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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적 상상력과 삶의 향기
윤정구
1. 들어가는 말
1992년에 등단한 이보숙 시인이 『새들이 사는 세상』 『코코넛 게』 『목련나무 어린 백로』 『훈데르트 바서의 물방울』 등 주옥같은 시집을 상재한 데 이어, 다섯 번째 시집 『그 역에 가고 싶다』를 펴낸다.
“상처뿐인 삶, 허무뿐인 삶의 상처와 허무까지 본능적으로 따듯하게 껴안을 수 있는 모성적 상상력이 이보숙 시의 장점”이라는 방산 선생님과 “진실한 언어로 독자의 내면에 다가서는 이보숙의 시는 슬픔을 뛰어넘는 예술, 자연, 인간의 조화를 이뤄낸 숙성된 삶의 향기가 가득하다”는 권온의 서술을 상기하며 시집을 연다.
무엇보다 참척의 슬픔을 승화시켜 모두의 가슴을 저리게 했던 시 「동고비를 따라가다」가 떠오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수목원에서 들려오는 동고비 울음
삐요오 삐요오 소리 따라 자꾸만
숲으로 들어간다
작은 몸짓
푸른 회색, 흰색, 주황의 깃털도 곱다
딱따구리가 쪼아놓은 나무등걸 속
짹짹거리는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내 아이에게 젖 먹이던 생각이 난다
피 같은 것
하늘에서 너도 기억할까?
하느님은 엄마들을 위로하려고
새들에게 노래를 지어주셨을 게다
저렇게 아름다운 깃털도 입혀주셨을 게다
동고비 동고비
이름만 들어도 미소가 돈다
천사처럼 쌕쌕 잠들던, 날아간 나의 동고비
―「동고비를 따라가다」 전문(『훈데르트 바서의 물방울』)
작은 새가 나를 부른 것일까? 삐요오 삐요오 예쁜 동고비 소리를 따라 숲속으로 들어간 시인은 4연 “내 아이에게 젖 먹이던 생각이 난다/ 피 같은 것/ 하늘에서 너도 기억할까?”로 동고비와 하늘로 올라간 내 아이를 동일시하면서, “하느님은 엄마들을 위로하려고/ 새들에게 노래를 지어주셨을 게다/ 저렇게 아름다운 깃털도 입혀주셨을 게다”로 숨을 고른 다음, “동고비 동고비/ 이름만 들어도 미소가 돈다”로 하느님을 받아들여 죽음을 긍정한 후에 “천사처럼 쌕쌕 잠들던, 날아간 나의 동고비”로 마무리한다. 리듬감이 뛰어난 이 시가 연마다 시상을 발전시켜 나아가는 데, 전혀 무리한 기교 없이 자연스럽게 그것을 이루어낸다.
권온은 이 시를 일러 “삶의 슬픔을 기쁨으로 전환시키는 위대한 순간을 감각적인 리듬으로 포착했다”면서 “이보숙은 일찍이 정지용 시인이 「유리창 1」에서 포착했던 절제의 미학에 비견할 만한 경지에 도달했다”고 상찬을 아끼지 않았다.
시의 한 경지에 이른 훌륭한 시를 쓰는 시인은 누구일까? 그는 아마도 세상의 슬픔과 기쁨과 허무를 읽어내는 밝은 눈과 귀와 순정한 마음을 간직한 시인이며, 그 슬픔과 기쁨을 걸러 승화시켜 맑은 하늘에 닿게 하는 지성의 그물을 가지고 있는 시인이 아닐까. 이보숙 시인은 그런 우리의 바람을 채워주는 모범적인 시인일지도 모른다.
이보숙 시인은 문학적 성취를 더하기 위한 시의 기교를 애써 피하면서도, 정도를 택하여 동고비를 통하여 넘치도록 감동을 전달하였고, 시집 『훈데르트 바서의 물방울』은 그 해 <세종도서 문학나눔>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2010년도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을 수상한 시집 『목련나무 어린 백로』는 자연과의 습합(習合)을 뛰어넘어, 마침내 생명 존중의 경지로까지 확장된 의미의 세계로 나아갔다.
