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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기독교회라고 이름하는
그리스도의 사람들로서 구원받았습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비할바 없이 최고로 존귀합니다.
더 이상 존귀한 존재는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는
최고로 존귀한 존재가
구원받은
그리스도의 사람들입니다.
내 자신이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면 사실이 그러합니다.
존귀하기만 합니다.
내 자신이 그런 존재라는 사실을
눈을 열고서
그래야 하는 이유중 하나가
그래야
내 자신이 미혹 당하지 않고 경계해서
지켜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자신이 존귀한 존재인지
모르게 되면
아무렇게나 내 자신을 두게 되고
존귀함을 지키려 경계하지 않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부터 시작된
기독교회의 역사는
언제나 그러하여 왔었지만
지금은 더더욱
미혹이 성행하는 시대입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거짓에 미혹당하지 않도록
경계해서 존귀한 내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그 방법중 하나가
내 자신을 눈을 떠게 하여 보게 하고
알게 하는 것입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하는도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모르면 거짓에
미혹되어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존귀한 존재이기에
미혹하는 일이 더 활발하기만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이 세상에 속해 있는 사람의 상태와
내 자신이
어떻게 구원 받았는지
알아야 존귀함을 알게 되기에
이를 위해서는
먼저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선입된 지식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잠깐 내려 놓을 필요가
반드시 있습니다.
선입된 그 지식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과
창조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께서 지으셨다는,
이 부분입니다.
창조론은 100% 사실이고
완전 성경적입니다.
이 같은 창조론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부정한다면
그는 이단 삼단 보다
더 악한자일 것입니다.
그런데 왜 선입된 창조론을
잠깐 내려 놓으라고 하는가?
왜 그래야 하는지 까닭이 있는데
이 부분 유념합시다.
이단 삼단 보다 더 악한 자들이
출몰하여
창조론을 부정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누구인가?
독일에서 비롯된 자유주의 신학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사람의 지성으로
성경에 기록된 창조론을 보니
또 성경을 이리 저리 보니
도무지 맞지 않고
여러 많은 모순이 있다는
학설을 주장하였고
이것이 탄력을 받아 확산되기에
이를 방어하기 위하여
강조된 것이 창조론입니다.
이것이 창조론이 부각된 배경입니다.
창조론은 강조할 필요 없는
너무도 당연한
성경적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을 주장하는
자유주의 신학을 대처하기 위하여
강조할수 밖에 없었던
시대의 창조론 이었고
그런 환경이다보니
그래서 부각된 창조론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진화론 주장에
맞서서 강조되고 부각된 창조론을
역으로 이용하여
창조론을 떠오르는 태양처럼
크게 부각시킨
세력들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이들이 오늘날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왜 문제인지 감지하지 못하는 대부분입니다.
창조론을 역 이용하는 세력들이
창조론을 부정하고
진화론을 주장하는
자유주의 신학을 대응하기 위하여
창조론을 떠오르는 태양처럼
크게 부각 시켰는가?
아닙니다.
WCC.WEA패거리들이
부각된 창조론을 틈타서
더더욱 창조론을 떠오르는 태양처럼
온 세상 교회들 머리위로
띄은 것입니다.
본래는 진화론을 주장하는
자유주의 자들로 부터 성경을 지키기 위하여
대응 차원에서 창조론을 부각 시켰지만
WCC.WEA패거리들은
부각된 창조론을 더더욱 확산 시키고 강조하여
세계교회 대부분의 머리속에
각인 시킨 것입니다.
이 세상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점과
이 세상에 속해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하나님께서 지으셨다는
사실을
강조에 강조를 더하여 갔습니다.
그래서 이 같은 창조론이
세계 대부분의 교회들의
머리꼭대기 까지 점령하고 올라서게 된,
배경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왜 문제인가?
주목!
비 본질을 본질화 시키면
본질은 약화되거나 사라지고
비 본질이 본질이 되고
확산되기에
아주 큰 문제가 발생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기독교회의 근본과 본질과 원형을
잠식시켜서 수면 아래로
수장 시켜 버리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창조론을 부각 시키고 부각 시켜
기독교회의 근간과 근본과 본질과 원형을
이들이 누구냐?
WCC.WEA입니다.
