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12일 연중15주간 화요일 (마태11,20-24)
“많이 받은 이들이 변화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오늘 복음을 통해서 드는 생각은
“많이 받았기 때문에 축복이기도 하지만, 또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만큼 더 조심하며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코라진과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이 바로 그런 도시였습니다.
예수님은 유독 이들 도시에서
기적을 많이 보여주시며 하느님의 뜻을 전했지만
그 정도 했으면 응당 제일 먼저
하느님의 뜻을 알아차렸어야 할 이 도시 사람들이
전혀 회개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너희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라고...
저주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염려하는 탄식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우리나라 정치현실에 적용해 보면,
586 세대의 정치인들, 즉 80년대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의
퇴진을 요구하는 소리가 높다는 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586세대 그들은
20대 청년 때 우리나라 민주화를 위해, 또 민중을 위해
투신했던 소위 운동권 학생들이었습니다.
이런 운동권 인사들이 이후 대거 정계에,
그것도 진보진영에 진출을 했고
그동안 김대중, 노무현 시대를 거치며
(속간의 표현대로) ‘꿀 빨아먹는’ 호시절을 보내면서
또 다른 기득권을 누려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들을 이른바 ‘강남 좌파’라고 표현합니다.
이런 586 용퇴론을 내세우는 이들의 주장은
과거 운동권 출신, 그러나 지금은 기득권을 손안에 거머쥔 그들은
이제 ‘아무리 죽었다 깨어나도’
현실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불신 때문입니다.
이른바 이제 ‘먹고 살만해진’ 강남 좌파인 그들이
이미 개혁의 동력을 잃었을 뿐 아니라,
입으로만 개혁을 얘기하는 ‘입 진보’일 뿐
오히려 과거 자기들의 과거 운동권 경력을 보호막 삼아
또 다른 권력(구태)을 휘두르고 있다는 비판인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586세대가
20대 때 권위주의 독재 시절에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데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40년 전 거기에 붙잡혀 있기만 했지
전혀 진화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민주화가 어느 정도 성숙화된 상황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없고,
결국 실천도 잘 보이지 않는 ‘수박들’만 남게 된 것입니다.
이에 사람들은 실망과 짜증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니네 586들은 뭐 했느냐? 이젠 물러나라, 꺼져라’
하면서 비판하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그만큼 많이 받았음에도 변화할 줄 모르고
구태에 머물렀던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을 비판하는
예수님의 꾸짖음과 통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