사물과의 진정한 소통
이번 시집 『그 역에 가고 싶다』에서도 그동안 시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사물과의 따뜻한 교감을 통하여 잔잔하지만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로 향기로운 시편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른 아침 은행나무에 물기가 촉촉하다
고개를 한참 쳐들어야 꼭대기가 보이는
은행나무가
제 발 밑에 노란 죄의 파편들을
수북이 쌓아놓고 고개 숙여 울먹인다
밤새워 고해를 드렸나보다
생각해보니
노란 잎들은 바로 나의 죄가 아닌가
신께 드렸던 지키지 못한 맹세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던 부끄러운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고해 시편」 부분
이보숙 시인의 시는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사유를 통해서 자신의 상처 입은 영혼을 치유함과 동시에 독자들에게도 위안과 감동의 거울을 선사한다”는 고명수의 말처럼, 그의 품성이 우러나오듯 너그럽고 은은한 향기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시에 있어서 각개의 낱말이 가지는 독특한 무게와 질량과 색채, 매끄럽고 껄끄럽고 단단하고 물렁한 마티에르 효과까지 고려하여, 서로 다른 개성을 조화롭게 짜나가는 일은 쉽지 않다. 낱말과 낱말이 가지는 보색과 대비색 등 다양한 색채 중에도 미묘한 차이를 예측하고 계산하여, 효과적인 큰 그림을 완성해가는 장인의 눈과 솜씨를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미술과 음악 등 인접 예술에 조예가 깊은 이보숙 시인이 우월성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다. 거기에 더하여 자연을 관찰하고 사물과 소통하는 데에 특별한 공을 들이는 시인의 교감 능력은 핵심을 파악하고 시의 깊이를 더하는 탁월한 장점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 꽃을 사진에 담으려면
몸을 낮추어야 하지요
아니 아주 땅에 엎디거나 누워서 찍어야 해요
얼굴에 흙을 묻혀야 꽃무릇의
얼굴을 담을 수 있어요
진한 주홍빛 꽃봉오리들을 한가운데 모아놓고
가장자리는 날카로운 주홍빛 날개가 하늘 향해
곧 날아갈 듯 하네요
…
가을이 눈물을 글썽이네요
…
―「꽃무릇 사진찍기」 부분
「꽃무릇 사진찍기」는 키 작은 꽃무릇을 사진 찍는 모습을 통하여 사물과의 소통법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몸을 낮추어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데다가, 얼굴에 흙을 묻히고 따라가다 보면, 모르는 사이 꽃무릇과 한 몸이 되고, 날아가려는 꽃무릇의 마음에 동화되어, 난데없이 나타난 이별이 아주 가까이 있으며, 살아 있는 것들에게 주어진 운명이라는 것을 깨닫고 슬픔을 받아들이고 함께 나누게 된다.
“난데없음”은 문득 맑은 하늘에 피어오르는 흰구름처럼, 자연스러움과 짝을 이루는 이보숙의 문학적 기제(機制)라 할 수 있다. 어쩌면 갑작스러운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르는 “가을이 눈물을 글썽이네요”는, 꽃 피는 순간 아름다운 꽃이 하늘로 날아갈 듯, 살아 있는 것들의 보편적인 허무를 증명이 필요 없는 공리(公理)로 시의 바탕에 깔아놓는다. 몇 개의 예를 함께 읽어보자.
11월이 되자 동백꽃이 아홉 송이나 피어나
베란다에 붉은 꽃잔치가 벌어졌다
중략…중략
여름내 달력에 표시해가며
열흘마다 물을 주고 잎사귀는 흠뻑 목욕을 시켜준
내게 사랑으로 보답함인가
더러 비료도 주고 창을 활짝 열어 바람을 쐬어주고
늘 관심을 보낸 것이 헛되지 않았나 보다
두 번의 병원 신세를 지고 난 후 시원치 않아진
걸음 연습을 하느라
지루한 시간인데도
입가에 절로 웃음이 배어나왔다
동백아 고맙다
동백꽃들도 나에게 환히 웃어주는 것이었다
―「동백」 부분
여름내 달력에 날짜를 표시해가며 동백나무 화분에 물을 주고, 바람을 쐬어주고, 더러 비료도 주어가며, 관심을 가지고 보살펴준 덕분인가, 아홉 송이나 동백꽃이 피었다. 두 번이나 입원했던 화자는 시원찮아진 보행 연습을 하면서 동백을 보고 기운을 얻는다. “동백아 고맙다/ 동백꽃들도 나에게 환히 웃어주는 것이었다”는 생명과의 소통의 끝자락에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순간에 도달한 소박한 기쁨의 표출이다.
