靑)이라 한다.
제대로 된 살청은 한번이면 그 효과를 낼 수 있다. 녹차의 살청은 최초의 덖음 즉 고온을 통한 첫 번째 덖음이 살청공정이며 이후 행하는 저온을 통한 덖음은 횟수와 관계없이 모두 건조공정에 해당한다. 차의 분류에 있어 살청의 유무 또는 살청을 언제 하느냐에 따라 차의 이름이 달라진다. 산화를 철저히 차단하기 위해 첫 번째 가공공정을 살청한 것이 녹차이다. 이를 발효가 안됐다 하여 비발효차(非醱酵茶)라 한다.
반발효차로 불리는 오룡차는 일정한 발효를 거친 찻잎을 살청공정을 거쳐 산화를 중지시켜 만든 차를 말한다. 흔히 보는 15%~60% 발효라는 숫자는 바로 갓 딴 생엽을 몇 퍼센트의 발효상태에서 살청을 했느냐를 알려주는 것이다. 오룡차 중의 경발효차(輕醱酵茶) 중발효차(中醱酵茶), 중발효차(重醱酵茶)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논거에 따라 붙여진 용어이다. 따라서 완전발효를 통해 맛을 내는 홍차는 산화효소의 도움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살청공정을 하지 않는다. 때문에 홍차를 완전발효차라고 한다.
생엽의 산화효소를 중지시키는 살청공정은 대체로 덖음과 증기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나뉜다. 증기를 통한 살청방식은 주로 녹차에 적용되는 반면 덖음방식의 살청은 모든 종류의 차에 이용되고 있다. 덖음 방식의 살청에는 솥에서 덖는 수제식과 기계식이 있다. 살청은 증기방식을 통해 만든 녹차를 증청녹차(蒸靑綠茶)라 부르고 덖음 방식을 통해 만든 녹차는 건조방법에 따라 이름을 달리한다. 살청과 건조의 공정을 모두 솥에서 행한 것을 초청녹차라 하고 건조공정만 기계를 통해 말리는 것을 홍청녹차(烘靑綠茶)라 한다. 그리고 햇볕을 통해 건조한 것을 쇄청녹차(曬靑綠茶)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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