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칼럼] 한국인의 극단주의
우리의 해방정국은 분열과 대립의 전성시대였다. 좌우(左右) 갈등은 말할 것도 없고 좌익 및 우익진영 내부에서의 분열과 대립도 매우 심각했다. 당시 점령군 사령관 존 하지는 그 이유를 한국인의 ‘선천적 무능력’과 ‘당파심’에서 찾았다. 그런 말이 나올 만도 했다. 1945년 12월 송진우 암살, 47년 7월 여운형 암살, 47년 12월 장덕수 암살, 49년 6월 김구 암살 등 연이어 발생한 정치 지도자들의 암살 사건과 밥 먹듯이 저질러진 각종 유형의 테러는 이 나라가 분열과 대립을 일삼다가 망하고야 말 나라라는 인식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1948년 유학생 20명이 미국으로 떠났다. 그 유학생 중의 한 명이었던 이기홍은 1999년에 낸 회고록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나와 같이 1948년 군용선으로 태평양을 건너간 유학생들은 배에 타면서부터 조국을 저주하고 다시는 고국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한국에 돌아온 사람은 그 일행 중에서 나 한 사람밖에 없다.”
저주받은 조국! 해방정국의 분열과 대립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던 젊은이들이 이 땅에서 6.25 전쟁까지 겪었더라면 어땠을까? 그 처절한 동족상잔의 비극 앞에선 저주할 힘조차 갖긴 어려웠을 것이다. 해방정국에서 좌우합작운동을 펼쳤던 우사 김규식은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이유로 우리 민족이 상당히 잔인한 민족이라는 점을 들었다. 소련 등 동구권에서 벌어진 숙청의 바람이 한반도에선 훨씬 더 증폭된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하였던 것이다. 종교화된 반공(反共)의 광신성도 공산주의의 그것에 못지 않았으니, 이 나라는 해방 이후 7-8년간 집단적 정신착란이라 해도 좋을 정도의 광기(狂氣)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모든 광기의 장면들을 목격했던 외국인들이 적어도 ‘88 서울올림픽’ 이후의 한국을 보고 놀라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한국인의 ‘선천적 무능력’과 ‘당파심’과 ‘잔인성’ 그 어느 것도 한국인을 제대로 설명해주진 못한다. 분열과 파벌은 여전히 한국인이 자랑하는 속성이긴 하나, 그것이 한국의 저력까지 죽이진 못한다.
한국과 한국인을 설명해줄 수 있는 키워드는 과연 무엇일까? 계속되는 역사적 불행으로 인한 악순환의 한 과정에서 그 답을 찾는 건 반쪽 짜리 진실에 불과할 것이다. 다른 나라 같았으면 이미 오래 전에 완전히 망해버렸을텐데, 우리는 계속 버텨온 탓에 부정적 유산도 많은 만큼 다른 장점도 많은 나라가 아닐까? 그 이중성을 담고 있는 게 바로 극단주의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극단으로 몰고 가야만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의 극단주의는 너무도 뚜렷이 대비되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중간은 없다. 흥망(興亡) 양자택일이다. 어느 한 쪽에서 다른 한 쪽으로 옮겨가는 속도도 빠르다. 분열하고 증오하는 일도 목숨 걸고 하지만, 공부하고 일하는 데에도 목숨을 걸기 때문이다.
극과 극을 치닫는 한국은 참으로 묘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는 사회다. 아니 공존하는 정도를 넘어 ‘뫼비우스의 띠’처럼 구분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늘 활력이 넘친다. 이기적인 생존경쟁도 치열하지만 이타적인 사회참여도 왕성하다. 그 어느 쪽이건 늘 에너지는 과잉이다. ‘오버’는 기본이요 필수다. 그래서 재미있다. 이 사회, 특히 정치에 대한 저주마저 즐기자고 하는 것 같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우리는 늘 욕할 거리를 제공해주는 정치인들에게 감사드려야 한다. 그렇게 일관되고 성실한 엔터테이너가 어디에 있는가 말이다. 인상 찡그리지 말고 올 한 해도 우리 모두 재미있게 살아보자. 2004.02.15 14:59:00
첫댓글 이승연이 생각이 났다 그저 좋게 해결이 되었으면.. 그녀가 힘을 냈으면 좋겠고 아무쪼록 지금의 열화~?와 같은 성화와 관심이 계속되기를..
한국의 극단적인 문화가 사회를 복잡하게 하고 갈등을 유발하는데, 그렇게 치고박고 하는 과정에서 사회가 한층 더 성숙되 간다고 생각되요.. 비온뒤에 땅이 굳듯이... 하지만 비만 계속 오면 절대 안되겠죠?? ^^:;;
존경하는 강준만 교수님께. 교수님글 잘읽었읍니다 이제 인테넷에 항복하시고 당분간 글접으신다죠? 저도 오늘 각종 사회관계 컨텐츠 돌아다녀 보니깐 가관이이더군요 게시판마다 극렬한 이분화로 점철되있더군요 강준만 교수님 그렇타고 손놓고 계심 참된지식인이 할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인터넷에 뛰어드십요
이대로 극단적인 이분화로갈경우 남은 지지 기반으로 여타정권이나 정당은 살아 남을 수있읍니다 예를들어 야당은 영남 얼굴마담 앞세워 영남만 부축여도 엄청난 생존지지 기반이생깁니다 반대급부로 다른 지역 이반표가나와서 여당은 생존 하겟죠 그렇다고 이렇게하면 근40년간 이어져온 분열의 재판뿐이더되겟읍니까.
언젠가 다른 글에서 강교수님이 지적은 잘하는데 대안은 없는분이라 꼬집은글을 읽었읍니다 이젠 인터넷에 뛰어드십시요 하물며 월간조선도 인터넷판이있읍니다 그냥 꼬집을게아니라 뛰어들어가 계도하세요 그게 참된 진보지식인의 길이라고 봅니다 더이상의 분열은 미래가없다고 봅니다 들어가셔서 올바른 비평이뭔지
보여주시길 바라겟읍니다..건승을 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