낯선 충남 외암마을 낮은 언덕에 피어 있던 꽃,
진분홍 치마에 연두빛 저고리 입은 새색씨 같은 꽃,
하도 예뻐 품에 꼬옥 안고 싶었지요
재봉틀에 내 어릴 적 키를 재며 오늘 쬐끔 더 컸다며
까르르 웃던 이웃집 연순 언니,
시집가기 전날 네 살 박이 나를 품에 꼬옥 안고
그 언니는 왜 울었을까
중략…중략
오늘은 하늘이 더 파랗고
바람도 더 서늘해서
집에 와서도 백일홍 그 꽃이 자꾸 보고 싶어집니다
―「백일홍 추억」 부분
조팝나무는
연둣빛 입자들을 모아 하얀 조팝꽃을 만드는 중이에요
색종이로 종이접기 하는 아이처럼,
땅에서는 제비꽃들이 보랏빛 향기를 만들고요
철쭉들은 분홍 다홍 백색 꽃들을 빚어내는 중이고요,
초록도 덩달아 우쭐우쭐 춤을 추어요
중략…중략
온 세상이 꽃으로 화안해요
꽃이라는 말에 왜 눈물이 날까요?
사람은 부활을 모르니까요
부활한 봄이 한 편의 영화를 상영 중이에요
무료 영상 감상만 하면 되지요
화사한 봄도 사실은 사그라들 기미를 갖추고 있어요
슬퍼할 필요가 없어요
내년 이맘때면 그 모든 것들이 다시 부활할 테니까요
―「무성영화 한 편 보러 가요」 부분
외암마을에 갔다가 낮은 언덕에서 만난 백일홍을 보고 떠올린 어릴 적 연순 언니는 백일홍과 한 몸을 이루면서, 평소 잘 웃던 연순 언니가 시집가기 전날 네 살 박이 나를 안고 울던 일을 떠올리며, 왜 울었을까 새삼 궁금해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백일홍 추억」을 그리워한다.
조팝꽃과 제비꽃, 철쭉꽃 등 온 세상에 화한한 봄꽃들을 보면서 갑자기 “왜 눈물이 날까요?”라는 질문을 던진 후, “사람은 부활을 모르니까요”라고 대답하는 「무성영화 한 편 보러 가요」는 삼라만상이 부활하는, 장엄한 기적의 봄날에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죽은 사람들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 육친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인연으로 태어나 맺어졌으나, 그 끈을 놓쳐버린, 복구하기 어려운 큰 슬픔이지만, 인간은 삶과 죽음이 병존하는 세계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승화시킴으로써, 근원적인 상처를 회복하고 인간다움을 실현해가는 것이다.
시인의 바탕이 상처 이전의 천진무구한 행복이 아니라, 이 세상 슬픔을 겪은 후에 상처를 회복하면서 이루어낸 고통의 진주이기 때문이다.
자연과의 속 깊은 교감
부재의 허무를 견디어내는 데에는 무엇보다 싹이 돋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사라지는 자연의 이치를 깨달아가는 것이 첩경인지 모른다. 이보숙 시인은 그 점에서 누구보다 통달한 노하우를 가진 자연과의 소통 전문가이다.
