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중에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냐 하고 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이라 하신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요16장17-18절)
구원을 얻었고 얻어가는 믿음엔 반드시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정하신 과정을 따라 자신을 복종시키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래서 신앙고백 중에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그 아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며, 성령을 믿사오며 하는 부분이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진리의 성령의 시대를 모르면 하나님의 아들의 세대 곧 의인의 회중이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지금 제자들은 예수님의 육성설교를 듣고 그가 행하시는 온갖 기적을 목도하고도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뭔 말씀인 줄 통 모르겠네 하고 있습니다. 모든 정황으로 주님이 아버지께서 보내신 아들이심은 어느 정도 알겠는데 아버지께 다시 돌아가신 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고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요16:16)하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캄캄합니다.
어떤 사람은 복음서를 통해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건 예수그리스도를 멋지게 소개하는 것일 뿐 요한복음을 모르면 그리스도와 하나 곧 연합과 일치가 되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 인간이 타락하므로 육화되어 있는 상태에서 그리스도의 오심과 죽으심을 통해 구속하심을 받았습니다. 죽음의 값을 죽음으로 갚으시고 그 피로 구속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엡1:7) 여기에 그친다면 예수그리스도께서 이룩하신 사역에 대해 실감 있게 전해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3일 후부터 일어나는 천상사역 곧 주님이 아버지께로 돌아가시고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주께서 하신 일을 통해 우리에게 이룩하시는 구원의 프로그램을 모르면 맹인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죽음에서 예수재림을 바로 연결시키는 믿음을 강조합니다. 건물로 치면 1층과 3층은 있는데 2층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건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형적인 신앙은 있습니다. 과학은 실험을 통해 증명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철학은 신묘한 인간의 기능과 역할을 다 증명하지 못하는 영역을 말하기 때문에 똑 떨어지지 않아도 사람들이 수용을 합니다. 그 영향을 받아 별별 잡동사니 영성이나 종교의식이 만연하고 있어도 어느 누구도 그건 아니잖아 하고 잡아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일이 인간들 속에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도 이런 맹점을 안고 ‘에라 모르겠다’ 하고선 덮어 놓고 신파와 같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세상을, 교단을, 교수를...아뇨 아무도 탓할 수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제자들처럼 조금 있으면 가시고 조금 있으면 보리라 하신 말씀이 도대체 무슨 말씀이냐 한다면 아직 구약 마당에 서 있는 것이며 죄와 사망의 자리이며 어둠이며 맹인이 되어 있는 겁니다. 요한복음의 편지를 받을 수신자가 아닙니다. 진리의 성령이 찾아 오셨다가 이 집은 아니네 하시든지 계3장의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밖에서 노크를 하고 한 없이 기다리시겠지요. 만약 지금 그리스도에 대해 호기심이 대단하다면 그게 바로 주님의 노크이며 주님의 부르심입니다. 귀를 기울이고 들으세요. 구하고 찾고 두드리세요. 진리의 성령이 임하시면 조금 있으면, 그게 무슨 말씀이냐 하는 의문이 싹 사라지고 본격적인 구원의 프로그램이 작동이 됩니다. 공장에 전기 스위치가 켜지면 모든 기계가 돌아가듯... 과학보다 더 정확하게 말입니다.
첫댓글 아멘!
지금은 잘 이해되지 않지만 사모하며기대하며 인내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