이들이 무엇을 위하여 창조론을 앞세워
성경이 말씀하시는 기독교회의
근간과 근본과 본질과 원형을
수면아래로 수장 시켰는가?
이 세상 사회정치 구원을 위해서 입니다.
이에만 단순히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성경적인 기독교회를
인류 세상에 분열과 갈등과 대립을 낳는
암적 존재로 여기고
없애 버리려는
사탄의 사악한 간계를 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과
이 세상에 속해 있는 모든 사람을
다 하나님께서 지으셨다는
이 같은 창조론을 부각시켜
구원받은 기독교회로 하여금
이 세상 사람들의 사회정치를 위하여
세상으로 끌어내려
구원받은 기독교회의 존귀한 생명을
타락 시켜 버리려고
수단과 방법으로
창조론을 부각시킨 WCC.WEA입니다.
WCC.WEA는
구원받은 기독교회에게 있어서
만고역적임을 아셔야 합니다.
창조론을 미끼로 삼아
구원받은 기독교회를
다시금
이 세상 사람들에게 끌어내려
혼합으로 섞어서
타락 시켜 버리려는
사탄의 거짓 간계를 가진
WCC.WEA입니다.
WCC.WEA가
자신들이 목적하고 추구하는
이 세상 사람들의 사회정치 구원을 위하여
앞세워 부각 시킨 것이
창조론임을 아셔야 합니다.
아 세상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과
종교불문하고
이 세상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다 하나님께서 지으셨다는 것을
앞세워 들고 나아서는
이 세상 사회정치 구원 운동을
펼쳤고
그것이 에큐메니칼 운동,
신앙과 직제일치 운동,
크리스천 포럼, 하나님의 선교 등입니다.
이러함에서 성경을 조금 안다고
여기시는 분들께서도
이 같은 WCC.WEA의 주장에
무엇이 문제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놓치는 경향이 있는데 보십시오.
성경이 말하는 핵심,
기독론, 구원론이 통째로 무시되고
하나님의 전 역사가 왜곡되고 있다는,
바로 이점이지 않습니까?
왜 그런가?
WCC.WEA가 출몰하여
부각 시켜 버린 창조론에 가려서
성경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기독론, 구원론이
희석이 되고
중심에서 밀려나게 됨에서 입니다.
그러므로 WCC.WEA는
창조론을 부각시켜
성경이 말씀하시는 기독교회의
근본과, 근간과, 본질과, 원형을
싹 없애 버리고
완전 다른 기독교로
바꿔치기하고
다른 기독교회를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창조론으로 본질을 왜곡 시켜 버린 WCC.WEA입니다.
그러므로 WCC.WEA가
로마 카톨릭과 함작해서 펼치는
이 세상 사회 구원은
무시무시한
간계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창조론은 백번천번 맞고 옳고
성경적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이 말하는 주제의 핵심도 아니고
기독교회를 이루고 있는
근간도 아니고,
근본도 아니고, 본질도, 원형도 아닙니다.
기독교회 안에서 왜 창조론이 대두되었는지
또 왜 강조되었는지
이해 하시고
이제는
이러한 배경을 가진
창조론을 마음과 생각에서 내려 놓으시고
원점에서 기독교회를 다시 살펴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받은 내 자신이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 알게 되고
어떠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고 받았는지
바르게 보게 되고 알게 되고
이해되고
WCC.WEA가 그 동안 펼쳐온
이 세상 사회 정치 구원이
얼마나 비 성경적인 행동이고
성경적인 기독교회의 사역이 아닌지
보게 되고 알게 되어
미혹당하지 않고
우리 자신을 지킬수 있게 됩니다.
그 동안 WCC.WEA가
우리들 의식에 심어 놓은 것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으로
우호적이라는 점입니다.
이 세상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을
다 하나님이 지으셨다 하여
마치 하나님과 이 세상에 속한 사람과의 관계가
대단히 화목한 관계 처럼
우호적으로 느끼게 되고
경계없이 여기게 됩니다만
그렇지 않고 정 반대입니다.
원수관계입니다.(롬5:10)
하나님이 없는 세상이고 사람들입니다(엡2:12)
하나님의 사람들이 아니고
외인들입니다(막4:11. 고전5:12,13.