전략…전략
인도가 없는 길, 차 안에서
목을 길게 빼야만 그 나무를 볼 수 있었다
동안거 중이어서 나무는 침묵했지만
그때마다 사랑해 하고 속삭였다
비가 쏟아져도 눈이 쏟아져도
안스런 마음으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장미나무에게 보내는 편지」 부분
텅 빈 듯한 숲을 바라보다가 깜짝 놀랐다
얼어붙은 줄로 생각했던 나뭇가지들
모두 나를 보고 있다 동그란 눈들을 반짝이며,
중략…중략
이파리 다 떨군 나무들에게 눈이 있음을 이제 알았다
봄이 오고 있음도 알아차렸다
나무들의 눈은 봄의 눈이었다
내 안에 희망의 물결이 차오른다
중략…중략
푸른 시詩가 떠오른다
―「사랑의 묘약」 부분
자연과의 소통에 정성을 기울이는 시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들이 인상적이다. 차 안에서 목을 길게 빼고 나무가 보이면 사랑해 하고 속삭이고, 비가 오거나 눈이 올 때도 안스런 마음에 손을 흔드는 「장미나무에게 보내는 편지」나, 텅 빈 숲을 바라보다가 문득 나무들 또한 동그란 눈을 반짝이며 나를 보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무들의 눈이 봄의 눈인 것을 깨닫는 순간, 희망의 물결이 차오르고, 푸른 시가 떠오르는 봄의 환희를 노래한 「사랑의 묘약」은 나무를 비롯한 모든 만물이 사랑으로 기대고 있는 하나의 거대한 연결고리임을 보여준다. 나무에서 봄으로, 다시 봄에서 시로 확장되는 시인의 정신적 도약은 마침내 「은행나무 실록」에서 “고려의 맑은 하늘”을 보아내고, 뎅그렁 뎅그렁 울려 나오는 나선형의 범종 소리까지 듣게 되는 역사적 경지에까지 이르게 된다.
「겨울 정원」은 “초라한 종아리를 드러낸 어린 계집애”같은 수국의 마른 대궁을 보며 “시들고 얼어붙은 나무들에게 귀를 기울”여, “나무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체화의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우리는 외롭지 않아/ 겨울이어도, 우리의 영혼은 살아 있어”라는 겨울 정원의 대화는 “참 따스한 기운이 너희와 나 사이에 흐르고 있네/ 따스한 강물이 우리 사이에 파도치고 있네”로 쓸쓸한 겨울 죽음까지도 극복한 교감의 완결된 형태를 보여준다.
전나무 숲길을 걸으며 어릴 적 나리꽃과의 대화를 떠올리는 형식으로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시인의 동화적 상상력은 “나리꽃을 보며 너는 왜 얼굴에 까만 점들이 많이 생겼니? 하고 물었었다”는 천진한 진술로 나래를 펴는데, 「전나무숲길을 걷다가」에서 시인이 숲길을 걷는 것은 바흐를 듣는 것이나 세잔의 그림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윽한 아름다움을 선사해준다. 죽음과 삶이 혼재되어 다시 꽃피고 새우는 숲은, 우리들 인간의 삶과 죽음을 일깨우는 또 하나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옛기억의 소환과 애끓는 혈육에의 온정
이번 시집에서 더욱 간절해진 것은 지금은 찾을 길 없는 옛기억의 소환이다. 가난하지만 따뜻하고 가까운 관계로 맺어졌던 온정의 농경사회에서 자라난 세대가 어린 날의 추억을 상기하며 실낙원(失樂園)의 노래를 부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이제 그것들은 단순한 기억을 넘어 잊혀질 위기를 맞은 소중한 기록으로서 개인사적(個人史的) 의미를 가지게 된다.
나이 차이가 많던 언니가 학교에서 퇴근할 때
가져오던 그 빵
교실에서 언니의 풍금소리에 맞추어 부르던
학생들의 합창소리
그때 불렀던 나팔꽃 노래
언니 시집가던 날 통곡하며 울던 철없던 막둥이
엄마 같았던 언니 선생님
어린 내게 입혀주던 보랏빛 세일러복
재봉틀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나팔꽃 노래」 부분
「나팔꽃 노래」는 진보랏빛 나팔꽃을 보며, 지금은 이 세상에 있지 않은 언니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을 노래한 것이지만, 전쟁이 끝난 어수선한 무렵의 선생님 모습을 증언하고 있다. 학교에서 퇴근할 때 학교애서 나누어준 빵을 가져와 어린 동생들에게 나누어 먹이고, 직접 재봉틀을 돌려 세일러복을 만들어 입혀주었던 교사이면서 언니의 역할을 함께하는 모습은 언니 선생님이 시집가던 날 통곡하며 울었다는 막동이 동생의 서사와 함께 풍금 소리, 합창 소리를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어느 날 어스름 저녁
하교 후 집에 당도했을 때
전기도 못 켠 채 아버지는 방구석에
짐짝처럼 쓰러져 계셨다
팔다리가 뻣뻣하고 말씀도 제대로 못하셨다
그때의 공포와 놀람이라니!
그 후 아버지는 이 세상에 오래 계시지 못했다
한 마리 새가 되어 날아가셨다
초등학교 입학 후 등교할 때마다 내 손에 쥐어주시던
백 원짜리 지폐,
지금은 껌 하나도 살 수 없는 것
그때는 빵 한 개 살 수 있던 것
그날 아버지가 몇 시간이나
그렇게 혼자 계셨었나, 생각하면
가슴께가 지금도 몹시 아프다
몇 시간을 아버지 혼자 겪었을 외로움과 절망
늦동이 내 눈엔
아버지의 머리카락이 처음부터 희었지만
전시에 폭격에 놀라 걷지 못하던 나를
피난지에서 다시 서울로
열한 살 나를 업고 걸으셨던
흰 옷을 즐겨 입으셨던
아버지는 검은 꼬리가 멋있는 흰 두루미였다.
―「아 저 흰 두루미 좀 봐」 전문
백미(白眉)란 이런 시를 말하는 것일 게다. 아버지를 흰 두루미로 형상화하여 눈에 보이듯, 슬픔을 억누른 아름다운 절제로 그리운 아버지를 살려내었다. 거두절미하고, 하교해서 보게 된 “아버지는 방구석에 짐짝처럼 쓰러져계셨다”로 한껏 관심을 끌어모은 시가 다음 연에서 곧바로 “한 마리 새가 되어 날아가셨다”로 전개되고, 등교할 때마다 용돈을 쥐어주시고, 멀고 먼 피난길에서 업고 돌아온 열한 살 때의 기억을 떠올려 애틋한 사랑을 그린 다음, “아버지는 검은 꼬리가 멋있는 흰 두루미였다”고 마무리하여, 군더더기 하나 없는 깔끔한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려낸 것이다.
골고다만큼 높은 산을 향하여
지친 발걸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내리던 어머니
새벽부터 삶의 현장으로 뛰어들어
어두움이 깔려 있는 산동네를
하루도 마다않고 오르내리던 당신
어린 내가 대신할 수 없었던 삶의 길
가난한 울타리를 지키려 일의 노예가 되었고
자식의 어깨가 처질까 다독거리던 손
누릴 수 있는 시간도,
어여삐 단장할 여유도 없었던
가장 아름다운 꽃
십자가, 뿌리칠 수 없었던 한 송이 백합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는 배고프지 않았고
세상의 강물도 피해갈 수 있었다
학식은 짧고 금과 은 없었지만
자식에게 남기신 유산은 고요히 지킨 믿음
어머니의 기도하던 음성, 당신의 무거웠던 십자가,
이제 내가 걷고 있는 길.
―「십자가, 어머니」 전문
자식들을 먹여 기르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어머니의 가파른 인생을 그린 안타까운 어머니 사랑의 노래다. “누릴 수 있는 시간도/ 어여삐 단장할 여유도 없던” 비록 “학식은 짧고 금과 은 없었지만/ 자식에게 남기신 유산은 고요히 지킨 믿음”의 길은 “이제 내가 걷고 있는 길”이라는 결구가 슬프도록 아름답다.
“늙은 감나무 위,/ 참새녀석들 온 가족 일가친척이 다 모였다/ 모두 붉은 감에 부리를 박고/ 갉아먹고 쪼아먹고 빨아먹고/ 둥그렇던 홍시가 납작해졌다”로 시작하는 「홍시와 참새」에서도 “쭈글쭈글한 감나무 둥치”에서 엄마의 손등을 연상하고, 쪼그라든 홍시에서 “엄마 젖무덤”을 떠올리며, “배부르다고 짹 짹 짹 짹 수다를 떠는 참새”를 철없었던 형제들로 그린다.
시인은 지금까지도 “은하수 강물에 작은 나무배를 띄우고” 노를 저어 “사랑했던 오라버니의 집을 찾아가는”(「산골 마을에서」) 꿈을 꾸고, “오래전 하늘나라로 간 내 오라버니/ 어린 나를 무릎에 앉히고 노래를 가르쳐주었는데/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을 즐겨 치던 아이”(「나는 서핑 선수」)와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린다. 시인에게 행복했던 유년의 기억은 회상만으로도 행복이 가득한 천국이다. 가난했기 때문에 힘들고 넉넉하지는 못했지만, 어린 나를 따뜻하게 품어준 육친의 사랑이 있어 너무나도 그리운 낙원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증언과 동화적 상상력
역사적 변란기를 겪은 시인의 시에는 지울 길 없는 역사적 장면들을 볼 수 있다. 「1950년 9월 28일 일기」는 긴박한 9·28수복을 어린이의 눈으로 기록한다.