엡2:12,19.골4:5.살전4:13 딤전3:17)
이 세상에 속해 있는
모든 사람들은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롬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이르지 못합니다.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아담과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망이 왕노릇하는 사람의 상태입니다.(롬5:14)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과 둘로 나눠어져 있고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엡2:13,골1:21)
이세상은 사망의 땅이고
죽음의 그늘아래 앉아 있는 사람입니다.(마4:16)
사람은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고 (눅1:17)
사람은 어두움입니다(엡5:8)
이 세상 사람들은 사탄의 권세아래 있습니다(행26:28)
율법의
저주아래 놓여 있습니다. (갈3:10,13)
영생의 길이 완전 차단된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의 상태입니다(창3:22-24)
이 세상에 놓인 사람들이
어느 정도 죽은자들인가?
빛이 비춰도 어두움이 물러가지 아니하는 상태입니다.
빛이 비취면
어두움은 물러가기 마련이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요 1: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빛 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는 이 세상 사람들입니다.(요3:19)
이세상 모든 사람들은
죄의 종입니다(롬6:17)
죄의 종으로서
죄를 위하여 삶을 살아주고서는
사망을 댓가로 받습니다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이러한 세상에 속한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없습니다.
어떤 수단과 방법과 행위로도
구원 받을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 속한 ,
하나님께서 창조시에 지으신 사람은
이 세상에서 멸망하는
길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구원받을 길이 없습니다.
구원이라 함은
이 세상에 놓인 사람이 멸망치 않고
벗어나서
영생 얻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구원이
이 세상에 놓인 사람들 중에 누가 있을 수 있는가?
없습니다.
왜냐?
값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값이 죽어 망해 버리는 사망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중에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죄의 권세는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이 권세아래 놓인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상태입니다.
죄가 왕노릇하고 사람은 죄에 사로 잡혀 종노릇 하고서
받는 삯이 사망입니다.
비극이라도
이런 비극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 속한
사람만큼 큰 비극의 상태는 없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상태로 까지
타락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이 세상 사람들입니다.
왜냐?
어두움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놓인 이런 사람을
능력이 많다 해서 하나님이 구원하실 수 있는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이 세상에 속한 모든 사람들의 주인은
죄이고
죄가 권세자이고
소유권을 가진 죄인의 주인이
죄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립니다. 예수님이 죄에 대해서
죽으셨다는 점을 아셔야 합니다. 죄가 죽은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해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이러한 죄의 종이 된 사람이고
이런 사람이 속해 있고 존재하고 있는 영역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은
죄로 인하여 멸망하는
죽음의 사람들의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나라 세상이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죄로 인하여 멸망하는 죄인이기에
철조망을 쳐서
가두어 주셨는데
그것이 율법입니다.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은 율법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세상 끝날까지 일점일획도 변하지 아니하는
완전하고 완벽 그 자체의 율법이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을
가두고 있기에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은
이 세상을 벗어나지 못하고(구원)
멸망당할수 밖에 없습니다.
알아야 합니다.
이 토록 무서운
인류 세상이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도
다 하나님께서 지으셨다는 것으로
우호적으로 대할 인류 세상이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멸망하는 죽음의 인류를
가두고 있는 감옥과 같은
인류 세상임을 보는 눈이 떠지고
알게 되는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모두가 멸망하는 비극적인 상태에 놓인
사람이고
이런 사람이 갇혀 있는
무시무시한 세상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사람들(기독교회)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구원을 받게 되었는가?
하나님이 능력과 권세가 크고 많기에
짠, 하고 구원시켜 주신 것인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피를 흘리시고
값을 주시고 사신 교회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행20:28)
하나님께서
당하신 희생의 크기는
측량 못합니다.
자기 독생자를 죄로 삼으시고
율법의 저주를 따라
심판으로 십자가에 매달아 놓고
형벌로서 처절한 죽임에 처해 버린
희생을 가지신 하나님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매달아 놓고
저주의 죽음이라는
형벌을 가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왜 오셨는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저주의 죽임을 당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으심을
아버지께서 주신 죽음의 잔으로,
내가 마셔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요18:11)
이를 위해
세상에 오셨다는 말씀을 하셨고
하나님으로 부터 그 저주의 즉임을
십자가에 달려 당하시고 마침내
"다 이루었다" (요19:30)하시고
고개를 숙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처절한 절규에 절규를 토해 내셨고
하늘의 태양은 기절하여 빛은 잃었고
생명없는 바위는 숨이 막혀 터졌습니다.