B29가 원효로에 큰 독만한 폭탄들을 쏟아붓던 날
남편의 얼굴이 날아갔다더니
입고 있던 바지와 손목시계를 보고
시신을 수습해 왔다더니
중략…중략
그 날 저녁 인왕산에는 북한군이
남산에는 연합군이 콩 볶듯
서로의 머리를 부서져라 총탄을 퍼부을 때
시뻘건 불의 소나기를 피해보려고
우리들은 솜이불을 뒤집어 쓴 채
사시나무 떨듯 떨며 엎디어 있거나
게처럼 기어다녔다
―「1950년 9월 28일 일기」 부분
남편의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르던 하얀 소복의 여인의 죽음을 목격한 시인은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모두 초월자가 된 듯 말이 없었다”고 기록한다. “전쟁이 일어난 이유도 모른 채/ 슬퍼할 겨를도 없이 거지가 되어/ 모두들 먹을 것을 찾아 이리저리 헤맸다”는 진술은 백 마디 보도자료보다 절박했던 당시 상황을 보여준다. “우리들은 솜이불을 뒤집어 쓴 채 게처럼 기어다녔다”보다 더한 참상의 기록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마침내 “9월 28일 낮,/ 인왕산 부서진 성터 위로 짚차 한 대 올라가더니/ 얼굴 검은 병사 하나가 태극기를 꼽았”으나 “사람들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기만 했다”(「1950년 9월 28일 일기」)는 기록은 한 장의 흑백사진처럼 전쟁과 민간인의 모습을 고스란히 살려내고 있다.
그래도 어린이는 어린이들의 「쪽빛 하늘」의 세계를 재잘거리며 이루어간다. 어린이야말로 전쟁의 상처를 극복해가는 희망 그 자체란 것을 보여준다.
교실에서 운동장에서 음악실에서
조잘조잘 떠들던 아이들
내 가슴에 쌓여 있는 이야기들
나누고 싶은 친구들이 그립다
…
쪽빛 하늘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
쪽빛 물이 가득 고여 톡톡 떨어지려 한다
―「쪽빛 하늘」 부분
동화적 환상은 숲으로 대표되는 식물과의 교감에서 참새와 고양이, 검은 새와 푸른 여우, 고추잠자리 등 동물로 확대되면서 새로운 활기를 되찾는다. 모두 사라진 육친의 부재를 채워주기라도 하는 듯, “두리번거리다가/ 수선화 꽃잎에 코를 박고 킁킁대며/ 무언가 찾는 듯 미련 가득하던 눈망울”의 「푸른 여우」와 “포르르 날아오르다” “작은 음악회”를 여는 참새와 직박구리(「소리나는 그림」), 돌돌 말린 잎 속에 청띠신선나비가 감춰놓은 애벌레에 긴 침을 찔러 산란관을 꽂고 제 알을 낳는 검정맵시벌까지 세밀하게 관찰하고, 양들을 몰고 달리는 작은 개의 숨소리 들리는 드넓은 풀밭 몽골 초원(「가을 추상화」)과, 겨울 숲 오두막이 있는 흰 눈 쌓인 나라, 고요한 마을 피오르드, 배낭여행을 다녀왔던 젊은 날의 여행지 남불의 풍경(「버킷리스트 2―프로방스 라벤더 꽃밭」)을 꿈꾸기도 한다. “수백 마리 비단나비가 연두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는 뉴기니섬에서 그레고리안 성가”(「비단나비섬에 가다」)를 듣기도 하고, 인왕산 아래 검은 굴뚝을 보며 문득 “흰 옷 입고 상투 틀었을 그 사람들이 보고 싶”어 지기도(「석파정에서」) 한다.
“두고 온 내 나라나 멀리 온 이 나라나/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나 비슷해/ 눈물이 날 것 같은 지구”를 생각하며 “왜 이리 가슴이 따스할까”(「버킷리스트 3―마추픽추」) 하고 가슴이 뛰기도 하는 시인은 “전망이 좋다는 약과봉”에 오르며 “섬의 길은 높이 올랐다가 다시 가라앉는” 것을 보고, 그것이 ‘사랑의 길’이며, 신을 만나는 길임을 깨닫는다. 여행객이 까르르 웃는 「트레비 분수 앞에서」의 행복과 피카소의 고향 말라가 해변 「코스타 델 솔」에서의 대자연의 축복을 그리기도 하고, 「아름다운 지구」에서는 “물이 없는 사막에서/ 숫공작이 먼 호수까지 날아”가 가슴털에 물을 흠뻑 적셔와 새끼들을 먹이며 가족을 일구어가는 모습을 그림으로써 동화적 상상을 통하여 생명 존중과 가족 사랑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종교적 깊이를 더하는 자연 친화
이번 시집의 특징의 하나는 자연 친화가 만개한 가운데, 몇 군데에서 엿보이는 종교적 징후이다. 하늘이나 바다로 나타나던 초월적인 동경이 직접적인 신앙 고백으로 발전하면서 시의 깊이를 더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자연 친화로 해결될 수 없는 고독한 영혼의 근원적 과제일지도 모른다.
“편지 한 장 오지 않는 빈 우체통을 확인하고, 다시 열어보는 아무 소식도 없는 빈 우편함/ 장사꾼들이 보내는 광고뿐”(「빈 우체통」)이다. “전쟁보다 무서운 코로나 이젠 겁나지 않아/ 내가 힘들 때/ 초록 잎을 넓게 넓게 펴고 꽃도 피워주고/ 나를 위로하던 친구”(「천군만마」)가 되어주던 문주란으로부터 위로받지 못하는 인간 근원의 고독이 숨어 있다.
차가운 겨울 보도에서
내 발길에 걸린 노란 은행 두 알
꽁꽁 언 채 둘이 꼭 붙어 있다
누군가의 구둣발에 밟혀 으깨질까
길 한쪽으로 밀고 갔다
말도 못하고 마른 풀포기 곁으로 굴러가는
은행 두 알
그들의 눈이 나를 보고 있다
친구들 다 어디 가고 둘만 남았니
부모형제 다 어디 가고
너희 둘만 손을 꼭 잡고 있니
꽁꽁 얼은 은행 두 알
삶과 죽음, 둘 다 가지고 태어난
아주 작은 존재
어디 가더라도 흙 속에 따듯이 묻혀
푸르른 날 오면 부활하도록 하렴
―「은행 두 알」 전문
시인은 차가운 겨울날 아스팔트에 떨어진 「은행 두 알」을 보고, “삶과 죽음 둘 다 가지고 태어났던 아주 작은 존재”에 주목한다. 부모 형제를 다 잃고 두 손을 잡고 있는 은행 두 알은 “흙 속에 따뜻이 묻혀/ 푸르른 날 오면 부활”하라는 시인의 따뜻한 소망과 종교관을 드러내고 있어, 시인의 다음 행보를 기대하게 한다. 그것은 「여름 숲」에 나타난 건강한 정신과 「새 모이 주는 여자」 「오늘은 우리 밝게 웃자」 등에서 보여주는 자연 친화를 뛰어넘어, 시인이 생명의 본질에 한 발 더 다가가 죽음을 응시하기 시작한 징후이며, “더 곱고 더 아픈 사람을 백자 항아리에 담아/ 씻어낼 수 없는 나의 죄업을 그곳에 함께 담아/ 제단에 올려놓고/ 그 위에 쏟아붓겠습니다”라고, 직설적으로 신앙 고백을 쏟아낸 「사파이어 사랑」과 ‘정신의 집’을 환기시키는 「빈집 가꾸기」는 바로 그러한 징후의 증거이다.
올해 4월 문화계 또 하나의 기적처럼 500회차를 맞은 공간시 낭독회의 사화집에 실린 이보숙 시인의 시편 「푸른 여우」 「은행나무 실록」 「석파정에 가다」 「동숭동 스튜디오」 등은 단연 보석처럼 빛났다. 그 중에서 사화집 제목으로 이보숙 시인의 「우주를 돌리는 손」이 선정된 것은 그만큼 시인의 상상력이 크고 넓게 공감을 얻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생각된다. 마찬가지로 「신神의 열정」 「천사의 나팔꽃」 등의 시에서 보이는 종교적 탐구는 시인의 새로운 면모와 가능성을 보여준다.(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