마 27:46 제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제자들과 함께 하시면서
예수님은 자신의 고통을 자주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차라리 불이 붙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심히 고민되어 죽게 되었다고.(마14:34)
눅12: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12:50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저 앞에 놓인 자신의 처절한 고통을 내다 보시며
죽음에 질린 공포를 나타내셨지만
제자중에 누구도
예수님의 고통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완벽한 사람으로
여자에게 나시고 율법아래 나셨습니다.
단, 하나 다른 점은
죄가 없으신 분이시고
죄가 없으신 분이
죄인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셨고
그 목적은
하나님으로 부터 저주의 형벌의 죽임을
당하시기 위해 오셨고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입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구원을 받았는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못 박힌
죽으심으로 입니다.
십자가의 못 박혀 죽으심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의 구원은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독생자를
죄인의 모양으로
이 세상에 보내시고서는
십자가에 못 박아
저주의 죽임을 당케 하시고
무덤에 장사지내 버리시고
구원하여 내신 존재가
기독교회라고 하는 ,
그리스도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못 박혀 죽임 당함이
없었더라면
오늘 우리의 구원은 없었고
우리는 여전히 세상에 속한 죄인으로서
멸망당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죽어 주심으로 인하여
우리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
구원받은 우리 기독교회가 태어남은
말 할수 없는
하나님의 희생과
예수 그리스도의 처절한 죽임이 있고서 입니다.
이런 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 속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비극적인 상태에 놓인 존재인지
알게 하는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 토록 큰 희생을 지불하셔야만
하셨기에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비극,
그 자체입니다.
누구도 무엇으로도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서 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모양새입니다.
WCC.WEA.로마 카톨릭 기독교와
성경적인 기독교회와의 차이가 무엇이냐?
겉 모양새가 비슷해 보이고
사역도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 180도로 다릅니다.
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연합하여
세상에 속한 옛 사람이 죽지 아니하고
여전히
세상에 속해 있고 속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기독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심과 연합하여
함께 장사지낸바 되고
사망권세를 벗어나서
하늘에 속하신 그리스도 예수 안으로
장소를 옮겨
하나님의 아들로 다시 태어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우리 기독교회를
노략질하는 이리떼들이
로마 카톨릭과 합작해서 펼치는
WCC.WEA입니다.
로마 카톨릭은
이교적인 모양새를 확실히 드러내 보이고 있기에
미혹당할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WCC.WEA는
구원받은 우리들과
매우 유사한 모양새와 행동으로
우리들 속에 이리가 양의 탈을 쓰고 양의 모양새로
침입하여 있기에
분별이 쉽지 않아 미혹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WCC.WEA가 나타내는 행동의 열매로
알수 있습니다.
나타내는 행동의 열매는
결코 숨길 수가 없습니다.
처음 부터 그러하였지만
지금은 더더욱 우는 사자와 같이 마귀의 활동이
집어 삼킬자를 두로 찾는
왕성한 시대입니다.
명분을 앞세워서
미혹하는 사탄의 술수에 걸려들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것들은
무조건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이라고 하는 영역을
벗어나지 않고 지키는 것이
교회를 지키는 것입니다.
교회를 지킨다는 앞세운 명목이
도리어 세상으로 나가게 하고
교회를 무너뜨리고 있는
미혹임을 알고 그런 류를 경계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교회를 지킨다는 명목을 앞세워
교회를 무너뜨리는 시대라는
이 같은 사실을 명심하고
그리스도 예수안이라고 하는
범주를 벗어나지 말고 지키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의롭고 거룩한것 같은 이설들이 많고
주장들이 난무한 시대입니다.
이 세상이 박살이 난다 하여도
요동치 말고
그리스도 예수 안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가지된 우리가
붙어 있는 나무를 떠나서는
살지 못합니다.
이 세상의 비 바람,
눈보라 몰아쳐도
이 세상이 무너진다 하여도
지켜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이라는 영역입니다.
이 영역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성숙한 이해가
모두 에게 주어지게 되기를
바랍니다.